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편도체는 차분해지고 전전두피질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이점을 아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명상도 가장 잘 되고 명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 명상은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도가의 원칙과 참선에서 볼 수 있는 불가의 방법이 잘 섞여 있는 것 같다. 명상은 종교를 떠나서 뇌과학적인 면에서도 행복한 삶을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명상은 알아차림이다. 양자역학이나 뇌과학에 관한 전문용어들이 나오는 부분은 어려워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를 보고있는 배경자아인 내가 참 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배경자아는 우리가 직접 보거나 느낄 수 없지만 수행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근력 훈련을 위해서 명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 존재의 3 가지 범주와 마음 근력에는 자기조절력, 대인관계력, 자기동기력이 있다. 자기조절력은 나 자신과의 소통 능력이고 대인관계력은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며 자기동기력은 세상과의 소통 능력이다.
우리 뇌는 무엇을 판단할 때 보고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해서 추론을 한다. 마코프 블랭킷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경계와 추론과 관련이 있다. 감정이 나빠서 몸이 아픈 것이 아니고 몸이 아파서 감정이 아픈 것이다. 두려움과 분노는 본질적으로 같다. 감정은 마음이 아니라 몸의 문제다. 감정과 통증은 본질적으로 같다.
전전두피질이 완전히 성장하는 나이는 25세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보험 회사가 26세부터 보험료를 대폭 깎아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전두피질의 성장은 20대 중반에나 완성되나 편도체는 그보다 훨씬 더 빨리 완성된다. 청소년기에는 편도체가 활발하게 작동하면서 온갖 부정적 정서와 충동성을 유발하는 데 반해 전전두피질은 아직 미성숙해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러한 간극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쯤이다. 전전두피질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편도체만 날뛰는 이 시기에 아이들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감정적으로는 만취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어떤 대성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형태의 통찰력이 요구된다고 본다. 자기자신을 깊이 성찰해 세계 내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통찰력을 꿰뚫어 봄이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아 배려하고 이해하는 통찰력은 되돌아봄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변 사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바라보아 이해하는 통찰력은 둘러봄이라고 한다.
자기조절력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집념과 끈기를 발휘하는 능력이다. 또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제대로 존중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곧 자기조절력이다. 하위 요소로는 감정 조절력, 긍정성, 자기 절제, 충동 통제력, 성실성, 도덕성, 정직성, 끈기, 집념 등이 포함된다.
뇌과학자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괴로움이 신체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정말 아픈 것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심지어 타이레놀 등의 진통제를 먹으면 이별의 고통이나 왕따로 인한 괴로움이 한층 완화된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의 가능성이나 혹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잠재적 위험 인물의 등장 등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신체 부위는 내장이다.
자기 동기력은 자신이 하는 세상일에 대해 열정을 발휘하는 능력이다. 하위요소로는 내재동기, 자율성, 유능성, 열정 등이 포함된다. 어떤 것을 디자인하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에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자기동기력이다. 머릿속의 계획이나 이미지를 투사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만들어 간다.
자기동기력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에 기반이 되는 것은 세상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내재동기이며 내재 동기는 자율성에서 비롯된다. 자율성은 내 삶과 환경의 주인이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기결정성과 유능성이 생긴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높은 수준의 긍정성이 있어야 강한 자기 동기력을 지닐 수 있다. 그간의 많은 연구들은 긍정적 정서의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도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의 시각 중추신경들은 청각정보 등을 처리하도록 재조직된다. 원래 보는 것을 담당했던 뇌의 일부가 더 이상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없어서 할 일이 없어지자 청각 정보처리를 도와주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시각장애인은 청각 정보에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시간과 공간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칸트가 들으면 기절 초풍할 일이지만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의 여러 발견은 시간과 공간이 사실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시간과 공간을 포함해 우리가 경험하는 실체가 사실은 머릿속의 내러티브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것이고 그 내러티브 시스템 자체가 바로 자의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물리학자나 뇌과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어진 시공간에서 인간이 스토리텔링을 한다기보다는 의식의 스토리텔링이 인과관계를 만들어냈고 다시 이것이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없다면 우주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인간의 의식이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인간의 이야기가 인과관계를, 인과관계가 시공간을, 시공간이 우주를 만들어냈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의식과 이야기 즉 로고스(logos)였다.
기억 자아나 경험자아를 알아차리는 존재가 배경자아다. 배경자아는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과 같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존재다. 순수한 의식으로서 배경자아는 알아차림의 주체일 뿐 대상이 아니다. 모든 사물 뒤에 그것이 점유하는 텅빈 공간이 있고 모든 소리 뒤에 그것이 점유하는 고유한 침묵이 있는 것처럼 모든 기억 자아나 경험자아 뒤에는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배경자아가 있다. 기억 자아는 내가 가진 어떠한 것들의 총합에 불과할 뿐 나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존재가 배경자아다. 경험자아가 어떤 것을 경험하는 순간에 아 내가 지금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존재가 배경자아다. 기억자아가 실체로서의 자아라면 배경자아는 순수한 에너지로서의 자아다.
내면 소통 훈련의 목표는 기억 자아, 경험자아, 배경자아가 모두 하나의 에너지 흐름의 3 가지 측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자아의 세 측면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삼자 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데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물질 :의미 :에너지 지시체 :해석체 :기호체 1차성 :2차성 :3차성 개별자아 :경험자아 :배경자아.
봄은 분노와 같은 특정한 감정 상태 역시 생성 질서로 본다. 기분 나쁜 일이나 모욕적인 언사로 인해 분노가 생기는 것은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부 원인에 의한 감정의 유발은 결코 인과관계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분노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외부에서 주어지지만 그런 자극으로부터 분노라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키워 가는 것은 내부 상태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상했던 일을 반복해서 되뇌고 스스로의 분노를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분노라는 감정은 계속 유지되거나 점차 강화되기 마련이다.
아이는 만3세 반에서 4세쯤 되어야 타인의 관점이나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멘탈 라이징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때 비로소 자기 입장과 타인의 입장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의식이 생겨난다. 자의식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며 경험하는 사건들을 일화 기억으로. 저장하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상대방이 알도록 하는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독자적으로 내면 소통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3.5세 이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시기는 나라는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상태이고 나는 아직 존재하기 이전이다. 우리가 태어난 시점은 서류상의 생년월일이지만 내가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3년반이 지난 시점부터다. 3.5세가 넘어야 인간은 비로소 하나의 자아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나의 삶은 나의 생년월일이 아니라 적어도 그로부터 3년 반은 지났어야 시작되는 것이다.
마음 근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전전두피질 신경망을 활성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내면소통 스타일을 습관화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격려하고 믿어주고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내면 소통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내면 소통 스타일을 지닌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전전두피질을 중심으로 한 신경망이 강화되어 있고 과도한 편도체 활성화로 인한 부정적 정서의 체험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당연히 강력한 마음 근력의 소유자가 된다. 내면 소통 훈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내면 소통을 하는지 그 일정한 패턴과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나에게 하는 스토리텔링 스타일이 곧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성격을 결정하고 마음 근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통 능력은 건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그리고 건강한 관계의 핵심은 존중이다. 타인을 존중하는 능력이 소통 능력의 핵심인데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존중심을 지닌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다. 존중에는 경외심이 담겨 있다. 무언가 나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경외심이다. 눈에 보이는 외양을 넘어서는 더 큰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마음가짐이 존중심이다. 존중(respect)은 그래서 다시(re) 보는 것(spect)이다. 내 안에서 나보다 더 크고 위대한 어떤 존재를 깊이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 자기 존중의 마음이다. 나를 존중해야 타인을 존중할 수 있고 나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으며 나를 용서해야 타인을 용서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
나의 내면 소통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나 생각이 나 자신에게 강력한 효과를 미치는 현상은 플라시보 효과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밀가루나 식염수를 새로 개발된 신약으로 알고 먹으면 내가 먹는 이 약이 병을 낳게 해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한 믿음의 본질은 내가 나에게 하는 내면 소통의 일종이다. 이에 따라 약효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심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몸은 실제로 낫지 않았지만 나았다고 느낀다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로 약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위약을 진짜 약이라 믿고 먹으면 많은 경우 생물학적이고도 생리적인 변화가 실제로 몸에 나타난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낫게 된다.
플라시보 효과가 처음 발견된 곳은 전쟁터다. 부상병을 빨리 수술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인데 모르핀이 없던 야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생리 식염수를 마치 마취제 인양 주사하고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리 식염수를 맞은 부상병들은 아 나는 지금 마취제를 맞는구나라고 믿었고 곧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통증을 비롯해 모든 감각 정보를 몸을 통해서 뇌가 능동적으로 추론해내는 것인데 뇌에서 나는 지금 마취되고 있다 라는 내용으로 셀프 토크를 하면 실제로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선문답을 통해서 제자는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간화선 전통의 핵심이다. 선사들은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눌 때 갑자기 고함을 치거나 때리는 등의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서도 갑작스런 맥락 벗어나기를 한다. 얼핏 보기에도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언행 덕분에 제자들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언행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제자들의 내부 상태에서 늘 작동하던 생성 질서가 순간적으로 뒤흔들리게 되고 기존의 생성 질서인 자의식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때 제자는 자아의 텅빈 자리를 보면서 배경 자아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며 기존의 고정된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벗어나 텅 비어 있음으로써의 참나를 문득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감정은 몸의 문제이고 일종의 신체 현상이다. 감정은 몸이 주는 다양한 감각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의 조절은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만성 통증뿐 아니라 감정의 문제 역시 몸에 관한 증상이다. 분노, 짜증, 공격성, 불안, 공포, 우울, 좌절, 무력감, 역겨움 등의 감정은 몸의 내부 감각을 통해 뇌로 올려보내는 다양한 감각 신호를 바탕으로 내적 모델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따라서 통증과 감정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감정 조절 장애의 원천은 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것보다는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멍게는 동물임에도 마치 식물처럼 평생 바위에 붙어서 살아간다. 따라서 뇌가 없다. 그러나 멍게는 동물이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시절에는 올챙이처럼 자유롭게 헤엄치며 다닌다. 올챙이 시절의 멍게는 주변의 환경을 인지하는 감각신경도 있고 빛을 감지하는 신경계도 있으며 원시적인 척추도 있고 당연히 뇌도 있다.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장한 후에 적당한 바위를 찾은 멍게는 자기 머리를 바위에 파묻고 고착된다. 그러고는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움직일 필요가 없고 뇌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바위에 고착된 멍게는 곧 자기 뇌와 척수를 소화해서 흡수해 버린다. 스스로 자기 뇌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멍게는 동물의 뇌와 신경계가 바로 움직임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잠들기 전에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숙면을 방해할 수도 있다. 몸은 지치지만 뇌는 각성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분노가 인간을 형편없이 나약하게 만든다는 것은 과학적인 사실이다. 분노는 두려움의 한 표현 양식이다.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을 때 좌절감과 함께 분노와 공격적 행동이 나타난다.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은 모두 두려움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작은 강아지가 더 크게 짖고 공격적인 법이다. 두려움이 없는 큰개는 짖지 않는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용서는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분노를 바탕으로 한 복수심은 정신과 신체 건강에 매우 해롭다. 증오심은 오래 지니고 있을수록 몸과 마음을 황폐하고 나약하게 만든다.
용서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은 건강에 전반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심혈관계의 건강을 증진하고 심혈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도 한다. 특히 용서를 잘하는 기질을 지닌 사람은 약물이나 알코올 의존도가 훨씬 낮고 용서하는 심리 상태를 유지하면 심장박동을 포함한 여러 신체 증상이 모두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용서는 건강 상태와도 직결된다. 실제로 용서하는 성향이 높을수록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킨다. 용서는 그야말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만병통치약이라 부를 만하다.
나마스떼는 당신을 존중한다라는 뜻이다.
명상은 늘 지금 여기서 고요함을 느끼고 온전함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경험 자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본래 면목으로서의 진짜 나를 보게 된다. 경험자아가 나의 본모습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텅 빈 자리로서의 인식주체, 즉 배경 자아가 곧 진짜 나임을 깨달아 모든 괴로움과 부정적 정서에서 한순간에 벗어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는 그냥 사물이라기 보다는 인간에게 인식된 사물을 뜻한다. 우리의 마음에 비친 사물들 즉 인식 대상으로서의 모든 것이다. 진리라는 뜻과 만물이라는 뜻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달마 대사의 달마가 바로 이 다르마를 한자로 음역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