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김포 문수산
- 앙코르와트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평화누리길 7코스
- 오블완
- 북한산 만포면옥
- 해파랑길 48코스
- 해파랑길 8코스
- 미시령 성인대
- 단양 구담봉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군위 팔공산
- 해파랑길 20코스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티스토리챌린지
- 평화누리길 4코스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명동 성당 미사
- 성인대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강화나들길 3코스
- 김포 한재당
- 평화누리길 3코스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Today
- Total
목록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191)
노래하는 사람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dHfWyO/btsgluSOaQf/XUn9uYULIMZQkSYMjLtES1/img.png)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인 〈조선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며,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다. 경기전 권역은 1991년 사적 제339호로 지정받았다.1410년(태종 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1442년(세종 24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2]으로 이름을 고쳤다.[3]'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경기전을 제외한 4곳은 모두 불탔고 정유재란 때 이 경기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광해군 때 경기전만..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m9VL6/btsgn1IIPlU/NiEv8KBYPVyLijGBQPFlL1/img.jpg)
천지연 폭포를 보고 바로 옆에 있는 정방 폭포로 오다. 입구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폭포다. 계단 내려가다가 보는 소나무가 일품이다. 입장료 2,000원이지만 지공거사는 무료. 바로 옆에 서복 전시관과 서복 불로초 공원이 있다. 진시황때 불로초를 찾아 동쪽으로 간 사신들을 모티브로 만든 것 같고 중국인 관광객들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키 백과에 의하면 정방폭포(正房瀑布)는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심가에서 1.5km 동남쪽에 있는 폭포이다. 2008년 8월 8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43호로 지정되었다. 한라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애이리내의 남쪽 하단에 발달한 폭포이다.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로, 세계적으로..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mxU2E/btsgkKuZieG/nzqzwKii3DrAlodaFbiBY1/img.png)
아들네와 제주 여행 중 아내와 아들네는 잠수함 타러 가고 나는 폭포 구경한다. 입구에 있는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포장이 잘 된 길을 5분만 걸어가면 된다. 입장료 2,000원이지만 지공거사는 무료. 위키 백과에 의하면 천지연폭포(天地淵瀑布)는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있는 폭포이다. ‘천지연’이란 이름은 ‘하늘(天)과 땅(地)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라는 뜻이다. 폭포의 절벽은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조면암이 섞인 안산암으로 이루어져있다. 폭포수의 폭은 약 12 m 높이는 22 m, 연못의 수심은 약 20 m이다. 계곡에는 아열대성·난대성의 각종 상록수와 양치식물 등이 밀생하는 울창한 숲을 이룬다. 폭포 근처에는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보호 받고 있는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무태장어는 20..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I5BjX/btsgaOw83up/ISug8YdqULdEHgpYv44hJ0/img.png)
날씨가 추워서 실내 활동을 찾다가 오게 되었다. 빛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많이 만들었다.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dycZv/btsgeyfsVOz/aBCHFhVjN2drOr4ssGmx51/img.jpg)
서귀포에서 잠수함 타고난 후 절물 자연휴양림으로 왔다. 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서 얼마 못 있고 바로 나왔다. 아래는 2015년 학교에서 연수왔을 때 찍은 사진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veIfn/btsgcr8IQJr/v4r7VPP4K4k0TGmRBxsvok/img.jpg)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서귀포로 잠수함 타러 가다. 나는 폭포 순례하고 아들네와 아내는 잠수함을 타다. 바다 속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클 것이다. 그런데 다들 멀미를 했다고 한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QzSgS/btsgcrt6g9J/RWoYKdB6wXCM89kIdPMb1k/img.png)
제주 도착해서 공항에서 바로 에코랜드로 오다. 날씨도 춥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 금방 나오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qIRli/btsf58nPUQe/LJLs2LGN6DTH9XbOb60dE1/img.jpg)
달마고도 갔다가 들르다. 윤두서는 조상때부터 바다를 간척하는 사업 덕분에 거부가 된 선조들과 증조부 윤선도 덕분에 먹고 사는데 별 걱정 없이 평생을 살 수 있었다. 지금도 해남에는 해남 윤씨들의 고택들이 많이 있다. 안채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dNX8oX/btsf5eO8aUP/T3nKqMWicRYHJ2U0Sz8QI1/img.png)
다산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는 1762년(영조 38년)에 태어나서 1836년(헌종 2년)까지 74년을 살았습니다.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등이고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지냈고, 청년기에 접했던 천주교,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글은 그의 유배지와 관련해서 쓸려고 합니다. 1800년에 정조가 갑자기 서거하자 다산은 끈 떨어진 연이 되었습니다. 이미 남인들의 힘은 약해져 있었던 데다 정순 왕후가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면서 다산은 여러 가지 모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형 약종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합니다. 자신과 형 약전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lfFot/btsf6F6KrcH/fZ5yHHCbbKJ5kGf9JyQat0/img.jpg)
다산 초당은 그의 외가 친척인 윤단의 산정(山亭)이었습니다. 다산의 어머니가 공재 윤두서의 손녀입니다. 그러니까 다산은 공재의 외증손자가 됩니다. 해남 윤씨들은 당시 그 지역의 명문가였고 특히 공재의 증조부인 윤선도 시절부터 이미 이 지역의 대부호였습니다. 1808년 47세 되던 해 봄에 귤동의 초가로 옮깁니다. 지금은 초당이 아니고 와당으로 복원했습니다. 다산은 이곳 강진에서 1표 2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저술을 하였습니다. 백련사에 주차하고 다산초당으로 넘어갑니다. 황칠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황칠나무를 보면 양승구가 생각납니다. 이 연지는 다산이 직접 파고 석가산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연지에 잉어를 키우면서 관찰했다고 합니다. 누가 초당에 걸려 있는 아래의 이 주련들을 좀 해석해 주면 좋겠는데...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aaV6J/btsf2pjTwYx/7lhcU7VVccaciPXUMvkBhK/img.jpg)
달마고도 갔다가 강진에서 자고 아침 먹기 전에 사의재를 들르다.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과 이학래의 집, 다산 초당으로 가기 전에 여기서 4년 가까이 지냅니다. 사의재는 '네 가지 마땅히 해야 할 방'이란 뜻. 맑은 정신 (생각은 마땅히 맑게) 엄숙한 용모 (용모는 마땅히 엄숙 하게) 과묵한 말씨 (말은 마땅히 과묵 하게) 신중한 행동 (행동은 마땅히 중후 하게) 사의재 주변에 한옥 체험관을 만들어서 숙박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약을 하려고 홈피에 들어가 봤더니 이미 3월까지 꽉 찼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dekvaA/btsfdq5kPpO/1LOXO5YRomZZkTVYBDzznK/img.png)
성수네 집에 대학 동기 4명이 모여서 함께 가다. 이포보 바로 옆 길가에 10여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하고 10여분 올라가면 바로 산성에 도착한다. 파사산 자체가 200여m 밖에 되지 않는 나즈막한 산이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파사성은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산9 번지와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산43 번지 경계에 있는 해발 230m의 파사산 정상에 위치하며, 6세기 중엽 이후 초축된 테뫼식산성이다. 둘레는 936m이고, 내부 면적은 약 3,966㎡이다. 산정상부와 계곡을 일부 포함하여 부정형에 가까운 형태로 축성되었다. 현재 사적 제251호로 지정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 때 축성되었기 때문에 파사성이라고 하며, 또..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Kdp4N/btsfaKcgrnT/Ao01sg8696mNK3t6HbXhGK/img.jpg)
평화누리길을 걸을 때 온 적이 있지만 그때는 여름이어서 역고드름을 볼 수 없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다. 겨울이어서 역고드름을 많이 볼 수 있다. 네비에 역고드름이라고 치면 바로 갈 수 있고 대중 교통은 불편하지만 신탄리역에서 걸어올 수는 있다. 하지만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걷기에 좀 먼 길이다. 바로 앞에 작은 무료 주차장도 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EAHlB/btsfdqD19uj/hoTgOF3E5xmpUyuiZJR92K/img.jpg)
철원 평야를 두루 다 볼 수 있는 낮은 산이다. 높이가 362m 라고 한다. 산 아래 주차하고 2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남북한을 다 조망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것을 올라와 보면 병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HblSR/btseHZ1ahBd/W0FKYrkopYXBIlP8NHekik/img.png)
남한 산성 아래 이 행궁이 있다. 다른 행궁과의 큰 차이점은 이 행궁에는 종묘와 사직이 있다는 점이다. 유사시 정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인조가 여기에 피신와 있다가 삼전도로 나가서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한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도권 사람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어 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pcIRb/btseHZlgZge/hwkTWk7Zmx2iyKqBvQPpC0/img.png)
양평 가는 길에 들르다. 다산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여기 가보고 싶었다. 강진과 해남에 있는 유배지는 둘러본 적이 있지만 정작 생가가 있는 마재는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는 다산 기념관과 여유당 실학 박물관 그리고 그의 부부 묘도 있다. 정조가 오래 살았으면 다산의 인생도 활짝 폈을텐데 갑자기 죽는 바람에 그의 바람막이가 없어져서 오랜 세월을 해남 다산 초당등에서 지내야 했다. 실학자로서의 다산뿐만 아니라 경학자로서의 다산도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해남에서 유배 생활 할 때 홍임이란 딸을 얻었다. 다산초당에 있을 때 자기를 도와주고 시중들던 여인에게서 난 딸로 추정된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78nmN/btseBebXqZ8/9TEKluh7Fb1Nwa7cWUyEA0/img.png)
우현기 선생님과 함께 가다. 오래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데리고 온 적이 있었고 얼마 전 강화나들길 걸을 때 들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코로나로 개방을 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니 2,30년만에 다시 오는 것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갑곶돈대는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갑곶돈대는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KgOjz/btsdEDFts6b/OqUjTvL5Dl2kYPgelhyEs1/img.png)
아들 내외가 내시경 검사한다고 계산동 가는 길에 들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부평도호부관아(富平都護府官衙)는 인천광역시 계양구, 인천부평초등학교에 있는 관아건물이다.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호 부평도호부청사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0월 7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관아건물 중 하나로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중심업무를 보던 동헌,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던 숙박시설인 객사, 죄를 다스리던 포도청 등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현재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을 헐어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ㄱ자형이었으나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ㅡ자형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 건물은 예전 형태로 보아 동헌이나 현감의 살림채였던 내아로 추측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