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신라왕조사 우리미래 역사 체험학습 강사진 외 엮음 오지은, 최주영 그림 청솔 2011년 개정판 4쇄 412쪽 ~08.28
singingman
2025. 8. 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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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기원전 69년부터 935년까지 한반도에 있었던 왕조다. 신라가 있기전부터 삼한도 있었다.
경상남북도 지역은 진한이었고 경상남도의 남해안 지역은 변한, 충청도, 전라도 지금 마한이었다.
김유신 장군이 부하에게 했던 말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탈해와 유리가 왕위를 놓고 서로 사양한 방법
예로부터 덕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합니다. 태자께서 그토록 고집을 하시니 저와 함께 어느 쪽이 이가 많고 적은지 비교하여 정하는것이 어떨런지요. 이에 두 사람은 떡을 한 입 꽉 물어 입자국을 내어 시험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가 더 많아서 그가 임금 자리에 올랐다. 이러한 이유로 임금의 칭호를 이질금이라 했다. 이질금 혹은 이사금은 잇금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후에 이 말이 변해 임금이 되었다고도 한다.
요즘 강원도 강릉에 가뭄이 극심한데 아래 시대에도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매물 마립간(재위 356년~ 402년) 재위 42년 7월 하슬라(강원도 강릉)에서 가뭄과 병충해 때문에 농사를 망쳐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마립간은 죄수들을 풀어주고 1년 동안 세금을 걷지 않았다. 그 까닭은 왕이 정치를 잘못하여 하늘이 벌을 내리느라 자연재해가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들을 풀어줌으로써 왕의 잘못을 하늘에게 용서받고자 한 것이다.
신라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신(新)자는 좋은 일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요. 라(羅)자는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으면 하옵니다. 또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린 자는 모두 제나 왕으로 불렸는데 오직 우리나라만이 시조가 나라를 세운 후 지금까지 우리 지방말로 왕호를 사용하여 아직도 귀한 호칭을 바로잡지 못했사옵니다. 이제야 저희 신하들은 한뜻으로 조심스럽게 신라 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리나이다. 지증왕도 신하들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나라 이름을 이때부터 신라로 정하고 임금을 왕이라고 불렀다.
왕호의 명칭 변경
제 1대 박혁거세 거서간 제 2대 남해 차차웅 제 3대 유리 이사금 제 17대 내물 마립간 제 22대 지증왕
절이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 그중 하나는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이라고 부른다는 주장이가. 다른 하나는 묵호자와 아도 화상이 머물렀던 모례의 집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모례는 그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다 보니 모례라고 부를 뿐 원래 이름은 털례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곳이 어디냐 하면 털례네 집, 털례네 집 이렇게 대답을 하는 동안에 차차 '털'로 줄여 말하게 되었다. 그 말은 다시 '덜'이 되었다가 마침내 '절'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는 즤 28대 경문왕 때 생긴 이야기다.
제 49대 헌강 왕 때 신라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헌강왕이 다스리던 때에는 백성들이 서울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서로 연이어져 초가가 하나도 없을 만큼 신라는 번영을 누렸다. 기와로 지붕을 덮고 숯으로 밥을 지을 만큼 백성들의 생활이 풍요로웠다.
처용 이야기도 헌강왕 때 나온 이야기다.
처용가
서울 밝은 달에 밤늦게 노닐다가 집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더라 둘은 내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가? 원래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