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명동 성당 미사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해파랑길 20코스
- 김포 문수산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해파랑길 8코스
- 군위 팔공산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앙코르와트
- 평화누리길 3코스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평화누리길 7코스
- 성인대
- 해파랑길 48코스
- 단양 구담봉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미시령 성인대
- #강화나들길 3코스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평화누리길 4코스
- 북한산 만포면옥
- 김포 한재당
- Today
- Total
목록독서 (856)
노래하는 사람
원제목은 방랑벽 혹은 여행벽이라는 의미의 wanderlust이고 부제목은 a history of walking으로 걷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족 보행 역사부터 시작해서 걷는 행위에 관해 많은 사례와 걷기에 몰입한 인물들도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루소와 키에르케고르 워즈워드등을 소개한다. 성지순례와 오늘날의 트래킹에 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정원이나 사냥터는 처음에는 일반인이 걸어갈 수 없는 지역이었으나 많은 단체들과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의 결과로 이런 사유지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등산에 관해서도 말하면서 암벽등반을 일반 트래킹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시골이나 도시를 걷는 것은 강도의 위험도 있었다.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걷기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었다. ..
소통을 원활하게 잘 하기 위해서는 감정 조절을 잘 하라는 먼저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잘 듣기 공감하기 화났을 때는 말하지 않고 안정되었을 때 하기 확실히 이해 못 했으면 물어보기 비난하는 말 하지 않기 천천히 생각하고 말하기 자학하지 않기 상대나 나 자신을 과소 평가하거나 과대평가 하지 않기 솔직하고 정중하게 말하기
예술의 특징은 급진적 자율성이다. 예술은 그 존재에 외적인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거기에 있다. 우리는 그것에 저항할 수도 그것을 없애버릴 수도 없다. 예술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이유는 어떤 예술 작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스스로를 판단한다. 예술 작품은 자기 스스로의 미적 판단이다. 예술은 인간이 그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묻지 않는다. 우리가 예술 작품으로 끌려 들어가거나 그러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도교를 시대순으로 설명한 책. 도가와 도교는 구분해야 한다고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도교는 정말 황당하다. 죽지않고 신선이 되는 것이 도교의 목표다. 내세관이 거의 없고 현세를 중시하는 종교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역대 황제들이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했고 자신들도 신선이 되려고 노력한 자들도 있다. 철괴리의 얼굴이 험상궂은 이야기는 달마가 시신에 들어간 이야기와 같다. 어느쪽이 원조일까?
감리교 목사인 이현주는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필명을 이 아무개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그의 생각이 표현되어 있다. 이 필명은 아마도 노자나 장자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성경과 비교하면서 설명해서 내가 이해하기 쉽다. 장자 제 1장 소요유가 좀 어려운 느낌이다. "산의 모양은 석양에 아름답고 날으는 새들은 떼를 지어 돌아간다. 저 가운데 참 뜻이 있건마는 말로 하려니 어느새 말을 잊었네" -도연명 -
연대에서 학부 때 신학을 공부했고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석사를 하고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를 한 저자가 도덕경과 성경을 비교하면서 쓴 책.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저자는 글을 보면 기독교인이다. 막연하게 노장과 요한복음이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내 생각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었다. 너무나 비슷한 생각이 많고 같은 내용도 많다. Logos와 노자가 말하는 도를 서로 바꿔 대입해도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은 부분이 참 많다.
조선의 천민 8부류에 관해 설명한 책 노비, 기생, 승려, 백정, 광대, 무당, 상여꾼, 공장이 8천이다. 노비는 공사노비가 있다. 노는 남자 종이고 비는 여자종이다. 조선의 양반들은 노비를 재산으로 여겼기 때문에 노비를 늘리기 위해서 부모 가운데 한쪽만 노비면 그 자녀는 노비가 되게 만들었다. 조선 초기에는 건장한 노비 한명이 말 두마리 값이었지만 후기에 노비가 인구의 30%가 되었을 때는 말한마리보다 가격이 낮았다. 기생은 관기들이 있어서 관료들이 출장을 갈 때 데리고 놀거나 잘 수도 있었다. 사대부들의 성적인 노리개였다. 하지만 황진이같은 시와 예술을 아는 기생들도 있었다. 백정은 처음에는 평민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북방 유목민들이 들어와서 도살업을 주로 하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광대..
조선은 철저히 양반의 나라였다. 사림이나 관료들을 위한 나라였다. 법도 지배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제도도 관료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부는 세습되고 관직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힘에 의해 비록 같은 직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물림 되었다. 양인과 양반이 다 과거에 응시할 수는 있었지만 재력있는 양반 가문이 아니고서는 과거 준비에 올인할 수 없었다. 양반들은 토지와 노비를 증식하고 뺏기지 않기 위해서 온갖 편법을 다 동원했다. 이름있는 청백리로 알려진 사람들이나 이황같은 사람들도 부의 증식을 위해서는 힘을 쏟은 것 같다. 퇴계의 아들이 가진 토지나 노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양반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역도 담당하지 않고 관료가 되면 국고를 마치 자기 개인의 금고처럼 사용했다. 선물이란 이름으로 뇌물이 ..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것은 단절인가 계승인가를 논한다. 단절된 것도 있고 계승된 것도 물론 있다. 조선과 조선 태조의 고향인 화령 가운데 국호로 선택해 달라고 명에 청해서 조선으로 국호가 바뀌지만 제도나 많은 부분은 고려의 것을 계승하기도 했다. 여말의 혼란한 토지제도를 과전법으로 바꾸고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대부들이 정권을 잡아 정몽주나 최영 중심의 훈구파를 축출하고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다. 하지만 고려후기를 이끈 22개 가문 중 16개 가문이 조선 시대 들어와서도 유력한 가문으로 존속했다고 '두 얼굴의 조선사'에서 ucla의 던컨 교수는 주장했다. 고려는 원나라를 천자국으로 모시고 후기에 부마국이 되었으며 노비와 토지 문제는 제도가 좀 바뀌긴 했으나 기득권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고려와 조선의 과거와 관련된 기록들.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시험은 경쟁률이 높고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장원 급제는 본인만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금수저 집안이 장원 급제에도 유리했다. 10대에 급제하는 천재들이 있는가하면 평생 과거에 메달리다가 70대에 급제하는 사람도 있었다. 향시라고 불리는 지방에서 실시하는 소과인 진사시나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300일 이상의 수업을 들어야 문과라고 하는 대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나중에 이 규정은 좀 느슨해지간 했지만. 한달에 이틀만 쉬는 성균관 생활은 빡센 수업과 시험 때문에 긴장과 피로의 연속이었다. 문과는 초시 중시 전시가 있었고 경..
우리 집 근처에 노고산이라는 나즈막한 야산이 있습니다. 서울 북한산 앞에도 노고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습니다만 이 산은 집을 출발해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30분 남짓이면 가능해서 산책하기 딱 좋은 산입니다. 나는 소화기능이 약해서 식후에는 항상 걷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산을 걸으면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이 생각납니다. 그는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살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이 산을 거의 매일 다녀옵니다. 이 산에는 호수는 없어도 습지가 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 산길을 걸으면 마음에 잔잔한 기쁨과 평화를 느낍니다.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문명..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으나 호란 이후 청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졌다. 하지만 명나라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해진 후금에 대항할 힘이 인조 정권에는 없었다. 재조지은을 상용구로 읊지만 결국 청에게 항복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도륙되고 수만에서 50만에 이르는 포로를 청나라로 보내야 했다. 한편 왜와 협력해서 청을 견제하려는 생각도 일부 있었지만 청의 감시 때문에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정묘호란은 조약을 맺음으로 어느 정도 피해갔지만 조약을 성실히 지키지 않다가 병자호란에서 된통 당하고 인조는 삼배구고두례까자 행하는 항복의식을 치른다. 부산에 와 있는 왜관은 조선의 정보를 일본으로 보내고 기회를 봐서 경제적인 실리를 챙기려 한다. 쓰시마가 왜의 정책이나 입장을 대신 전달하기도 한다. 가도에 있던 ..
정조에 관한 여러 기록들. 정조가 그렇게 뛰어난 왕이었지만 백성들의 고통과 관료들의 부패는 여전했다. 그가 죽고 나자 백성들의 고통은 더 심해졌다.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소설가 고 최인호가 1998년~1999년까지 천주교 서울대주교에서 발행되는 주보에 연재되었던 '말씀의 이삭'을 모은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만큼 천재적인 소설가이면서 가톨릭 신자인 그의 신앙고백과 같은 글들이다. 말년에 암으로 고통 받으면서 청계산 아래 살았고 불교를 소재로 한 소설 '길없는 길'과 유교를 소재로 한 소설 '유림'이 내게는 아주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기독교 관련 소설도 쓰려고 했지만 암 때문에 아마 못 쓴 것 같다. 여러 시인들의 시가 인상적으로 인용되었다. 님의 침묵( 沈默)" 한용운(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
프랑스 자두마을(plum village)에서 수행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의 수행지침서 내지는 일반인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한 책. 목갈라야나 스님이 설한 중요한 내용을 사량경이라는 책에 기록했다. 중국어본인 중아함경 89번에 승려가 대중에게 소외 당하는 이유 17가지를 말했다. 1. 불건전한 욕망에 사로잡혀 지배당하는 사람 2. 자기 자신은 칭찬하고 남은 비난하는 사람 3. 화를 쉽게 내고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 4. 화가 나서 원한을 품은 사람 5.6. 화가 나서 원한을 품고 심술이 난 사람. 화가 나서 원한을 품고 심술궂은 말을 하는 사람 7.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 친구를 비난하는 사람 8.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 친구를 무시하는 사람 9. 자신의 잘못을 지..
임진난을 겪은 후 서애 유성룡이 전쟁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위해서 쓴 책.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오희문의 쇄미록과 함께 임진난의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이순신을 천거했고 끝까지 그를 믿고 옹호했으며 칡넝쿨로 부교를 만들어 명군이 임진강을 건널 수 있게도 했다. 임진난 동안 영의정이 되어 왕을 보필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활약을 했다. 조선의 장군들은 전쟁 초반에 싸울 생각을 않고 적군이 나타나기도 전에 도망간 일이 아주 많다. 신립이나 원균은 이 책에 의하면 명장이 아니다. 권율도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긴 했으나 그 후에는 그리 뚜렷한 전공을 올리지 못했다. 이일이 오랫동안 전쟁을 겪긴 하지만 역시 뛰어난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도망을 많이 다닌다. 명군은 평양성 전투에서 일본을 속여서 이긴다. 명..
조선 시대 후기에 지역 사회의 구조는 씨족을 중심으로 한 문중이나 향교, 서원과 같은 교육 제사기관을 중심으로 세력이 결집되어 있었다. 가문이 번성하면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세거하기도 했다. 장자에게 상속권을 더 많이 줌으로 재산이 분산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었고 제사를 모시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향약이나 계원들간의 규칙도 생활의 한 지침이 되었다. 양반과 중인 그리고 천민의 3단계로 구분되기도 하고 양반과 상인 두 단계로 구분되기도 한다. 토착 세력과 유입 세력이 주도권 다툼을 히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장례등에서 서로 인력이나 재화를 보태서 처리하기도 했다. 지방 수령이나 혹은 그 지역의 유지들이 국립 학교인 향교 운영에 영향력을 미쳤다. 서원은 사설기관이지..
조선을 다녀갔거나 조선에 관한 기록들을 토대로 책이나 글을 쓴 서양인들의 기록을 모은 책. 신라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한반도의 국가들에 관한 기록이 간혹 있지만 부정확하고 조선 후기 시대에 조선을 방문하거나 중국이나 일본의 기록을 정리한 사람들의 글은 어느 정도 신뢰나 참고가 된다. 임진난 이전에는 조선왕조를 카오리 혹은 차오시엔등으로 표기했다.고려와 조선의 서양식 혹은 중국식 발음으로 보인다. 고려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직접 방문하지 않고 들은 내용을 기억에 의해 쓴 것이어서 부정확하다. 임진전쟁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등의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관한 보고서들을 올리면서 서양에 알려진다. 1668년에 하멜이 쓴 책에서 조선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서양에 알려진다. 그는 당시 퀠파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