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관한 관심 때문에 읽게 되었다. 한옥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건축을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을 건축사학자라고 말한다. 각 문화와 연결해서 건축을 잘 설명했다. 문외한인 나에게는 한옥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건축의 3대 요소는 기능, 구조, 미라고 할 수 있다. 기능은 편리함을 말하고 구조는 튼튼함, 미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러니 공학, 예술, 사회과학에 관해 건축가는 다 알고 있어야 한다. 동아시아는 유교의 영향으로 조형보다 문자에 더 관심이 많아서 화려한 조각이나 건축물보다 글자를 더 우선시 했다. 지중해 문화권 동전에는 앞면에는 황제의 얼굴이 있고 뒷면에는 글자가 있다. 그래서 앞면을 head와 뒷면을 tail로 부른다. 불교 미술은 다채롭고 화려했지만 유교 이념을 따른 향교나 서원 사당등은 단청조차 꺼릴 정도로 소박하고 담백한 무장식이다. 신라 석탑은 대체로 3층이고 고려 석탑은 5층이 많다. 이후 7층, 9층, 13층 석탑도 나타난다. 전통 건축은 한옥처럼 나무를 끼워맞추는 가구식과 피라마드처럼 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식이 대세였다. 후에 철골, 철근, 콘크리트가 나오면서 고층, 대형, 다양한 건축물이 나왔다. 흙집과 천막도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건축 유형으로 분류할 수는 있겠다. 천원지방설은 중국 고대 이집트 그리스에서도 가지고 있던 사상이다. 돔 천장이 둥글고 지구라트나 피라미드의 바닥이 사각형이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다. 공포 양식은 다포식, 주심포식, 익공식, 민도리식이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제사 의례가 아닌 왕 앞에 앉을 때 선정전처럼 방석을 깐 공간에서도 신발을 신고 의자에 앉거나 좌식으로 앉았다. 온돌은 신발을 벗는 깨끗한 방바닥을 요구했기 때문에 우리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다. 한옥이란 말이 국어 사전에 실린 것은 1975년이고 한옥, 양옥, 한복, 양복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았다. 신발을 벗는 문화 때문에 건물을 앞뒤로 짓지 않고 옆으로 배치하고 뒤로 할 경우에는 엇비스듬하게 했다. 나옹 화상과 무학 대사는 원나라에 유학했고 이들의 스승인 지공 선사는 직접 고려로 건너왔다. 장영실은 고려 말 귀화한 원나라 사람의 아들이었다. 우리의 경제적 성공을 말할 때 권위주의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 재벌 중심의 효율성, 유교 주의에 기반한 공동체 의식과 성공주의, 출세욕과 교육열, 민족주의 등을 든다 현대의 소비문화는 단체보다는 개인, 문자보다는 이미지, 서사보다는 서정, 규율보다는 자율등을 든다 한옥은 기둥을 박을 구덩이를 파고 돌과 모래등을 넣어 다진 후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다. 기둥밑면과 초석의 울퉁불퉁한 면을 딱 맞게 깎아 맞추는 일을 그랭이질이라고 한다. 기둥 위에 보와 도리를 얹고 공포 위에 또 작은 기둥과 도리와 보를 올린 후 지붕의 마루 에서 서까래를 아래로 도리와 연결한다. 그 위에 널판이나 작은 나뭇가지를 얽어서 펼친 후 흙을 깔고 기와를 덮는다. 4칸 집은 되어야 방과 방 사이에 마루가 있다. 온돌은 우리 한옥만이 가지고 있는 보온 방법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고래가 한줄만 있는 경우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