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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신 예수 이상환 학영 2025년 479쪽 ~09.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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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신 예수 이상환 학영 2025년 479쪽 ~09.12

singingman 2025. 9. 1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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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시대에 다신교도인 로마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유일신 신앙인 예수님이 설득력있게 전파되었는지 자세히 풍부한 근거를 들어서 설명하고 현대 한국에서 무속신앙이 교회 안에도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설명한 책.
도입부에 나오는 여호와의 증인과의 대화에서 성경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기록한 구절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게 이단들에게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질까?

이단이나 다른 종교인들도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애정을 가지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그린빌 샤프 규칙.
2개의 명사가 접속사 카이(kai)로 연결되어 있고 관사가 첫 번째 명사 앞에만 등장할 때 두 명사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는 그리스 문법 규칙이다.
이 긴밀한 관계는 문맥에 따라 통일성, 동등성, 또는 통일성을 의미할 수 있다.
이 규칙을 신약 성경에 적용하면 디도서 2장 13 절과 베드로후스 1 장 1절이 예수님의 신성을 명시하는 구절로 해석된다.
아래는 그랜빌 샤프 규칙을 염두에 두고 번역한 성경역본들의 예이다.

위대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디도스 2장 13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나 시몬 베드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를 힘입어 귀중한 믿음을 우리와 함께 간직하게 된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 공동번역)

이처럼 디도서 본문과 베드로 후서 본문 모두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계시하고 있다.
두 본문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는 점은 예수님의 신성을 논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역성경'은 위에 소개한 역본과 다른 번역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행복한 희망을 기다리며 위대한 하나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립니다.
(디모데 후서 2장 13절 신세계역)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가 우리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의 믿음과 같은 소중한 믿음을 얻은 이들에게 편지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절 신세계역)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 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요한복음 20장 26~ 28절)

도마는 분명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디도서 2장 13절과 베드로후서 1장 일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본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는 도마의 이 고백을 강조하며 예수님의 신성을 논증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호와의 증인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렇게 답했다.
도마가 언급한 하나님은 예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십니다.
도마는 예수를 보고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했고 그다음에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를 부활시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만약 도마가 예수를 가리켜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다면 예수가 도마를 혼냈을 것입니다.

텍스트는 저자와 독자(1차 독자와 2차 독자) 사이에서 소통하는 매개체다. 텍스트의 의미는 가시적인 문자와 비가시적인 배경 지식으로 구성되며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풍성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 일리이즘
신약 전통안에서 한가지 예를 살펴보자 고대의 문학장치중에는 일리이즘이 있다. 일리이점은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수사적 장치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신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래의 구절을 살펴보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들이 알게 하겠다.
(마태복음 9장 6절)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누가 복음 6장 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요한복음 12장 23 절)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언급하실 때 자주 3인칭을 사용하셨다.
일부 학자는 겸손과 자기 비하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1인칭으로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권위적이라면 3인칭 표현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보다 온화하고 덜 권위적으로 들린다는 의미이다.
어떤 학자는 아이들이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현상을 언급하며 예수님의 일리이즘을 자기 비하적 수사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삼인칭 화법은 겸손함을 나타내는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로드릭 엘릿지는 이와 상반된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엘릿지는 구약 성경, 고대 근동문헌, 신약 성경, 그리스 로마 문헌을 광범위하게 살피며 누가 언제 왜 일리이즘을 사용했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일리이즘을 사용한 대상이 주로 높은 신들 - 야훼, 엘, 바알, 이난나, 엔릴, 닌갈 - 과 왕들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엘릿지의 연구에 따르면 신들과 왕들이 3인칭 화법을 사용한 이유는 자기 비하적 겸손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주권, 권위, 신성, 우월성, 독특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엘릿지는 예수님의 삼인칭 화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예수님의 일리이즘은 고대 신들과 왕들의 일리이즘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둘째 예수님의 일리이즘은 특히 야훼 하나님의 일리이즘과 놀라운 유사성 -  3인칭 직접 화법의 반복적 사용, 일인칭과 3인칭의 지속적 전환, 자신을 나타내는 다양한 3인칭 표현들, 자기 계시의 목적 등을 보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3인칭 화법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왕권과 신성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수사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일리이즘을 모르는 현대 독자들은 예수님의 3인칭 화법을 자기 비하적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리이즘을 알았던 고대 독자들은 예수님의 3인칭 화법을 자기 비상적으로 읽었을 것이다.
이런 해석의 차이는 성경의 1차독자와 2 차독자 사이에 벌어져 있는 배경지식의 간격에서 기인한다.
다시 강조하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는 구절이 현대독자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신성이 부정된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신성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성경의 1차독자와 2차독자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고대 배경지식을 탐구해야 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학적 기법인 인클루지오 기법
흔히 샌드위치 구조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유사한 두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 본문 시작과 끝에 배치하여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설계된다.
이 관점에서 마가복음을 살펴보면 8장 22절 ~ 26절과 10장 46절 ~ 52절이 샌드위치 구조의 양 날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달된 3 가지 고대 자료

1. 문자 자료 : 문자를 통해 정보를 전달한 자료이다.
파피루스나 코덱스에 기록된 글이나 건물이나 비석에 새겨진 글을 예로 들 수 있다.
2. 비문자 자료 : 문자가 아닌 다른 도구들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 자료이다. 그림이나 조각 등의 대표적인 예이다.
3. 혼합자료 : 문자와 비문자를 모두 사용해 정보를 전달한 자료이다.
글과 형상이 함께 새겨진 동전이나 부적등이 이해에 해당한다.

위 각 자료는 그 자료만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자료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현대인은 문자 자료에만 의존하며 연구하는 편향성을 종종 보이는데 이는 고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다.
고대 주제를 논할 때는 고대문화를 존중하며 접근해야 함이 타당하다.
특히 경전화된 예수 전통과 경전화되지 않은 이교 전통을 최대한 균형 있게 비교하려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함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문자 자료, 비문자 자료, 그리고 혼합 자료를 모두 활용하여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두 전통의 차이를 보다 공정하고 포괄적으로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비교 자료는 특정 지역(이를테면 빌립보나 안디옥 지역)이나 기간 (이를테면 네로나 도미시안의 통치 기간)에 생성된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리스 - 로마 기간에 이교 지역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넓혀 사용한다.
본서의 목적은 국지적 장소에서 제한된 시기에 발생한 예수 운동을 연구하는 데 있지 않다. 대신 수세기 동안 이교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예수 운동을 연구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지리적 및 시기적으로 넓게 퍼져 있는 다양한 자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더 적절하다.
셋째, 예수 운동이 형성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이교자료도 비교에 활용한다. 이는 다신 문화가 예수 운동 당시에 새롭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이교의 핵심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이다.
비록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형성한 헬레니즘 문화가 다신론의 깊이와 범위를 유래없이 확장했지만 다신론의 근본적 뼈대는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현재는 디지털 전환과 AI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시대이다.
정보와 지식이 빠르게 갱신되며 어제의 자료가 오늘에는 구시대의 산물로 느껴질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고대의 문화 변동 속도는 이에 비해 상당히 느렸다.
특히 다신론의 바탕을 이루는 개념들은 수백 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따라서 예수 운동 이전에 만들어진 이교자료는 그리스 - 로마 시대에 퍼져있던 다신론의 특징을 거시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안목을 제공한다.
넷째, 이교 전통과 예수 전통을 비교할 때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에 균형있게 집중한다.
두 전통을 비교할 때 자주 빠지는 함정은 어느 한쪽만 강조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한때는 이교 전통과 예수 전통의 공통점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춰 예수 전통을 단순히 이교신화의 짜깁기로 보는 주장이 유행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음주의학자들은 두 전통의 차이점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며 반대 진영의 주장을 반박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양측 모두 편향된 접근법을 사용했다고 본다.
공통점과 차이점 중 하나만 강조한 결론은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할 위험이 크다. 예수 전통의 독특성과 진정성을 최대한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전통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접근법이 필요하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인 뱀 지팡이는 현대에도 여전히 친숙하게 사용된다.
세계 보건기구와 구급차의 로고에 사용된 뱀지팡이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유산이 의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예수 전통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포용했으며 명당과 흉지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뻗어나갔다. 주후 30년경 약 20명으로 시작된 이 작은 운동은 100년이 지나자 약 7000~10,000 명의 신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200년경에는 14만~17만 명,
300년 경에는 250~35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4 세기 말에는 로마 제국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3000만 명이 그리스도 교인이 되었다.

Alexandria의 비사도적 예수 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 알렉산드리아의 카르포크라테스, 알렉산드리아의 나아센 학파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도 모두 윤회사상을 직.간접적으로 수용했다. 현대 교회에서 소위 비정통 예술운동가로 분류되는 바실리데스, 카르포라테스, 나아센 학파 와는 결을 달리하는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조차도 윤회를 믿었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이는 알렉산드리아에 뿌리를 내린 사상가들이 그 지역의 철학적 토양에 깃든 개념을 자양분삼아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켰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후 1,2세기에 발생했던 초기 예수 운동들 가운데 알렉산드리아와 연결된 예수 운동에서만 윤회의 가르침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그리스 - 로마 지역의 다양한 토양에 떨어진 예수 전통은 그 토양이 제공하는 고유의 자양분을 먹으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결국 여러 종류의 예수 운동들이 탄생했고 이들은 서로 경쟁하며 가지를 뻗어나갔다.

다음과 같은 행태들은 초기 예술 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무속적 요소들이다.
1. 귀신을 쫓는다면 사람을 구타하는 행위 2. 신앙과 물질적 축복을 동일시하는 설교
3. 성령의 역사라 주장하며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
4. 목사의 설교를 신의 음성으로 절대화하는 개념
5.  목사의 말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협박
6.  공예배 참석과 헌금을 강요하며 재앙으로 겁박하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