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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시간을 지루해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주차를 하고 근처에 식당을 찾아도 제대로 된 식당이 안 보여서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화성으로 올라가다. 수원에 살 때는 이 화성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오늘 갔지만 코스를 잘 못 골라서 한쪽 모퉁이만 보고 오다. 내년이 수원 화성 방문의 해라고 수원 시내 현수막에 적혀있다. 창룡문 아래 관광안내선터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창룡문으로 가서 화홍문까지 갔다 오다. 아버지께서는 힘들어 하셔서 창룡문만 갔다가 아내가 모시고 다시 차로 돌아가고 나혼자 갔다오다. 그리고 화성을 나와서 내가 30년 전 근무한 창현고를 들렀다가 우리 살던 집도 보고 싶었는데 그 주위가 다 재개발되어서 우리 살던 집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옛날 생각하면서 잘 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함깨 가다. 비도 오고 하지만 혼자 계시기가 적적한 아버지를 모시고 갔더니 역시 좋아하신다. 30년 후의 내 모습을 오늘도 미리 본다.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미군과 조선군이 싸운 역사의 현장이다. 잘 단장해 두기는 했지만 당시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그리 썩 즐겁지는 않았다. 이 아래 무명 용사의 묘도 있는데 사진을 못 찍었네

아버지와 함께 2011년에 갔고 오늘은 윤선생님 부부랑 적성에서 콩국수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배도 식힐겸 들렀더니 4년전과 비교해서 많이 보수도 하고 새로 단장해서 달라졌다. 영국군이 6.25전투때 이 지역에서 중공군을 막아낸 전투가 설마리 전투라고 한다. 700여명의 영국군 중 600여명이 죽거나 실종, 포로로 잡힌 전투지만 이 덕분에 중공군의 진격이 늦춰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설마리 전투 기념공원이고 아래는 어머니 묘소갔다오다가 있는 마장저수지 사진이다.

수안보 르네상스 호텔에서 자고 9시쯤 느즈막히 나와서 또 향나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상록호텔 옆에서 출발하는 무료버스로 문경새재를 가다. 이번이 3번째 걷는 길이지만 한여름에 걷는 것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늘 아래 걷는 길이어서 폭염주의보가 내렸지만 덥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확실히 숲속은 시원하다. 하지만 3관문에서 1관문으로 내려오면 고도가 낮아지면서 조금씩 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인들이 태평양 전쟁 마지막에 얼마나 마지막 발악을 했는지 소나무 송진을 받기 위해 소나무에 흠을 내어 놓은 것을 보면서 느낀다. 길관리를 잘 해 두어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다 내려오면 발씻을 수 있게 물가에 자리를 만들어 둔 곳도 있고 해서 편안하게 마..

성수 부부와 우리 부부 두 집이 성수차로 가다. 오후 2시 성수네 집에서 만나서 출발하다. 먼저 여주 신륵사를 들른 후 제천 의림지로 가다. 의림지를 나와서 내일 단양8경을 볼 생각을 하고 단양에서 자려고 갔는데 휴가철이어서인지 단양시내가 복잡하고 모텔조차도 엄청 비싸게 받는다. 평소에 30,000원이면 가능한 모텔들이 성수기를 노려서 가장 싼 모텔도 140,000원을 내란다. 그래서 단양에서 저녁만 먹고 수안보로 가기로 하고 단양에서 수안보로 가다. 수안보 르네상스 호텔에서 잠을 자다. 수안보는 언제나 한가하고 호텔도 50,000원이면 잘 수 있다. 다음날 아침에 느즈막이 일어나서 지난번 왔을 때 먹었던 향나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문경 새재 구경을 하러 가다. 수안보도 온천만으로는 이제 살아갈 수 없..

점심먹고 운동도 할 겸 수타사를 들르다. 작년에 공작산 등산갔다 오면서 들렀더니 좋아서 다시 왔는데 산 올라가기 싫어하는 문목이 걷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아버지와 에스더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가평 자라섬을 지나서 조그만 더 가면 오른편에 있다. 산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연상태의 산을 개발한 것이다. 데크길을 많이 만들고 산에는 길을 내고 나무 부스러기를 깔아서 걷기 편하게 해두었다. 습지도 있고 처음보는 꽃들도 있었다.

가족이 함께 가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 가기 때문에 河回마을이다. 입장료도 받고 양반가옥과 민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택들이 민박을 많이 하고 있다. 근처에 병산서원도 있고 안동 관광과 함께 하기 좋은 곳이다. 유성룡 선생의 집도 있어서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교회가 이곳 분위기에 맞게 한옥으로 잘 지어져 있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강화도를 가다. 성공회 강화 성당과 온수리 성당 2곳을 들르고 야콘 냉면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다. 성공회는 신교의 교리에 구교의 시스템을 갖춘 개신교이지만 느낌은 구교의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성공회 대학 교수들이나 총장의 발언들을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느낌이다. 영국 성공회가 구교를 바로 버리지 않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나라 성공회는 우리 체질화된 교회의 느낌을 준다. 온수리에 있는 성공회 성당으로 왔다 아래는 14기도처에 있는 그림들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소래로 가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고 갔기 때문에 대략 알고 갔다. 그런제 네비에 소래 습지 생태공원이라고 치고 갔더니 이상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 소래 습지 생태공원 전시관을 쳐야한다.

10층 조집사님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10시 반에 출발해서 11시 반 도착. 한바퀴 돌아보는 데 50분 가량 소요. 나와서 강화 읍내에 있는 이유가라는 청국장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성공회 강화 성당과 용흥궁을 둘러보고 돌아오다. 화창한 가을날이 참 좋았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광성보는 사적 제 227호이다.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흙과 돌을 쌓아 강화외성을 쌓았다.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다산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그는 1762년(영조 38년)에 태어나서 1836년(헌종 2년)까지 74년을 살았습니다.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등이고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지냈고, 청년기에 접했던 천주교,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글은 그의 유배지와 관련해서 쓸려고 합니다. 1800년에 정조가 갑자기 서거하자 다산은 끈 떨어진 연이 되었습니다. 이미 남인들의 힘은 약해져 있었던 데다 정순 왕후가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면서 다산은 여러 가지 모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형 약종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합니다. 자신과 형 약전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