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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강화나들길 1코스 26.01.08 본문
2남 선교회원 5명이 09시에 교회에 모여서 승용차로 함께 갔습니다.
17km가 좀 넘는 1코스 전체를 다 걷지 않고 강화산성 동문에서 연미정까지 절반 정도만 걸었습니다.
이 구간은 동네 골목길도 잠깐 걷지만 동네 야산길을 많이 걷습니다.
연미정에서 갑곶 돈대까지는 염하강 따라 걷구요.
뉴스에서는 날씨가 아주 춥다고 했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서 오히려 걷기 좋았습니다.
동문인 망한루는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을 바라보는 누각입니다.
여기 주차장이 꽉 차있어서 근처 공터에 주차하고 성공회 강화 성당과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을 거쳐 산 위에 있는 북문과 북장대지를 지나 연미정까지 걸었습니다.
5명이 모두 무릎이 튼튼해서 걷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연미정에서 동문으로 돌아온 후 풍물시장에 있는 철이네집에서 맛있는 밴댕이 무침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통진에서 스벅에 들러 차를 마시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런 사고없이 모두 즐겁게 걷고 와서 참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회원들이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지도에서 보는 1코스 가운데 강화산성 동문에서 연미정까지만 걸었습니다

강화산성 동문의 이름은 망한루입니다.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을 바라보는 누각입니다.

성공회 강화 성당에 왔습니다.

아름다운 성공회 강화 성당
성공회 강화 성당
성공회 강화 성당
성공회 강화 성당은 한옥으로 된 아름다운 건물입니다.설명에 의하면 이 성당 건물은 노아 방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배모양을 하고 있습니다.)1900년에 지어진
song419.tistory.com

강화 성당 바로 아래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이 있어 들렀습니다.
https://song419.tistory.com/m/1370
용흥궁 2018-01-29
강화도령 철종이 가족과 함께 유배와서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이름은 궁이지만 경복궁이나 창덕궁처럼 큰 대궐은 아니고 양반집 같은 분위기다. 성공회 강화성당 바로 아래 있어서 성당 구경
song419.tistory.com

도중에 보호수로 지정된 거목이 있습니다.

은수물 약수터
수량이 상당히 풍부하고 마실 수 있습니다.

고려궁지 뒷산인 북산 자락을 걷습니다.

아름다운 솔숲길을 걷습니다.

강화나들길 1코스의 이름은 심도역사문화길입니다.


북문의 이름은 진송루입니다.

강화산성 (북문) | Ganghwasanseong Fortress - North Gate
한국어 (Korean)
강화산성(북문) | 江華山城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 시대에 들어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서남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북문은 본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 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그 뒤 북문은 전쟁으로 부서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에 강화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을 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유수: 고려·조선 시대 수도 이외의 옛 도읍지나 국왕의 행궁이 있던 군사적 요지에 둔 유수부의 관직
Ganghwasanseong Fortress - North Gate
Ganghwasanseong Fortress was built during the Goryeo dynasty (918-1392) when, due to the Mongol invasions (1231-1259), the capital was temporarily moved from Gaeseong to Ganghwado Island in 1232. It was constructed as a three-part earthen fortification: two concentric circles around the capital - the inner and middle fortresses - and an outer fortress along the east coast of the island. In 1259, as part of the terms of a peace treaty between the Mongols and Goryeo, the Mongols ordered that the fortresses on Ganghwado Island be destroy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former inner fortress was rebuilt as a stone fortress. It was significantly damaged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and was rebuilt and expanded in 1677.
The fortress has four main gates in each of the cardinal directions, four secret entrances, two watergates, and two command posts - one each in the north and south.
The pavilion of the north gate was first built in 1783 and was named Jinsongnu (鎭松樓). The pavilion was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nd was rebuilt in 1977.

오늘의 일행

강화산성 성벽을 따라 올라갑니다.

북장대지에 왔습니다.

북장대지에서 간식 먹고 쉬다 갑니다.
강화 현지에 사시는 어르신이 강화도의 역사에 관해서 자세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강화산성 북장대터 | 江華山城 北將臺址
Bukjangdaeteo-The northern command post
장대는 전쟁 시 군사 지휘에 용이한 곳에 설치한 장군의 지휘소이다. 평상시에는 성의 관리와 행정기능을 수행하였다. 강화산성은 1232년 고려시대 몽골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쌓은 내성·중성·외성 중 강화 내성이다.
성안에 궁궐과 백사(百司)의 건물을 개성의 것과 비슷하게 건립하였다. 둘레 7.1km의 강화산성에는 남산과 북산에 각각 남장대와 북장대 그리고 서문 안에 서장대가 있었으나 모두 허물어진 것을 2010년 남장대만 복원되었다. 2011년에는 북장대터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문화재 구역은 금연구역입니다.
문화재훼손신고센터: 1661-9112 (QR코드를 스캔하면 연결됩니다)

논에는 오리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편안한 길도 잠깐 걷습니다.

낙엽 쌓인 산길을 걷는 즐거움이 큽니다



멀리 염하강이 보입니다

우리 사진을 찍는 방법입니다

연미정에 왔습니다.
한강물 천리를 돌아 바다의 품으로~ 연미정
📸 사진 이야기~
고려시대 세워진 이 정자는 돈대 앞 물길의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사진은 강 건너 북한이 지척에 보이는 월곶돈대의 성곽 안입니다. 5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감싸고 있는 연미정은 곡선을 그리며 날렵하게 올라간 처마의 선, 사방으로 탁 트인 정자의 모습과 성벽 같은 돈대가 둘레를 치고 있어 아늑하고 풍광이 수려합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본 고요한 아침 풍경과 해지는 석양은 가히 숨을 멈추게 합니다. 귀한 사람과 연희를 나누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다면 멋진 사진뿐 아니라 귀한 시간과 공간을 누려보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촬영: 국제선사진영상센터)

황형장군 택지비

황형택지 | 黃衡宅址
HwangHyung House Site
조선 중기 무신이었던 **황형(1459~1520)**의 옛 집터이다. 선생의 자는 언평, 시호는 장무이며 본관은 창원으로 성종 11년(1480) 무과 및 진현시에 급제하고 1486년 무과 중시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혜산진 첨절제사, 훈련도정, 의주 목사, 회령 부사, 함경도,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시 전라좌도 방어사로 제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중종 7년(1512) 함경도 지방에서 야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평안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왕이 그의 공을 찬양하며 연미정을 하사하여 이곳 월곶리에서 만년을 보냈다 한다. 택지는 월곶진을 설치한 뒤 관아로 사용하였다.
This is the house site of HwangHyung (1459~1520), a military official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His courtesy name was Eonpyeong, while his posthumous name was Jangmu. His family clan originated in Changwon, and he passed the military service examination and the examination of military official advancement in the 11th year of the reign of Seongjong (1480) with the highest possible degree.
Later, after holding a wide variety of posts from the Commander of the Seventeen Garrisons of Hyesan, Chief of the Military Training Command, Magistrate of Uiju, District Magistrate of Hoeryong, and the Provincial Army Commander in Gyeongsang and Hamgyeong in succession, he became the Fifth Minister Without Portfolio. In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Jungjong (1510), during the "Disturbance of the Three Ports," he defeated the Japanese in Jepo as the Defense Commander of Left Jeolla Province. In the 7th year of the reign of Jungjong (1512), when the Jurchens broke out in revolt, he defeated them and became the Provincial Army Commander of the Pyeongan and North Hamgyeong Provinces, and ultimately Minister of Works.
Praising his contribution to the country, the King bestowed Yeonmijeong Pavilion and he stayed here in Wolgotri in his latter years. He installed Wolgotjin Fort in the housing site and used it as a government office.
안내: 문화재 구역은 금연구역입니다.

월곶돈대

월곶돈대 | 月串墩臺
Wolgotdondae Watchtower
월곶진에 속한 월곶돈대는 남으로는 염화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조강을 통하여 서해로 진출할 수 있다. 또한 과거 서울, 인천, 연백 등지로 교통할 수 있는 월곶나루가 있던 해상로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월곶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정비한 돈대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규모는 동서 폭 47m, 남북 폭 38m이다. 서쪽 하단부에는 월곶진의 문루인 조해루를 복원하였다.
Wolgotdondae Watchtower, part of the Wolgotjin Fort, is connected to Yeomha channel by the south, while it is possible to enter the Yellow Sea via the Jo River to the north.
Wolgot river fort, which used to be a marine transportation hub, was here and one could get to Seoul, Incheon, and Yeonbaek easily. Wolgotdondae is oval in shape and was repaired by Yun Ijae, Chief Junior Magistrate of Ganghwa, in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Sukjong (1679). From west to east, it measures 47 meters and from north to south it measures 38 meters. In the Western lower part, Johaeroo, a gate tower of Wolgotjin, has recently been restored.
안내: 문화재 구역은 금연구역입니다.

연미정

아름다운 연미정


연미정 | 燕尾亭
Yeonmijeong Pavilion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연미정이 있는 월곶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燕尾)**와 같다고 하여 정자의 이름을 연미정이라 하였습니다.
강화 10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절경이며, 옛날에는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배들이 이곳에서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습니다.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 31년(1244)**에 구재학당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묘호란 당시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형제 관계의 강화 조약을 맺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조선 영조 20년(1744)에 중건, 고종 28년(1891)에 중수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습니다.
Yeonmijeong Pavilion overlooks the mouth of the Imjingang and Hangang Rivers. Its name means "Pavilion of a Swallow's Tail" due to the shape of the surrounding waterway.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In 1244, King Gojong gathered young scholars from Gaegyeong for summer study here.
The pavilion was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and was reconstructed in 1976.
[ 안내 사항 ]
문화유산 구역 내 금연: 문화유산 구역은 금연구역입니다.
훼손 신고: 문화유산훼손신고센터 ☎ 1661-9112

여기가 황형 장군의 택지였다고...



건너편 산은 김포 문수산입니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있는 이 해협을 이곳 사람들은 염하강이라고 부릅니다.
소금물이 흐르니까 염하강이 맞지요?

건너편은 북한 개풍군입니다.

모래톱인지 인공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일행


조해루

월곶진 | 月串鎭 (Wolgotjin Fort)
강화도의 군사 시설이자 해상 교통의 중심이었습니다.
역할: 한강 하구에 위치해 인천, 삼남지방 및 중국과 교통하던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이전까지 번성한 포구였습니다.
연혁: 원래 교동에 있었으나 조선 효종 7년(1656년) 강화유수 홍중보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주변 유적: 월곶돈대, 황형 택지, 연미정 등이 인근에 있으며 기와편과 자기편이 다량 발견됩니다.
Transportation Hub: A key point connecting southern Korea via the Yeomha Channel and China across the Western Sea.
Move: Relocated from Gyodong in 1656 (7th year of King Hyojong) by Hong Jungbo.
Artifacts: Korean roof tile and porcelain fragments are commonly found near the site.
공통 안내: 해당 구역(문화재/국가유산)은 금연구역입니다. 훼손 시 신고센터(1661-9112)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강화 풍물시장에 있는 철이네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습니다


이 집의 밴댕이 무침은 정말 맛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통진에 있는 스벅에 들러서 차 마시고 옵니다.

이원희 집사님께서 맛있는 고구마를 가지고 교회까지 오셨는데 갑자기 손자를 돌봐야 해서 이 고구마만 전해 주고 돌아가셨습니다.
집사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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