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김포 한재당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해파랑길 20코스
- 평화누리길 7코스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앙코르와트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명동 성당 미사
- 군위 팔공산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평화누리길 4코스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해파랑길 8코스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평화누리길 3코스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북한산 만포면옥
- 단양 구담봉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성인대
- #강화나들길 3코스
- 해파랑길 48코스
- 미시령 성인대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김포 문수산
- Today
- Total
목록참고자료 (189)
노래하는 사람
내가 최초로 맛본 비애의 기억은 앞뒤에 아무런 사건도 없이 외따로인 채 다만 풍경만 있다. 엄마 등에 업혀 있었다. 막내라 커서도 어른들에게 잘 업혔으니 다섯 살 때쯤이 아니었을까. 저녁 노을이 유난히 새빨갰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의 풍경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그냥 딴 동네 같았다. 정답던 사람도 모닥불을 통해서 보면 낯설듯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내 갑작스러운 울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건 순수한 비애였다. 그와 유사한 체험은 그 후에도 또 있었다. 바람이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저녁나절 동무들과 헤어져 홀로 집으로 돌아올 때, 홍시 빛깔의 잔광이 남아 있는 능선을 배경으로 텃밭머리에서 너울대는 수수이삭을..
성악이나 기악에서 적절한 비브라토는 풍부한 음량과 아름다움을 주어서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치면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소음처럼 되어버립니다. 기악에서는 독주나 합주에서 비브라토가 음악에 방해가 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현악기나 관악기의 경우 비브라토가 전혀 없으면 너무 심심하지요. 주로 전문가들의 연주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얼마전 영산 아트홀에서 바로크 싱어즈가 연주한 C.Monteverdi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숲'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이 곡의 연주에는 합창단과 함께 쳄발로, 오르간, 바이올린, 바올라 다 감바, 콘트라베이스가 반주를 했습니다. 르네상스 음악의..
성악이나 기악에서 적절한 비브라토는 풍부한 음량과 아름다움을 주어서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치면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소음처럼 되어버립니다. 기악에서는 독주나 합주에서 비브라토가 음악에 방해가 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현악기나 관악기의 경우 비브라토가 전혀 없으면 너무 심심하지요. 주로 전문가들의 연주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악기들도 비브라토를 최대한 절제하기도 합니다. 얼마전 영산 아트홀에서 바로크 싱어즈가 연주한 C.Monteverdi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숲'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이 곡의 연주에는 합창단과 함께 쳄발로, 오르간, 바이올..
아래의 글은 [문화연대] 푸른 하늘 땅이란 블로그에서 복사해 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own2425&logNo=223142383097&proxyReferer=https:%2F%2Fm.search.daum.net%2Fsearch%3Fq%3D%25ED%2599%25A9%25EC%2582%25AC%25EC%2598%2581%2520%25EB%25B0%25B1%25EC%2584%259C%2520%25EC%259B%2590%25EB%25AC%25B8%26w%3Dtot%26nil_mtopsearch%3Dsuggest%26DA%3DUME%26rq%3D%26sq%3D%25ED%2599%25A9%25EC%2582%25AC%25EC%2598%2581%..
https://lyj1749.tistory.com/m/531 2023.06.25. 산청 남명 조식선생(남명 기념관-산천재-덕천서원) 경의 사상을 따라 걷는다.◎ 남명 조식 처사를 만나는 소감 남명 조식선생을 만날 수 있어 가슴이 뛴다. 학창시절 남명 조식선생에 대하여 어렴풋이 들었다.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훌륭한 선비이다' 정도이다. 남명 조식lyj1749.tistory.com
성리학으로 경직된 조선 사회에도 로맨스는 살아 있었습니다. 퇴계와 두향, 그리고 율곡과 유지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퇴계 선생님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48세가 되던 해에 단양 군수로 부임해 갔을 때 18살의 두향이라는 관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퇴계는 부인과 아들을 잃고 가슴 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텅 빈 퇴계의 가슴에 들어온 여인이 바로 두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어지러운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한 지방의 수령이라면 관기를 마음대로 취할 수도 있었지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지고지순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선을 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이 첩이나 기생을 취하는 것은 전..
이 글은 이이의 수제자인 사계(沙溪) 김장생이 쓴 것이다. ◆12세 소녀와 39세 대학자의 만남 이이(李珥)가 유지를 처음 만났을 때 유지의 나이는 열두 살 소녀였다. 이이의 나이는 39세였다.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력이 왕성할 때이기도 했다. 도학자로서 심신 수양에 매진하던 장년기였다. 이이는 1574년 황해도 관찰사로 임명 받고 임지인 해주 관아에 도착했다. 이이가 황해도 관찰사가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이이는 몸이 약해져 임금이 관직을 내려도 여러 차례 사양하기를 반복했다. 조정은 그래도 그의 학식과 품성을 높게 사서 중요한 관직을 제수하여 맡기고자 했다. 그래서 이이가 약해진 몸을 요양하려고 황해도 해주에 있는 처가나 황주에 있는 누님 집으로 자주 간다는 것을 알고, 관찰사를 하..
중국의 이백(李白)은 대문장가로 한 번 글을 쓰면 단숨에 쓰되 글을 수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율곡 이이(李珥)는 자기를 흠모하는 기생 유지(柳枝)와 밤새워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새벽녘에 자신의 마음 속 생각을 단숨에 글로 써서 유지에게 주었다. 일명 유지사(柳枝詞)이다. ▶유지사(柳枝詞) - 율곡 이이(李珥)가 유지(柳枝에게 준 글 이이(李珥)가 황해도 해주에 관찰사로 있을 때 어린 기생인 유지(柳枝)가 이이의 시중을 들었다. 유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듯 아름다웠으나 12세에 지나지 않아 동침을 할 수 없었다. 이이는 유지에게 따뜻한 마음의 정을 느꼈지만 곧 헤어졌다. 유지는 이이의 학식, 고귀한 인품에 매료되어 이이에게 연모의 마음을 갖고 그리워 했다. 그 후 9년이 흘러 이이는 요양 차 ..
퇴계 선생과 두향의 만남은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은 흔히 백석과 자야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자야(본명 김영한, 1916~1999)는 양반집 규수였다. 아버지 없이 엄마가 바느질하여 여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보고, 입을 덜고자 친구 언니의 소개로 가족 몰래 권번(券番. 기생양성소)에 들어가 금하 하일규선생에게 기생 수업을 받았다. 하일규 선생은 궁중에서 악사들을 길러내는 직책을 맡았었기 때문에 조선조가 망한 후 악사들의 생계를 유지해 주고자 권번을 차렸다. 자야는 중학 졸업자여서 동기생 중 성적이 뛰어 났다. 권번을 졸업하고 진향이라는 기명을 받았다. 선생은 진향을 기생으로 두기는 아까워 조선어학회 신윤국선생에게 부탁하여 일본 유학을 보냈다. 졸업할 무렵 하일규 선생님이 ..
다음 국어 사전에 의하면 팜므 파탈은 아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들도록 운명 지워진 여인." "요사하고 망령된 여자(妖婦)" 조선의 팜므 파탈을 이야기하면 평양 기생 황진이나 부안 기생 매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야사에 의하면 이들은 미모뿐만 아니라 시와 음악에도 능통한 당대의 문인이며 예술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학식높은 명사들과도 교류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작품이 전하기도 한다.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간들 어떠하리." 왕족이나 수십년간 수도한 유명한 고승인 지족 선사도 황진이의 치마폭에 무너졌다는..
아래 글은 (http://tgnews.co.kr/mobile/article.html?no=306743에서 복사해 옴) 백석동 지명 유래인 ‘흰돌’ 영구 보전하며 마을의 수해무탈 기원 ▲ 고양특례시 백석1동, 계묘년 흰돌도당제 개최 (TGN 땡큐굿뉴스) 고양특례시 흰돌도당민속보전위원회는 지난 4월 28일 백석동에 위치한 흰돌보전지에서 계묘년(癸卯年) 흰돌도당제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고양문화원이 주최하고 흰돌도당민속보전위원회가 주관하는 흰돌도당제는 백석동의 지명 유래가 되고 있는 흰돌을 영구 보전하고 마을의 수해무탈과 주민들의 대동평안을 기원하는 제례로써,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2019년 이후 4년 만에 개최됐다. 제례 전 부정 타는 것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흰돌 주위에 황토를 뿌리는 의식을 시작으로 칠선녀..
부군당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교동읍성 북성 둑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부군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관청내에 두던 신당으로 행정구역 어느 곳에나 있었다. 부군당의 화상은 다산을 상징하는데 읍내리 부군당에느 조선시대 폭정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교동으로 유배된 연산군(재위 1494 - 1506년)으로 추정되는 화상과 남근목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읍내리 주민이 연산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죽은 원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연 1회씩 지냈다고 한다. 1.역사 부군당제는 조선시대 각 관아(官衙)에서 신당(神堂)을 두고 아전(衙前)과 서리(胥吏) 등 하급 관리들이 지낸 제사이다. 부군당제는 현재 한강변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조선 후기 한강의 수운을 이용한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인구..
삼국 시대를 위나라가 통일하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황제가 되지만 사마염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사마염은 나라 이름을 진(서진)이라 하고 50년간 다스리지만 그가 죽고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5호 16국이 일어난다. 흉노,선비,강,저,갈의 5변방 민족을 5호로 불렸고 이들이 세운 13개의 나라와 한족이 세운 3개의 나라를 합쳐서 5호 16국 시대라 불렀다. 5호16국 종족 국명 존속기간 갈 후조(後趙) 319 ~ 351 강 후진(後秦) 384 ~ 417 선비 전연(前燕) 337 ~ 370 후연(後燕) 384 ~ 409 서진(西秦) 385 ~ 431 남량(南涼) 397 ~ 414 남연(南燕) 398 ~ 410 저 성(成:漢) 304 ~ 347 전진(前秦) 351 ~ 394 후량(後涼) 386 ~ 403 흉노 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로 정조가 죽고 그 아들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한다. 순조의 비로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인 순원왕후를 맞아 들인다. 이후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게되고 헌종과 철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도 순원왕후가 섭정을 한다. 헌종의 부인은 풍양 조씨인 효현왕후였다. 16세에 요절하고 계비로 남양 홍씨가 들어온다. 헌종이 친정을 하면서 풍양 조씨들이 조정에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헌종도 23세에 요절하고 철종이 뒤를 잇자 순원 왕후와 7촌간인 김문근의 딸인 철인 왕후가 왕비가 되어 안동 김씨들은 세력을 다시 키워 간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던 효명세자(순조의 맏아들이었지만 요절해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의 비였던 신정왕후가 흥선 대원군과 손잡고 그 아들 ..
신라 진덕왕 때 원효가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여 신혈사라 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고려 5대 왕 경종이 젊은 나이에 일찍 죽자 사촌인 성종이 6대 왕으로 오른다. 이때 경종의 부인인 헌애 왕후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여서 성종이 즉위한다. 경종의 또 다른 부인이었던 헌정왕후가그 숙부인 왕욱과 사통하여 대량원군(훗날 현종)을 낳았다. 헌정왕후의 언니이며 함께 경종의 부인이었던 헌애왕후(천추태후)의 눈에 이 대량 원군이 눈에 가시치럼 보였다. 이 여자도 김치양과 사통하고 있었고 둘 사이에 사생아도 태어났다. 성종이 죽고 목종이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18살이 되었지만 헌애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수렴청정하고 있던 아들 목종은 동성애자였다. 유행간과 유충정이 그 상대였다. 후사를 낳..
살아가면서 '만족할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그래서 오래 간다'는 노자의 이 말이 정말 중요한 말이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집니다. 춘추 시대 말기에 살았던 월왕 구천의 신하 범려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구천은 회계산 전투에서 오왕 부차에게 패하고 그의 신하가 됩니다. 그리고 범려와 함께 오나라로 끌려가서 갖은 치욕과 수모를 당합니다. 심지어는 부천을 속이려고 그의 똥을 맛보면서까지 치욕을 감수합니다. 또 부차에게 침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미녀인 서시를 바쳐서 부차의 환심을 사기도 합니다. 침어( 沈漁)라는 별명은 어느날 서시가 연못 속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물속의 고기가 서시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스스로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빠집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아래와 같다. 진나라 태원 연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갔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를 무렵 홀연히 복숭아꽃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양쪽 강을 끼고 수백 보의 거리에 온통 복숭아나무뿐이며 다른 잡목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펄펄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어부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숲은 강상류에서 끝났고 그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즉시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
세종의 셋째 아들로 1418년에 태어난 안평대군이 1447년에 꾼 꿈을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이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안평대군은 이름이 용이고 위로는 다섯살인 왕세자 향(훗날의 문종)과 두살인 유(훗날의 수양대군)외에도 형제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서화에 능해서 삼절로 불렸으며 이 꿈을 꾸고 난 후 꿈의 내용을 '도원기'라는 글로 남겼습니다. 꿈의 내용은 안평대군이 꿈속에 박팽년과 함께 산골짜기를 걷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골짜기가 나오는데 거기가 도원이라고 말해줍나다. 그래서 올라갔더니 도원이 나타났고 잠시 후 최항과 신숙주도 따라와서 함께 제목 그대로 꿈속에서 도원을 즐긴 내용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이 꿈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하..
머니투데이 '수술 안 한' 트랜스젠더 쫓아낸 한인 찜질방…美법원 판결에 '당혹' 시애틀 지역 한인 운영업소 "여성전용" 주장했지만 기각 원본보기 트랜스젠더 운동가 헤이븐 윌비치(Haven Wilvich)의 모습./사진=페이스북 미국 시애틀 지역(워싱턴주)의 여성 전용 찜질방이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입장을 허용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최근 시애틀 지방법원은 여성 전용 찜질방인 올림푸스 스파 측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고 '생물학적 여성 전용' 정책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올림푸스 스파는 한인 가족이 운영하는 여성 전용 찜질방이다. 2020년 1월 트랜스젠더 운동가 헤이븐 윌비치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윌비치는 해당 찜질방..
아침에 손자 호준이를 유치원에 등원 시키러 나가다가 사마귀를 보았습니다. 호준이도 신기해하면서 한참 보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버마재비 수레 버티듯” 혹은 “버마재비도 성나면 앞발로 수레를 막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길에서 사마귀가 다가오는 수레에 맞서는 형상으로, 싸워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덤비는 무모함을 빗대는 표현입니다. 버마재비는 범+아재비가 변형된 것이라고 합니다. 범처럼 무섭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속담은 당랑거철(螳螂拒轍)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사냥터로 가던 도중에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고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에게 물었다. “저건 무슨 벌레인가?” “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