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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도산서원을 들렀다 나오는 길에 있어서 들어갔는데 상상 외로 좋은 곳이다. 특히 이 안에 있는 유교문화 박물관은 압권이었다. 하지만 유학에 관해 아는 게 너무 없으니 감탄사만 내면서 깊은 의미를 모르고 지나간다.
도산 서원을 나와서 퇴계종택을 들르다. 후손들이 살고있는 내실이 있어서 아무 곳이나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 퇴계 이황이 살던 옛 집은 1907년 일본 헌병의 방화로 모두 타버렸고, 지금의 종택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 이충호(霞汀公 李忠鎬)가 1926~ 1929 년에 새로 지은 집이라고 한다. 퇴계종택에 하사된 열녀정려문(烈女旌閭文)이 걸려 있다. 퇴계의 손자인 이안도(李安道) 선생의 처 안동권씨에게 내린 것이라고 한다. 퇴계의 친필이라고 (아래의 나머지 설명들은 http://blog.naver.com/drkdc/221012308386에서 복사해 온 것임.) 秋月寒水亭. 추월한수정. 가을 달처럼 티끌 한 점 없이 밝기만 하고, 차가운 강물처럼 투철하고 명징(明澄)한 현인의 마음까지를 뜻하는 글귀..
성수 부부와 문목 부부가 함께 가다. 워낙 유명한 서원이고 내가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인 퇴계 선생님의 서원이어서 더 애착이 간다. 퇴계 선생님에 관한 학문적인 업적과 많은 일화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특히 최인호 소설 '유림' 이후 더욱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서원에 비해서 규모도 크고 영주에 있는 소수 서원처럼 입장료도 받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969년 5월 28일 사적 제170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이황이 사망한 지 4년 후인 1574년에 설립되었다. 영남학파와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이황..
서애 유성룡 선생의 병산서원을 다시 가다. 몇년 전 갔다 온 적이 있지만 이번 여름 여행으로 성수네와 문목,세 집이 함께 가다. 류성룡(柳成龍, 1542년 11월 7일(음력 10월 1일) ~ 1607년 5월 31일(음력 5월 6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1],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도 의성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간성군수 류공작(柳公綽)의 손자이며,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柳仲郢)의 차남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후에1590년 통신사로 갔던 조목(趙穆)·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서인이 아닌 이산해와 같은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성수네와 공세리 성당을 가다. 공세리라는 말은 옛날에 세금으로 낸 곡식을 모아둔 창고가 여기에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890년에 성당이 시작되었고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144호이며 2005년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32위의 순교자가 있고 수령 350년이 보호수가 3그루나 있다. 한국 천주교는 4대 박해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 근처 내포지방도 큰 박해를 입은 곳 가운데 하나다. 인터넷에서 예쁜 성당으로 사진이 자주 올라 온 곳이어서 아산 올 때 부터 여기를 목표로 정했다. 성당이 참 아담하고 예상대로 아름답다. 이 성당에 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가 봤더니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내부에서는 못 찍고 나오다. 이명래 고약이 ..
성수 부부와 함께 현충사와 맹씨 행단을 들러서 오다.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옛날 시골의 큰 동네를 잘 보존하고 있다. 양반집과 서민들의 집도 재현해 두었고 대가댁의 집들은 지금 봐도 그 규모가 대단하다. 마을에는 호도나무와 뽕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시골의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아주 정겨웠다.
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 이십 수년 전에도 성수네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를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는 현충사가 별로 볼 품이 없었는데 지금은 대대적으로 공사를 해서 아주 대단한 곳으로 만들었다. 특히 반송과 각종 나무들이 아주 볼거리였다. 충무공 기념관은 규모에 비해서 내실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유물이나 기록을 모으는 것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옮기기 전에 있던 옛날 사당 - 이 현판이 숙종이 하사한 것인가? 17년 10월 16일 조선일보 뉴스에 보니까 민주당에서는 적폐 청산한다고 박정희 대통령 글씨는 치우고 이 현판을 새로 지은 현충사에 걸라고 하는데? 안민석이던가 누군가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데 중국 홍위병 생각이 갑자기 나는 건 내가 너무 무지해서인가? 그 큰 건물에 이 ..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09호로 지정되었다. 아산맹씨행단은 아산 시내에서 온천동을 거친 뒤 좌부동을 지나 6㎞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다. 아산맹씨행단 내에는 맹사성 정승이 심은 600여 년 된 은행나무와 고택이 있는데, 이 건물은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민가이다. 고택 뒤에는 맹 정승과 그의 부친인 희도, 조부 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세덕사가 있다.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서 행단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하나, 공부하던 자리의 의미인 행단이 된 것으로도 추정된다.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 가족이 살던 집으로, 원래 고려 후기에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고 전하기도..
무위사를 들렀다가 호남 3대 정원 가운데 한 곳이라고 하는 백운동 별서 정원으로 가다. 호남 3대 정원은 설명에 의하면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동과 이 백운동 정원이라고 한다. 이 정원은 조선 중기 이담로가 조영(造營)하고 은거했던 별서정원이라고 불리는데 별서정원이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하며 지내기 위해 만든 별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강진에 유배중이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 곳을 들른 뒤 아름다운 이 곳 경치에 반하여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가지 풍경을 시로 지어 '백운첩'을 남겼다. 이 백운첩을 근거로 현재의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한다. 백운동 정원 12경 ▲제1경: 옥판상기-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 ▲제2경 유차성음- 산다경의 동백나무 그늘 ▲제3경..
적적해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강화를 가다. 강화를 하도 자주 가니까 이제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강화성당 옆에 있는 강화 고려궁지를 갔더니 복구가 제대로 안 되어서 건물은 별로 없었지만 외규장각과 의궤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태수네, 성수네, 승호네와 함께 8명이 같이 가다. 서원 옆에는 율곡의 가족묘가 있고 율곡 기념관도 있다. 멀지 않은 곳에는 화석정이라는 율곡이 즐겨 찾았던 정자도 있다. 이 서원도 효종원년에 받은 사액서원이다. 그런데 현판이 없다. 대원군 때 철폐된 건가 아니면 전쟁 때 불탔나?
문헌서원은 이 지역을 본관지로 하는 한산이씨 명조 선현 8위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기산면 영모리에 있다. 기록상 창건은 1594년(선조 27)으로 전해지며 처음 이름은 ‘효정사(孝靖祠)’이다. 1611년(광해군 3)에 『문헌(文獻)』이라 사액 받았으며, 제향인물은 이곡(李穀), 이색(李穡), 이종덕(李種德), 이종학(李種學), 이종선(李種善), 이맹균(李孟畇), 이개(李塏), 이자(李자)이다. 문헌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 100여년이 지난 1967~1968년에 종족들에 의하여 중건이 발론되고 후손들의 합력으로 영모리 동쪽의 현재위치로 1969년에 이건하게 된다. 이 해에 현암 이종덕(玄巖 李種德)을 추배하여 모두 6현을 제향하게 되었다. 문헌서원은 1984년 ..
다산 선생이 이곳으로 유배와서 처음 묵었던 곳. 강진의 '뜨란에'라는 체험농원에서 1박하고 나와서 도솔암과 미황사를 들렀다가 강진에 있는 사의재와 영랑생가를 들르다. 사의재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 예약홈페이지 : www.sauijaehanok.com * 문의전화 : ☎061-430-3335 사의는 생각은 담박하게 외모는 장중하게 말은 절제하고 행동은 신중하게 해야한다는 말이다.
계산교회 시절 3인방이었던 김상배 장로 부부, 최은호 집사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새벽 5시부터 준비해서 렌트카로 인천에서 우리 집까지 와서 우리 부부를 태우고 청평사로 가다. 모처럼의 추억도 즐길겸해서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경춘가도로 가다가 청평에 있는 전도관 마을에도 들르고 가평에 있는 곰탕집에서 아침을 먹고 가다. 청평사는 옛날에 우리가 학교 다닐때는 소양댐에서 배타고 갔는데 지금은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어서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다. 청평사는 회전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아름다운 오봉산 아래 자리하고 있어서 아늑하다. 이 절에는 공주와 상사뱀의 설화도 있고 회전문에 특이하게 유교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홍살문이 붙어 있어서 볼거리가 된다. 청평사에서 문화해설사겸 가이드 역할을 하..
인조의 한이 서린 남한 산성이다. 오늘이 12.12 사태가 난 날이다. 아내가 남한산성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둘이서 가다. 남한산성 중앙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주차비를 하루 종일 1,000원밖에 받지 않아서 좋다.) 북문으로 올라가서 수어장대를 들렀다가 남문으로 내려오다. 그러니까 성안만 잠깐 돌아보고 왔다. 도립공원인데도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몇년전 눈이 많이 쌓인 겨울에 성벽을 따라 한바퀴 돈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2시간 정도 간단히 산책만 하고 왔다. 준비해간 간식도 햇빛 좋은 곳에 앉아서 먹고 쉬엄쉬엄 걸어서 아내가 좋다고 했다. 오늘 날이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금강이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우짜노?
시간을 지루해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주차를 하고 근처에 식당을 찾아도 제대로 된 식당이 안 보여서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화성으로 올라가다. 수원에 살 때는 이 화성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오늘 갔지만 코스를 잘 못 골라서 한쪽 모퉁이만 보고 오다. 내년이 수원 화성 방문의 해라고 수원 시내 현수막에 적혀있다. 창룡문 아래 관광안내선터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창룡문으로 가서 화홍문까지 갔다 오다. 아버지께서는 힘들어 하셔서 창룡문만 갔다가 아내가 모시고 다시 차로 돌아가고 나혼자 갔다오다. 그리고 화성을 나와서 내가 30년 전 근무한 창현고를 들렀다가 우리 살던 집도 보고 싶었는데 그 주위가 다 재개발되어서 우리 살던 집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옛날 생각하면서 잘 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함깨 가다. 비도 오고 하지만 혼자 계시기가 적적한 아버지를 모시고 갔더니 역시 좋아하신다. 30년 후의 내 모습을 오늘도 미리 본다.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미군과 조선군이 싸운 역사의 현장이다. 잘 단장해 두기는 했지만 당시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그리 썩 즐겁지는 않았다. 이 아래 무명 용사의 묘도 있는데 사진을 못 찍었네
아버지와 함께 2011년에 갔고 오늘은 윤선생님 부부랑 적성에서 콩국수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배도 식힐겸 들렀더니 4년전과 비교해서 많이 보수도 하고 새로 단장해서 달라졌다. 영국군이 6.25전투때 이 지역에서 중공군을 막아낸 전투가 설마리 전투라고 한다. 700여명의 영국군 중 600여명이 죽거나 실종, 포로로 잡힌 전투지만 이 덕분에 중공군의 진격이 늦춰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설마리 전투 기념공원이고 아래는 어머니 묘소갔다오다가 있는 마장저수지 사진이다.
수안보 르네상스 호텔에서 자고 9시쯤 느즈막히 나와서 또 향나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상록호텔 옆에서 출발하는 무료버스로 문경새재를 가다. 이번이 3번째 걷는 길이지만 한여름에 걷는 것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늘 아래 걷는 길이어서 폭염주의보가 내렸지만 덥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확실히 숲속은 시원하다. 하지만 3관문에서 1관문으로 내려오면 고도가 낮아지면서 조금씩 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인들이 태평양 전쟁 마지막에 얼마나 마지막 발악을 했는지 소나무 송진을 받기 위해 소나무에 흠을 내어 놓은 것을 보면서 느낀다. 길관리를 잘 해 두어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다 내려오면 발씻을 수 있게 물가에 자리를 만들어 둔 곳도 있고 해서 편안하게 마..
성수 부부와 우리 부부 두 집이 성수차로 가다. 오후 2시 성수네 집에서 만나서 출발하다. 먼저 여주 신륵사를 들른 후 제천 의림지로 가다. 의림지를 나와서 내일 단양8경을 볼 생각을 하고 단양에서 자려고 갔는데 휴가철이어서인지 단양시내가 복잡하고 모텔조차도 엄청 비싸게 받는다. 평소에 30,000원이면 가능한 모텔들이 성수기를 노려서 가장 싼 모텔도 140,000원을 내란다. 그래서 단양에서 저녁만 먹고 수안보로 가기로 하고 단양에서 수안보로 가다. 수안보 르네상스 호텔에서 잠을 자다. 수안보는 언제나 한가하고 호텔도 50,000원이면 잘 수 있다. 다음날 아침에 느즈막이 일어나서 지난번 왔을 때 먹었던 향나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문경 새재 구경을 하러 가다. 수안보도 온천만으로는 이제 살아갈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