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참회록 어거스틴 저 조은화 역 생명의 말씀사 2016년 3판 2쇄 312쪽 ~09.04
singingman
2025. 9. 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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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어거스틴 참회록이다. 젊은 시절에 방탕했던 그가 어머니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심하고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고 참회하는 내용이다.
주님을 부르는 것과 찬양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그리고 주님을 아는 것과 주님을 부르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어찌 주님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알지 못하는 자는 당신을 전혀 다른 신으로 부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을 알기 위해 먼저 당신을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믿지 않는 자가 어찌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까? 혹은 말씀 전하는 자 없이 어찌 믿을 수 있습니까? 주님을 찾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을 찾는 자는 찾을 것이요 주님을 찾은 자는 주님을 찬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 곁을 스스로 떠나는 자 외에는 그 누구도 잃는 법이 없으십니다. 당신을 버리고 떠난 자가 도망친 곳이 어디입니까? 그가 갈 곳은 단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곳' 두 곳 밖에 없지 않습니까? 징벌하시는 당신의 율법을 피할 곳이 어디입니까? 당신의 율법은 진리이며 진리는 곧 당신입니다.
심플리키아누스는 주체할 수 없이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교회로 갔습니다. 비로소 빅토리아누스는 첫 성례에 참석했고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교적부에 이름을 올린 후 세례를 신청하자 로마시가 발칵 뒤집혔고 온 교회가 기뻐했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이를 갈며 분노했고 소멸해버렸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세례 받았을 때 우리나라의 식자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아버지의 이름은 패트리 키우스였고 어머니는 모니카였다.
나는 소리의 쾌락에 빠질 위험성과 노래의 공인된 유익한 사이를 저울질하지만 찬송의 위험성보다는 유익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귀를 즐겁게 함으로써 약한 심령이 헌신의 길로 인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찬송 가사보다 목소리나 선율에 더 치우쳐 감동을 받는다면 이는 벌을 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해야 옳습니다. 차라리 그 음악을 듣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의 교회 음악관이다.)
쾌락을 위해 감각을 사용하는 것과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감각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쾌락을 위한 감각의 목적은 아름답고, 향기롭고, 감미롭고, 부드러운 것을 찾아 즐기는 것인 반면 호기심은 쾌락과는 반대되는 경험입니다. 이를 위한 감각의 목적은 시련의 고통을 찾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감각과 시련을 체험하고, 알고 싶은 욕망에 있습니다. 갈기갈기 찢긴 시체를 볼 때 공포 외에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체가 가까운 곳 어딘가에 있다면 사람들은 거기로 모여들어 슬퍼하기도 하고 무서워 떨기도 합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꿈에 볼까 두려워하고 역겨워하면서도 깨어있는 동안은 누가 마치 강제적으로 가라고 한 것처럼 시체 주위로 몰려듭니다. 호기심 때문입니다.
모든 시간과 만물의 창조주가 당신이신데 어떻게 당신이 만들지 않으신 무수한 시간들이 흘러갈 수 있단 말입니까? 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어떻게 흘러갈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만들지 않으신 시간이 있기라도 하다는 것입니까? 당신이 모든 시간의 창조주이신데 만일 천지창조 이전의 시간이 있었다면 왜 그들은 당신이 일하시는 것을 쉬셨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시간을 만드신 분은 당신이십니다. 그러니 당신이 시간을 만드시기 이전에는 시간이 흐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천지창조 이전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당신이 무엇을 하고 계셨냐는 질문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라는 시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시간을 선행하신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시간 속의 모든 과거와 미래가 당신께는 영원이라는 현재로 존재합니다. 현재가 흘러 과거가 되고 미래가 흘러 현재가 되지만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습니다.(히 1:12) 주님께 시간이란 흐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께 모든 시간적인 행사들은 다 멈추어 있는 것이며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알제리아 해변에서 내륙으로 약 80km 쯤 떨어짐 타가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이었고 베르베르족의 피를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피렌체의 성당 기둥에 보티첼리가 그려놓은 어거스틴의 초상화와 그 외의 희미한 발자취들을 통해 청년 어거스틴이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