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그들은 누구인가 가토 히로시 저 남규형, 조영렬 역 고도 2001년 250쪽 ~6.5
singingman
2024. 6.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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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에 가기 전에 무슬림인 그들을 알기 위해 읽었다. 저자는 일본인으로 경제 전문가이다. 자기의 경험을 중심으로 많이 썼고 특히 이집트 전문가인지 뒷부분은 거의 이집트에 관해 썼다.
서구인이나 우리는 대체로 이슬람에 관해서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지하드 때문일까? 하지만 이슬람을 잘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위 주장에 반대하고 그들이 부드럽고 관용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코란의 가르침 때문인지 손님 대접을 잘 하고 이방인에게 호의를 잘 베푼다고 말한다. 현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는 이슬람교다. 왜 사람들이 이슬람교에 이렇게 매혹당할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슬람 국가들이 정해져 있고 국가적인 분위기나 오랜 전통과 가족의 종교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 강압적인 종교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아랍인들이 무슬림인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상인 출신들이 많다. 마호메트도 그랬다.
모스크, 미나레트, 마드라사등 건축도 이슬람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슬림들은 남녀 차별이 심하다고 느껴진다. 남성 중심의 세계같다. 전쟁의 영향이긴 하지만 일부 다처제를 허용하는 교리도 그렇고 여자가 정조를 잃었을 때 명예 살인을 하는 것도 그렇게 느껴진다.
이들의 가옥은 중정을 중심으로 건물이 방형으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중정은 사적인 공간이고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이슬람 세계의 이념을 지탱한 것은 현실의 정치 집행자라기보다는 그들을 포함한 이슬람 교도 전원에게 적용되는 이슬람 법의 전문가인 울리마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슬람 세계가 현실에서는 복수의 정치체(다울라)로 나뉘어 통치되었던 시대에도 이슬람 세계(움마)의 이념은 유지되었다. 종종 왕조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다울라는 이슬람 세계의 실제 정치 단위가 되는 조직이다.
이슬람 정치에서 지도자는 바른 신앙에 기초한 정치 집행을 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긴 해도 애초부터 바른 신앙을 규정할 권한까지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정통성에 연관된 권위를 지닌 것은 울라마(ulama) 즉 이슬람의 여러 학문을 닦은 지식인들이었다.
이슬람 신도공동체를 움마(ummah)라고 한다. 움마의 구성원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샤리아(shari'ah) 곧 이슬람 법이다. 통상적으로 샤리아는 이슬람법으로 번역되지만 우리가 법으로 이해하는 근대 유럽적인 실정법이 아니다. 실정법은 인간이 제정한 규칙이며 필요 없으면 수정 되거나 폐기된다. 하지만 샤리아는 신이 신도에게 명한 계시법인 관계로 인간의 사정에 따라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없다. 수정이나 폐기한다는 것은 지고한 존재인 신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샤리아는 현실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절대적 가치에서 끌어낸, 이슬람 교도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생활 방식의 편람이라고 할 수 있다.
샤리아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바다트'로 불리는 의례적 행위인데 이것은 신에게 신도가 귀의하는 마음을 직접 표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 고백, 예배, 단식, 희사, 순례라는 5 가지로 구성되는데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것은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집단행위의 성격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의 방법 가운데 대추 야자나무를 껴안고 출산하는 방법이 있다. 미리 발치에 구멍을 파두고 출산 후 태반을 묻는다. 이 방법은 코란에도 기술되어 있고 고대부터 중동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때의 방법이기도 하다. 마리아는 출산 후 대추 야자 열매를 먹어 산후 회복을 꾀했다고 구전되고 있다. 이 출산 방법은 현재도 북부 이집트나 오아시스 지방과 유목민 사이에서 쓰이고 있다.
일부 다처제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사우디아라비아 제 2성지로 알려져 있는 메디나에 있는 우흐드 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전투에서 많은 무슬림 남성이 사망하였다. 이 전투 후에 많은 과부 미망인들이 생기고 고아들이 늘어나 이를 사회적으로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려 한 남성이 4명의 부인까지 얻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것이 율법화되어 일부 다처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일부 다처제의 조건은 매우 엄격해 첫,째 부인이 불임증이어서 자손을 갖지 못할 경우 첫째 부인을 이혼하여 버릴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을 보살피면서 다른 부인을 맞아들여 자손을 가질 수 있으며 둘째, 부인이 성불능이거나 심한 질병으로 성생활을 할 수 없을 경우 병든 부인을 보살펴 주되 다른 부인을 맞아 들일 수 있으며 셋째, 전쟁이나 사고로 여성의 숫자가 남성의 숫자보다 절대적으로 많을 때 고아들을 돌볼 수 있도록 또 1명의 아내를 맞아들을 수 있다. 일부 다처주의는 위에 언급한 특수한 시대적, 환경적 조건을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일부 무지한 권력층이나 부유층 중에는 4명의 부인을 그느린 사람이 있기는 하나 지식층이나 평민 등 전 인구의 95%는 일부 일처제를 선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