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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8 493/571~03/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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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8 493/571~03/18

singingman 2023. 3. 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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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호모 데우스 때문에 이 책도 읽게 되었다.
대단한 독서력과 통찰력을 가진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것은 허구이고 실체는 나와 고통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유대인인 저자는 유대인의 전통이나 성경의 가르침을 허구로 가득찬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커밍 아웃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불교적 명상을 통해 자신이나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보여준다.

좀 다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똑똑하고 자신을 잘 관찰한 사람이 동성애자가 되다니,
동성애자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이 일으킨 결과들을 관찰해보면 인간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알파제로가 백지 상태에서 체스를 학습하고 스톡피시를 상대로한 시합을 준비하며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네 시간이었다. 오자가 아니다.수 세기 동안 체스는 인간 지능의 더없는 자랑거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알파제로는 완전 무지 상태에서 네 시간 만에 창의적 완숙의경지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지도하며 준 도움도 전혀 없었다.

정치인들이 우리의 감정 버튼을 직접 눌러 불안과 증오와 기쁨을 임의로일으킬 수 있게 되면 정치는 감정 서커스에 불과해질 것이다. 대기업의 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경험을 보면과도한 권력을 가진 정부의 손안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낫다는 보장이 없다. 2018년 3월 현재, 나는 나의 데이터를 블라디미르 푸틴보다는 마크 저커버그에게 주는 쪽을 택하겠다(그래봐야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 [영국 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2016년 미 대선 기간에 페이스북 회원정보를 불법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ㅡ옮긴이]스캔들을통해 저커버그에게 맡긴 데이터도 어떤 것이든 푸틴에게 흘러들기 십상이라는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데이터를 개인이 소유하는 방안이 앞의 두 선택지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우리는 토지 소유 규제는 수천 년 동안 경험해왔다. 우리는 평야 주변에 담장을 쌓고 문 앞에 수위를 두고 출입을 통제하는 법은 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우리는 산업계의 소유를 규제하는 데 극도로 정교해져왔다. 그 결과 오늘날 나는 주식을 통해 제너럴모터스의 일부와 도요타의 일부를 소유한다. 하지만 우리는 데이터 소유를 규제해본 경험 - 이는 본질적으로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토지나 기계와는 달리 데이터는 동시에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 데도 없고,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

세상에 '실패한 국가들'은 유형이 다양할지 몰라도, 성공적인 국가의 패러다임은 하나다. 그러니 지구상의 정치도 안나 카레니나원칙을 따른다. 성공한 국가는 모두가 같지만, 실패한 국가는 각자다른 방식으로 실패하는데(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문장으로 시작한다 - 옮긴이), 지배적인 정치 패키지 중에서 이런저런구성 요소가 빠졌기 때문이다. IS는 최근에 이 패키지를 전면 배격하고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정치체를 수립하려는 독자 노선을 표방했다.

모든 나라의 국가는 특수 계급의 세습 신부들만 연주할 수  20분짜리 성가가 아니다.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콩고 같은 나라들조차 국가를 만들 때서양 음악의 형식을 채택했다. 대다수가 베토벤이 컨디션이 그저그런 날 만든 곡처럼 들린다. (저녁에 친구들과 유튜브로 다양한 국가들을틀어놓고 어느 곡이 어느 나라 것인지 알아맞히기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심지어 가사조차 전 세계가 거의 같다. 정치와 집단 충성심에 관한공통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가령, 다음 국가는 어느 나라 것일까?(가사 중에서 국명만 일반적인 표현인 '나의 나라'로 바꿨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2050년의 세계에발맞춰 살아가려면 새로운 생각과 상품을 발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경제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의 의미 자체가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새 생명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부활절 달걀이나 유대인이 유월절에 이집트 노예 시절과 기적적인 탈출을 기억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도 다 마찬가지다. 뭔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아온 세상의 음식이 드물 정도다. 그래서 새해 첫날이면 종교적인 유대인은 새해가 달콤하기를 바라면서 꿀을 먹고, 물고기처럼 다산에 전진만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생선 대가리를 먹고, 석류의 수많은 씨앗처럼 좋은 행실이 불어났으면 해서 석류를 먹는다.

비슷한 의식들이 정치적 목적으로도 활용돼왔다. 수천 년 동안 왕관과 왕좌, 지휘봉이 왕국과 온 제국을 대표했고, 수백만의 양민이 '왕좌'와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에서 죽어갔다. 왕실은 극도로 정교한 의전을 개발했고, 그 복잡함이란 종교 예식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군에서도 기율과 의식은 불가분의 관계다. 고대 로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병사들은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고, 상관에게 경례하고, 군화에 광을 내는 데 무수히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폴레옹이 화려한 색의 리본을 위해 남자들이 목숨을 바치게 만든 것은 유명하다(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전쟁 개전 1년 후 붉은색 리본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제정해 군인들에게 대거 수여함으로써 사기를 진작했다― 옮긴이).

아마 공자만큼 의식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이해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의례를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사회가 조화를 이루고...

내게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나는 인생에 관한 큰 질문에도 답을 얻지 못했다. 특히, 왜 세상과 나 자신의 삶에 그토록 많은 고통이 있는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것은 모두가 정교한 허구들이었다. 즉, 신과 천국에 관한 종교적 신화, 모국과 국가의 역사적 사명에 관한 민족주의 신화, 사랑과 모험에 관한 낭만적 신화 혹은 경제 성장과 어떤 구매와 소비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에 관한 자본주의 신화 같은 것이었다. 이것들이 십중팔구 허구라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의 분별력은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떻게 해야 진실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곳이야말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학문 세계는 내게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신화를 해체하는 도구들은 제공했지만, 인생의 큰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점점 더 좁은 질문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장했다. 결국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병사들의 자전적 기록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부수적인 취미로 수많은 철학책을 읽고 숱한 철학적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그런 활동은 끝없는 지적 즐거움은 주었을지언정 진정한 통찰은 거의 주지 않았다. 너무나 답답했다.

어느 하나라도 그것만으로도 배를 삼킬 듯한 세 가지 대형 파도다. 1) 기술적 혁신이 불러올 항구적, 파괴적 변화, 2) 생명공학 기술 발전에 따른 인류의 생물학적 분화, 3) 무한 개발이 초래할 생태학적 파괴. 여기에 지금껏 산업화를이끌었던 기술은 조만간 인간을 고용 시장에서 밀어내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디지털 독재를 초래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까지 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 이제 인간 대중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착취'가아니라 그보다 못한 '무관한 relevant 존재'로의 전락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한 배를 탄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지구촌공동의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위협이 커져가는데 설상가상, 그마나합의돼온 이야기이자 질서였던 자유주의는 효력과 신뢰를 잃고 있다. 모든 신화와 이데올로기 들과의 싸움을 평정하는 듯했던 자유주의는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새로운대안적 이야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조차 현재로선 불투명한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민족국가의 자국우선주의와 포퓰리스트 정치 지도자의 위세는 커져만 간다.

앞에서 언급했듯, 인류가 세계를 정복한 것은 연대를 가능케 한허구적 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모든 우주적 드라마를 부인함으로써 급진적인 일보를 내디뎠지만, 인간 존재 내부의 드라마 속으로 뒷걸음질쳤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이야기는 지반이 튼튼해서라기보다 '지붕의 무게'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