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3개국 인문 여행기. 저자는 좌파적 시각을 가진 것 같고 이 지역을 자주 여행한 사람이다.
인도차이나에 프랑스와 미국이 얼마나 나쁜 짓들을 많이 했는지 알 수 있고 가난하고 힘없고 배우지 못하면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트남은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치고 힘을 갖게 되자 주변의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압력을 행사한다. 자기들이 당해놓고 힘을 갖게 되니 똑같이 이웃 나라를 괴롭힌다. 이것이 세상이고 권력이다.
베트남 전쟁이 이 세 나라에 미친 비극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고 이 책이 쓰여진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베트남 같은 곳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인도 차이나에서 프랑스의 식민지 유산은 지명의 표기로 남아 있는데 라오스에는 유독 헷갈리는 프랑스식 지명이 몇 개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이 흔히 vientiane이라고 부르는 라오스의 수도 위엥찬이다. 실제 발음으로는 위엥찬 또는 위엥잔에 가까운데 프랑스어식으로 vientian 으로 표기하다 보니 이것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결과적으로 원음과 커다란 차이를 가져와 전혀 다른 발음인 비엔티안이 된다. 위엥찬과 루앙파방 사이에 있는 라오스의 계림 방비앙도 마찬가지여서 원음은 왕위왕에 가깝다.
라오스의 고도 루앙프라방도 사정은 낫지만 실제 발음은 r이 묵음이 되어 루앙파방에 가깝다. 따라서 로마자로 쓴 인도차이나의 지명을 볼 때에는 v에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안롱웽도 안롱뱅이 아니라 안롱웽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비엔티안은 위엥찬, 방비앙은 왕위왕, 루앙프라방은 루앙파방으로 표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인도 차이나에서는 한글이나 로마자로는 어떻게 해도 원음과 비슷하게 표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구엔 또는 응엔으로 표기되는 Ngyen만 하더라도 이 둘 중에 어느 편을 택하더라도 원음과 사뭇 다르기는 매한가지다.
험하고 쓸모 없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라오스인들 이들은 또 단일민족도 아니다. 라오스는 공식적으로 68개 민족 비공식적으로 100여 개 이상의 민족이 동거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인구는 겨우 500만 명을 넘는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고 민족은 많은 것이다. 그런데 다민족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과 분쟁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나라가 라오스이다.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민족 문제가 국토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음은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 세계 분쟁사가 증명한다.
라오스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민족들은 스스로 사는 땅에 만족하고 남의 땅을 탐내지 않는다. 고산지대의 척박한 땅에 살면 비옥한 저지대의 평야를 훔쳐볼 만한데도 정부가 저지대로 내려오라고 해도 내려오지 않는 것이 라오스의 고산족들이다.
물론 제 2차 인도 차이나 전쟁에서 몽(hmong)족의 일부는 미국을 편에서 총을 들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라오스의 분열은 강대국의 간섭과 이데올로기를 갈등의 축으로 한 것이었고 민족 간의 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라오스 인민혁명당은 신사고 정책을 펼쳤다. 신사고 정책은 베트남의 도이머이와 같은 성격을 띤 개방과 개혁의 정책이었다. 신사고 정책의 운명은 도이머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 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께이손이 집권하던 혁명 일 세대 중심의 라오스 인민혁명당은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기에는 부적절한 두뇌(지도부)의 경직된 생물체였다. 1980년대 말에 전쟁으로 번진 태국과의 국경 분쟁은 라오스와 태국 간의 구원이 배경이었지만 신사고 정책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