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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군, 임창군,임성군 묘 21-04-24 본문
최영 장군 묘 올라가기 전 오른편에 있다.
2단으로 된 위의 묘는 경안군의 묘이고 아래에 있는 묘가 임창군의 묘이다.
경안군은 위키백과에 의하면
경안군 이회(慶安君 李檜, 1644년 10월 5일 ~ 1665년 9월 22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의 3남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회(檜), 초명은 석견(石堅)이다. 따라서 일부 문헌에서는 경안군 이석견(李石堅)으로도 부른다. 소현세자의 아들들 중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유일한 아들이었다.
소현세자 사후 1646년 민회빈 강씨가 인조의 수라에 독을 탔다는 혐의로 사사된 뒤, 연좌되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숙부 효종 즉위 후 1656년 석방되고, 1659년(효종 9년) 윤 3월 4일 복권되고 경안군에 봉작되었다. 생전 관직은 승헌대부에 이르렀고, 사후 증 현록대부에 추증되었다.
1644년 10월 5일 심양 산해관 질관(質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귀국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후 두 형 석철, 석린과 함께 4세의 어린 나이로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1650년(효종 즉위년) 강화도로 이배되었다가, 1656년 석방되어 귀양에서 풀려났다. 1659년 윤 3월 4일에 경안군에 봉해졌고, 승헌대부에 이르렀다.
차남 임성군은 소현세자의 장남인 경선군의 뒤를 이었으나 후사가 없어 임창군의 차남 밀남군(密南君) 감(堪)이 뒤를 이었다. 임창군의 장남 밀풍군(密豊君) 탄(坦)은 이인좌의 난 때 임금으로 추대되어 난이 진압된 후 자결하였다.
최종 관직은 승헌대부 경안군이었다. 두 아들을 두었으나 둘째 아들 엽이 태어나던 그해에 사망한다. 1665년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병이 나서, 그해 9월 18일 실려서 돌아온 뒤 9월 22일 갑자기 죽었다. 현종은 특별히 예장(禮葬)을 명하고, 의관(醫官) 박군(朴頵)은 그를 구호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잡아다가 신문한 뒤 형장을 가하고 정배시켰다. 집안이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어 현종이 배려하여 임시로 그의 자녀들에게 집을 지어주었다. 황해도 장연(長淵)에 그의 집안에게 땅을 둔전(屯田)으로 내려주었으나 후일 숙종 때 압수되었다.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대자2리(碧蹄面 大慈2里, 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65-1번지에 안장되었다. 후에 1684년(숙종 10년) 분성군부인 김해 허씨가 죽자 그의 묘 옆에 합장되었다. 묘비와 신도비가 세워졌는데 신도비는 판독이 불가능하다.
1686년(숙종 12년) 5월 25일 증직으로 증 현록대부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었다. 다른 곳에 있던 아들 임창군 내외의 묘소가 1745년 그의 묘소 근처로 이장되었다.
임창군은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이혼(李焜)으로 나오고 경안군의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昭顯世子)이며, 임창군(臨昌君)에 봉해졌다.
사은정사(謝恩正使)가 되어 네 차례 청나라에 다녀왔다. 1차는 1696년(숙종 22) 부사 홍만조(洪萬朝), 서장관 임봉원(任鳳元)을 대동하였으며, 2차는 1703년 부사 심평(沈枰), 서장관 이세석(李世奭)과 같이, 3차는 1713년 부사 권상유(權常游), 서장관 한중희(韓重熙)를 대동하였으며, 4차는 부사 예조판서 민진원(閔鎭遠)과 같이 가서 어씨(魚氏)를 세자빈에 책봉한 사실을 보고하고 돌아왔다.
한편, 1679년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가 있어, 아우인 이황(李煌)과 같이 체포되어 제주도에 귀양갔다가, 그 억울함이 밝혀져 귀양에서 풀려났다.
1720년(숙종 46) 종척과 제신을 거느리고 숙종에게 왕위계승을 정할 것을 간청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숙종은 만년에 그에 대한 권애(眷愛)가 더욱 두터웠다.
경안군 묘 옆에 있는 임성군은 경안군의 둘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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