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박상휘 창비 2018년 354/444쪽 11/28~11/29
singingman
2023. 2. 1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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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제일 교포 3세로 동경외국어대 중국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선 통신사 관련연구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를 했다. 이 논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책인 것 같다. 책 내용이 주로 조선 통신사와 관련이 있고 일본을 갔다온 통신사들을 중심으로 책이 진행된다. 강항이 쓴 간양록과 원중거의 화국지가 중요한 참고서적이 되었다. 전체가 10장으로 되어 있다. 1장 삶과 죽음 에서는 임진왜란 후의 일본인들이 삶을 미워하고 죽음을 좋하하는 낙사오생(樂死汚生)을 好生汚死와 비교한다. 사람은 마땅히 호생오사해야 마땅하지만 사무라이 세상은 낙사오생을 좋아해서 삶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였다. 그래서 죽음이 일상인 사회가 사무라이 사회였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가 끝나고 도꾸가와 이에야스 시대가 되는17세기 후반 이후에는 삶을 가볍게 여기는 輕生이 好生으로 바뀐다.
2장 원한 에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를 일본인들도 원망하는 것을 통신사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과거를 뉘우치는 일본인들을 알게 된다.
3장 제도 에서는 일본은 무사와 농민이 철저히 분리된 사회여서 무사는 싸움만 준비하고 농민은 농사만 짓는 철저한 신분사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통신사들 중에는 평소에는 농사짓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징병하는 조선의 현실을 일본처럼 어느 정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4장 통치법 에서는 일본인들은 무사와 농민이 철저히 구분된 신분 사회에 만족하고 신분을 넘어서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계급은 세습되지만 그것을 불평하지 않고 만족하고 사는 모습을 본다. 과거가 없었기 때문에 유교 경전을 공부해서는 출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였다. 임진왜란 시절에는 불교의 승려들 외에는 한문을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통신사들이 갔을 때 주로 이들과 필담을 나누었다. 높은 신분의 일본 무사들도 자기들의 글인 히라까나는 알았지만 한문은 다들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통신사들이 어느 정도 이 무사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유교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이 나오고 특히 주자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오규우 소라이같은 사람은 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주자학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있던 조선 통신사들에게 소라이는 이단으로 비칠 수 밖에 없었다.
5장 사치와 번영 쇼군은 통치를 위하여 지방 장관들의 자녀들을 볼모로 잡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쇼군 근처에 지방 장관들이 와서 살면서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만들어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검소하게 살면서 소식하는 모습을 보고 감며을 받기도 한다. 또한 기술자들의 섬세한 기술과 도량형의 통일을 보고 부러워하면 우리도 기술을 발전시킬 필요를 느낀다
6장 기술 임진왜란때까지만 해도 우리 조선술이 일본보다 훨씬 우수했지만 그 후 역전되어 18세기가 되면 일본의 조선술이 훨씬 앞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천하일'이라는 기술의 장인을 내세워 각 분야마다 이 사람의 말을 존중하고 대접했다. 그래서 각 분야가 최고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7장 문자생활 일본인은 일본말의 한계때문에 한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서 훈독법이라는 일본식의 한문 읽는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한문직독법을 배워서 익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사절단의 글이나 시를 얻으면 아주 귀중하게 여겨서 보물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사절단에는 아예 글을 써주는 서기를 데리고 갔다.
8장 문풍 처음에는 시를 제대로 짓는 일본인들이 거의 업었지만 한문과 중국 경서들을 읽게 되면서 제대로 된 학자들이 나오게 된다. 오규유 소라이와 타키 카꾸다이의 견해는 조선 유학자들에게는 이단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신선하기도 했다. 주자학에만 경도할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고유한 환경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9장 교류 한문을 함께 사용함으로 同文세계에의 꿈을 가지고 동양이 모두 평화롭게 살게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계미년의 통신사들은 일본인들도 중국의 책을 수만권씩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시를 서로 나누기도 하면서 서로 교감하기도 한다.
10장 문화와 풍속 일본은 신도가 아주 강한 나라여서 다른 종교가 큰 힘을 쓰지 못한다. 불교도 신도의 영향으로 신도식 불교가 되었다. 지진이나 태풍등으로 신에게 의자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들은 마을마다 신사를 지어놓고 수시로 그 앞에서 빌고 기도한다. 이것이 유교에 젖은 조선 사절들의 눈에는 미개한 오랑캐 야만인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