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평화누리길 7코스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북한산 만포면옥
- 군위 팔공산
- #강화나들길 3코스
- 김포 한재당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평화누리길 3코스
- 미시령 성인대
- 해파랑길 20코스
- 평화누리길 4코스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해파랑길 8코스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앙코르와트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성인대
- 명동 성당 미사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단양 구담봉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해파랑길 48코스
- 김포 문수산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Today
- Total
목록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182)
노래하는 사람
성수네 교회 장순녀 권사의 조카가 Everland에 근무하는 덕에 여러 명이 무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30여년전 용인 자연농원이었던 시절에 가보고 처음 간다. 미국 디즈니랜드의 프로그램과 시설등을 많이 도입한 것 같다. 나는 오늘 저녁 오페라 때문에 오전에 아마존과 사파리만 보고 점심 먹은 후 아내와 함께 나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야간 프로그램까지 즐기고 왔다. 에버랜드 안의 점심식사가 아주 푸짐하고 플로리다에서 먹던 것과 비슷했다. 사파리는 오래 기다린 것에 사자와 호랑이를 주로 보기는 했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호수 공원에 갔다가 들르다. 호반 화장실 바로 앞 지하에 있다. 동서양 화장실 문화를 비교 전시하고 시대별 화장실에 관한 설명과 사진, 그리고 유물들도 있다. 하이힐과 높은 모자 그리고 코트가 길거리 오물들을 밟지 않고 창문 밖으로 버리는 오물울 피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서양은 일찍부터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해서 배설물을 버렸지만 동양에서는 약재나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잘 보관했다. 또 제주도나 지리산 일대에서는 화장실 아래 돼지를 두어서 인분을 먹게 하였고 이 돼지를 똥돼지라고 하며 고기맛이 좋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똥을 누면 강지를 불러서 그 똥을 먹게하고 심지어는 항문도 핥아서 깨끗하게 처리했다. 변소, 통시,뒷간,측간,해우소등으로 불렸고 거기에는 나쁜 귀신이 산다고 믿어서..
해파랑길 걸으면서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목은 이색은 고려 말의 학자. 성리학을 바탕으로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대표작으로 , 가 있다. 이색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아버지는 찬성사 곡(穀)이다. 15세에 부음(父陰)으로 별장(別將)의 직을 얻고, 1341년(충혜왕 복위 2) 진사가 되었다. 1348년(충목왕 4) 아버지가 원에서 중서사전부(中瑞司典簿)가 되자 조관(朝官)의 아들로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었다. 이색은 이제현(李齊賢)을 좌주(座主)로 하여 주자성리학을 익혔고, 이 시기 원의 국립학교인 국자감에서 수학하여 주자성리학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1352년(공민왕 1) 아버지가 죽자 귀국해 토지문제·왜구대책·학교교육론·이단배척 등의 상소를 올렸다. ..
해파랑길 걸으면서 가다. 월송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 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로 건너편에 월송정 입구가 있다. 1326년(충숙왕 13)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으로 지었다. 충선왕 때 안축(安軸)의 기문에 “정자를 여기에 지으면 그 운치가 한송(寒松)·월송(越松)의 두 정자와 서로 갑을이 될 것이다”라고 한 기록이 있으며, 1349년(충정왕 1) 이곡(李穀)이 쓴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평해군청에서 5리 되는 곳에 이르면 일만 주의 소..
해파랑길 걸으면서 가다.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의 뒷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와 접한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관광명소인 성류굴이 있고, 정자 아래로는 망양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망양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기성면 망양리 해안에 처음 세워졌으나 1471년(성종 2)에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기슭에 옮겨놓았다. 1517년(중종 12)에는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자, 다음해 안렴사(按廉使) 윤희인(尹希人)이 울진군수 김세우(金世瑀)와 협의하여 중수하였다. 그 후 1590년(선조 23)에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중수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숙종이 안원군(眼原君)에 편액(偏額)을 보내어 게판(揭板)하였다. 1854년(철종 5)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과 군승(郡承) 남치붕(南致鵬)이 ..
해파랑길 29구간에 들어있는 곳인데 지난번에 놓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오늘 다시 들러서 보고 간다. 죽서루는 보물 제 213호로 1403년에 세워졌다. 삼척시에서 만든 자료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정선은 청하현감으로 내려가던 해에 58살이었다. 위 그림이 고미술 경매에 나왔다. 최고 추정가는 2억까지 호가됐지만 9800만원(수수료제외)에 낙찰됐다고.
소목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을 단양으로 간 길에 소수서원을 들르다. 홈페이지에나온 글을 대략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사묘를 설립한 후 1543년 유생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1546년(명종 1)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현(安玹)이 서원의 향사(享祀)에서부터 학전(學田)과 서적의 운용 및 관리, 노비와 원속(院屬)의 관리 등 서원의 운영·유지에 필요한 제반 방책을 마련하였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1550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었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그 뒤 1633년(인조 ..
아들 부부와 손자랑 함께 가다. 한림공원은 워낙 넓어서 호준이가 힘들어할까봐 다 가지 못하고 적당한 시간동안 돌고 나왔다. 하지만 수선화와 매화축제를 하고 있어서 참 좋았다. 매화와 수선화를 실컷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간절곶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동쪽 해안에 있는 곶으로, 북쪽 서생포와 남쪽 신암리만 사이에 돌출된 부분이다.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절곶 등대가 있다. 간절곶이라는 이름은 먼 바다에서 간절곶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대나무로 된 긴 장대)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정동진, 호미곶과 함께 동해안의 대표적인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간절곶의 일출은 정동진보다는 5분, 호미곶 보다는 1분 빨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다.
해운대는 해운 최치원의 이름과 상관이 있다. 해운대에 있는 동백섬 곳곳에 그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달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계속 찍게 된다. 일본에서도 한 때 이노래가 유행했을 때 말이 많았다.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를 지배했을 때의 추억 때문이라는 둥. https://youtu.be/zEUIepWKzCc 오늘 아침 일출 시간은 7:29분이다. 콩알만한 붉은 점이 보인다. 최치원 동상 주변에 그의 시들을 기록해 두었다.
4집이 부산 여행 가는 길에 들르다. 아버지께서 사시던 밀양이어서 아주 친근한 느낌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는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누각으로 구 객사(舊客舍)의 부속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1844년에 다시 지어진 조선시대 후기 건물의 특색을 잘 반영한다. 옛날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던 곳으로, 진주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2]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영남루는 동서 5간 남북4간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이다. 동서 좌우에는 다시 각각 3간의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달려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영남루는 옛적에 영남사의 절터인데 고려 공민왕 14년(AD 1365년..
대구를 근 40년 만에 가다. 성수네, 문목네 세집이 함께 남원에서 단양 가는 길에 대구를 들르다. 우리 가곡에 나오는 청라언덕과 동산병원 구내에 있는 선교사들 집과 대구 제일교회 이상화, 서상돈 생가, 계산성당등을 들르다. 아래는 선교 박물관 전시물
오랜 전통을 가진 남원 향교를 성수네, 문목네와 함께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1410년(태종 1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부(府)의 서쪽인 대곡산(大谷山) 기슭에 창건하였다.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의 침해가 있는 까닭에 1428년 부의 동쪽 덕음봉(德蔭峰) 밑으로 이건하였다가, 홍수 때 길이 막히는 일이 많아 1443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1599년에 진사 유인옥(柳仁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하였고, 1609년 감사 윤안성(尹安性)과 부사 성안의(成安義)의 찬조로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748년에 진사 한동섭(韓東攝)이 동재·서재를 중수하는 등 ..
남원에서 자고 일어나서 광한루 들렀다가 가다. 다음백과에 희하면 사적 제272호.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1597년(선조 30) 화의의 결렬로 재침한 일본군은 호남·호서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28일부터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를 대장으로 한 1대(隊) 5만 병력은 사천으로부터 하동을 거쳐 구례로 들어오고, 그 일부는 함양을 거쳐 운봉으로 들어와 남원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당시 조선·명 연합군도 남원을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겨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 방어사 오응정, 조방장 김경로(金敬老), 별장 신호, 남원부사 임현의 군사 1,000여 명과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군사 3,000여 명이 함께 방어하고 있었다. 8월 13..
순창에서 전영과 함께 문상을 하고 남원으로 와서 자고 일어난 후 광한루로 가다. 우리 고모(?)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어서 오래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곳이긴 하다.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광한루는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638년(인조 16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1419년 남원으로 유배온 황희 정승이 짓고 광통루로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정인지(鄭麟趾)가 이를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하면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이 건물이 정유재란 때 불 탄 것을 1638년에 재건했다고. 그 후 장의국(張義國)이 누각 앞에 연못을 파고 오작교를 가설했다고 한다. 광한청허부라는 말은 달나라의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을 뜻한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누각에..
진주에 오페라 '처사 남명'을 보러 간 김에 들르다. 촉석루와 진주성 그리고 진주 대첩에 관심이 있어서 현장을 보고 싶었는데 뜻을 이루었다. 나는 진주 장정으로 군에 갈 때 진주를 들른 적이 있고 군에 있을 때 후배 여진모가 진주 사람이다. 이 후배가 워낙 좋은 후배여서 제대 후에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나 때문에 예수 믿게 되었다고 말한 후배인데 보고 싶다. 진주성 관람은 05시에 문을 열어서 시민들이 아침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성 전체를 돌려면 30분 이상은 걸릴 것 같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촉석루등은 09시에 문을 열고 입장료 2,000원을 내어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의암은 담장 아래로 해서 남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갈 수는 있..
경포대를 한바퀴 돌다 보니 이 생가터가 보여서 들어가 보다. 이 배롱나무는 남자가 거주하는 사랑채 정원에는 심어도 되지만 여자가 있는 안채에는 못 심게 했다고 한다. 벗은 여체를 연상시켜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자들은 여자의 나체를 연상하고 봐도 되고 여자는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
해파랑길 걸으면서 이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서 걷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건물.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326년(충숙왕 13)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하여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창건되었으며, 그뒤 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1626년(인조 4) 강릉부사 이명준(李命俊)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는데, 인조 때 우의정이었던 장유(張維)가 지은 중수기(重修記)에는 태조와 세조도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고 쓰여져 있다. 현재의 경포대 건물은 1745년(영조 21)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
장모님이 심심해 하셔서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 하다가 운정 호수 공원을 가다. 일산 호수 공원에 비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주변에 체육공원과 도서관도 있고 도시 한 가운데 있어서 주민들이 사용하기 참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무가 덜 자라서 호수공원같은 맛은 없지만 산책이나 운동하기는 참 좋아 보인다. 주변에 식당도 많이 있고 잔디밭에는 가족들이 아기들 데리고 나와서 쉬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고 자전거 타거나 걷거나 하는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