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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조선남자 이한 저 창이츨핀시 2015년 319쪽 11/8~1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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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조선남자 이한 저 창이츨핀시 2015년 319쪽 11/8~11/11

singingman 2023. 1. 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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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학에도 밝은 사람으로 보인다.
옛날 사람들이 먹은 음식과 역사 조리법등을 소개했다.
 
유명한 요리책으로는 1715년 숙종 때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와  1670년경  경북에 살았던 정부인 장계향이 쓴 음식디미방 그리고 허균이 쓴 음식 맛품평서인 도문대작이 있다.
이 중 산림경제는 1766년 영조 시기에 유중림이 농사와 음식, 생활전반에 걸쳐 16권 12책의 막대한 분량의 책으로 증보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닭고기를 가장 많이 먹었다.
돼지나 소에 비해서 값싸고 구하기 쉬워서였을 것이다.
쇠고기는 禁肉이라는 이름으로 불릴만큼 귀한 고기였다.
개고기도 대중적으로 즐긴 고기였다. 오늘날 처럼 키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잡아먹을 목적으로 키우기도 했다.
성균관 기숙사 학생들에게는 초복에 보신용으로 개고기가 나왔다.
 
회는 사계절 내내 사랑받은 음식이었다.
간장게장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한 것 같은데 특히 화담 서거정이 아주 좋아했다.
게를 주제로 시를 10여편이나 남겼다.
심지어는 경종이 게장을 먹고 암살당했다는 소문도 있다.
상추쌈은 옛날에도 단순하고도 화려한 고기쌈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냉면은 서민과 임금이 함께 좋아한 음식이다.
면과 육수 그리고 위에 올라가는 꾸미가 3대 요소다.
 
손님을 대접할 때 닭고기를 대접했는데 이를 鷄黍(계서) 라고 하고 닭고기와 기장밥으로 잘 대접햇다는 뜻이다.
조선새대  연포탕의 재료는 닭과 두부였다.
 
조선 시대에는 회를 무채 위에 올리지 않고 섞었다.
당시의 회는 얇게 포를 뜨기보다는 실처럼 가늘게 채로 썰었다.그래서 회 가닥을 실에 비유한 글들이 많이 있다.
 
이건승이 쓴 글에는 상추쌈 먹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상추쌈의 잎은 손바닥 같고 진 고추장은 엿과 같네. 여기에 현미밥으로 쌈을 싸서 크게 씹으면 거품이 턱으로 흐르고 누에가 조금씩 잎을 갉아 먹는 둣하고 콩깍지를 삭삭 씹는 듯하다. 눈은 감기고 입은 찢어질 듯하니 맛에 푹 빠져 비장이 저릿저릿하네 열 몇 개 쌈을 급하게 삼키니 이미 그릇이 다 비었구나.이것은 입을 속이는 법이라 하니, 솥을 벌여놓고 먹는 것이 이상하지 않구나.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누우니 맑은 바람이 한들한들 불어오네."라고 썼다.
냉면도 중국의 냉도라는 음식에서  온 음식인 것 같고 함흥냉면은 처음에는 냉면이 아니고 회국수였으며 진주식 냉면은 멸치로 국물을 내고 배추김치를 썰어 얹는다.
소동파가 음식의 대가인데 동파육이 있을 정도니까, 이 냉면의 마니아였다.
박제가는 맍두 100개에 냉면을 세그릇이나 먹는 대식가였다.
고종이 냉면을 아주 좋아했다.
 
우동이라는 이름은 실국수를 잘 만든 오동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은 떡의 왕국이다 보니 떡국도 생긴 것 같다.
옛날 떡국은 오늘날 처럼 어슷 썰기를 하지 않고 동그랗게 썰었다.
정식 이름이 있는 떡으로 만든 음식만도 10여가지가 넘는다.
 
만두는 제갈공명의 전설에도 나오는데 호수를 건너는데 큰 풍랑이 일어 사람의 머리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해서 밀가루로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어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만두(饅頭)가 되었을까?
쪄먹는 만두 물만두 군만두등이 옛날에도 다 있었다.
 
1720년 사신으로 중국에 간 이기지라는 사람이 천주당에 들렀다가 수도자들에게서 카스테라를 얻어먹고는 그 맛에 반한 기록이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가수저라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