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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파미르 고원의 역사와 문화 산책 김규현 글로벌콘덴츠 2015년 463쪽 ~10/9삶/독서2019-10-09 19:09: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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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고원의 역사와 문화 산책 김규현 글로벌콘덴츠 2015년 463쪽 ~10/9삶/독서2019-10-09 19:09:28

singingman 2023. 3. 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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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고원 트레킹을 하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발품을 팔아서 중앙 아시아와 파미르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현장과 혜초법사의 뒤를 따라서 그 길을 답사하기도 하고 정치적 상황 때문에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돌아서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샘물교회 사건 때문에 길이 막히기도 해서 불교 신자인 것 같은 저자는 개신교 선교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파미르 고원은 대 파미르와 소 파미르로 나눌 수 있고 중국에서 서역으로 나갈 때 반드시 넘어야하는 장애물이다.

실크로드 상인들과 구법승들도 이 고원을 넘어서 서로 왕래했다.

 

이 고원에서 천산 곤륜산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람같은 산맥들이 뻗어나간다.

파미르는 중국족에서는 총령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파의 고개라는 말이다. 그래서 근처에서 야생파 자생지도 발견되었다.

 

파미르를 넘는 고갯길은 크게는 2개지만 작은 갈래길은 6개가 더 있다.

이르케쉬탐 고갯길

파미르 하이웨이

쿨마 고갯길

와칸주랑 북쪽길

와칸주랑 남쪽길

다르코트 고갯길

쿤제랍 고갯길

카라코람 고갯길

 

서한시대에 장건이 이 고개를 넘은 이후로 5세기에는 법현율사가 넘었고 6세기에는 북위의 송운과 혜생이 이 고개를 넘었다.

현장법사는 이 고개를 넘어서 인도를 갔다오는데 17년이 걸려서 최대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이 여행에는 당시 고창국왕의 도움이 컸다.

신라의 혜초도 인도를 견문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으나 신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 길로는 조로아스터교 불교와 이슬람교 네스토리우스교 선교사들이 넘나들었고 비단과 도자가와 차와 가축들이 넘나들었다.

우리 불탑과 비슷한 형태인 스투파가 불교의 흔적을 남기고 있고

이슬람교의 모스크나 미나렛의 흔적도 있다.

타지키스탄 국토의 43% 가까이가 이 파미르 고원이라고 한다.

한반도 출신의 고선지 장군이 승승장구하다가 페르시아에게 대패를 당한 탈라스 전투도 이 근처다.

타직의 두산베는 월요일이란 뜻이다.

 

고대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세라이 유적들이 남아있다.

오늘날 파미르 고원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고원 북동쪽의 키르기스스탄의 오쉬에서 출발해서 타직 쪽으로 가는 방법과 타직의 호로그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타직의 영사관에서 파미르 퍼밋을 받아야 갈 수 있다.

이슬람이 들어가면서 다른 종교의 사원이나 조형물들은 우상 숭배라고 해서 철저히 파괴해버렸기 때문에 중앙 아시아에는 불교 유적이 별로 없고 파미르에는 더 심하다.

유일한 불교 유적으로 브랑에 있는 스투파가 있다.

중국의 문화 혁명때도 종교 유적들이 많이 훼손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송운과 달마 대사가 총령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도 있다.

마르코 폴로도 이 고원을 횡단해서 원나라로 왔다.

당시 낙타는 대단히 비싸서 야크 8마리.말 9마리 양 45마리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카라쿨 호수는 카라가 검다는 뜻이고 쿨은 호수다.

중국쪽에는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길인 서역 남로와 사막 북쪽길인 서역 북로가 있다.

서역북로는 천산 남로가 되기도 한다

천산 북로는 초원로로도 불린다.

하서주랑은 둔황에서 란저우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