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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불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 수행의 방법으로는 참선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불교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은 깨달음은 내스스로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기 때문에 경전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심지어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그러니까 도반이나 경전의 도움 혹은 부처의 가피도 받지만 결국은 내 스스로가 열심히 고군분투해서 깨달음에 이르라는 말로 이해된다. 결국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주관적인 깨달음이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공자의 가르침을 참고해 보면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이라고 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말..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J.S.바흐와 함께 G.F.Handel은 1685년 같은 해에 독일의 할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이발사겸 궁정외과 의사인 아버지 게오르그 헨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바흐는 평생을 독일 안에서만 활동하였지만 헨델은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유학을 하고 독일로 돌아와서 활동하다가 또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며 살다가 귀화해서 영국인이 된 요즘 식으로 말하면 글로벌 셀럽입니다. 아버지는 헨델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해서 법률가가 되기 위해 법대에 진학했지만 결국 자신의 적성에 따라 할레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로 들어가며 음악가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1703년 18살때 뤼벡으로 가서 당시 오르가니스트의 거장 디트리히 북스테후데를 만나 그에게 음악을 배웠습니다. 헨델의 능력을 알아 본 북스테후..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판엔 바람을 풀어 주옵소서 마지막 열매를 알차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녘의 빛을 주소서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마지막 단맛이 무거워져가는 포도에 스며들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자는 집을 짓지 못합니다. 지금 홀로인 사람은 오래도록 그렇게 살 것입니다. 잠자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나뭇잎이 구를때면 불안스레이 이리저리 가로수 사이를 헤맬 것입니다. https://youtu.be/D4ZEKPNsogA?si=fw9-D1rXx7Og_joL 또 다른 번역과 원문 Herbsttag (헤릅스탁) -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Herr, es ist Zeit. Der Somme..
오늘 예배 시간에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말에는 죽음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다. 돌아가다 소천하다 타계하다 세상을 뜨다 숨을 거두다 이외에도 여러 표현이 있지만 위의 말들을 살펴보면 죽음이란 현상을 현재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많은 종교적 표현에는 당연히 다른 세상 즉, 내세로 가는 표현이 있지만 일반적인 표현에도 위와 같은 표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내세에 대한 관념이 있는 것 같다. '돌아가다'라는 표현은 어딘가에서 온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다시 간다는 표현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을까? 인간의 기원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 종교도 있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으니 그 하나님께..
아래의 글은 독서모임 (좋은 책 나누기)에서 복사해 온 글입니다. 에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를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점차 퍼지게 되었는데, 한 가지 분야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다함께 성장발전한 것이 큰 특징 중 한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학문, 예술, 문화 등등'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의 특징'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럽의 중세 1000년 동안 '신학 중심'으로 발전을 해오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눈 뜨게 한 것이 르네상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무너지고 고대의 그리스로마신화 ..
내가 최초로 맛본 비애의 기억은 앞뒤에 아무런 사건도 없이 외따로인 채 다만 풍경만 있다. 엄마 등에 업혀 있었다. 막내라 커서도 어른들에게 잘 업혔으니 다섯 살 때쯤이 아니었을까. 저녁 노을이 유난히 새빨갰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의 풍경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그냥 딴 동네 같았다. 정답던 사람도 모닥불을 통해서 보면 낯설듯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내 갑작스러운 울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건 순수한 비애였다. 그와 유사한 체험은 그 후에도 또 있었다. 바람이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저녁나절 동무들과 헤어져 홀로 집으로 돌아올 때, 홍시 빛깔의 잔광이 남아 있는 능선을 배경으로 텃밭머리에서 너울대는 수수이삭을..
성악이나 기악에서 적절한 비브라토는 풍부한 음량과 아름다움을 주어서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치면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소음처럼 되어버립니다. 기악에서는 독주나 합주에서 비브라토가 음악에 방해가 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현악기나 관악기의 경우 비브라토가 전혀 없으면 너무 심심하지요. 주로 전문가들의 연주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얼마전 영산 아트홀에서 바로크 싱어즈가 연주한 C.Monteverdi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숲'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이 곡의 연주에는 합창단과 함께 쳄발로, 오르간, 바이올린, 바올라 다 감바, 콘트라베이스가 반주를 했습니다. 르네상스 음악의..
성악이나 기악에서 적절한 비브라토는 풍부한 음량과 아름다움을 주어서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치면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소음처럼 되어버립니다. 기악에서는 독주나 합주에서 비브라토가 음악에 방해가 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현악기나 관악기의 경우 비브라토가 전혀 없으면 너무 심심하지요. 주로 전문가들의 연주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악기들도 비브라토를 최대한 절제하기도 합니다. 얼마전 영산 아트홀에서 바로크 싱어즈가 연주한 C.Monteverdi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숲'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이 곡의 연주에는 합창단과 함께 쳄발로, 오르간, 바이올..
아래의 글은 [문화연대] 푸른 하늘 땅이란 블로그에서 복사해 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own2425&logNo=223142383097&proxyReferer=https:%2F%2Fm.search.daum.net%2Fsearch%3Fq%3D%25ED%2599%25A9%25EC%2582%25AC%25EC%2598%2581%2520%25EB%25B0%25B1%25EC%2584%259C%2520%25EC%259B%2590%25EB%25AC%25B8%26w%3Dtot%26nil_mtopsearch%3Dsuggest%26DA%3DUME%26rq%3D%26sq%3D%25ED%2599%25A9%25EC%2582%25AC%25EC%2598%2581%..
https://lyj1749.tistory.com/m/531 2023.06.25. 산청 남명 조식선생(남명 기념관-산천재-덕천서원) 경의 사상을 따라 걷는다.◎ 남명 조식 처사를 만나는 소감 남명 조식선생을 만날 수 있어 가슴이 뛴다. 학창시절 남명 조식선생에 대하여 어렴풋이 들었다.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훌륭한 선비이다' 정도이다. 남명 조식lyj1749.tistory.com
성리학으로 경직된 조선 사회에도 로맨스는 살아 있었습니다. 퇴계와 두향, 그리고 율곡과 유지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퇴계 선생님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48세가 되던 해에 단양 군수로 부임해 갔을 때 18살의 두향이라는 관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퇴계는 부인과 아들을 잃고 가슴 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텅 빈 퇴계의 가슴에 들어온 여인이 바로 두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어지러운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한 지방의 수령이라면 관기를 마음대로 취할 수도 있었지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지고지순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선을 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이 첩이나 기생을 취하는 것은 전..
이 글은 이이의 수제자인 사계(沙溪) 김장생이 쓴 것이다. ◆12세 소녀와 39세 대학자의 만남 이이(李珥)가 유지를 처음 만났을 때 유지의 나이는 열두 살 소녀였다. 이이의 나이는 39세였다.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력이 왕성할 때이기도 했다. 도학자로서 심신 수양에 매진하던 장년기였다. 이이는 1574년 황해도 관찰사로 임명 받고 임지인 해주 관아에 도착했다. 이이가 황해도 관찰사가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이이는 몸이 약해져 임금이 관직을 내려도 여러 차례 사양하기를 반복했다. 조정은 그래도 그의 학식과 품성을 높게 사서 중요한 관직을 제수하여 맡기고자 했다. 그래서 이이가 약해진 몸을 요양하려고 황해도 해주에 있는 처가나 황주에 있는 누님 집으로 자주 간다는 것을 알고, 관찰사를 하..
중국의 이백(李白)은 대문장가로 한 번 글을 쓰면 단숨에 쓰되 글을 수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율곡 이이(李珥)는 자기를 흠모하는 기생 유지(柳枝)와 밤새워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새벽녘에 자신의 마음 속 생각을 단숨에 글로 써서 유지에게 주었다. 일명 유지사(柳枝詞)이다. ▶유지사(柳枝詞) - 율곡 이이(李珥)가 유지(柳枝에게 준 글 이이(李珥)가 황해도 해주에 관찰사로 있을 때 어린 기생인 유지(柳枝)가 이이의 시중을 들었다. 유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듯 아름다웠으나 12세에 지나지 않아 동침을 할 수 없었다. 이이는 유지에게 따뜻한 마음의 정을 느꼈지만 곧 헤어졌다. 유지는 이이의 학식, 고귀한 인품에 매료되어 이이에게 연모의 마음을 갖고 그리워 했다. 그 후 9년이 흘러 이이는 요양 차 ..
퇴계 선생과 두향의 만남은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은 흔히 백석과 자야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자야(본명 김영한, 1916~1999)는 양반집 규수였다. 아버지 없이 엄마가 바느질하여 여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보고, 입을 덜고자 친구 언니의 소개로 가족 몰래 권번(券番. 기생양성소)에 들어가 금하 하일규선생에게 기생 수업을 받았다. 하일규 선생은 궁중에서 악사들을 길러내는 직책을 맡았었기 때문에 조선조가 망한 후 악사들의 생계를 유지해 주고자 권번을 차렸다. 자야는 중학 졸업자여서 동기생 중 성적이 뛰어 났다. 권번을 졸업하고 진향이라는 기명을 받았다. 선생은 진향을 기생으로 두기는 아까워 조선어학회 신윤국선생에게 부탁하여 일본 유학을 보냈다. 졸업할 무렵 하일규 선생님이 ..
다음 국어 사전에 의하면 팜므 파탈은 아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들도록 운명 지워진 여인." "요사하고 망령된 여자(妖婦)" 조선의 팜므 파탈을 이야기하면 평양 기생 황진이나 부안 기생 매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야사에 의하면 이들은 미모뿐만 아니라 시와 음악에도 능통한 당대의 문인이며 예술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학식높은 명사들과도 교류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작품이 전하기도 한다.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간들 어떠하리." 왕족이나 수십년간 수도한 유명한 고승인 지족 선사도 황진이의 치마폭에 무너졌다는..
아래 글은 (http://tgnews.co.kr/mobile/article.html?no=306743에서 복사해 옴) 백석동 지명 유래인 ‘흰돌’ 영구 보전하며 마을의 수해무탈 기원 ▲ 고양특례시 백석1동, 계묘년 흰돌도당제 개최 (TGN 땡큐굿뉴스) 고양특례시 흰돌도당민속보전위원회는 지난 4월 28일 백석동에 위치한 흰돌보전지에서 계묘년(癸卯年) 흰돌도당제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고양문화원이 주최하고 흰돌도당민속보전위원회가 주관하는 흰돌도당제는 백석동의 지명 유래가 되고 있는 흰돌을 영구 보전하고 마을의 수해무탈과 주민들의 대동평안을 기원하는 제례로써,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2019년 이후 4년 만에 개최됐다. 제례 전 부정 타는 것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흰돌 주위에 황토를 뿌리는 의식을 시작으로 칠선녀..
부군당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교동읍성 북성 둑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부군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관청내에 두던 신당으로 행정구역 어느 곳에나 있었다. 부군당의 화상은 다산을 상징하는데 읍내리 부군당에느 조선시대 폭정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교동으로 유배된 연산군(재위 1494 - 1506년)으로 추정되는 화상과 남근목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읍내리 주민이 연산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죽은 원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연 1회씩 지냈다고 한다. 1.역사 부군당제는 조선시대 각 관아(官衙)에서 신당(神堂)을 두고 아전(衙前)과 서리(胥吏) 등 하급 관리들이 지낸 제사이다. 부군당제는 현재 한강변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조선 후기 한강의 수운을 이용한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인구..
삼국 시대를 위나라가 통일하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황제가 되지만 사마염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사마염은 나라 이름을 진(서진)이라 하고 50년간 다스리지만 그가 죽고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5호 16국이 일어난다. 흉노,선비,강,저,갈의 5변방 민족을 5호로 불렸고 이들이 세운 13개의 나라와 한족이 세운 3개의 나라를 합쳐서 5호 16국 시대라 불렀다. 5호16국 종족 국명 존속기간 갈 후조(後趙) 319 ~ 351 강 후진(後秦) 384 ~ 417 선비 전연(前燕) 337 ~ 370 후연(後燕) 384 ~ 409 서진(西秦) 385 ~ 431 남량(南涼) 397 ~ 414 남연(南燕) 398 ~ 410 저 성(成:漢) 304 ~ 347 전진(前秦) 351 ~ 394 후량(後涼) 386 ~ 403 흉노 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로 정조가 죽고 그 아들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한다. 순조의 비로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인 순원왕후를 맞아 들인다. 이후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게되고 헌종과 철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도 순원왕후가 섭정을 한다. 헌종의 부인은 풍양 조씨인 효현왕후였다. 16세에 요절하고 계비로 남양 홍씨가 들어온다. 헌종이 친정을 하면서 풍양 조씨들이 조정에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헌종도 23세에 요절하고 철종이 뒤를 잇자 순원 왕후와 7촌간인 김문근의 딸인 철인 왕후가 왕비가 되어 안동 김씨들은 세력을 다시 키워 간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던 효명세자(순조의 맏아들이었지만 요절해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의 비였던 신정왕후가 흥선 대원군과 손잡고 그 아들 ..
신라 진덕왕 때 원효가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여 신혈사라 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고려 5대 왕 경종이 젊은 나이에 일찍 죽자 사촌인 성종이 6대 왕으로 오른다. 이때 경종의 부인인 헌애 왕후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여서 성종이 즉위한다. 경종의 또 다른 부인이었던 헌정왕후가그 숙부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훗날 현종)을 낳았다. 헌정왕후의 언니이며 함께 경종의 부인이었던 헌애왕후(천추태후)의 눈에 이 대량 원군이 눈에 가시치럼 보였다. 이 여자도 김치양과 사통하고 있었고 둘 사이에 사생아도 태어났다. 성종이 죽고 목종이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18살이 되었지만 헌애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수렴청정하고 있던 아들 목종은 동성애자였다. 유행간과 유충정이 그 상대였다. 후사를 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