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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대중 목욕탕에 온수 욕조가 없고 샤워 부스 여러 곳과 사우나와 떼 미는 곳이 따로 있다. 남탕에 여직원이 들락날락한다. 탈의실에서 사우나나 샤워부스에 갈 때 천으로 하체를 가리거나 목욕탕이 유료로 빌려주는 팬티를 입고 들어간다. 포플러잎이나 자작나무잎등으로 몸을 때린다. 북유럽에서 자작나무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길거리에는 옛날 우리 나라 냉차와 같은 음료수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더운 나라니까 사람들이 종종 사서 마신다. 나도 마셔봤는데 여러 종류 가운데 내가 마신 것은 시큼한 야쿠르트 음료맛이었다. 더운 곳이니까 음료수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파라솔 아래 힘들어서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수도인 바슈케크에도 중심가를 벗어나면 비포장 도로가 많고 포장 도로도 돈이 없어서인지 보수를 못 해서 ..
현지인 교회에 11시 예배 참석하다.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예배하고 나서 재철이와 둘이서 오쉬 바자르라는 전통 시장 구경을 갔다. 우리 나라 남대문 시장처럼 매우 큰 시장이다. 먹을 음식재료들을 사서 돌아왔다. 여기는 길거리 음식 코너는 따로 없다. 전통 옷 가게도 있고 말린 과일들을 파는 코너가 상당히 크고 향신료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비슈케크는 고도가 700m정도이다. 어제 가 있었던 카라콜은 고도가 1,600~1,700m정도여서 사원했는데 여기는 내려왔더니 아주 덥다. 한낮에 시장을 돌아다니자니 아주 더웠다. 여기 사람들 눈에 한국인의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모양이다. 바자르에서 어떤 젊은이가 나를 보더니 "한국,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지나간다. 비슈케크 시내 버스비는 20솜..
어제 카라콜에 와서 처음으로 캡슐 호스텔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트래킹을 가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갔더니 인터넷에서 본 다른 사람들의 트래킹과는 다른 코스를 가게 되었다. 1시간을 올라가도 초원은 나오지 않고 계속 협곡의 골짜기만 올라간다. 그래서 돌아왔다. 비슈케크로 오는 길에 어떤 지점에 이르렀더니 특이한 지형의 협곡이 있다고 해서 들어갔다. 재철이 표현에 의하면 작은 갑바도기아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니 이곳을 스카즈카 협곡이라고 부른다고. 스카즈카는 동화라는 뜻. 이곳에서 한국 단체 관광객을 만났다. 한국 아줌마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차림새에서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을 온통 선글라스와 마스크등으로 가렸지만 보는 순간 한국인이라는 것..
아침 8시경 비슈케크를 출발해서 카라콜까지 왔다. 6시 반쯤에 도착했으니 거의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왔다. 루스탐이라고 하는 현지인이 우리를 가이드했는데 사람이 좀 덜 떨어졌다. 그래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카라콜까지 왔다. 이런 사람을 그래도 품어주는 재철네가 대단해 보인다. 선교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오는 도중에 만년설이 덮인 톈산 산맥을 계속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흰눈이 덮인 봉우리들이 영험한 느낌을 주었다. 이식쿨에서 수영한 것도 아주 좋았다. 이 호수는 담수인데도 밑바닥에서 온천물이 솟아서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이식쿨 호수는 길이가 180km, 폭이 60km 깊이가 700m에 이르는 해발 1,600m 정도의 고원에 위치한 호수라고 한다. 오는 도중에 오른편은 눈덮인 산맥이..
아침에 일어나서 재철네 집 근처의 수목원같은 곳을 산책하다. 숲이 아주 우거져서 1시간 동안 잘 걸었다. 여기서 본 꽃들이다. 이식쿨이랑 카라쿨 호수를 보러 갈려고 했는데 재철이 운전 면허증에 문제가 있어서 못가고 대사관등으로 면허증 문제 해결하러 다녔다. 내일은 현지인 가운데 재철에게 잘 기대는 어떤 사람과 그 친척이 우리를 태우고 알틴 아라산으로 트래킹 가기로 했다. 점심은 음식점에서 밀가루 면에 양고기 소스를 걸쭉하게 올린 라그만이라는 음식을 먹었다. 오늘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간다. 심할 때는 45도까지도 올라간다고 한다. 오늘 시내를 걸어다녀보니까 햇빛이 정말 뜨거웠다. 다행인 점은 그늘에 들어가면 견딜만하다. 신기하게도 건조해서 그런지 땀은 한국보다 훨씬 덜 흘린다. 이 꽃이 아주 많은데 이름..
인천 공항에서 10시 10분발 uz 항공으로 타쉬켄트로 와서 현지 시간 3시 35분 비행기로 비쉬켁으로 환승한다. 타쉬켄트 공항에서 출발 시간이 30분이나 지나도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다. 그래도 승객들도 아무런 불만이 없어보인다. 결국 1시간이 지나서 4시 35분에 출발했다. 인천에서 타쉬켄트간은 7시간이 걸리고 타쉬켄트에서 비쉬켁간은 50분 남짓 걸린다. 타쉬켄트는 서울보다 4시간 늦고 비쉬켁은 3시간 늦다. 타쉬켄트 국제공항에도 와이파이가 안 된다. 비쉬켁은 톈산 산맥 아래 잡은 아름다운 도시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 아래에 벨르의 모스크의 미나렛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광경은 아주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이 모스크 외부가 흰색으로 되어 있어서 흰색이라는 뜻의 벨르의 모스크로도 불린다. 비쉬켁에..
실크로드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을 직업별로 따로 상세하게 소개한 책. 차례에 나오는 것처럼 상인, 병사, 목부, 공주, 승려, 기생, 비구니, 과부, 관리, 화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세기 당나라가 힘을 얻고 있던 시절에 파미르 고원 주변에 살았던 티벳과 위구르인들의 힘도 상당히 셌다. 중국이 위구르인들에게 말한필에 비단 40 필을 주고 교역을 해야할 정도로 위구르인들은 힘이 세었다. 비단 한 필로 살 수 있는 늙은 말도 40필, 심한 경우는 50필을 주고 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구르인들이 침략하겠다고 협박해서 할 수 없이 비싼 돈을 주고 말을 구입해야 했다. 실크로드를 넘나드는 상인들은 천산 산맥이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으로 해서 중국으로 갔다. 소그드인들은 중개 무역으로 ..
실크로드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 개괄서. 꼭 필요한 내용들을 잘 정리했다. 실크는 고대의 화폐 역할을 했다. 이 길을 통해서 비단뿐만 아니라 종교와 문화가 전해졌다. 중국 중앙 정부와 흉노, 돌궐 사이에 이 길을 지배하기 위한 세력다툼이 심했다. 고선지 장군이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하고 제지술이 서역으로 전해진 것도 이 길을 통해서 제지기술자들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서양의 대항해 시대 이전에 명나라의 정화는 이미 27,000명이나 되는 인원을 데리고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녔다. 덕분에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마르코 폴로도 육상 실크로드로 와서 해상 실크로드로 돌아갔다. 청나라는 최후의 유목제국이었다. 남북이 통일만 된다면 이 실크로드는 우리 앞에 열려있다. 셀..
산수국은 참꽃과 헛꽃이 있다. 가장자리에 4장의 잎으로 되어있는 꽃은 헛꽃이고 가운데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꽃이 참꽃이다.
운길산 산을 좋아하는 재철이가 귀국해 와 있는 동안 덕분에 산을 자주 갑니다. 문목집에 목요일 저녁에 와서 자고 두 부부와 함께 다같이 운길산으로 갔습니다. 가서 3명은 수종사에서 구경하면서 놀고 우리 둘만 올라갑니다. 수종사까지 차로 올라가니 수종사에서 정상까지는 거리가 1km 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그 1km가 워낙 가팔라서 힘듭니다. 40분 이상 걸려서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와서 쉬고 있었더니 아주머니 두 명이 예봉산에서 출발해서 운길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이분들을 보니 나도 오래 전에 그 코스를 어느 봄날에 걸어 온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길산은 정상에서 두물머리와 남한강, 북한강을 바..
저자는 한국 외대를 졸업하고 중동을 연구한 사람이다. 이슬람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면 꾸란의 구절들 가운데 서로 상반되는 내용들에 관해 학자들의 견해를 자세히 실었다. 이슬람이 폭력적이라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시하지 않고 그런 면과 한편 관용적이고 평화적인 면도 설명했다. 마드라사는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종합 대학이 아니다. 종교학과 법학을 가르치고 울라마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기관 이었다.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울라마의 사회적 영향력이 필요했던 통치자들은 마드라사를 세우고 운영자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울라마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했다. 니잠 알물커가 니자미야 마드라사를 세운 것도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울라마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하기 위해서였다...
중앙 아시아 알기 위해서 읽었다. 책 전체를 읽지 않고 9~11장만 읽었다. 쿠란을 보면 알라의 첫 계시절(96:1)이 바로 '읽어라, 창조주이신 그분의 이름으로' 임대 이것은 무지에서 탈피함을 절체절명의 첫째 과제로 명한 절이라고 경전 주석가들은 해석한다. 쿠란은 바로 이 절의 명령형 동사 읽어라의 어근인 '읽기' '읽음'이란 뜻이다. 830년에 압바스조 칼리파 마으문 치세시 바그다드에 설립된 '지혜의 집'은 첫 고등교육 기관이었다. 이 집은 이슬람 문명의 전수와 연구에서 뿐만 아니라 특히 그리스 로마나 페르시아 등 주변 선진 문명국에서 저술된 서적들을 대거 아랍어로 번역하여 이슬람 문명의 형성과 발달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이어 859년 모로코의 패스에 또 하나 이슬람 교육 중심인 까이르완 사원이 ..
[26] “In your anger do not sin”: Do not let the sun go down while you are still angry, 화가 난다고 범죄하지 말고 화가 나더라도 해가 질 때까지 오랫동안 화를 내고 있지 말아라.
[6]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관통해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