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백제 왕조사 우리미래역사체험학습 강사진 외 엮음 오지은 최주영 그림 청솔 303쪽 ~08.26
singingman
2025. 8. 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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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왕조를 중심으로 백제 역사를 설명한 책 건국자 온조왕에서 의자왕까지 31대를 이어갔다. bc 18년부터 660년까지 678년을 이어간 나라이고 흑치상지를 중심으로 한 부흥운동도 663년까지 3년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당 연합군에 의해 결국 백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백제는 일본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덜 알려져 있고 약한 나라로 생각되지만 한때는 신라나 고구려도 위협할 정도로 힘이 세었던 적도 있었다.
유리 왕자가 아버지 주몽을 찾아오자 왕위를 유리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왕을 보고 고구려에서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형 비류와 함께 남하해서 온조가 백제를 세운 일이 설화처럼 되어있어서 초기는 좀 모호하지만 700년 가까이 유지한 왕국이었다.
이 당시 말갈은 한반도 북부에 있는 말갈족을 나타낼 때도 있지만 백제를 괴롭힌 말갈은 동예로 강원도 지방에 있던 부족이었다.
백제는 한성(서울 한강 유역) 웅진(공주), 사비(부여)에 도읍을 정했다. 근초고왕과 무령왕, 성왕 때에 힘이 세고 영토를 늘렸다.
* 곰나루에 담긴 슬픈 이야기
웅진은 충청남도 공주 옛 이름이다. 웅진은 곰나루의 한자어인데 곰나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공주 봉황산 남쪽 곰냇골에서 암콤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어슬렁어슬렁 강나루로 내려왔다. 곰은 물을 조금 마시고 재빠른 동작으로 앞발을 들어 물고기를 탁 하고 내리쳤다. 갓 잡은 신선한 물고기를 먹으니 배가 불렀다. 곰은 느긋한 기분으로 앞의 강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고개를 잡고 있는 모습이 서로 다정해 보였다. 곰은 사람들 속에 어울리고 싶었다. 곰은 자주 산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곰이 다가가면 사람들은 놀라서 달아났다. 어느 날 강가를 어슬렁거리던 곰은 금강 어귀까지 내려왔다. 한 어부가 혼자서 그물질을 하고 있었다. 곰은 어부를 뒤에서 덮쳐 자기가 사는 동굴로 끌고 갔다. 곰은 기절한 어부를 동굴 안에 누이고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부가 깨어났다. 곰은 다정하게 말했다. "어부님 저랑 함께 살아요." 곰의 말의 어부는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어부는 머리를 흔들었다. "가족들이 저를 기다립니다.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 사람이 어떻게 곰과 살 수 있겠어요?" 곰은 어부가 도망칠까봐 나갈 때면 커다란 바위로 입구를 막았다. 돌아올 때는 산속 깊은 곳에서 산열매와 벌꿀을 구하고 강에서 싱싱한 생선을 가지다. 어부에게 주었다. 곰은 어부에게 정성껏 대했다. 어부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어부는 곰과 서서히 정이 들었다. 어느덧 어부가 곰과 함께 산 지 몇 년이 흘렀다. 둘 사이에 새끼 곰이 두 마리 태어났다. 곰도 어부를 믿는 마음이 생겼다. 곰은 나가면서 어부가 도망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동굴 입구를 막지 않았다. 어부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멀리 강에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부는 문득 고향집과 부모님이 생각났다. 어부는 그 길로 동굴을 나와 강나루에 있는 빈배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힘껏 바다 가운데로 노를 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곰이 먹을 것 가지고 돌아와 동굴로 들어가니 어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 사람이 어디로 갔을까?" 곰은 정신없이 어부를 찾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곰은 재빨리 새끼 곰을 안고 강나루로 나왔다. 빠르게 물 위를 가는 배가 보였다. "가지마세요. 돌아오세요." 곰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어부는 정신없이 노를 저어 앞으로 갈 뿐이었다. '그동안 저 사람을 위해 내가 얼마나 애를 썼던가 험한 산을 누비고 강물을 드나들며 먹을 것을 구해다 주지 않았던가. 더구나 새끼 곰까지 낳고 사는데 이제 나를 배반하고 도망치다니. 사람이란 이렇게 믿을 수 없는 동물이란 말인가.' 곰은 한탄을 하며 눈물을 짓고는 새끼 곰을 껴안고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이후부터 곰이 뛰어든 곳에는 풍랑이 쉬지 않고 일어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빠져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곰의 원한이 서려 그런 것이야. 마을 사람들은 곰의 넋을 달래기 위한 사당을 지었다. 그 후부터 물결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을 곰나루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