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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열림원 2021 319 ~3/2 본문

독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열림원 2021 319 ~3/2

singingman 2023. 3. 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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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기자인 저자가 이어령과의 대담을 책으로 엮었다.
암으로 죽음을 앞둔 88세의 노지성이 그동안의 자기 삶과 생각을 나타낸 책.

금세기 우리 나라 최고의 지성이며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가득 차서 번뜩거리는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손자와 딸을 먼저 보낸 아픔도 있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우리 시대 최고의 어른이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선생이 이 시대에 태어나 대중 앞에 서서 쓰고 말한 모든 것도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라는 거대한 동굴을 들여다보고 그 벽에 삶이라는 빛의 열매를 드리우는 능력은 선생이 가진 특별한 힘이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말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예지는 너무도 생생해서 살았거나 죽었거나 상관없이 그의 힘찬 육성이 일상 곳곳을 파릇파릇하게 파고든다.

결과적으로 그는 내게 어둡고 눅눅한 임사 체험이 아닌, 무섭도록 강렬한 탄생의 체험을 들려주었다.

내가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더 깊은 라스트 인터뷰를 단행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하자, 지인들은 다정하게 환호했다. “그 대화는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책이 되겠군요. 죽어가는 노교수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들려주는 마지막 수업...... 흥미로워요. 우리에겐 특별한 선물이 될 거예요."

“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사회성 좋은 사람이 위대한 철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철학자 헤겔도 훌륭한 성품은 아니었어. 하숙집 딸과 결혼하겠다고 공짜로 머물다가, 나중엔 그 모녀를 낳선 동네에 데려다 놓고 몰래 도망간 이력이 있어. 나중에 자식과 친권 소송을 벌이기도 해. '나는 네 애비가 아니다'라고 부정했고, 그 아이는 결국 군대에 가서 죽었지. 헤겔은 역사철학을 만들어서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미치고 전 세계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는데, 그 자신은 정작 상식적인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못 했다고.

레미제라블 쓴 빅토르 위고는 죽을 때까지 자기 아버지가 진짜인지 의심했어. 어머니가 밤낮 사교계에 드나들었거든. '내가 당신 아들이 맞습니까?' 하고 하도 의심을 하니까, 친부가 위고를 산꼭대기에 데리고 올라가서 현장검증까지 했다지. 이 산이 너무 아름다워 손잡고 오르다 여기서 너를 가졌단다.' 유명한 이야기야. 지독한 사람들이지."

내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떼'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사람마다 '진선미' 중에서 어떤 가치를 더 우선하는지, 또 사회마다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지 선별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자기다움의 윤리'로 진정성이라는 화두가 올라오면서, 가짜 아닌 진짜를 향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사람이 착한가, 이타적인가'를 묻는 도덕성, '그 사람이 예쁜가, 실력이 있는가'를 묻는 표현의 힘에 앞서 '그 사람이 정직한가, 일관되는가'라는 진정성의 잣대로 과거와 현재의 '위선'이 낱낱이 들춰지기 때문이다.

착하지 않아도 죄책감 느끼지 않고, 예쁘지 않아도 개성으로 긍정하며, 그 '다름의 값을 치러야 한다면 기꺼이 타인의 미움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용기 있는 사람들, '진짜 나'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 참자기를 거부하는 거짓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스마트한 개인들이 사는 세상, 점차 이 세계는 그렇게 '진'의 세계를 중심으로 수만 가지 바코드의 선과 미를 재배열하며 나날이 팽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게. 위대한 철학이 왜 대화에서 나왔겠나. 대화는 변증법으로 함께 생각을 낳는 거야. 부부가 함께 어린아이를 낳듯이. 혼자서는 못 낳아. 지식을 함께 낳는 것, 그게 대화라네. 내가 혼자 써도 그 과정은 모두 대화야. 내 안에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서 끝없이 묻고 대답하는 거지. 자문자답이야. 그래서 모든 생각의 과정은 다이얼로그일세.

과거엔 나 혼자서 생각하고, 나 혼자서 다 만들어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제 '이 글은 내 거야!' 단언하지 않아. 따져보면 내 글이란 없는 걸세. 모든 텍스트는 다 빌린 텍스트야. 기존의 텍스트에 반대하거나 동조해서 덧붙여진 것이거든. 텍스트는 상호성 안에서만 존재해."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 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지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 탁월한 놈이지.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 존재했어?"

허공에 날아든 단도처럼, '존재했어?'라는 스승의 말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시켜야 해요. 특권이 아니에요. 오히려불쌍한 애들이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쓸모를 못 찾은 놈에게 눈곱 하나 떼서 붙여주면 그 아이가 화가가되고, 귀지 좀 후벼서 넣어주면 그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 거예요.

'너 세상 나가면 쓸모없다 조롱받을 테니, 내 눈곱으로 미술 해먹어라. 너 세상 나가면 이상한 놈이라고 왕따 당할 테니 내 귀지로음악 해먹어라.'

그게 예술가예요. 예술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살아요. 아무것도 못해서 범죄자 돼요. 그러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에요. 학교만들어주는 게 자비예요.

"강화도에 화문석이 유명하잖아. 꽃 화자에 무늬 문자 써 화문석花紋席이거든. 그런데 나는 무늬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좋아서,그걸 달라고 했지. 그런데 그 무문석이 더 비싸다는 거야. 그래서따졌네.

"이보시오. 어째서 손도 덜 가고 단순한 이 무문석이 더 비쌉니까?''모르는 소리 마세요. 화문석은 무늬를 넣으니 짜는 재미가 있지요. 무문석은 민짜라짜는 사람이 지루해서 훨씬 힘듭니다. '

그 소리를 듣고 내가 무릎을 쳤어. 화문석은 짜는 과정에서 무늬넣을 기대감이 생기고 자기가 신이 나서 짜. 반대로 무문석은 오로지 완성을 위한 지루한 노동이야. 변화가 없으니 더 힘든 거지.

"영성이란 말이지.……… 뭔가를 구하고 끝없이 탐하면 자기 능력을 초월하는 영감이라는 게 들어오는 거야. 이런 얘기하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네만, 책 쓰는데 영 글이 안 써지면 마감 직전에 아무 책이나 들춰보거든. 그런데 그 책의 그 페이지를 안 봤더라면 글이 다 틀어질 뻔한 경우가 참 많아. 그 책의 어떤 문장에서 막혔던게 뻥 뚫리는 거지. 무운이 있듯이 문운이라는 것도 확실히 있어.

“어머니도 남이라는 사실 말일세. 펄펄 끓는 내 이마에 어머니의차가운 손이 닿는 순간, 뜨거운 이마와 찬 손이 닿는 그 자리에 미세한 벽이 만져졌지. 얇은 막이.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절대 하나의몸이 될 수 없는 얇은 막을 느껴, 앵프라맹스inframince라고 아주 미세한 차이야. 모든 사물, 모든 현실 속에는 그런 얇은 막이 있어. 나한테는 그것을 뚫는 게 영성이라네.”

준비해도 안올 수 있고, 준비 안 해도 올 수 있어. 하나님은 우리를 갑작스럽게 방문하시지. 마치 재앙이 예고 없이 덮치듯, 신의 구제도 그렇게 오는 거야. 사랑도 행복도 영성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를 덮치는 거라고 나는 느껴."

“영성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군요?"

"그렇다네. 다만 흡수할 수 있는 반사판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겠지. 필름의 감광지 같은 거야. 빛을 받아서 반응할 수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그런 체험들을 했던 거야. 생과 사의 엷은 막을 어릴 때 느꼈고, 그래서 어머니 코밑에 손을 대어보았고, 대낮에 굴렁쇠를 굴리며 눈물을 흘린 거라네. 어린애들은 다 영성을 가지고 태어나 어른이 되면 무뎌질 뿐이지. 어린애의 슬픔, 어린애의 두려움, 어린애의 그리움은……… 모르지만 다 알고 있는 상태라네.”

뒤늦게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걸.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는 말은 목사님 같은 소리가 아니야.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올림픽 굴렁쇠도 디지로그도……… 그전엔 다 혼자 한 줄 알았는데 병들어 누워보니 다 선물로 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스승이 있으면 외롭지 않겠지. 스승을 키우면 그 존재가 신이라네. 우리가 말하는 스승은 스님이라는 뜻이야. 스님이 커지면 부처가 돼. 제일 아래 단계가 스승이야. 이승에 스승이 없으니 죽고 하늘에 올라가 저승에서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건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네."

얼음과 서리의 어미는 누구냐? 너는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느냐? 독수리가 높은 곳에 집을 짓는 것이 네 명령이냐? 네가 아직도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네가 내 뜻을 알겠느냐, 고 호통을 친 거지. 욥은 신을 보았네. 그제야 자신이 '죄 없다'고 선언한 교만을 깨닫고 구제를 받는 거라네. 다른 사람은 그런 과정 없이 덮어놓고 믿으니, 그 믿음이 헛것이지, 탕자도 떠났다 고생하고 돌아와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어. 만약 형처럼 주변에서 서성였다면 유산 상속자가 됐을지언정 아버지와 깊은 관계로 들어가지 못했을 거야."

편집증적인 면이 강하면 시야가 좁아. 하나의 점을 향하지. 눈이 앞에 달린 사람들 있지? 그런 사람들이 점을 보는 사람들이야. 동물은 늑대, 호랑이, 사자야 앞쪽에 눈이 달려 있지. 예를 들면 사자는 먹이를 쫓아갈 때 전부를 쫓지 않아. 한 마리만 쫓아가지. 눈이 앞에 헤드라이트처럼 달려 있는 거야. 반면 사슴, 소, 말은 옆에 달려 있어. 쫓는 놈은 목표물을 향해 달리지만 도망가는 놈은 이리저리 봐야 해. 시야가 넓어야 하지. 어느 놈이 습격하나 어느 길이 열려 있나, 두루두루 봐야지. 그래서 초식동물은 아무리 큰 동물이라도 눈이 백미러처럼 붙어 있는 거야. 도망가는 놈은 좌우, 전방, 후방 360도로 보지.

“그런데 진실을 말해줄까? 백남준은 절대 말을 어눌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도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말이 서툰 교포처럼'그랬걸랑, 저랬걸랑' 했으니, 이상하지? 영어도 어눌하게 말해서백남준 인터뷰 하면 영어에도 자막이 붙었다잖아. 그런데 실제로는어땠을까? 그건 나만이 알고 있어. 백남준은 나하고 속으로 통한사람이야. 이 사람이 나하고 단둘이 얘기할 때는 유창하고 빠른 서울 사투리로 하다가, 기자가 오면 갑작스레 목소리가 달라져. 느리고 멍하고 어눌해지지. 우린 서로가 무장해제를 해서 어린아이가됐지.

그 친구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초대받았다고 해서 내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다다익선> 작품처럼 만들어보라고도 했어. 전기 칼로 삭 자르면 왕조들의 역사가 나오는 작품으로, 쌀뒤주로 영조의행차도를 만들어보라고도 했었다네."

서로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쇼를 할 필요도 없었던 영혼의 단짝을 그는 즐겁게 추억했다. 백남준이 더 오래 살았으면 당신이 준아이디어를 다 해냈을 거라고 아쉬워하며.

“두 분이 어떻게 달랐나요?"

“백남준은 나보다 용기가 있었어. 클린턴 앞에서 바지도 벗었잖아? 나는 전혀 그런 과가 아니지. 이어령의 행동이 백남준이고, 백남준의 내면이 이어령이라고나 할까. 나를 행동으로 하면 백남준이되고 백남준이 내면으로 들어오면 이어령이 되는 거야.

노동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야. 노동에서 벗어나는 걸 쉰다고 하지. 내 일이 나한테는 노는 거였어.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재미에 빠진 인간이었다니까. 허허."

보헤미안도 아니었고 추상적인 사람도 아니었으며 워커홀릭도 아니었다는 선생의 일갈이 상쾌했다. 글로컬리스트였고, 메타적인 인간이었으며, 재미에 빠져 산 인생이었다고 아내와도 조목조목 논쟁하는 남편이라니!

“가끔 저는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지적인 분으로 남고 싶으세요? 시적인 분으로 남고 싶으세요?"

"(미소 지으며) 보들레르 같은 사람은 죽기 전에 종탑이나 다락방이나 지상에서 한 치라도 높은 곳에 있고 싶다고 했네.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며, 찬란한 시 한 편을 남기고 싶다는 거지. 나도 다르지 않네. 지적인 것은 마음을 울리지 못해.

주변에 있는 사물, 바람, 햇빛, 신발, 단추, 머리카락……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저희들끼리 부딪쳐 나오는 진동이 파문을 일으킨다네. 지식은 울림을 주지 못해. 생명이 부딪쳤을 때 나는 파동을 남기고 싶은데 쉽지 않아."

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야.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게 평등이지요.

햇빛만 받아 울창한 나무든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에요.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지요. 또 하나 살아 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 죽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