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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지리산 최석기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 2006년 213쪽 ~03.13 본문

독서

남명과 지리산 최석기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 2006년 213쪽 ~03.13

singingman 2024. 3. 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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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 남명 유적을 찾아가기 전에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 읽었다.
저자는 조선 시대의 고집 센 선비를 연상시킨다.

남명은 1501년에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나서 5~6세경에 문과에 급제한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와서 20년간 살았다.
20세 때 생원시,진사시,문과 초시에 모두 합격했다.
이후 과거는 포기하고 성리대전을 읽다가 안연처럼 사림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1528년에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28세에 성운의 친형인 성우와 함께 지리산을 유람했다.
30세인 1530년에 처가가 있는 김해로 가서 처가의 도움으로 신어산 밑에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침잠했다.
45세인 1548년에 모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김해로 가지 않고 고향 삼가에 계부당.뇌룡정이란 집을 짓고 살았다.
61세 되던 해에 삼가에서 현재의 산청군 시천면 사리로 들어가서 산천재를 짓고 살았다.
이곳으로 들어간 이유는 천왕봉이 아름답게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58세에 쌍계사 방면을 유람하기 전까지 지리산을 11번 유람하고 1558년에 쌍계사 방면 유람이 12번째였다.
1552년 측실인 은진 송씨에게서 아들 셋을 얻었다.

지리산 주변의 남명과 관련된 유적지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한시들도 많이 소개했다 .

남명은 지리산을 12번이나 유람했고 지리산의 옛이름은 두류산이다.
백두산이 흘러내려와서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