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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리 산성 2018-03-17 본문
성수네, 문목,소목과 함께 4집이 갤러리 호텔에 또 모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고모리 저수지를 한바퀴 돈 후 전부터 저수지 건너편에 있는 산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동네 이장님이 산성 올라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줘서 그대로 갔더니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문목은 오늘 어느 교회 설립 예배인지 어디에 축도하러 가야한다고 해서 먼저 갔다.
벌써 축도할 나이의 원로가 되어버렸다.
여자들은 호텔로 돌아가고 남자 3명만 올라가다.
저수지에서 광릉쪽으로 가는 큰 길에서 오른편에 보면 '앵두나무 우물가에'라는 카페와 요양병원 간판이 보인다.
그 길 따라 쭉 올라가면 요양병원이 나오고 병원 앞 길이 끝나는 지점에 쓰레기 분리 수거장이 있다.
이 분리 수거장 가운데로 등산로가 나 있다.
여기서 15분 정도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까지는 산성 조사하느라 그랬는지 임도가 나 있고 올라가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
정상부에 간판이 서 있고 고모산이라는 정상표지석도 자그만한 게 있다.
그리고 정상에서 저수지 방면 또 다른 정상부에 무덤이 하나 있다.
무덤 뒤로 난 길로 내려가면 다시 저수지 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1시간이면 저수지에서 저수지까지 원점회귀할 수 있다.
산 위에 산성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남쪽을 방어한 토성이고 삼국시대 백제의 토기 파편들이 발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제 저녁과 오늘 점심은 담은 한식 부페에서 먹었다.
여기가면 쌈채소를 하도 풍성하게 주어서 자꾸 과식하게 된다.
성수가 Starex 12인승을 사서 함께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다.
408호는 베란다 없어서 불편하고 404호는 보일러 소리 때문에 새벽에 잠자는 데 문제가 좀 있다.
다음에 갈 때 이 방들은 피해서 가야 한다.
비석의 설명에 의하면 무덤의 주인은 가선대부(조선시대 종2품의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로 동지돈녕부사를
지냈다.
동지돈녕부사는 왕의 친족이나 외척 중에서 품계가 해당되는 자로써 임명하였다고 한다.
실제의 직책은 없었고 1894년(고종 31) 돈녕부가 종정부(宗正府)에 합쳐졌다가 이듬해 귀족사(貴族司)로
개편되면서 이 직명도 폐지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 사람도 왕실 외척이었던 모양이다.
망주석은 생긴 모양은 남자의 심볼을 나타낸다. 즉, 다산 다복의 의미이다. 또한 이는 촛불을 의미하며 묘의 주인이 나가 놀다가 불빛을 보고 자기 집을 찾아오는 것이다. 망주석은 무덤의 오른쪽과 왼쪽에 하나씩 쌍으로 서 있는데, 그 기둥에 다람쥐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원래 도롱용이나 일반인의 무덤에 내려오면서 모양이 좀 더 우리에게 친근한 다람쥐로 변해 갔다. 그래서 그 앞에 알밤까지 조각해 놓은 곳도 종종 본다.
왕릉이나 대가집은 무덤 앞에 또 다른 등이 있는데 이것은 장명등이다. 장명등은 귀신이 나와서 혼유석( 보통
일반인들은 이것을 상석이라하고 그위에 음식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사실 이것은 귀신의 의자 또는
놀이터이다.
그래서 그 아래 받침은 북치고 장구치고 노는 뜻의 북 모양으로 되어 있다. 혼유석은 노는데 사용하는 상이고
망주석은 집(무덤)을 찾는 등이다.
즉, 장명등은 안방 내실이나 거실에 있는 집안 등이고, 망주석은 대문에 붙인 현관 등불인 셈이다.
그런데, 이 망주석 기둥에 조각된 짐승이 한마리는 위로 올라가고, 한마리는 내려온다. 정확하게 어느쪽이 올라가고 내려오는지는 정의되어 있지 않으나, 내려가는 것을 외출하는 것을 뜻하고, 올라가는 것은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혹자는 말하기를 서자의 망주석에는 다람쥐가 한쪽은 오르고 한쪽은 내리고,
적자는 모두 오르고 등등의 썰도 있느나 그냥 썰일 것이다.)
즉, 무덤속 귀신이 이것을 타고 외출하고, 또 돌아온다는 것이다.
원래 왕가의 무덤에 있는 이것의 이름은 다람쥐가 아니고 세호(細虎)라고 한다. 즉, 작은 호랑이라는 뜻인데, 원래 이 짐승은 용중에 제일 하치 쫄다구 용인 도롱뇽이다. 임금이 도롱뇽을 탄다는 것은 체신 머리가 없으니
호랑이라고 칭했다.
원래 왜 귀신이 도롱뇽을 타는 것인가 하는 것은 풍수지리설과 기(氣)에 관한 연유에서이다. 즉, 귀신(혼)은 기가 뭉친 것인데, 기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야 뭉친다는 풍수설이다. 즉 무덤 뒤에는 산으로 막아서 바람을 막고, 그 산줄기에서 기가 더 모여들며, 앞에는 냇물이 흘러서 물을 만나야 기가 빠져 나가지 않고 멈추어 모인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가 바로 뒤에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놓아야 명당이라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지리설이다.
그래서 귀신은 물과 친한 도롱뇽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위의 글은 http://blog.daum.net/sohnzs/16826079에서 복사해 왔다.
조선시대의 분묘제도에 의하면, 분묘 앞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나 문무신상(文武神像) 등의 석조물을 세우는 데는 피장자의 신분 혹은 품계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제한하였고, 장명등의 경우는 일품재상(一品宰相)에 한하여 세울 수 있도록 한정하였다고 하지만 이 무덤은 5대손이 근래에 세우면서 후손의 효행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계층을 반영할 의도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문인석도 양쪽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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