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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성수 부부와 우리 부부 두 집이 성수차로 가다. 오후 2시 성수네 집에서 만나서 출발하다. 먼저 여주 신륵사를 들른 후 제천 의림지로 가다. 의림지를 나와서 내일 단양8경을 볼 생각을 하고 단양에서 자려고 갔는데 휴가철이어서인지 단양시내가 복잡하고 모텔조차도 엄청 비싸게 받는다. 평소에 30,000원이면 가능한 모텔들이 성수기를 노려서 가장 싼 모텔도 140,000원을 내란다. 그래서 단양에서 저녁만 먹고 수안보로 가기로 하고 단양에서 수안보로 가다. 수안보 르네상스 호텔에서 잠을 자다. 수안보는 언제나 한가하고 호텔도 50,000원이면 잘 수 있다. 다음날 아침에 느즈막이 일어나서 지난번 왔을 때 먹었던 향나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문경 새재 구경을 하러 가다. 수안보도 온천만으로는 이제 살아갈 수 없..
점심먹고 운동도 할 겸 수타사를 들르다. 작년에 공작산 등산갔다 오면서 들렀더니 좋아서 다시 왔는데 산 올라가기 싫어하는 문목이 걷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아버지와 에스더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가평 자라섬을 지나서 조그만 더 가면 오른편에 있다. 산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연상태의 산을 개발한 것이다. 데크길을 많이 만들고 산에는 길을 내고 나무 부스러기를 깔아서 걷기 편하게 해두었다. 습지도 있고 처음보는 꽃들도 있었다.
금산사를 들렀다가 나오면 오른편에 자그마한 시골교회가 하나 있다. 바로 금산교회다. 전라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옛 금산 교회는 'ㄱ'자로 된 교회로 이 교회에는 아주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교회에 도착했더니 담임목사님께서 막 새벽기도 끝난 교인들을 집에 태워다 주고 오셔서 교회역사를 아주 재미있게 말씀해 주셨다. 아래 글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글이다. "나라의 운명이 다하여 가고 있던 구한말 1904년~1905년 무렵 젊은 미국인 선교사 르위스 B.테이트(Lewis B.Tate)가 말을 타고 전주에서 정읍을 왕래하면서 중간지점인 이곳 금산리에 머물곤 하면서 역사는 시작된다. 그는 금산리에 머무를 때는 조덕삼이라고 하는 이 지역 제일의 부자집 마방(馬房)에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었습..
가족이 함께 가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 가기 때문에 河回마을이다. 입장료도 받고 양반가옥과 민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택들이 민박을 많이 하고 있다. 근처에 병산서원도 있고 안동 관광과 함께 하기 좋은 곳이다. 유성룡 선생의 집도 있어서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교회가 이곳 분위기에 맞게 한옥으로 잘 지어져 있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강화도를 가다. 성공회 강화 성당과 온수리 성당 2곳을 들르고 야콘 냉면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다. 성공회는 신교의 교리에 구교의 시스템을 갖춘 개신교이지만 느낌은 구교의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성공회 대학 교수들이나 총장의 발언들을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느낌이다. 영국 성공회가 구교를 바로 버리지 않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나라 성공회는 우리 체질화된 교회의 느낌을 준다. 온수리에 있는 성공회 성당으로 왔다 아래는 14기도처에 있는 그림들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소래로 가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고 갔기 때문에 대략 알고 갔다. 그런제 네비에 소래 습지 생태공원이라고 치고 갔더니 이상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 소래 습지 생태공원 전시관을 쳐야한다.
10층 조집사님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10시 반에 출발해서 11시 반 도착. 한바퀴 돌아보는 데 50분 가량 소요. 나와서 강화 읍내에 있는 이유가라는 청국장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성공회 강화 성당과 용흥궁을 둘러보고 돌아오다. 화창한 가을날이 참 좋았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광성보는 사적 제 227호이다.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흙과 돌을 쌓아 강화외성을 쌓았다.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다산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그는 1762년(영조 38년)에 태어나서 1836년(헌종 2년)까지 74년을 살았습니다.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등이고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지냈고, 청년기에 접했던 천주교,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글은 그의 유배지와 관련해서 쓸려고 합니다. 1800년에 정조가 갑자기 서거하자 다산은 끈 떨어진 연이 되었습니다. 이미 남인들의 힘은 약해져 있었던 데다 정순 왕후가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면서 다산은 여러 가지 모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형 약종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합니다. 자신과 형 약전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