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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5월 4일 성수네 결혼 기념일을 핑계로 어제 저녁에 Designers Hotel에 5 집이 모이다. 모여서 삥콜도 하면서 놀고 아침에 일어나서 배승은 출근하고 문목은 통풍으로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집으로 가고 오늘 시간이 나는 세 집만 함께 가다. 서울 숲은 이 복잡한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어서 시민들이 쉽게 갈 수 있고 이름 그대로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휴식하기에 아주 좋다. 오늘도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한바퀴 돌면서 이 안에 음식을 배달해 주는 사람도 있어서 콩국수와 다른 음식을 공원 안에서 배달시켜 먹고 차도 마시고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다. 누군가가 공원 안에 탈 것을 두고 갔는데 아무도 손대지 않으니까 공원에서 이런 안내문을 ..
성수네와 소목 세 집이 함께 가다. 이곳은 전부터 아내가 가 보자고 몇번 말한 적이 있어서 소목사님 회갑을 맞이해서 여행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대통령의 별장과 휴양지이니까 당연히 시설이나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 1983년 대청호 주변에 전통 시절에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이 만든 것을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충청북도로 이관되어 민간에 개방했다고 한다. 입장료는 5,000원이고 주차비는 2,000원이다. 별장 안에 식당은 없고 매점은 있다. 대통령관 안에 여러가지 대통령과 관련된 것들을 전시해 두었다. 휘호들이 많은데 최규하 대통령이 뛰어나 보인다. 월송정과 몇 곳의 정자에서 그의 필체를 본 적이 있다. 불두화와 설구화는 꽃은 비슷하지만 잎이 많이 다르다. 설구화 잎이 주름이 많이 져 있다.
남양주는 정약용 선생으로 먹고 산다. 여기는 박물관도 있고 이 생태 공원이 아주 아름답다. 두물머리만 알고 있었는데 거기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곳이다. 다산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였고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이기도 했다. 모함으로 귀양살이도 했지만 그의 능력으로 수원 화성을 지을 때 거중기를 사용해서 성을 쉽게 짓게 만들기도 했고 목민심서나 내 기억이 맞다면 그외의 500여권의 책들을 남긴 다작의 인물이다.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을 갔을 때 그가 머물렀던 집과 작은 연못에 있는 가산을 보고 그의 생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이 생태 공원도 계절마다 좋은 경치를 보여줄 것 같다. 다산도 호를 여러가지로 사용했다. 다산 외에도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
태수 부부가 한국에 온 김에 함께 여행하다. 호로고루 성은 주변에 경순왕릉과 화석정,당포성, 마의태자 영단등이 있는 곳이다. 임진강변 절벽 위에 있다.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이다. 2006년 1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7호로 지정되었다. 호로고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효종 7년(1656)에 편찬된 『동국여지도』 이며 이책에는 호로고루가 삼국시대의 유적임이 명시되어 있고 최초의 학술조사 기록은 1919년에 발간된 『조선고적조사보고』이다. 이 보고서에는 도면과 함께 사진을 싣고 있으며 삼국시대 성으로서의 중요성이 기술되어 있다. 그 후 1991년부터 2003년 사이 본격적인 학술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의 형태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
오랜만에 가다. 아직 꽃이 많이 없지만 여기는 언제나 좋다. 처음 보는 꽃들도 있어서 더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관람이 안 되는 곳이 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숲속을 돌아다니니 좋았다. 아래는 카톡으로 보내 준 사진들 세 집이 먼저 가고 배집사님이 뒤에 합류하다. 여기까지는 카톡으로 온 사진들이다.
연미정에서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이곳으로 올 때는 군인들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이 공원의 의미라면 고려 고종이 천도할 때 이곳으로 처음에 건너왔다는 것이겠다. 고려 고종이 1232년에 개경에서 천도할 때 이곳 승천포로 왔다고 해서 이곳에 공원을 만든 것 같다.
10층 조집사님 부부와 함께 가다. 이 신실한 부부와 친해질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봄을 맞아 강화 터미널 옆에 있는 풍물시장에서 밴댕이 무침과 해물 칼국수도 먹고 월곶 돈대에 있는 연미정과 민통선 안에 있는 고려 천도 공원을 들러서 오다. 연미정은 강화 읍내에서 차로 1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연미정 맞은 편에 작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고 올라가면 된다. (아래의 글은 다음 백과 사전 등을 참고했다.) 연미정은 월곶 돈대 안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다.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
제주 관광 마지막 코스로 성수와 둘이 가다. 공항에서 가깝고 비행기 시간도 많이 남아서 들르게 되었다. 제주 관아가 이렇게 컸으면 다른 관아들은 훨씬 더 컸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의하면 "제주목 관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로 조선시대 제주 지방 통치의 중심지로서,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들어서 있던 관아 시설을 말한다. 1991년부터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탐라국으로부터 조선과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기의 유구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관아 시설인 동헌과 내아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어 제주목 관아지로 밝혀진 중요한 유적이다. 관아 시설은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
아내가 1100고지에 몇 왔는데도 습지를 걸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함께 걷다/ 아들 가족과 함께 왔을 때는 호준이 보느라 못 걸었고 문목과 함께 왔을 때는 마침 쉬고 싶던 차에 문목과 말동무 해 준다는 핑계로 못 걸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기는 항상 겨울에만 오게 된다. 다음 백과 사전에 의하면 1100고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중문동과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일대의 소택지로서 제주 1100고지습지는 멸종위기종 및 희귀종이 서식하고 독특한 지형에 발달한 고산습지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2009년 10월 1일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10월 12일에는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습지이다. 등록면적은 126,000㎡이다. 다수의 습지가 패치 상태(경관요소의 하나로 드문드..
동백꽃으로 승부한 언덕이다. 입장료를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8,000원짜리를 6,500원이나 그 이하로 입장할 수 있다. 가성비 만족스럽다. 동백이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 줄 몰랐다. 온실에도 예쁜 꽃들을 많이 키워서 눈이 호강한다. 한림공원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나름 좋은 곳이다.
군산 오름에는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때 파 둔 진지 동굴들이 많이 있다. 중문 단지에서 별로 멀지 않고 산방산 옆에 있다. 나는 걸어 올라오라고 내려 주고 나머지는 차 타고 주차장까지 올라갔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일대에 걸쳐 있고 표고335m, 비고280m , 둘레8111m , 면적2,836,857m, 저경2,795m 이다. "정상부에 용의 머리에 쌍봉이 솟았다고 하는 두 개의 뿔바위, 동남사면의 애기업개 돌 등의 퇴적층의 차별침식에 의한 기암괴석, 남사면 계곡에 발달된 웅장한 퇴적층의 수평층리 등 군산은 감춰져 있는 제주도 최대의 화산쇄설성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기생화산체이다."
평화누리길을 걷다가 가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한재당(寒齋堂)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28세의 나이로 화를 입은 이목(李穆) 선생의 위패를 봉인한 사당으로 1849년에 건립된 구사당과 1974년에 건립한 신사당이 있다. 구사당은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정면3칸, 측면2칸이며 일주문과 담장이 둘러 있었으나 신사당 건립으로 인해 현재는 담장만 남아있다. 한편, 신축 사당은 건평 12평의 콘크리트 건물에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숙종43년(1717)과 경종2년(1722)에 추증(追贈)한 교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선생은 성종2년(1471)에 출생하여 일찍이 점필제(點畢齊), 김종직(金宗直)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연산군 1년(1495) 문과에 급제하였다. 간사한 노정승 윤필상이 대비를 따라 불교를 받드는..
설맞이 여행을 몇 집이 함께 속초로 가다. 해파랑길 걸을 때 왕곡 마을을 들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이 마을의 특징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마을이 북방식 가옥을 잘 보존하고 있는 독특한 국가 민속 문화재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 함께 가서 마을을 둘러 보고 오다. 이 마을의 역사를 마을 홈피에 들어가 살펴보니 "고려가 망하고 72명의 현자들이 두문동으로 들어가서 두문불출할 때 그 중 한 분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 은거한데서 연유하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체 잘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
아내와 평화누리길을 걸으면서 가다. 반구정은 황희 정승의 유적지로 위키백과에 의하면 "반구정은 조선 세종 때 유명한 정승이었던 황희(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내시던 곳이다. 임진강 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다. 반구정은 황희가 죽은 후 조상을 추모하는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하여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그 뒤 이 근처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67년 크게 고쳐 지었다. 건물 규모는 앞면 2칸·옆면 2칸이며,기둥 윗부분과 옆면 등에 꽃무늬 장식을 돌려 붙였다." 황희 정승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황..
행주 산성을 가면서 고양 행주산성 역사공원과 행주 서원을 가게 되었다. 역사공원 주차장이 크게 잘 조성되어 있으면서 무료 개방이고 한강변에 있어서 시원하다. 행주산성은 입장료 1,000원 받던 것을 올해부터 무료로 전환했다. 하지만 주차장은 입장료를 2,000원 받는다. 산성 주차장에서 500m 정도만 걸으면 이 무료 주차장이 있다. 걷기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이 주차장에 주차하고 행주 산성으로 갔다. 산성으로 올라가기 전에 역사 공원과 행주 서원을 들러서 가게 되었다. 생주서원은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권율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권율(1537∼1599) 장군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명장이다.특히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 전투에서는 1만명 미만의 군사로 3..
집에서 가까운 곳을 오히려 잘 안가게 된다. 서울 사람들이 남산 타워 안 가본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다음백과에 의하면 행주산성은 "사적 제56호. 해발 124.8m의 덕양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해발 70~100m의 능선을 따라 부분적인 토축을 했는데, 그 길이는 약 1km에 이른다. 성의 남쪽은 한강이 인접해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고 있어 자연적인 해자가 조성되어 있다.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 일대는 급경사로 요새로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산성의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90년 12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생토암반을 정리하여 성 내부 쪽에 2단의 석렬을 쌓고 성 바깥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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