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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2022-09-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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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2022-09-25

singingman 2023. 6. 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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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도를 도라고 말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은 도를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말이겠지만 어떤 사물이나 현상 혹은 개념을 설명하는 데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요?
우리가 무엇을 설명하면 설명하는 그 대상이 우리의 설명 때문에 오히려 오해되거나 제한되지는 않을까요?
도(道)는 노자 도덕경 25장에 의하면 태초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의 '말씀'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경과 영어 성경에는 '말씀"과 'Word'로 번역되어 있는 Logos가 한문 성경에는 도(道)로 번역되었습니다.
노자는 도에서 모든 것이 나왔다고 했고 성경에서는 만물이 logos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둘은 같은 개념입니다.
노자는 이 도의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道可道非常道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知者弗言, 言者弗知)라고도 말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 혹은 개념에 관한 우리의 설명으로는 그것을 충분히 혹은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은 아닐까요?

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염화시중(拈華示衆) ,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 (敎外別傳)등의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불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깨달음에 관한 설명인 것 같습니다.
역시 말로 무엇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 범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선문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3절 에서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13절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예수님도 어떤 사실을 말로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 비유로 쉽게 말했습니다.
예를들면 마태복음 13장에서는 다양한 비유로 천국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 제자들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니 나중에 다시 설명해야 했습니다.
진리를 설명하기가 그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리에 관해 잘못 말하면 오해하거나 일부분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전부로 알거나 잘못 이해할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구요.
그래서 지자불언 언자부지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어쩌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