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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성, 칼론 미나렛,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 초르 미노르 마드라사 Ark of Buhara & Khalon minaret 7.1 월 본문

여행/해외여행

부하라 성, 칼론 미나렛,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 초르 미노르 마드라사 Ark of Buhara & Khalon minaret 7.1 월

singingman 2024. 7. 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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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느즈막하게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부하라 성으로 가다.
엿 성안에 들어가니 박물관으로 꾸며진 방들이 있고 성 내부의 거주지는 황폐화되어 있다.
복원을 계획은 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바라보는 칼론 미나렛쪽 경치가 좋다.
너무 더워서 일단 다시 호텔을 정해서 들어왔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정집인데 분위기도 좋고 가격도 우리 돈 2만원 남짓이니 가성비가 훌륭하다.
어젯밤 호텔은 5만원 가량 들었는데.
푹 쉬고 저녁 무렵에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고 여기서 자고 내일 일찍 사마르칸트로 갈 계획이다.

오후에 초르 미노르 마드라사와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를 다녀왔다.

어제 저녁 먹은 연못 주변 식당가가 그렇게 시끌벅적하더니 아침에는 이렇게 한가롭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



살구와 자두가 맛나다.





동네 시장 입구도 이렇다



여기는 옛날에는 대문을 다 이렇게 만들었나보다.



부하라 성



성벽

고대인들이 이런 성을 빼앗으려면 정말 함들었겠다.





자귀꽃 나무가 많이 보인다





성 출입문



1920년대 까지도 부하라 성 지도자가 이 안에 거주했다고





성 안의 박물관



무기











성 밖에 보이는 전망대





우리 석수와 비슷한가?



우리 용상 같은건가?



나무 가둥





주두장식에 공을 많이 들였다.







성 내부의 박물관



대형 물병인가?



꾸란 구절 목각





동전들에는 왕인지 초상이 많다.





















군인 갑옷



악기들



















손과 망치로 만든 수공예 접시






성에서 바라본 칼론 미나렛







성벽을 보수하고 있다.



카라반들에게 밤에는 등대역할도 했던 미나렛













성 내부는 이렇게 황폐화되었다.



아래는 자연사 박물관















어제 본 미나렛의 반대편에 왔다.













마르 아랍 마드라사





칼론 모스크







모스크와 미나렛과 마드라사가 함께 다 있다.



주택가 벽 장식









부하라에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



묘지 앞에 있는 메노라



공동묘지


아래는 초르 미노르 마드라사

우즈베키스탄 부하라(부하라 역사 지구)에 있는 근대시대의 모스크이자 마드라사.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르 미나르' 또는 '차르 미나르'페르시아어로 "네 개의 미나렛"이란 뜻으로 건축물 주변에 네 개의 청록빛 돔들을 가진 탑들이 있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미나렛이 아니다.

부하라 토후국 후기인 1807년 부하라를 통치하던 망기트 왕조 때 투르크멘계 부하라 사람이었던 칼리드 니야즈 쿨(Khalif Niyaz-kul)이 세웠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칼리드 니야즈 쿨 마드라사'라고도 알려져 있다.

모스크이자 마드라사이지만 동시에 쉼터 역할도 겸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마드라사의 일부로서 정문에 해당된다.

이 마드라사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기념물에 등록되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일부가 복원되기도 했다.










아래는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는 10세기에 건설된 영묘이다.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 위치해 있으며, 사마니 영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영묘의 건설 연도는 사만 조 시대인 대략 10세기 초이다. 이 영묘는 사만 조의 왕실 가족 영묘이나 이스마일 사마니(Abū Ibrāhīm Ismā'īl ibn Aḥmad, 재위: 892년~907년)의 영묘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라는 이름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다.

1568년에 필사된 와크프 문서에 의하면, 이스마일의 아들인 아흐마드 사마니(Ahmad Samani, 재위: 907년~914년)를 위해 와크프에 기부한 것이다. 영묘 내부에는 세 구의 시신이 있으나, 목재 비문에서는 이스마일의 손자인 나스르 이븐 아흐마드/나스르 2세(Nasr ibn Ahmad or Nasr II, 재위: 914년~943년)의 이름만 확인할 수 있다.

이 영묘는 칭기즈 칸이 부하라를 침략했을 당시 홍수로 인해 진흙 속에 묻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영묘는 발굴되지 않은 채로 보존되었다가 20세기 초 소련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고 1937년~1939년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후 소련은 영묘 주변의 묘지를 없애고 인근에 공원을 건립했다.

영묘는 정육면체 몸체에 반구형 돔으로 덮여 있으며 외부는 벽돌을 문양을 만들며 쌓아 올렸다. 각 면은 약 10mx10m가량의 정사각형이며, 건물 상부로 향할수록 안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벽의 두께는 약 1.8m이다. 각 면에는 벽돌로 만든 첨두 아치형 문이 있으며 문 주변 벽감에는 말각조정 형태(사각형 내 마름모, 마름모 내에 다시 정사각형이 있는 문양)의 벽돌 장식이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 영묘의 사면에 각각 아치형 문이 있는 형태는 사산 조 조로아스터교 신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각 면을 이어주는 모서리에는 벽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기둥이 있다. 몸체 상단부에는 작은 아치형 벽감이 각 면당 10개씩 늘어서 있다. 처마에는 개구부가 있어 내부의 채광을 돕는다. 지붕을 이루는 반구형 돔의 지름은 약 7m이다. 이 돔 주변에도 4개의 장식용 작은 돔이 있다.

내부에도 역시 벽돌을 얽어 쌓아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사각형 몸체와 돔을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스퀸치가 중앙아시아에서 적용된 사례다. 벽돌은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재료인데,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에서는 바구니 무늬, 바둑판 무늬, 잎 모양, 로제트, 꽃, 리본 무늬 등을 다양하게 구현해냈다.

이슬람교는 영묘 건설을 억제하라고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된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는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영묘 중 가장 초기의 것이며, 이후 중앙아시아 영묘 건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 관점에서도, 건축사적 관점에서도 중요성이 큰 건축물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칼론 마드라사






근처 옥상에서 내려다 본 미나렛 부근



저녁식사






불켜진 미나렛 보러 다시 왔다







이곳 건물들 목재 기둥의 장식들이 아름답다.





미나렛 주변 거리 모습



불켜진 미나렛은 밤에도 카라반들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





칼론 마드라사











미르 아랍 모스크





칼론 마드라사





우리가 오늘 묵는 호텔



호텔 주인 식구들과





식당에서 연주자들과





이곳에서는 이효리가 서빙한다





타직 여자들이 미인이 많다고 한다.













아래는 재철이가 찍어준 사진들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성 위에서 바라본 부하라 모습



부하라 성 내부



유대인 공동 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