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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과 실내악 2019-06-24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

냉면과 실내악 2019-06-24

singingman 2023. 3. 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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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면이 맛있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냉면이 점점 더 맛있다.
아마 냉면도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뷔페음식이나 아귀찜같은 다양하고 강렬한 음식이 맛있었지만 나이 들어갈 수록 그런 강렬한
맛보다는 은은하고 깊은 맛을 내는 냉면이 더 맛있다.
노자 63장의 '청정 담백하고 맛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는다(味無味)'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스테이크같은 음식이 맛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얼마전 플로리다에 갔을 때 먹었던 텍사스 스테이크 하우스의 스테이크는 내가 먹어본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 중 하나였다.
아주 풍미가 강렬한 음식이었다.
냉면은 그에 비해서 맛이 강렬하지도 않고 비쥬얼도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먹을수록 끌리는 맛이 있다.
물론 지금 말하는 냉면은 정통적인 냉면을 말한다.
칡냉면이나 불맛나는 고기를 구워주는 그런 냉면집의 냉면이 아니고 정통 육수와 면발과 고명을 고집하는
집의 냉면을 말한다.
 
나는 송추에 있는 평양면옥의 꿩고기를 넣은 평양 냉면과 우래옥의 냉면이 가장 맛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도 나와 유명해진 의정부 평양면옥 계열과 장충동 계열의 냉면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의정부 계열의 평양냉면은 많이 먹어봤다. 
내 입에는 딱 좋은 느낌이다.
장충동 계열의 평양냉면은 먹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곧 먹으러 가 봐야겠다.
(이 글 쓴 후에 장충동 경동 교회 앞에 있는 평양면옥에 갔다.
이 집은 육수나 고명도 좋았지만 면에서 향긋한 메밀향이 기분 좋게 나서  특별히 맛있었다.)

함흥식과 황해도식 냉면도 소문난 집들이 있다.
황해도식으로는 양평에 가면 옥천 냉면이 있다.
 
문대통령이 평양에 있는 옥류관을 다녀온 이후 여기 저기 북한 옥류관식 냉면집이 많이 생겼다.
나도 그런 집을 몇 곳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내 입이 서울식 냉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옥류관식 냉면보다 우래옥식 냉면이 내 입에는 더 맛있다.
간단히 말하면 옥류관식은 내 입에는 육수가 향이 너무 강하다. 
 
나는 냉면을 먹으면 그 맛에서 실내악이 연상된다.
젊었을 때는 실내악은 내게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음악이었다.
오페라나 심포니가 실내악보다 훨씬 매력있고 듣기 좋았다.
그러나 나이 들어갈수록 규모가 큰 음악보다 규모가 작지만 짜임새있고 깊이 있는 실내악이 더 좋아진다.
성악 부분도 오페라도 좋지만 가곡이 더 좋아지고 우리 전통 음악에서는 걸쭉한 판소리도 좋지만 시조가 더 
좋아진다.
시조의 고아하고 단정한 소리가 거칠고 투박한 판소리 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파바로티가 부르는 화려한 오페라 아리아도 좋지만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독일 Lied의 소박하고 깔끔한
음악이 심금을 더 울린다.
 
 
대학 3학년 때 였던가 현악 4중주를 쓰는 것이 학기말 과제였던 적이 있었다.
현악기를 잘 모르는 내가 현악 4중주를 쓰는 것은 아주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썼는지 지금은 기억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피아노 5중주인 슈베르트의 "송어"나 보케리니의 미뉴엣을 들으면 참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이 된다.
냉면을 먹을 때의 편안함과 같다고 할까?
맛없음의 맛이 냉면의 맛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노자 도덕경 35장에서는 道之出言淡乎其無味이라고 말해서 도는 언어로 표현해 봐도 심심하니 아무런 맛이 없다고 했다.
나는 냉면의 맛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흥없음의 흥이 실내악의 맛이라고 말하고 싶듯이.
 
 
https://youtu.be/HC_LJHAA6LQ

 
 
Variation인 '송어'는 주제를 조금씩 변화시키지만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냉면에 겨자를 더하거나 식초를 조금 더 넣어도 냉면 고유의 맛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마치 변주곡같은 맛이다. 
다른 음식도 양념을 더해도 맛에 근본적인 큰 변화가 없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우리 나라 음식에서는
대체로 반찬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반찬이 음식의 맛에 큰 변화를 준다.
하지만 냉면은 반찬이 소금에 절인 무우나 동치미 김치 한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냉면의 맛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https://youtu.be/Cy34VJaWGkA

 보케리니의 이 미뉴엣은 누구나 다 익히 알고있고 자주 듣는 음악이다.
 마치 냉면처럼 소박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만들어 준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62번 C장조 '황제' 2악장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심지어는 엄숙해지기도
한다.
찬송가에 이 곡이 들어와 있어서일까? 아니면 독일 국가로 사용되고 있어서일까? 
현악 4중주의 1st Vln과 Cello가 냉면의 육수와 면발에 해당한다고 비유할 수 있을까?
냉면의 맛은 내게는 육수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면을 어느 정도로 적당하게 삶고 쫄깃한 맛을 얼마나 내느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나는 육수가 가장
포인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현악 4중주 음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1st Vln을 육수에 비하고 음악의 흐름을 결정하는
베이스인 Cello를 면발에 비할 수 있을까?
혹은 이 둘을 서로 바꿔서 말할 수 있을까? 
고명은 없으면 섭섭하지만 내게는 면이나 육수에 비해서는 그 중요도가  약간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고명은 Vla나 2nd Vln에 비할 수 있을까?
현악 5중주의 콘트라베이스는 없어도 화음을 구성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있으면 강력한 베이스가
형성된다.
겨자나 식초가 여기에 해당하겠지.
잘 만들어진 냉면에는 겨자나 식초를 치지 않아도 냉면의 맛에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어쩌면 피아노 5중주에서는 4대의 현악기는 sop.alro.ten.bass의 역할이 주어져 있지만 피아노는 이 모든
음역을 다 아우르고 포용하고 있는 것이 냉면 육수같다고 할 수 있을까?
 
 
https://youtu.be/HC_LJHAA6LQ

 
 
 
현악 4중주가 냉면이라면 현악 5중주는 소바같은 느낌이다.
냉면의 육수는 강렬한 맛이 없지만 독특한 맛이 있다.
그에 비해 소바에는 가다랑어 육수가 강렬한 맛을 낸다. 
콘트라베이스가 들어가서 베이스를 강화하면서 소바의 강렬한 육수 맛을 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규모가 좀 더 커져서 우리가 많이 듣는 합주 협주곡인 비발디의 "Four season"만해도 현악 4중주나 5중주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한대씩이던 악기가 여러 대가 되고 건반악기가 들어가면서 소리가 더 다양해지고 화려해진다.
김과 여러 가지 채소를 섞어주는 막국수나 쟁반국수 같다고 할까?
 
내 귀에는 비발디 사계는 '이 무지치' 연주가 최고다.
단연 돋보인다.
그 멤버들이 바뀌어도 이 곡에 있어서는 '이 무지치'의 연주가 언제나 최고다.
같은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도 쉐프가 누구냐에 따라 음식 맛이 천차만별이듯 똑 같은 악보를 가지고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창의적이고 숙련된 쉐프의 솜씨가 환상적인 음식맛을 내듯이 뛰어난 기량과 상상력을 가진 연주자들의 연주는
큰 감동과 기쁨을 준다.
 
 
https://youtu.be/RbWmav17OEA

 
 
소규모의 현악기들이 내는 소리는 오래 들어도 지루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맛있는 스테이크도 자주 먹기는 부담스럽지만 냉면은 자주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냉면집들이 터무니없이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려서 먹기가 부담스러워졌다.
맛있지만 가성비가 좋지 않다.
적절한 이윤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평양에서 냉면 먹고와서 홍보가 너무 과하게 되었나?
 
 

송추 평양면옥의 평양 냉면

 
 

우래옥은 특이하게 배추 김치를 함께 준다.

 
우래옥의 평양 냉면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지만 19년 5월 현재 가격이 무려 14,000원이란다.
22년에는 16,000원으로 올랐다.
  (위 우래옥 냉면 사진은 http://cafe.daum.net/nangsamo/2pE3/326?q=%EC%9A%B0%EB%9E%98%EC%
    98%A5에서 복사해 왔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면 위에 소고기 한점과 돼지 고기 한점 그리고 계란 반쪽이 있고 고춧가루와 파를 려준다.
면발은 가늘고 육수가 아주 맑다. 맑지만 육수에서 고기향이 강하게 난다.
나처럼 위가 좋지 않은 사람은 육수가 맛나다고 다 마시면 속 쓰리다.
 
 

만포면옥의 평양 냉면

 
 

홍대 입구역 근처에 있는 동무 밥상의 평양 냉면  - 이 집 쉐프는 평양 옥류관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윤종철이라고 한다.
육수가 아주 맑다. 먹고 난 뒤 입맛이 아주 깔끔하다.
배추김치와 콩나물 무침, 절인 무우를 반찬으로 준다.
 
 

 
 

을밀대의 평양냉면  - 육수에서 구수한 고기향이 강하게 난다.
그래서 육수의 풍미가 아주 좋다. 겨자를 치지 않는 것이 내 입맛에는 더 맞다.
얼음을 너무 많이 넣어서 나는 얼음을 건져내고 먹었다.
 
 

을밀대의 절인 무우와 겨자(겨자는 맛이 아주 강하다.) 그리고 면수

 
 

일산 백석역 근처에 있는 양각도의 냉면은 육수와 편육의 향이 아주 강하다.
백김치와 절인 무우 그리고 양념한 무우등의 반찬들은 아주 깔끔해서 맛있다.
 
 

양평 옥천 냉면 - 황해도식이다.

 
 

 (나는 완자를 시키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다.)
양평 옥천 냉면 황해 식당은 황해도식이다.
면발이 부드럽고 굵다. 이 집은 냉면도 냉면이지만 고기완자가 한몫하는 집이다.
 
 

경기도 고양시에는 고자리 냉면이 있다. 칡냉면이다.
이 집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냉면의 3대 요소라 할 수 있는 육수 면발 고명 중에서 고명을 특화시켜 성공한 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오이와 배를 채로 썰어서 주는데 그 양이 어마무시하다.
면의 양도 많지만 고명을 이렇게 많이 주는 집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정통에서 벗어나도 자기 길을 잘 가고 뛰어난 맛을 내면 사람들이 몰린다.
이 집에서 여름철 토요일 점심시간에 먹으려면 한시간 정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내가 지휘하던 원당 교회 권사님이 운영하고 그 아들 딸이 내 찬양대의 대원이어서 몇 번 간 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 재즈나 탱고는 그 음악어법이 클래식과 달라서 주변 음악이었지만 뛰어난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나타나니까 지금은 거의 클래식으로 취급받는 음악들이 생겼다.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나 거쉰의 재즈 음악들은 이제 클래식으로 평가된다.(1976년 Royal Albert Hall에서 Leonard Bernstein이 New York Phill.을 직접 피아노 치면서 지휘한 George Gershwin의 'Rhapsody in Blue'를 들어보라.)
이 집 냉면이 정통 냉면의 육수도 아니고 메밀로 만든 면도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니까 정통 냉면도 무시할 수 없는 맛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대림동에는 연변냉면이라는 중국식이 가미된 냉면집이 있다.
정통 냉면이 아니다.
비쥬얼은 화려한데 육수가 고기 육수가 아니어서 맛은 내 입에는 분식집 맛이다.
메뉴 중 고급 냉면이라는 것이 있는데 다른 집 냉면과 다른 점은 내용물에 사리와 수박, 메추리 알, 방울 토마토,꿩고기로 보이는 완자, 편육이 각각 2점씩 들어 있다.
중국 사람들이 짝수를 복과 연결시켜서 생각해서 그렇다고 한다.
완자는 뼈채 갈아서 만들었는데 송추 평양 면옥의 꿩고기에 비하면 식감이 떨어진다.
중국에 오래 살다 보니 중국적 취향이 첨가된 것 같고 내가 먹은 면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많이 삶아서 쫄깃한 식감이 없었다. 반도 못 먹고 나왔다.
 
 

              진주 냉면의 대표격인 하연옥의 냉면은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니 이렇다.
육전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집 냉면은 먹어보지 않았지만 강화도에 있는 진주 냉면집에서 먹어 본 냉면의 비쥬얼이 위와 비슷했다.
이 집은 반찬으로 열무김치를 준다.              
아래 위 두 장의 사진은 http://blog.naver.com/ypost89/221528998356에서 복사해 왔다.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스테이크집 '텍사스' 스테이크의 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