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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것은 단절인가 계승인가를 논한다. 단절된 것도 있고 계승된 것도 물론 있다. 조선과 조선 태조의 고향인 화령 가운데 국호로 선택해 달라고 명에 청해서 조선으로 국호가 바뀌지만 제도나 많은 부분은 고려의 것을 계승하기도 했다. 여말의 혼란한 토지제도를 과전법으로 바꾸고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대부들이 정권을 잡아 정몽주나 최영 중심의 훈구파를 축출하고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다. 하지만 고려후기를 이끈 22개 가문 중 16개 가문이 조선 시대 들어와서도 유력한 가문으로 존속했다고 '두 얼굴의 조선사'에서 ucla의 던컨 교수는 주장했다. 고려는 원나라를 천자국으로 모시고 후기에 부마국이 되었으며 노비와 토지 문제는 제도가 좀 바뀌긴 했으나 기득권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고려와 조선의 과거와 관련된 기록들.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시험은 경쟁률이 높고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장원 급제는 본인만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금수저 집안이 장원 급제에도 유리했다. 10대에 급제하는 천재들이 있는가하면 평생 과거에 메달리다가 70대에 급제하는 사람도 있었다. 향시라고 불리는 지방에서 실시하는 소과인 진사시나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300일 이상의 수업을 들어야 문과라고 하는 대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나중에 이 규정은 좀 느슨해지간 했지만. 한달에 이틀만 쉬는 성균관 생활은 빡센 수업과 시험 때문에 긴장과 피로의 연속이었다. 문과는 초시 중시 전시가 있었고 경..
우리 집 근처에 노고산이라는 나즈막한 야산이 있습니다. 서울 북한산 앞에도 노고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습니다만 이 산은 집을 출발해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30분 남짓이면 가능해서 산책하기 딱 좋은 산입니다. 나는 소화기능이 약해서 식후에는 항상 걷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산을 걸으면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이 생각납니다. 그는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살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이 산을 거의 매일 다녀옵니다. 이 산에는 호수는 없어도 습지가 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 산길을 걸으면 마음에 잔잔한 기쁨과 평화를 느낍니다.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문명..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으나 호란 이후 청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졌다. 하지만 명나라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해진 후금에 대항할 힘이 인조 정권에는 없었다. 재조지은을 상용구로 읊지만 결국 청에게 항복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도륙되고 수만에서 50만에 이르는 포로를 청나라로 보내야 했다. 한편 왜와 협력해서 청을 견제하려는 생각도 일부 있었지만 청의 감시 때문에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정묘호란은 조약을 맺음으로 어느 정도 피해갔지만 조약을 성실히 지키지 않다가 병자호란에서 된통 당하고 인조는 삼배구고두례까자 행하는 항복의식을 치른다. 부산에 와 있는 왜관은 조선의 정보를 일본으로 보내고 기회를 봐서 경제적인 실리를 챙기려 한다. 쓰시마가 왜의 정책이나 입장을 대신 전달하기도 한다. 가도에 있던 ..
정조에 관한 여러 기록들. 정조가 그렇게 뛰어난 왕이었지만 백성들의 고통과 관료들의 부패는 여전했다. 그가 죽고 나자 백성들의 고통은 더 심해졌다.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소설가 고 최인호가 1998년~1999년까지 천주교 서울대주교에서 발행되는 주보에 연재되었던 '말씀의 이삭'을 모은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만큼 천재적인 소설가이면서 가톨릭 신자인 그의 신앙고백과 같은 글들이다. 말년에 암으로 고통 받으면서 청계산 아래 살았고 불교를 소재로 한 소설 '길없는 길'과 유교를 소재로 한 소설 '유림'이 내게는 아주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기독교 관련 소설도 쓰려고 했지만 암 때문에 아마 못 쓴 것 같다. 여러 시인들의 시가 인상적으로 인용되었다. 님의 침묵( 沈默)" 한용운(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
프랑스 자두마을(plum village)에서 수행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의 수행지침서 내지는 일반인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한 책. 목갈라야나 스님이 설한 중요한 내용을 사량경이라는 책에 기록했다. 중국어본인 중아함경 89번에 승려가 대중에게 소외 당하는 이유 17가지를 말했다. 1. 불건전한 욕망에 사로잡혀 지배당하는 사람 2. 자기 자신은 칭찬하고 남은 비난하는 사람 3. 화를 쉽게 내고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 4. 화가 나서 원한을 품은 사람 5.6. 화가 나서 원한을 품고 심술이 난 사람. 화가 나서 원한을 품고 심술궂은 말을 하는 사람 7.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 친구를 비난하는 사람 8.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 친구를 무시하는 사람 9. 자신의 잘못을 지..
임진난을 겪은 후 서애 유성룡이 전쟁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위해서 쓴 책.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오희문의 쇄미록과 함께 임진난의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이순신을 천거했고 끝까지 그를 믿고 옹호했으며 칡넝쿨로 부교를 만들어 명군이 임진강을 건널 수 있게도 했다. 임진난 동안 영의정이 되어 왕을 보필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활약을 했다. 조선의 장군들은 전쟁 초반에 싸울 생각을 않고 적군이 나타나기도 전에 도망간 일이 아주 많다. 신립이나 원균은 이 책에 의하면 명장이 아니다. 권율도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긴 했으나 그 후에는 그리 뚜렷한 전공을 올리지 못했다. 이일이 오랫동안 전쟁을 겪긴 하지만 역시 뛰어난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도망을 많이 다닌다. 명군은 평양성 전투에서 일본을 속여서 이긴다. 명..
조선 시대 후기에 지역 사회의 구조는 씨족을 중심으로 한 문중이나 향교, 서원과 같은 교육 제사기관을 중심으로 세력이 결집되어 있었다. 가문이 번성하면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세거하기도 했다. 장자에게 상속권을 더 많이 줌으로 재산이 분산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었고 제사를 모시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향약이나 계원들간의 규칙도 생활의 한 지침이 되었다. 양반과 중인 그리고 천민의 3단계로 구분되기도 하고 양반과 상인 두 단계로 구분되기도 한다. 토착 세력과 유입 세력이 주도권 다툼을 히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장례등에서 서로 인력이나 재화를 보태서 처리하기도 했다. 지방 수령이나 혹은 그 지역의 유지들이 국립 학교인 향교 운영에 영향력을 미쳤다. 서원은 사설기관이지..
조선을 다녀갔거나 조선에 관한 기록들을 토대로 책이나 글을 쓴 서양인들의 기록을 모은 책. 신라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한반도의 국가들에 관한 기록이 간혹 있지만 부정확하고 조선 후기 시대에 조선을 방문하거나 중국이나 일본의 기록을 정리한 사람들의 글은 어느 정도 신뢰나 참고가 된다. 임진난 이전에는 조선왕조를 카오리 혹은 차오시엔등으로 표기했다.고려와 조선의 서양식 혹은 중국식 발음으로 보인다. 고려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직접 방문하지 않고 들은 내용을 기억에 의해 쓴 것이어서 부정확하다. 임진전쟁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등의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관한 보고서들을 올리면서 서양에 알려진다. 1668년에 하멜이 쓴 책에서 조선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서양에 알려진다. 그는 당시 퀠파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1574년 중봉 조헌이 성절사의 질정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내용을 적은 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비하면 내용이나 분량도 적다. 당시 연행때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이 지금 수준에서 보면 적은 뇌물 수준이란 생각도 든다. 명나라에 갔을 때 관리들이 뇌물을 요구하는 것이 종종 보인다. 황제를 만나는 예법이 까다로워서 연습도 하고 명나라 조정의 관리들이 갑질도 한다. 조헌은 후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순절한다.
포럼이 기념 사업으로 펴낸 책.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바라본 이순신에 관한 글들을 모았다. 해군 출신들의 글이 많고 기업인이나 경제 전문가, 사업가, 작곡가, 소리꾼, 만화가, 바둑 전문가등이 글들을 썼다. 창작 판소리 이순신도 있고 관현악곡 성웅 '성웅 이순신'도 있다. 수조도라는 수군 훈련도 병풍 그림에는 548척의 배가 그려져 있고 그림 상단에는 훈련에 참가한 군사 수와 식량의 양, 수로등이 기록되어 있다. 난중 일기는 바빠서 초서로 쓰였다.
저자는 춘추전국 이야기를 썼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직접 유목민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발로 쓴 글이다. 위낙 많은 이야기와 생소한 기록들이 많아서 어렵다. 신화 시대의 여신 이야기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초원에서 여신 신앙은 좀 더 오래 살아남았다. 유목민들은 정주민에 비해 대체로 다른 종교에 관용적이었고 배척하지 않았다. 스키타이가 최초로 부족국가에서 유목국가를 만들었다. 흉노는 최초의 유목 제국을 만들었고. 사과 바나나 수박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과일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는 포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작물이라고 읽었다. 사과는 카자흐스탄의 텐산 산맥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고. 여진족에게 거란족이 밀려났다. 정주문명은 유목문명에 ..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본 임진전쟁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임진전쟁의 원인은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부하장군들에게 나누어 줄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임진전쟁때 서로 공을 세우려고 경쟁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1598년에 전쟁이 끝난다 1592년 임진년에 전쟁이 시작되었고 도중에 명나라와 일본 간에 협상이 진전되었지만 협상조건을 조선이 충실하게 지키지 않아서, 또 왕자가 일본에 와서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아서 1597년 정유년에 재침한다.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임진전쟁은 일본과 명나라 간의 전쟁을 조선반도에서 한 것이다.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고 자기가 명나라의 황제가 되려했고 조선은 길을 빌려주고 전쟁의 선봉에 서라고 요구했다. 당사 일본은 서양..
1886년에 육영공원 교사로 마국인 3명이 고종의 초청으로 우리 나라에 왔고 그 중 한명이 헐버트이다. 언어학자이며 한글의 우수성을 칭찬하며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말한다. 고종의 밀사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활약했다. 문경 아리랑과 시조를 악보로 채보하기도 했다. 조선이 어려운 시대였지만 한국인이 우수한 두뇌를 가졌다는 것을 일찌기 파악했다. 신문사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미국과 유럽에 기고문을 많이 보냈다. 조선과 일본을 여행했다. 우리 설화 속담 성악 시 예술 소설등에 관한 글도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선교에 관한 관심과 글들도 있다. 일본에 여행 중 당시의 개기일식에 관한 기록도 있다. 한글이 티베트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한다. .
일본인 승려가 임진왜란 때 의사 신분으로 장군을 따라 온 종군기록이다. 왜구가 조선인들을 얼마나 참혹하게 죽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닥치는대로 죽이고 빼앗고 불지르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갖겠다고 싸우기도 했다. 살육만 한 것이 아니고 노예상들도 따라와서 사람들을 묶어서 끌고 갔다. 이탈리아에 한복입은 그림이 나온 것이 이 때 잡혀가서 팔려간 사람이라고 하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저자는 초반에는 전쟁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다가 중 후반에는 주로 자기 신앙과 관련된 기록을 많이 했다. 와까라고 하는 일본 고유의 정형시를 300수 넘게 많이 남겼지만 번역문이어서 문학적인 느낌은 찾기 어렵다. 부산으로 와서 하동 남원 전주 진천까지 올라갔다가 상주 영천 경주 울산으로 해서 다시 부산으로 가서 귀국했다. 약 8개..
저자가 세계일보에 3년간 쓴 칼럼과 대구 매일신문에 쓴 원고를 모은 책. 짤막짤막한 꼭지로 되어 있고 신문에 연재한 내용이니까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쉽게 썼다. 다른 역사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많지만 처음 보는 내용도 있다. 제주 여부호 김만덕이 대단한 여장부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폐에 담긴 인물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화폐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세종은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세금에에 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대동법과 균역법이 세금과 군역에 관한 아주 좋은 법이다.
레바논 출신의 시인이며 작가이고 화가이다.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가족이 어렵게 살았다. 주위의 도움으로 학교 공부와 파리에 가서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다. 10살 연상의 메리 헤스켈이란 여자를 사랑했지만 햔실의 벽을 넘지 못해서 결혼은 못한다. 레바논의 기독교 교파의 하나인 마론파 출신이다. 이 교파는 7세기에 시작한 레바논의 기독교 교파이고 어머니는 그 성직자의 딸이다. 그의 이 작품에서 이 종교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 책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삽화로 많이 들어 있다. 인상적인 글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이성이란 홀로 다스리게 하면 경직된 힘이며 감정이란 홀로 내버려 두면 스스로를 태워 파괴하는 불꽃이다.' '그대 고통의 대부분은 그대 스스로 선택하는 것' 언..
음악에서 낭만주의의 특징은 형식으로부터의 탈피와 개인의 감정의 적극적인 표현등으로 말한다. 문학이나 철학등 다른 사조에서 낭만주의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유럽에서 프랑스 계몽주의나 합리주의에 반항해서 일어난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음악에서처럼 규칙이나 이성으로부터 탈피해서 자기의 신념이나 이상을 표현하고 객관적인 질서나 진리가 하나만 아니라고 주장한다. 내 개성이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개성도 존중해야하는 관용의 정신도 낭만주의에서 나온다. 좀 어려운 철학책으로 여겨진다.
우리 역사가 친일 친미 세력에 의해 많이 왜곡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 출신이라거나 일본 육사 출신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독재를 한 것을 비판한다. 보수 정권이 박대통령의 경제 분야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독재 부분은 숨기거나 미화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저자도 박대통령의 업적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잘못만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상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든다. 김수환 추기경이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출신이라는 오점이 남았다. 이것은 일본군을 탈출해서 수천리를 걸어 광복군에 가담한 장준하, 김준엽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김수환 추기경이나 총리 출신 강영훈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학도병으로 끌려 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