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미시령 성인대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단양 구담봉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김포 문수산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평화누리길 7코스
- 평화누리길 3코스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해파랑길 48코스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앙코르와트
- 명동 성당 미사
- 해파랑길 8코스
- 김포 한재당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강화나들길 3코스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군위 팔공산
- 북한산 만포면옥
- 성인대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해파랑길 20코스
- 평화누리길 4코스
- Today
- Total
목록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182)
노래하는 사람
학교 선생님들이 제주 연수를 갔다가 들르다. 6년 후에 갔다왔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 사진만 올린다.
조선 철종(재위 1849∼1863)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던 집이다. 철종 4년(1853)에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안채)과 밖(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예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나무 위키에 의하면 철종은 조선의 제25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묘호는 철종(哲宗), (추존된) 시호는 '장황제(章皇帝)', 휘는 원범(元範)이었으나 왕이 된 후 항렬자를 맞추기 위해 변(昪)으로 개명[5], 자는 도승(道升). 국왕이 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강화도에서 나무꾼으로 보낸 것으로 유명..
한탄강 물윗길을 걷고 집으로 오는 길에 들르다. 철원 향교는 위키백과에 의하면 철원향교는 태봉국 시절 왕건의 사저 자리(現 月下里)에 설립하였다 하나 건조년대는 미상이다. 조선 선조 원년(서기 1568년) 유림들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임진왜란(서기 1595년)의 병화로 소실되었다. 그 후 인조 15년(서기 1637년) 유림들이 재건하였으며 일제치하에서는 군수 유흥종(柳興鍾)이 대성전과 명륜당 등을 중축하였는데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재산이 몰수돼 고아원으로 활용하던 중에 6·25전란으로 소실되었다. 1945년 수복 후 일시 포충사(褒忠祠)로 옮겨 모셔졌다가 유림들의 협조와 정부보조로 화지리로 이전하여 관리하다가 원위치 복원계획(종전 월하초교 부지)에 따라 2004년 12월에 포충사로 임시 이전하였다. 200..
아내 회갑 기념으로 여수 해남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들르다. 오래전에 선생님들과 들른 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아내와 성수네와 함께 들르다. 우키 백과에 의하면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이다. 1983년 6월 1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1908년까지 존속하였던 낙안군의 중심지였다. 임경업 장군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성곽과 내부 마을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해마다 5월에는 낙안민속문화축제, 10월에는 남도음식축제가 열린다. 전통 한옥들이 있으며 현재 실제 주민들이 거주 중이다. 현재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
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이 녹우당에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원본은 보관상의 이유로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지 않고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영인본이 전시되고 있다. 실망감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그림들과 유물들을 둘러보고 녹우당 집으로 가봤더니 여기도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집 안은 개방하지 않는지 몰라도 대문이 잠겨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녹우당의 넓이가 대략 4,000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저택이다.(14,268 제곱미터라고 나와 있다.) 고산 집안이 당시 호남 3대 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하니 이 정도 규모의 저택을 소유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선도가 어떻게 이런 부자가 되었는지 조사해 보았더니 아래는 문화일보 ..
윤교감 부부와 함께 가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에 주차하고 온수리 감리교회 앞으로 난 길로 올라가다. 산성을 한바퀴 돌고 전등사를 들렀다가 원점회귀하다. 산에서 만난 강화 주민의 말에 의하면 이 산성을 한바퀴 도는 데는 1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부부가 함께 가고 또 놀멍쉬멍 하다 보니 두시간도 더 걸렸다. 산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강화 주변이 잘 보여서 경치도 아주 좋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정족산성은 일명 삼랑성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길이는 2,300m에 달하며 자연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이다. 성 내에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 고종 46년(1259)에는 이 성안에 궁궐(이궁)..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전에도 한번 와 본 적이 있는 이 곶자왈을 들르다. 지난번에는 절반만 돌았는데 오늘은 크게 한바퀴 다 돌았다. 곶자왈은 제주 방언으로 덩쿨이나 숲이 무성한 지역을 말한다. 제주의 원시 자연숲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와 성수는 테우리길 - 한수기길 - 오찬이길로 전체를 한바퀴 돌았고 다른 사람들은 가운데 있는 빌레길로 나왔다. 가시낭길은 가지 않았다.
아침 10시경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려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시간도 많고 해서 한강으로 나갔다가 정서진까지 가게 되었다. 도상 거리는 편도 33km로 나온다. 숙련된 사람이라면 3시간이면 충분할 거리를 7시간이나 걸려서 왕복했다. 갑자기 먼 거리를 탔더니 오는 길에 무릎이 아파서 혼났다. 지금도 무릎이 아프다.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다. 경인운하를 따라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가다보니 끝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먼 거리를 탔다.
강화 나들길 1코스에 연미정이 있다. 그래서 가게 되었다. 연미정은 다음 백과에 의하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
강화 나들길 1코스에 강화 향교가 있어서 가게 되었다. 향교가 상당히 크다. 향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 동무, 서무등이 있고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제 서제 그리고 전교의 집무실등이 있다. 강화향교(江華鄕校)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향교이다. 1995년 11월 14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성현들에게 제사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세웠던 국립교육기관으로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세웠다. 그 뒤 여러 차례 옮기고 복원하였는데, 지금 있는 위치는 영조 7년(1731년) 유수 유적지가 옮긴 것이다. 남아있는 건물로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
혼자 가다. 수원 살 때는 가치를 몰라서 못 갔고 기회를 보다가 드디어 오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다. 코로나 덕분에 입장료 1,000원과 주차장의 주차비를 받지 않는다. 남문 시장에서 점심 먹은 시간까지 합해서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50분이 걸렸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1794년에 세운 소위 갑자년 계획에 의해 세워진다. 10년 뒤인 1804년 갑자년에 성인이 되는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70세가 되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으로 내려와 상왕이 되어 거처하기 위해 세운도시의 성곽이다. 그러니 이 성곽은 수원화성 신도시의 보호성벽인 셈이다. 정조의 수원 화성 신도시는 당시로서는 첨단 신도시로 계획되었으며 그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도 설치하고 국영 농장도 마련하고 수리 시설과 저수지와..
5월 4일 성수네 결혼 기념일을 핑계로 어제 저녁에 Designers Hotel에 5 집이 모이다. 모여서 삥콜도 하면서 놀고 아침에 일어나서 배승은 출근하고 문목은 통풍으로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집으로 가고 오늘 시간이 나는 세 집만 함께 가다. 서울 숲은 이 복잡한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어서 시민들이 쉽게 갈 수 있고 이름 그대로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휴식하기에 아주 좋다. 오늘도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한바퀴 돌면서 이 안에 음식을 배달해 주는 사람도 있어서 콩국수와 다른 음식을 공원 안에서 배달시켜 먹고 차도 마시고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다. 누군가가 공원 안에 탈 것을 두고 갔는데 아무도 손대지 않으니까 공원에서 이런 안내문을 ..
성수네와 소목 세 집이 함께 가다. 이곳은 전부터 아내가 가 보자고 몇번 말한 적이 있어서 소목사님 회갑을 맞이해서 여행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대통령의 별장과 휴양지이니까 당연히 시설이나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 1983년 대청호 주변에 전통 시절에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이 만든 것을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충청북도로 이관되어 민간에 개방했다고 한다. 입장료는 5,000원이고 주차비는 2,000원이다. 별장 안에 식당은 없고 매점은 있다. 대통령관 안에 여러가지 대통령과 관련된 것들을 전시해 두었다. 휘호들이 많은데 최규하 대통령이 뛰어나 보인다. 월송정과 몇 곳의 정자에서 그의 필체를 본 적이 있다. 불두화와 설구화는 꽃은 비슷하지만 잎이 많이 다르다. 설구화 잎이 주름이 많이 져 있다.
남양주는 정약용 선생으로 먹고 산다. 여기는 박물관도 있고 이 생태 공원이 아주 아름답다. 두물머리만 알고 있었는데 거기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곳이다. 다산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였고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이기도 했다. 모함으로 귀양살이도 했지만 그의 능력으로 수원 화성을 지을 때 거중기를 사용해서 성을 쉽게 짓게 만들기도 했고 목민심서나 내 기억이 맞다면 그외의 500여권의 책들을 남긴 다작의 인물이다.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을 갔을 때 그가 머물렀던 집과 작은 연못에 있는 가산을 보고 그의 생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이 생태 공원도 계절마다 좋은 경치를 보여줄 것 같다. 다산도 호를 여러가지로 사용했다. 다산 외에도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
태수 부부가 한국에 온 김에 함께 여행하다. 호로고루 성은 주변에 경순왕릉과 화석정,당포성, 마의태자 영단등이 있는 곳이다. 임진강변 절벽 위에 있다.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이다. 2006년 1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7호로 지정되었다. 호로고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효종 7년(1656)에 편찬된 『동국여지도』 이며 이책에는 호로고루가 삼국시대의 유적임이 명시되어 있고 최초의 학술조사 기록은 1919년에 발간된 『조선고적조사보고』이다. 이 보고서에는 도면과 함께 사진을 싣고 있으며 삼국시대 성으로서의 중요성이 기술되어 있다. 그 후 1991년부터 2003년 사이 본격적인 학술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의 형태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
오랜만에 가다. 아직 꽃이 많이 없지만 여기는 언제나 좋다. 처음 보는 꽃들도 있어서 더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관람이 안 되는 곳이 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숲속을 돌아다니니 좋았다. 아래는 카톡으로 보내 준 사진들 세 집이 먼저 가고 배집사님이 뒤에 합류하다. 여기까지는 카톡으로 온 사진들이다.
연미정에서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이곳으로 올 때는 군인들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이 공원의 의미라면 고려 고종이 천도할 때 이곳으로 처음에 건너왔다는 것이겠다. 고려 고종이 1232년에 개경에서 천도할 때 이곳 승천포로 왔다고 해서 이곳에 공원을 만든 것 같다.
10층 조집사님 부부와 함께 가다. 이 신실한 부부와 친해질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봄을 맞아 강화 터미널 옆에 있는 풍물시장에서 밴댕이 무침과 해물 칼국수도 먹고 월곶 돈대에 있는 연미정과 민통선 안에 있는 고려 천도 공원을 들러서 오다. 연미정은 강화 읍내에서 차로 1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연미정 맞은 편에 작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고 올라가면 된다. (아래의 글은 다음 백과 사전 등을 참고했다.) 연미정은 월곶 돈대 안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다.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