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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주상절리길 16-02-18 본문

트래킹/국내 트래킹

경주 주상절리길 16-02-18

singingman 2022. 12. 2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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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중 교직원 연수 첫째날 경주 주상절리길을 걷다.

주상절리길 가기 전에 감은사지와 문무왕릉을 들러서 가다.

2Km남짓되는 짧은 거리여서 약간 아쉽긴 했지만 주변 경관이 좋아서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단체가 걷기에는  좋은 길이다.

동해는 섬이 안 보여서 망망대해만 보고 걷지만 그래도 작은 바위나 주상절리가 아기자기해서 걷는 재미가 있다.

데크길과 해변길을 포함해서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불국사를 나와서 감은사지로 왔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많이 보이는 1금당 쌍탑형식의 전형적인 절모습이다.

 

우리 나라 3층 석탑 중에는 가장 큰 것이라고 문화해설사가 말해주었다.

 

절터 올라가기 전에 있는 데크 아래 있는 이 튀어나온 돌은 이 절이 있던 당시 절 아래까지 배가 드나들어서 배를 묶어두던 돌이라고 한다.

 

이것은 연당지.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게 해 두었다고? 구들장 이야기도 있던데.

 

신라시대 전설상의 피리.

원명은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다. 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感恩寺)를 지은 후에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든 피리라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설화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682년(신문왕 2) 5월 초에 해관(海官)이 와서 동해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산이 감은사를 향해 물결을 따라 왕래한다 하여 임금이 곧 이견대(利見臺)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산을 살펴보니, 그 모양이 거북의 머리와 같고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쳐졌다. 이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 그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이 들면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비가 개며, 바람이 불 때는 그치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그리하여 이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여 역대 임금들이 보배로 삼았다고 한다.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며 모든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 이 만파식적의 상징성이야 말로 모든 마음의 파도를 쉬게 하여 번뇌를 잠재우고 경건함과 평온을 갖게 하는 범종의 참뜻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며 그 범종에 이와 같은 만파식적 형태의 음통(音筒)을 만들어 놓았다. (설명은 http://www.culturecontent.com/dictionary/dictionaryView.do?cp_code=cp0501&dic_seq=53에서 복사해 옴)

 

문무왕릉이 갈매기들의 쉼터가 되었다.

 

문무왕의 기를 받으려는지 많은 무속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지자체들이 걷기 좋은 길과 데이트하기 좋은 곳들을 많이 만들었다.

 

제주도와 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는 서있는데 여기는 누워있는 주상절리가 많다.

 

소나무의 생명력은 정말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