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해파랑길 20코스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해파랑길 48코스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북한산 만포면옥
- 김포 문수산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강화나들길 3코스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평화누리길 3코스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평화누리길 4코스
- 평화누리길 7코스
- 오블완
- 군위 팔공산
- 성인대
- 단양 구담봉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해파랑길 8코스
- 미시령 성인대
- 명동 성당 미사
- 김포 한재당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앙코르와트
- 티스토리챌린지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Today
- Total
노래하는 사람
속초 여행 1 15-07-30~31 본문
이화섭 선생님, 윤춘식 선생님,우리 부부 6명과 정명희 선생님,이강선 선생님 8명이 속초로 가다.
9시에 이강선 선생님 집에 모여서 윤선생님 차와 정선생님 차 두대에 나누어 타고 가다.
고속도로가 막힐 것을 생각하고 또 일찍 속초 도착하면 할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적성 - 광덕고개 - 화천 - 청평사 - 속초로 가다.
예상대로 길이 안 막히고 구경도 하면서 쉬엄 쉬엄가다.
먼저 자유로를 타고 가다 당동 I.C에서 적성쪽으로 가서 재인 폭포를 들르다.
처음 가는 사람도 있고 오랜 만에 가는 사람도 있어서 좋았다.
어제와 요즘 내린 비 덕분에 다행히 폭포에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재인폭포에서 나와서 산정호수를 들러서 화초도 보고 아이스 크림도 먹고 허브 커피도 마시면서 한참 앉아 쉬다가 나오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산정호수를 안 걸을 수 없다고 정모 前교사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둘레길을 잠깐 걷고 다시 출발하다.
광덕고개 바로 아래 있는 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고 고개 넘어 사창리로 해서 청평사에 가다.
청평사는 예전에는 소양댐에서 배로 간 적은 몇번 있지만 차로 가기는 처음이다.
몇년전 오봉산 등산왔을 때 이 길을 알게 되어서 차로 왔다.
청평사는 아내와 연애할 때 처음 손을 잡은 곳이다.
당시는 버스가 댐위에까지 올라오지 않고 댐 아래 종점이 있어서 종점에서 댐에 있는 선착장 까지 걸어야 했는데 청평사 갔다오면서
내려가는 길에 아내 손을 처음 잡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청평사를 나와서 송지호 해수욕장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거하게 먹고 숙소인 한전 속초연수원으로 들어가다.
이 연수원은 척산 온천 근처여서 유황온천 물을 사용한다.
안희자 선생님 부부가 우리가 왔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주어서 반가운 재회를 하고 안선생님 남편이 속초사람들만 알고 있는 좋은
설악산 정보를 주어서 내일 그 산으로 가기로 하다.
재미있는 야그들을 한참 하다가 4개의 방에 각 부부별로 들어가서 자다.
다음날은 일어나서 순두부집에서 아침을 먹고 성인대 등산을 하다.
설악산을 여러번 와봤지만 울산 바위를 이 높이와 이 각도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보기는 처음이다.
과연 속초 사람들이 올만한 곳이다.
성인대에서 내려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용대리에 있는 황태전문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12선녀탕 입구 개울에 앉아 발을 담그고 또 한참 수다를 떨다가 출발하다.
이 기간에는 이 코스는 12시가 넘으면 등산로가 출입금지다.
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가평휴게소에서 또 커피들을 한잔하고 틈만나면 수다를 떤다.
여행의 재미 중 수다떠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여자들이 없으면 이런 재미는 상상할 수 없다.
가평휴게소를 마지막으로 쉬고 일산까지 직행해서 오후 6시 반경 이번 여행을 마치다.
아래 화암사 관련 글은 http://www.toursorak.com/에서 복사한 글이다.
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요즈음 새로 재건 단장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 절은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절로서 신라 혜공왕5년(769)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지금으로부터 359년전인 인조 11년(1633) 택당 이식(李植)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간성지 화암사 조에 의하면, 「천후산 미시파령(天吼山 彌時坡嶺=미시령) 밑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절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이절은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있고 양양,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심곡이 눈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는 절이 토해 놓은 것 같다. 절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수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만하다.
1622년(광해군14)에 절이 불에 타버렸으며, 지금은 중건중이나 완공되지 못했다.
옛날에는 크고 우아한 문루가 있었는데 망가졌다. 문루에서 바라보는 창해에서 해뜨는 모습은 강호를 찾는데 있어 이곳보다 나은 곳이 없건만 옛사람들을 찾아와 놀아보지 못했으며 지방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또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아 과객들이 이곳까지 올 겨를이 없었으므로 절 이름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간성군 남쪽 70리되는 곳에 있는 산으로서 석굴이 많고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나온다 하여 천후산이라 부른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양양과 간성 사이에 큰 바람이 많은 것도 이 까닭이라 한다. 뛰어난 성인대가 있는데 돌모양이 불상과 흡사해서 성인대라 하였다. 그옆에 또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곡식을 쌓아둔 둥근 곳집같이 보인다하여 세속에서 화암(禾岩)이라 부른다.
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서 적과 싸울때 짚으로 만든거적으로 이 바위를 둘러싸서 마치 벼가리같이 보이게 하여 적을 물리쳤다하여 화암(禾岩)이라 했다. 」
화암사는 창건 이래 고종 원년까지 1096년간 화재가 5번이나 낫는데 이것은 화암이란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는 불을 의미하는 것이나화자를 쓰지 않도록 하고 화재대신 수자로 쓰자는 것이다.
풍수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수극화(水克火)로 물은 불을 이긴다하여 물 수(水)자를 써야겠는데 수(水)자를 쓰자하니 절이름에 대한 역사적의의가 없어진다해서 수(水)대신 수(穗)자를 쓰면 음(音)은 수(水)와 같고 뜻은 화(禾)와 같으니 수암(穗岩)이라 했으나 또 화재가 생겨1912년에 화암(禾岩)으로 다시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간에서는이 바위를 ‘수바위(穗岩)’로 부르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수(穗)자는 좀 어려운 한자여서 아는 사람이 적고 바위경치가 아름답다해서 수바위(秀岩)라고 세속에서 쓰기도 한다.
수바위는 예나 지금이나 벼(禾)에 얽히 이야기가 많다. 화암사에서약 300m 떨어진 곳에 계란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어 초행길에도 찾기쉬운 목표물이기도 하다. 바위위에 왕관모양의 바위가 또 하나 있는가하면 직경 1m 주위 5m가량되는 웅덩이가 항상 물이 고여 있고 가뭄이심할때 이물을 주위에 뿌리며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고 옛날에는스님들의 수도장으로 사용했다 한다.
절앞에 펼쳐진 넓은 평원은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장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때 대회에 참가한 천여명의 불교국가 청소년들이이절 법당에서 수계식을 갖게 되어 화암사는 갑자기 세계속의 사찰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대회장은 청소년 수련장으로 이용되고 있어 많은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절앞으로 흘러가는 신선계곡의 맑은 물은 금강산 제1일봉인 신선봉에서 발원하여 장장 30리에 걸쳐 곳곳에 소와 폭포를 이루고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들이 깨끗한 공기와 조화를 이루어 그야말로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화암사에는 조선조 22대 왕인 정조대왕이 하사한 6첩으로 된 서병과 관음보살상, 이절을 창건한 진표당의 진영을 비롯 16점의 진영이있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모두 다 해방과 함께 간 곳이 없고 남아있는 절의 현판과 탱화 몇 점마저 20여년 전에 도난당하고 말았다.
부속암자로 미타암은 화암사 창건당시 진표율사가 지은 암자로서 창건 당시는 지장암이라 하였는데 태종 원년(1401)에 다시 짓고미타암이라 개칭하였다. 안양암은 인조 6년(1628)에 광명선사가 창건하여 경종 원년(1721)에 사승 해성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암자는 없고 빈터만 남아 있다. 죽암당 부도를 비롯하여 15개의부도가 천년간의 옛일들을 말없이 전해줄 뿐이다.
'여행 >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여행 16-01/5~08 (0) | 2022.12.18 |
---|---|
청주여행 16-01-01~02 (0) | 2022.12.18 |
양평 쉬자 파크 15-07-25 (0) | 2022.12.12 |
수안보 여행 15-06-26~27 (0) | 2022.12.10 |
해남여행 2, 3 15-05-03~05 (0)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