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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고창 여행 1- 나주 23-04-28 본문

여행/국내여행

나주 고창 여행 1- 나주 23-04-28

singingman 2023. 4. 2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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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구가 전부터 나주에 한번 오라고 여러번 말한 적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나주는 처음 가는 곳이다.
전라도라는 이름에 나주가 들어 있으니 옛날에는 큰 도시였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가보니 역시 그 생각이 맞았다.
향교나 객사 또는 목사내아가 상당히 규모가 크고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주는 특히 서울의 축소판이라고 할만큼 사대문과 주변 산들이 서울을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주 사람들이 은근히 속으로 자긍심이 강해서 무게를 잡는다고 승구는 말한다.
 

나주향교 23-04-28 (tistory.com)

 

나주향교 23-04-28

나주 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되었다.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향교로 불릴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세 향교 가운데도 가장 큰 향교라고 한다. 나주 향교는 대성전이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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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관 & 금학헌 23-04-28 (tistory.com)

 

나주 금성관 & 금학헌 23-04-28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성종 6~10년(1475~1479)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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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가기 위해 백마역 가는 길

 
 

나주역

 
 

나주 시내에는 4개의 문이 동서남북에 다 있다

 
나주 향교를 먼저 들른다.
우리 나라 3대 향교라고 불릴만큼 규모가 크고 성균관이 임진왜란 때 불탄 후 복원할 때 나주향교를 참고했다는 설도 있다고 오늘 나주 향교에 계시는 전교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에게서 들었다.
 

 
 
 

 
 
 

 
 
 

나주 향교 외삼문 - 평소에는 잠겨 있고 석전대제때만 연다고 한다.

 
 

 
 

 
 
 

 
 
 

 
 
 

내삼문 - 다른 향교에 비해 내삼문이 좀 초라해 보인다.

 
 

향교 안에 있는 600년 된 은행나무

 
 

비석군

 
 

임진 왜란 때 위패를 잘 보호했던 김애남을 위한 사당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계들이 많았다.

 
 

 
 
 

 
 
 

 
 
 

 
 
 

향교 출입문

 
 

동재 뒤에 굴뚝이 아름다워서

 
 

 
 
 

동재

 
 

향교 마당에 있는 비자 나무

 
 
 

600년 된 은행나무

 
 
 

향교 안에서 본 외삼문

 
 

내삼문에는 태극이 없다.

 
 

대성전 - 평지형 향교여서 대성전이 앞에 먼저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다.

 대성전은 보물 제 394호이며 중국의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선현(先賢) 18분의 위패를 모신 건물.

대성전이 명륜당보다 앞에 있는 경우는 평지형이냐 산지형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설과 공자의 아버지를 모신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대성전이 앞에 있다는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무

 

동무

 
 

명륜당

 
 
 

동재

 

서재

 
 

궁에 있는 굴뚝이 생각난다.

 
 

연지

 
 

명륜당 익헌 천정 무늬

 
 
 

 
 
 

충효관

 
 

교직사?

 
 

배롱나무

 
 

 
 
 

한옥 스테이

 
 

 
 
 

영금문이 서문이다. - 동학혁명 때 전봉준과 나주 목사였던 민종렬이 영금문에서 회담을 했다고 한다. 전봉준이 목사에게 문을 열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다고 하고 동학군을 잘 막아냈다고 한다.

 
 

 
 
 

 
 
 

옹성이 갖추어져 있다.

 
 

 
 
 

 
 
 

영금문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공원

 

관광 안내소

 
 

나주 객사인 금성관 출입문 망화루

 
 

 
 
 

5.18때 이곳이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우물?

 
 

금성관

 

 
 
 

 
 
 

 
 
 

 
 
 

내삼문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좌익헌의 이름이 벽오헌이다.

 

금성관 뒤에 있는 은행나무

 
 

금성관 뒤

 
 

 
 

 

 
 

비석군

 
 

 
 
 

 
 
 

 
 
 

철제비

 
 

 
 
 

금성관 옆에 있는 정수루

 
 
 

 
 
 

 
 
 

나주 목사 내아 금학헌

 
 

 

 
 
 

 
 
 

금학헌

 
 

 
 
 

 
 
 

 
 
 

금학헌 뒤편

 
 

 
 
 

고기가 엄청 많이 들어 있고 맛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다. - 서울이면 이보다 훨씬 비쌀텐데

 
 

 
 
 

 
 
 

남고문

 
 

 
 
 

 
 
 

동점문

 
 

 
 
 

 
 
 

 
 
 

 
 
 

 
 
 

 
 
 

 
 
 

 
 
아래는 승구가 찍은 사진들

향교에 있는 비자나무

 
 

 
 
 

 
 
 

고창읍성

 
 

 
 
 

 
 
 

 
 
 

 
 
 

 
 
 

 
 
 

 
 
 

 
 
 

 
 
 

 
 
 

 
 
 

 
 
 

 
 
 

 
 
 

 
 
 

 
 
 

 
 
 

 
 
 

 

여기는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