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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인문학을 하나님께 2권 한재욱 규장 2025년 초판 14쇄 307쪽 ~09.27 본문

독서

인문학을 하나님께 2권 한재욱 규장 2025년 초판 14쇄 307쪽 ~09.27

singingman 2025. 9. 2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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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처럼 책을 매일 한 권씩 읽는 저자인 목사님이 그 책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
목사님이니까 당연히 기독교적인 사상을 바탕에 깔고 말한다.
2권은 철학과 역사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십자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고 올바른 신앙이 있어야 올바른 글을 쓸 수 있다.
유발 하리리에 관한 글에 공감이 많이 갔다.

사피엔스를 막강하게 만든 하라리가 말하는 대표적인 허구 3 가지 그것은 종교, 제국, 돈이다.
첫째 사피엔스는 종교를 만들어서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극복했다고 한다. 유한성을 극복하고 무한과 연결 지점을 찾아낸 것이 종교라고 한다. 종교라는 허구를 만들어 인간이 무한과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러한 종교를 통해 사피엔스는 많은 무리를 결속하여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침팬지에게 나에게 바나나를 주면 너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씨도 안 먹힌다.
그러나 인간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십자군 전쟁같이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자라는 말도 통한다는 것이다. 시피엔스는 보이지 않는 상상 속의 신과 천국을 말하면서 공동체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제국, 즉 국가를 만들어서 내가 아닌 우리라는 강력한 협동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를 한국인으로 만든 것은 역사이다. 더 구체적으로 한국사이다.
역사라는 서사를 통해서 현재의 나를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과 연결시켜서 우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념 제도 사상이라는 것을 통해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셋째 사피엔스는 가장 강력한 허구로 돈을 만들었다.
돈 자체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신뢰 시스템, 즉 보이지 않는 상징적 질서가 돈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돈은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성별 인종 연령을 모두 아우른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 않는 엄청난 다수의 사람들까지도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 모든 사람이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인권을 믿진 않는다. 모두가 민족주의를 믿지 않는다.
가치관이 다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돈을 신뢰한다. 돈의 위력 앞에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것이 제국의 힘과 겹칠 때 그 위력은 거의 통제 불능이 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국도 무너지지만 돈의 힘은 죽지 않는다. 제일 막강하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피엔스는 이렇게 종교, 제국, 돈이라는 허구적인 가상 세계, 상상의 세계를 만들었고 이 능력은 공동체의 결속을 이끌어내면서 문명을 만들었으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얼굴과 낙하산은 펴져야 산다.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인디언 중 체로키 부족이 있다. 이 부족은 소년들에게 어릴 적부터 사냥하고 정찰하고 물고기 잡는 등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독특하고 강인한 성인식을 치르게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멀리 떨어진 숲속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아들의 눈을 가린 채 홀로 남겨둔다. 그날 밤에 소년은 혼자 밤을 꼬박 지새워야만 한다.
늘 가족과 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온 소년은 눈이 가려진 채로 아침 햇살이 비출 때까지 어두운 숲속에서 온갖 공포와 싸워야 한다. 부시럭 소리만 나도 온 촉각이 곤두서고 갖가지 부정적인 상상으로 소년의 밤은 깊기만 하다.
침이 마르고 온 영혼이 두려움과 싸운다. 마침내 새벽 여명이 스며든다. 기나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눈가리게를 벗었을 때 소년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저 근처에서 어렴풋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였다. 지난밤 내내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지 않고 창과 활을 메고 아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밤은 곧 아버지의 밤이었다. 소년은 홀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거기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깊고 깊은 밤중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잠시 일식 중일 뿐이다.

카르페 디엠(현실을 즐겨라)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속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다스리다 (히브리어, 라다)라는 말은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 돌본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맡기시면서 지키게 (히브리어, 솨마르) 하신 것(창세기 2장 15절)도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죄를 범한 인간은 자연을 돌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탐욕의 대상으로 보았다. 산도 돈으로, 물도 돈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자연세계는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새들은 노래하는 대신에 울기 시작했고 꽃들도 환한 미소 대신에 고통에 고개 숙이기 시작했다.

역사는 3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 과거의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들이다. 둘째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셋째 그 기록에 대한 해석이다.
이 중에서 둘째와 셋째 요소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다분이 들어간다. 역사자료의 수집과 분석에도 과학적 요소가 있지만 자료의 서술과 해석 과정에서 스토리, 예술적 측면을 가지게 되기에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그 서술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역사가가 과거의 사실을 전부 역사화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사실중에서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기억으로 남긴다. 역사가의 역사 서술에 기록된 것들은 기억되지만 생략된 것들은 그저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망각된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신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라는 말이 참 많이 곡해되어 왔다. 어떤 사람은 웬수 같은 남편이 자기 십자가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식들이, 혹은 시어머니가, 어떤 분은 자신의 고질병이 자기 십자가라고 한다.
자기 십자가를 마치 불가에서 말한 업보의 개념으로 바라본다.
자기 십자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려 십자가를 지셨다. 그것이 곧 예수님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였듯이 우리 각자의 십자가 즉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우리 각자의 십자가는 다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이다.
쉽게 정리해보자.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하신 일이 바로 자기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