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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의미와 상징 본문

참고자료

강의 의미와 상징

singingman 2023. 1.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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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모든 고대 문명은 강가에서 시작되었다.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에덴 동산에서 강이 발원하여 4개의 강이 되었다고 한다.

생명과 문화가 강가에서 발전하고 확산되었다.
토지에서 농경생활을 영위하기도 하지만 강가에서 수렵생활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 많이 있다.

그런데 이 강이 문화나 삶뿐만 아니라 죽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성과 속을 구분하기도 하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한다.
강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큰 권력을 얻기도 했다.
지자요수(知者樂水)에서 말하는 수(水)는 강물을 말한다.
나일강이나 황하를 잘 치수한 지혜로운 사람은 왕이나 파라오의 권력을 얻기도 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길가메쉬를 홍수가 휩쓸어버린 신성한 곳을 되돌려놓은 자로 묘사한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 왕궁에는 정문을 지나면 금천(禁川)이 있다.
이 금천을 건너는 다리가 당연히 금천교이고 이 다리를 경계로 일반인이 함부로 궁에 출입할 수 없게
구분하기도 한다.
또 궁궐의 보안을 위해서도 필요한 시설이기도 하다.

경복궁 금천교

덕수궁 금천교

옛날 성 주변에 해자가 있던 것도 안전을 위해서 물을 채우고 적이 성으로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

일본 오사카 성에도 해자가 있다.(Sweet Escape (zum.com)에서 복사해 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도 이런 물을 건너 들어간다.


절에는 절 건물들과 세속 사이에 개울이 있다.
절이 있는 산의 지형에 따라 일주문을 지나서 있기도 하고 일주문 전에 있기도 하다
성과 속의 경계선이다.
이 개울을 건너는 다리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극락교나 해탈교 등으로 불린다.
이것은 불교 세계관에서 말하는 수미산이 향수해라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향수해를 건너가야 수미산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절 앞의 개울이 향수해를 대신하고 사찰이 있는 곳이 수미산이 되는 것이다.
이 개울을 건너면 聖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송광사 극락교

선암사 昇仙橋(보물 400호)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천국가는 것을 요단강 건너 가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아마 이것은 구약의 Trans Jordan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이 있는 Trans Jordan은 약속의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것이 천국과 연관된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요단강의 한 부분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10126399)

찬송가에도 이런 기독교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로마 신화에는 저승으로 갈 때 배를 타고 스튁스 강을 건너간다.
이 저승으로 갈 때는 여러 개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첫번째 강이 아케론강이고
두번재 강이 코퀴토 강
세번째 강이 플레게톤 강
네번째 강이 레테강이고 이 강을 건너면 이승의 일을 완전히 잊게 된다.
이 강을 건너면 큰 벌판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영생의 삶을 구가하는 극락인 엘리시온 들판이 있고
왼편에는 무한지옥인 타르타로스가 있다.
이 타르타로스를 지나면 저승의 마지막 강인 스튁스강이 나온다.
이 강을 건너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증오의 강이다.


조선 왕릉에는 정자각과 봉분 사이에 작은 도랑이 있고 그 도랑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다.
귀신이 정자각에 올 때나 제사음식을 먹고 돌아갈 때 발이나 버선이 젖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자각(丁字閣)은 귀신에게 제물을 차려놓고 귀신이 와서 먹고 가는 곳이니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귀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역에 와서 제물을 먹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작은 돌다리도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선이 된다.

파주 삼릉의 정자각과 봉분 사이에 있는 돌다리.


우리 민간에서는 죽음을 황천(黃泉) 을 간다, 혹은 구천(九泉)을 떠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강의 발원지는 작은 샘인 경우가 종종 있다.
서울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한강은 태백산에 있는 검룡소라는 작은 샘에서 시작하고 낙동강은 태백에 있는 황지라는 작은 연못에서 솟아오르는 샘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강과 샘은 사실 같은 것이다.

태백산 근처에 있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임사체험을 한 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갔다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극락을 갈 때 도솔천을 건너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반야용선을 타고 강을 건너 반야의 세계로 건너간다.

소백산 초암사의 반야용선도


또 우리는 어떤 일이 실패하거나 이미 결정되었을 경우에 (송아지)물 건너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강을 건넜다는 말은 이제는 뒤집을 수 없이 이미 실행되었다는 말이 된다.

서양에서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표현이 이제는 뒤집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BC 49년 카이사르는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당시 갈리아 정복을 비롯한 군사적 성공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과 로마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정치적 라이벌인 폼페이우스 및 원로원 의원들이 로마에서 카이사르를 제거하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가 전쟁이나 훈련을 마치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복귀할 때는 로마에 충성한다는 서약으로 무장을 해제하고 강을 건너야 하는 전통과 법규가 있었는데 그것을 어기면 반역으로 간주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무장을 해제하고 돌아가면 본인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강을 앞에 두고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하면서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채 강을 건너게 되고 결국 로마의 권력을 잡게 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권'을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당시 루비콘 강 지도

현재의 루비콘 강(https://cafe.daum.net/starrystarrynignt에서 복사해 옴)

위의 예들을 볼 때 강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암시하기도 하고 강을 건넜다는 말은 일을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 최초의 서정시라고 할 수 있는 공후인은 강을 건너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빠져 죽은 남편을 강과 연결하여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그대여, 강물을
건너지 말라 했더니,
그대는 끝내
강물을 건너고 말았구료.
강물에 떨어져 죽으니
그대여, 아아 어찌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