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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이석 황손 만남) 14-01.15~16 본문

여행/국내여행

전주여행(이석 황손 만남) 14-01.15~16

singingman 2022. 11. 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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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3시반 창덕여중에서 4집(우리, 성수,성인, 재혁)8명이 소목사네 봉고로 전주를 향하여 오라이~~~6시40분경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황손이 계신 승광재에 도착하다.마당발 성수덕분에 황손과 만나서 잠깐 인사만 하고 나오기로 하고 갔는데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강권(?)하여서 밥까지 얻어먹고 오다.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황손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도 하다.그의 아버지 의친왕처럼 그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란 사실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의친왕과 이석 황손에 관해 미리 좀 알아보고 가긴 했지만 직접 듣는 것만 못했다."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답게 목소리가 지금도 좋다.

1941년생이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74세이신대도 정정하다.

의친왕이 60세에 낳은 아들이니까 상당히 늦둥이다.

어떤 기록에는 13남 9녀 중 11남이라고 한 곳도 있고 12남 9녀중 10남이란 기록도 있다.

당신은 13남 9녀란 말에 동의하셨지만 의친왕의 행적을 볼 때 그것도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어릴 때 아명이 '영길'이어서 친구들이 영길왕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호적상 이름은 이해석이고,

월남전 참전 상이군인이라는 이야기, 일제시대에 태어났으니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별로 누린 적이 없고 이승만 정권때나 전두환 정권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때는 잘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최인호 소설 '길없는 길'을 보면 의친왕이 얼마나 울분에 쌓인 사람인지도 알 수 있고 기록에 의하면 상당히

똑똑하고 의식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3남 1녀(순종,의친왕,영친왕,덕혜옹주)중 2남인 의친왕은 순종이 후사가 없이 생식능력을 잃자

황위계승권을 가져야 했지만 당시 신하들이 말 잘듣는 영친왕에게 황위를 넘겨주었다고 어떤 글에서 읽었다.

순종황제는 암살위기에서 살아나긴 했지만 커피에 탄 아편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생식능력이 없어지고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하고 다행히 고종황제는 커피 냄새가 이상해서 마시지 않은 탓에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이 물려준 아버지의 거문고를 찾으러 수덕사에 들렀더니 만공스님의 염주를 가지고 오면

돌려주겠다고 했다는데 그 염주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래서 지금도 거문고가 그냥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승광재 방안에도 거문고가 하나 걸려있기는 하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좀 늦게 온 양승구와 함께 근처에 있는 한성관광호텔에 가서 자다.

16일 아침 일찍 모악산 아래 김제 금산사와 금산교회를 들를 사람은 6시에 출발하겠다고 하고 잠들다.

새벽에 일어나서 우리 부부와 승인네 부부 그리고 소목사와 5명이 금산사에 6시반경 도착하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보름이긴 하지만 절 경내가 너무 캄캄해서 사진도 찍을 수 없고 하늘에 별만 보인다.

할 수 없이 금강문과 사천왕문 그리고 적광전현판만 찍고 1.3Km 아래 있는 금산 교회로 가다.

금산 교회는 'ㄱ'자로 된 교회로 이 교회에는 아주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교회에 도착했더니 담임목사님께서 막 새벽기도 끝난 교인들을 집에 태워다 주고 오셔서 교회역사를 아주 재미있게 말씀해 주셨다.

 

아래 글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글이다.

"나라의 운명이 다하여 가고 있던 구한말 1904년~1905년 무렵 젊은 미국인 선교사 르위스 B.테이트(Lewis B.Tate)가

말을 타고 전주에서 정읍을 왕래하면서 중간지점인 이곳 금산리에 머물곤 하면서 역사는 시작된다. 

그는 금산리에 머무를 때는 조덕삼이라고 하는 이 지역 제일의 부자집 마방(馬房)에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조덕삼은 이 일대의 가장 큰 지주요, 금광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으로 유교를 믿는 보수적인 집안이었다.

이런 조덕삼이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사랑채에서 기독교의 씨앗이 뿌려진다.

이자익-당시 조덕삼의 집에서 마굿간을 관리하던 청년-그는 경남 남해 출신이다.

3살에 아버지를, 6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호구지책으로 걸어서 전라도 김제에 도착하여 마부로 채용되었다.

그는 틈틈히 독학을 하였고 주인을 따라 기독교 신앙에 접하게 된다.

이후 금산교회는 교인이 70명..200명이 넘어 장로 한명을 피택하게 된다.

그리고 조덕삼과 이자익이 경쟁을 한다.

아직 반상(班常)을 따지던 구한말-주인과 머슴이 경쟁투표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피택투표 결과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당선됩니다.

교인들 모두가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곧바로 교인 앞에 나아가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나는 이자익 장로를 모시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이자익은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고, 지주 조덕삼은 마루에 꿇어 앉아 설교를 듣습니다.

집에와서는 반대로 조덕삼은 주인자리에서, 이자익은 마부의 일을 합니다.

그 뒤 조덕삼도 장로가 되고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어려웠던 일제말엽에 조선의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총회장을 3번이나 지내는 인물 이자익 목사를

배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조덕삼 장로의 집안에서 손자인 조세형 국회의원이 나옵니다.

서울 승동교회 백정 출신 박성춘 장로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교회는 백정이 장로가 되니까 당시 양반들이 함께 할 수 없다고 교회를 분리해 나갔지만 조덕삼 장로는

그러지 않아서 좋은 교회로 계속 남게 된다.

호텔로 돌아온 뒤 아침을 호텔에서 간단히 먹고 전주 Tour에 나서다.

풍남문을 먼저 보고 전동성당을 들른 다음 경기전에 들러서 태조어진을 보고 박물관과 전주사고를 관람하다.

승광재로 다시 가서 오늘 새벽에 중국으로 떠난 황손도 없는 집에서

황실문화재단실장이란 여자분으로부터 잔치국수를 얻어먹고 한옥마을을 둘러보다.

이석 황손은 공식명함은 대한 황실문화재단 총재다.

그래서 부인도 남편을 총재님으로 부른다.

현재 부인이 5번째 부인이라고 하는데 안동분이라고 한다.

한옥마을은 여러번 와봤지만 오늘은 동학기념관도 들르고-여기는 동학기념관이라기보다는 천도교

선전관이라고 부르는게 더 낫겠다.

동학혁명에 관한 자료는 별로 없고 천도교 관련 사진과 자료들만 그것도 어설픈 것들만 쭉 진열해 두었다.

전주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인상적이다.

돌아다니면서 유명한 꽈배기도 사먹고 하다가 3시 거의 다 되어서 서울로 돌아오다.

황손과 함께

 

작년부터 전주에 있는 바울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다고 한다. 소목사가 저녁식사 기도를 대표로 하고 있다.

 

 

승광재 안에는 다른 한옥도 3채가 더 있다. 전주시 소유라고 한다.

 

승광재에 이 거문고가 걸려있다.

수덕사에 있는 공민왕의 거문고에는 향낭이 있어서 연주를 하면 현의 진동에 의해 은은한 향이 풍겨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새벽이어서 차를 타고 금산사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주문과 극락교(이 절은 일반적으로 극락교나 해탈교라고 불리는 아치형으로 된 다리를 원래 무지개 모양의 다리라는 뜻의 홍예교라는 이름 그대로 부른다.)는 안 거치고 바로 금강문으로 가다.

 

새벽에 도착한 금산사의 금강문에 있는 나라연 금강과 아래는 밀적금강(이들은 신적인 존재들로 불교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한 산인 수미산을 지키는 자들이다. 수미산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올림푸스산 비슷한 개념이다.) - 힘이 코끼리 100만 마리보다 더 세다고 한다. 초기 인도 불교에서 코끼리보다 힘쎈 존재는 없었을테니까.자세히 보면 위 나라연 금강은 입을 벌리고 있고 아래 밀적금강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것은 범어의 알파벳에서 시작 글자인 입을 벌린 '아'와 입을 다문 '훔'을 나타내는데 마치 성경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를 연상하게 한다.그래서 이들을 아금강, 훔금강이라고도 한다.

 

 

아래는 사천왕문에 있는 지국천왕, 증장천왕,광목천왕,다문천왕이다. 손에 들고있는 물건들을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비파와 검,용과 보탑을 들고 있다. 불교에서는 4방위를 동남서북의 순서로 부른다.그래서 지국천왕과 증장천왕은 동쪽과 남쪽을 관장하고 광목천왕과 다문천왕은 서쪽과 북쪽을 관장하면서 절을 지켜준다..

아침 예불시간이고 어두워서 대적광전안을 들여다 볼 수없었지만 이 안에는 특이하게도  5불과 6보살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이 협시불로 있지만 이 대적광전에는 약사불과 노사나불 그리고 6보살이 함께 있다고 한다.
이 사진이 5불 6보살이다.다음에는 꼭 봐야겠다. 이 절의 미륵전이 아주 특별하다고 하는데 어둡기도 하고 공사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니 3층으로 되어있고 이렇다. 3층 목조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해 있다고 한다.
이 미륵전 안에는 아래와 같은 미륵불과 처음 듣는 이름인 현묘상보살과 법화림 보살이 협시보살로 함께 있다고 한다.

 

금산교회 옛날 종각

 

옛날 금산교회는 특이하게 'ㄱ'자로 지어져서 교회 안에서 예배시간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남녀7세부동석일뿐만 아니라 얼굴도 봐서는 안되는 구조다.  양지에 있는 총신대 신대원에도 이런 구조의 솔내교회가 있다.

 

현재의 담임목사님께서 설명을 해주고 계신다. 오른쪽 커텐은 목사님도 여자들을 볼 수없게 예배시간에 커텐을 치고 예배했다고 한다.

 

이쪽이 강대상을 바라볼 때 오른쪽에 있는 여자석이고

 

이쪽이 남자석이다.
오른쪽 벽돌건물은 새로 지은 교회다.

옛 교회에 있는 유물들

멀리 보이는 산이 전주의 진산 모악산이란다. 금산교회를 다 보고 설명을 다 듣고 나왔을 때가 이 정도로 어두웠으니 우리가 금산사에 들어갔을 때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전동 성당

 

풍남문 가는 길에 있는 조각상

 

 

전주성이 호남제일성인가?

 

50대 아줌마들도 여행을 나서면 소녀가 되나?

 

 

 

태조로에 있는 전동성당-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식 건축물의 하나로 비잔틴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고딕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서울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성당의 위용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고딕 양식으로는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성당을 들 수 있고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는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성당과 강화 온수리에 있는 바실리카 양식의 성공회 성당을 들 수 있다.

 

아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 서울성당과 바실리카 양식의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이다. 

명동성당과 서울 성공회 성당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지?

온수리 성공회 성당 새건물

 

온수리 성당 옆에는 금산교회처럼 옛날  한옥 성당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건물이온수리 성공회 구성당의 종각을 겸한 솟을 대문이다.

 

온수리 성당 옛건물인 성안드레 성당이다.

 

한옥으로 된 강화 성공회 성당 건물이다.

 

전동 성당내부가 아름답고 화려하다.

 

 

신도는 귀신들만 다니는 길이니 우리는 올라가면 안되겠지?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 4대사고중 나머지 사고의 실록들은 다 전쟁때문에 불타거나 없어지고 이 곳 전주실록만 남아서 다시 5부가 복사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고 한다.

 

조선 태조 어진 사본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

 

한옥마을 길가에 있는 정자

 

승광재 입구

 

승광재에 있는 거문고

 

이건 이름만 동학혁명 기념관이지 천도교 전도관이다.

 

전주향교 대성전

 

오래된 은행나무 - 천태산 영국사 은행나무보다는 작지만 엄청나게 크다.행단 때문에 향교에 많이 심는 나무

 

 

전주 소리문화관 -  연주무대에 성수가 올라가서 소리 한마당 할려나?

 

아쟁

 

소리북

 

 

 

아래는 카톡으로 보내 온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