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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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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이 부산 여행 가는 길에 들르다. 아버지께서 사시던 밀양이어서 아주 친근한 느낌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는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누각으로 구 객사(舊客舍)의 부속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1844년에 다시 지어진 조선시대 후기 건물의 특색을 잘 반영한다. 옛날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던 곳으로, 진주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2]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영남루는 동서 5간 남북4간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이다. 동서 좌우에는 다시 각각 3간의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달려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영남루는 옛적에 영남사의 절터인데 고려 공민왕 14년(AD 13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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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근 40년 만에 가다. 성수네, 문목네 세집이 함께 남원에서 단양 가는 길에 대구를 들르다. 우리 가곡에 나오는 청라언덕과 동산병원 구내에 있는 선교사들 집과 대구 제일교회 이상화, 서상돈 생가, 계산성당등을 들르다. 아래는 선교 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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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을 가진 남원 향교를 성수네, 문목네와 함께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1410년(태종 1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부(府)의 서쪽인 대곡산(大谷山) 기슭에 창건하였다.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의 침해가 있는 까닭에 1428년 부의 동쪽 덕음봉(德蔭峰) 밑으로 이건하였다가, 홍수 때 길이 막히는 일이 많아 1443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1599년에 진사 유인옥(柳仁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하였고, 1609년 감사 윤안성(尹安性)과 부사 성안의(成安義)의 찬조로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748년에 진사 한동섭(韓東攝)이 동재·서재를 중수하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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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자고 일어나서 광한루 들렀다가 가다. 다음백과에 희하면 사적 제272호.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1597년(선조 30) 화의의 결렬로 재침한 일본군은 호남·호서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28일부터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를 대장으로 한 1대(隊) 5만 병력은 사천으로부터 하동을 거쳐 구례로 들어오고, 그 일부는 함양을 거쳐 운봉으로 들어와 남원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당시 조선·명 연합군도 남원을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겨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 방어사 오응정, 조방장 김경로(金敬老), 별장 신호, 남원부사 임현의 군사 1,000여 명과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군사 3,000여 명이 함께 방어하고 있었다. 8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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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서 전영과 함께 문상을 하고 남원으로 와서 자고 일어난 후 광한루로 가다. 우리 고모(?)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어서 오래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곳이긴 하다.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광한루는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638년(인조 16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1419년 남원으로 유배온 황희 정승이 짓고 광통루로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정인지(鄭麟趾)가 이를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하면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이 건물이 정유재란 때 불 탄 것을 1638년에 재건했다고. 그 후 장의국(張義國)이 누각 앞에 연못을 파고 오작교를 가설했다고 한다. 광한청허부라는 말은 달나라의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을 뜻한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누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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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 오페라 '처사 남명'을 보러 간 김에 들르다. 촉석루와 진주성 그리고 진주 대첩에 관심이 있어서 현장을 보고 싶었는데 뜻을 이루었다. 나는 진주 장정으로 군에 갈 때 진주를 들른 적이 있고 군에 있을 때 후배 여진모가 진주 사람이다. 이 후배가 워낙 좋은 후배여서 제대 후에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나 때문에 예수 믿게 되었다고 말한 후배인데 보고 싶다. 진주성 관람은 05시에 문을 열어서 시민들이 아침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성 전체를 돌려면 30분 이상은 걸릴 것 같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촉석루등은 09시에 문을 열고 입장료 2,000원을 내어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의암은 담장 아래로 해서 남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갈 수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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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를 한바퀴 돌다 보니 이 생가터가 보여서 들어가 보다. 이 배롱나무는 남자가 거주하는 사랑채 정원에는 심어도 되지만 여자가 있는 안채에는 못 심게 했다고 한다. 벗은 여체를 연상시켜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자들은 여자의 나체를 연상하고 봐도 되고 여자는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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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걸으면서 이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서 걷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건물.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326년(충숙왕 13)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하여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창건되었으며, 그뒤 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1626년(인조 4) 강릉부사 이명준(李命俊)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는데, 인조 때 우의정이었던 장유(張維)가 지은 중수기(重修記)에는 태조와 세조도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고 쓰여져 있다. 현재의 경포대 건물은 1745년(영조 21)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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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이 심심해 하셔서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 하다가 운정 호수 공원을 가다. 일산 호수 공원에 비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주변에 체육공원과 도서관도 있고 도시 한 가운데 있어서 주민들이 사용하기 참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무가 덜 자라서 호수공원같은 맛은 없지만 산책이나 운동하기는 참 좋아 보인다. 주변에 식당도 많이 있고 잔디밭에는 가족들이 아기들 데리고 나와서 쉬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고 자전거 타거나 걷거나 하는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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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역에서 전철타고 문산 가서 문산 시내버스 58번 버스 타고 임진각으로 가다. 58번은 두 종류가 있는데 임진각을 가는 버스가 있고 운천리를 가는 버스가 있다. 임진각을 가는 버스를 타면 좋지만 운천리 가는 버스도 마장 2리에 내리면 나처럼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10분만 걸으면 임진각에 간다. 나는 운천 가는 버스를 타서 마장 2리에 내려서 걸어갔다. 배차 간격이 길어서 다음 버스 기다리는 동안 걸어갈 수 있다. 임진각에서 버스가 아침 9시부터 10분 간격으로 있다고 한다. 오후에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임진각에서 점심먹고 사진찍고 3시 버스로 갔다.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먼저 도라산 전망대를 들러서 북한을 본 다음 제 3땅굴로 간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보면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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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 조각 공원 주위에 있다. 에디오피아는 6.25때 우리 나라에 파병해 도와주었으며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할 때에도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황제의 나라다. 거기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과 시바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여 솔로몬과 시바의 아들이 자기들 나라를 다스렸다고 믿어서 자부심이 아주 강한 나라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솔로몬의 뒤를 이었다고 믿어서 오랫동안 독재(?)를 할 수 있었고 에디오피아 정교회가 주된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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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오늘 학교 개교 기념일로 쉰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셋이서 같이 하늘 공원을 가다. 아직 억새가 만발하지 않아서 좀 이른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가을 기분은 상당히 느낄 수 있었다. 내려와서는 화정에 있는 사담 만두에서 만두전골과 나는 냉모밀로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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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백과에 의하면 이건창은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 1852년~1898년)의 아명은 송열(松悅), 자는 봉조(鳳朝·鳳藻), 호는 영재(寧齋)이고, 당호(堂號)는 명미당(明美堂)이며, 조선 제2대왕 정종대왕(定宗)의 열째 왕자인 덕천군(德泉君)의 15대 후손으로 병인양요(고종 3년, 1866) 때 순국한 전(前) 개성부유수·이조판서 충정공(忠貞公) 사기 이시원[1](沙磯 李是遠)의 손자이다. 공(公)은 조선후기의 문신, 대문장가(麗韓九大家[2])이며, 교육자·양명학자·사상가·민족보수주의자이고 강화학파의 계승자이며, 구한말시대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었다. 저서로는 《명미당집 (明美堂集)》과 《당의통략[3](黨議通略)》등이 있으며,〈전가추석 (田家秋夕:농가의 추석)[4]〉·〈도망 (悼亡:아내를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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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둘이 어제 저녁에 T,V를 보다가 순무우가 나와서 강화에 순무 김치를 사러 가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덕포진을 들렀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부모님과 함께 가기도 했던 곳이고 아내와 둘이 가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은 평화누리길이 여기를 지나서 사람들이 전보다는 많이 찾는 것 같다. 추억이 서린 곳이 되었다. 여기를 나와서 강화 풍물시장에 가서 순무 김치도 사고 2층에 있는 철이네에서 나는 밴댕이 회 덮밥을 먹고 아내는 바지락 칼국소를 점심으로 먹었다. 이 집만 사람들이 번호표 받아서 기다렸다가 먹고 다른 집들은 대체로 평일이어서 한가하다. 점심먹고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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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국립중앙 박물관에 있는 극장 '용'에서 음악회가 있어서 미리 박물관 보고 음악회 갈려고 미리 갔다. 이촌역에 내리면 2번 출구쪽으로 가다보면 박물관으로 가는 Moving Walker가 있어사 그걸 타고 가면 바로 박물관 마당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통로는 저녁 7시면 문을 닫는다. 특별전시를 2개 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무료고 특별전시는 유료다. 고사인물도는 옛날에 있었던 어떤 일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 박물관에는 불교 미술을 전시하고 있고 맞은 편에는 아시아의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간다라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관을 지나서 도자기관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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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과 서울에서 여동생들이 와서 함께 가다. 광일이가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하고 암센타에 입원중이고 아버지도 요양병원에 계시니 휴가를 맞이하여 막내 동생 부부가 함께 와서 병문안을 하고 오늘 함께 아침 고요수목원을 다녀오다. 몇주동안 111년만의 더위 때문에 다들 고생하면서도 놀러가는 것은 용감하게 다들 잘 간다. 오랜만에 가는 아침 고요수목원이 많이 변했다. 여름에 갔는데도 꽃이 상당히 많이 있고 볼거리가 충분했다. 수목원 안에 있는 가게들이 음식값을 너무 비싸게 받는 것이 좀 흠이었다. 눈꽃빙수를 15,000원이나 받는데 내용물이 가격에 비해서 상당히 빈약한 편이었고 쥬스나 다른 음료수도 가격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하다. 여기 갈 때는 미리 음료수와 먹을 것을 좀 준비해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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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도 서원이 있다. 수은 강항 선생(1567년~1618년)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인조 13년(1645년)에 용계사(龍溪祠)라는 이름을 사액 받고, 지어졌다고. 숙종 28년(1702년)에 고쳐짓고 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광복 후 복원했다고. 서원을 나와서 영광 향교에 갔더니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아래 사진은 영광 향교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