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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1980년대의 우리 나라는 광주 민주화 운동과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시기이다. 국내에서 80년 5월에는 신군부의 잔인한 광주 학살이 있었고 그로부터 8년 뒤인 88년에는 아주 성공적인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너무 많은 죄없는 자들의 피를 흘려야 했다. 사북탄광의 광부들이 데모를 하다가 탄압을 받았고 언론은 신군부의 탄압으로 숨을 죽여야 했다. 광주학살은 아직도 일부에서는 북한의 사주에 의한 혼란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당시 언론은 사실을 제대로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청교육대도 죄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너무 많이 괴롭혔다. 민심을 얻기 위해 과외금지를 했고 대학은 졸업정원제로 많은 학생들이 좀 더 쉽게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정원의 130%가 입..
박정희 정권에서 경제개발과 가족계획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영호남의 균형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포항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해프닝이 있었다. 신민당은 내분이 일어났고 박정희는 세종대왕을 숭배하면서 자신을 그와 동일 인물로 만들려고 했다. 외래어 추방이 지나치게 시행되었다. 반상회를 통해 서로 감시하고 사회에서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택시타고 가다가 술김에 한 말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간 사람도 있었다. 북한은 판문점 도끼만행으로 미군장교들을 죽였다. 하이틴 영화가 성공하고 이덕화, 임예진 같은 스타가 탄생했다. 미국에 로비하다가 코리아게이트가 터지기도 했다. 100만불을 뇌물로 주기도 했다. 충효교육으로 국민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mbc 대학..
70년대 초반 우리 나라는 수출 증대와 중화학 공업 육성에 매진했다. 유신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박정희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두환의 하나회가 이때 이미 박정희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언론인들을 회유해서 정관계로 진출시켰다. 일본인들의 기생관광과 현지첩이 기승을 부렸다. 기생과 현지첩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화를 버는 애국자들이었다. 김대중 납치는 결국 무사귀환으로 끝났다. 서울법대 교수 최종길은 유신체재에 반대하다가 의문사를 당했다. 오일 쇼크가 터졌다. TV 1일 연속극이 붐을 이루었고 장발과 미니 스커트 단속이 심했다. 나도 장발 단속에 걸려 머리를 자른 적이 있다. 유신 헌법 개정을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은 실패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이 성공했고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가 유행..
70년대는 내가 고등학생부터 2년 정도의 직장 생활을 거쳐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군대 생활을 한 기간이다. 이 시대는 박정희의 독재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고 결국 부하의 총에 사라진 기간이다. 농촌은 급격히 붕괴되면서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때문에 도시 빈민과 노동문제가 큰 이슈였다. 전태일의 분신이나 도시산업 선교회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수출이 아니면 살 수없던 시절이었다. 정인숙이라는 여자가 살해되고 그의 아들이 박통의 아이냐 정일권의 아이냐 하는 소문이 한창 떠돌았다. 요정 정치가 극심했다. 시인 김지하가 오적을 발표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민족적인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하면 된다는 정신이 강하게 일어났다. 어용 지식인들은 박정희를 강력하게 비호했다. 언론 통제가 극심했다. 선거를 위해서 서..
60년대는 수출을 증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정부로부터 특혜 저리융자를 받은 기업들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맹호부대가 월남으로 파병되었다. 미국은 한국군의 파병을 위해서 박정희가 왠만한 잘못을 해도 눈감아 주었다. 삼성이나 재벌들의 정경유착이 심했다. 기자들이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쓰면 중앙정보부로부터 테러를 당하거나 불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TV 코미디가 인기가 많았다. 박정희 선거를 위해서 지역 분열주의를 조장했다. 경상도에는 많은 투자를 했고 호남은 박대 당했다. 3선 개헌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여 성공했다. 동백림 사건으로 윤이상등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한강 개발과 여의도를 건설했다. 북한은 1.21사태를 일으켜 김신조등을 남파했으나 실패했고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박정희는 쿠데타 후에 국가를 군대식으로 운영했다. 민정으로 돌리겠다고 약속했다가 취소했다. kbs tv 방송국이 개국하고 화폐개혁을 했지만 실패한 개혁이었다. 정치자금을 위해서 증권, 워커힐, 새나라 자동차, 빠찡꼬를 만들면서 의혹을 만들었다. 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에 파견해서 외화를 벌었다. 북에서 밀사로 내려온 황태성을 간첩으로 조작해서 사형시켰다. kbs가 운영자금을 위해서 광고를 했다. 수출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펴면서 1억불 10억불 100억불 수출을 단시간에 이루어냈다.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라는 노래와 회전의자 그리고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맨발의 청춘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최희준도 큰 인기를 얻었다.
3.15 부정 선거로 마산에서 김주열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으로 바다에 떠오르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4.19혁명은 고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지방대학들이 가세하고 서울의 대학들은 그 후에 가세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특권의식이 있었고 이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4.19는 학생 의거이다 보니 이승만이 하야한 후에도 민주당은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게 되고 신구파의 분열은 계속되었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고 이기붕 일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총리 장면과 대통령 윤보선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장면은 사람은 좋았지만 정치가로서는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미국을 너무 의존한 것 같다.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
이 책에 의하면 이승만은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자신을 절대군주로 착각하고 산 사람같다. 기독교가 이승만이 장로라는 이유 때문만으로 혹은 권력에 기생하는 정치 목사들 때문에 부정 부패의 대해서 눈감고 있었던 것 같다. 이어령은 당시 최고의 문인이었던 김동리에게 도전했고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라디오 방송은 유선을 이용한 청취도 시골에서는 있었다. tv방송도 생겼다. 가짜 이강석 사건이 생겼고 신익희에 이어 조병옥도 선거를 앞두고 죽는다. 조봉암은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을 당한다. 이승만은 한국을 세계 4대 강국이라고 선전하고 다녔다. 군인 수가 많았던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이정재나 임화수같은 깡패들이 이기붕과 손잡고 정치 테러를 했다. 재일교포 북송사건에 반대했지만 일본과 북한의 이익에..
전쟁 후에도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 부패는 계속되고 미국의 영향이 강하게 미친다. 미국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영어는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소설 자유부인이 유행했고 사사오입 개헌이 있었고 학술원, 예술원이 만들어지고 이승만 우상화는 극심해졌다. 불교 정화운동으로 조계종이 태고종을 몰아내고 대처승들은 이혼을 해야 했다. 이승만은 이런 불교 정화운동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민주당의 신익희가 선거를 앞두고 뇌졸증으로 죽는 바람에 이승만은 더 쉽게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군이 아주 부패했고 전쟁 미망인들이 어려움을 많이 겼었다. 박태선,문선명,나운몽등의 기독교 이단들이 득세했다. 골로 간다는 말은 양민들을 학살할 때 골짜기로 끌고 가서 죽인데서 나온 말이다.
50년대는 3권으로 되어 있다. 40년대가 2권이었던 것에 비해 분량이 많다. 50년대는 6.25부터 4.19전야까지의 우리 나라 상황을 기록했다. 이승만의 허풍과 무대책으로 북한군은 쉽게 서울을 점령하고 대통령 일행은 수원 대전 대구 목포 여수 부산등으로 피난을 다니며 대응한다. 미군이나 유엔군이 없었으면 남한은 쉽게 적화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한 덕분에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압록강까지 북진한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1.4후퇴가 일어나고 휴전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6.25때 좌우가 양민을 학살한 사건은 너무 많다. 노근리, 신천학살, 흥남부두 철수사건, 거창 사건, 지리산 빨치산, 국민 방위군이란 이름으로 모병해서 제대로 보급품을 주지 않아 9만명..
몽양 여운형은 좌우를 아우르면서 남북을 하나된 나라로 만드려고 노력했으며 김일성이나 이승만이 남북 단독 정부를 세우려는 것과 달리 통일 정부를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47년 7월 19일 한지근의 저격으로 암살당했다. 그는 11번째 테러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권에서도 친일파들은 여전히 정권을 잡았고 한민당은 이들 기득권 세력들이 득세했다. 제주 4.3 사건이나 여순반란에는 진압군들이 무자비하게 그리고 억울하게 죄없는 백성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청년단도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양민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미군정은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김구는 이승만의 그늘에 가렸고 임정 사람들을 처음에는 기용하려다가 너무 늦은 48년에야 남북 합작 정부를 세우려고 한 주장이 이승만의 반..
40년대를 2권으로 기록했다. 해방 전후사와 해방된 다음 해인 1946년의 일들을 신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인용해서 설명한 책. 저자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이 책을 쓰던 당시에는 전북대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등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편파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두한도 저자의 글에 의하면 우익에 편향된 사람으로 정권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우리 나라는 하지 중장이 책임자가 된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나라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처리하고 소련의 성장에 따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군정은 친일 인사들을 숙청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경찰이나 행정기관 곳곳..
이재철 목사님의 신앙관과 인격이 담긴책. 내 잘못과 실수를 깨닫게 해 준 책. 그가 이 책을 쓸 때와 지금의 우리 나라는 20년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나올 무렵에는 우리 나라 공중 화장실이 아주 더러웠던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다윗을 비고하면서 다윗은 말년에 다 비우고 잘 산 데 비해 박대통령은 말년에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심복의 총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본다. 말씀대로 바로 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이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이나 가치는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베레스 웃사의 이야기에서 스스로 자신을 쳐서 옳바로 살지 않으면 웃사처럼 하나님께 맞게 된다...
도서관에서 이 이름을 자주 보아서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함석헌의 스승이고 동서양의 철학을 나름대로 종합한 안물이고 기독교와 유교 불교 도교를 나름대로 종합한 인물이다.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말하지만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는 다른 산앙관을 가진 사람이다. 종교다원주의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고 살아서 호가 다석(多夕)이다. 책은 듬성듬성 읽었다. 구원관은 믿음에 인간의 노력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 연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말들을 많이 만들어 사용한다.
논어를 다시 읽다. 경전은 읽을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 있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위정(爲政)〉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보편적인 학문을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로워지기 쉽다.” 덕불고 필유인(德不孤必有隣)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曰(자왈)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요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니라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道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문장력이 이렇게도 없는 사람도 책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다. 내가 선의 세계를 너무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자가 선방을 운영한다는 설명을 보니 선객들은 글을 이렇게 쓰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앞부분에는 그의 어린 시절 가난해서 힘들었 이야기와 절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해 동학사의 강원에서 강사가 되어 살던 이야기와 해인사 조실 스님이 되어 큰 스님으로 대접받고 잘 살 수 있었는데 어느날 홀연히 그 직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면서 기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말년에는 삼수갑산에서 훈장을 한 이야기는 최인호의 길없는 길에서도 이미 이미 읽은 내용이다. 젊은 시절 연정을 가졌던 여인이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자 그 집으로 찾..
제목에 있는 융합적 사고라는 말 때문에 읽게 되었다. 실제로 글을 쓰고싶어 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지침서라고 할까 그런 책이다. 그가 주장하는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은 1. 글의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2. 독자층을 고려하여 기술해야 한다. 3. 내용은 진실하고 근거는 타당해야 한다. 4.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여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5. 어법에 맞게 서술해야 한다. 6. 내용의 흐름에 따라 단락 구분을 해야 한다. 좋은 말하기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 1. 말하기 전에 사고해야 한다. 2. 청자가 처한 상황과 정보를 인지하며 말해야 한다. 3. 상대의 지향과 나의 지향을 일치시킨다. 4. 상대의 이익을 역지사지 괸점에 비추어 말한다. 5. 말의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
계명대 교수가 세계사를 아주 폭넓게 설명했다. 서양중심의 세계사에서 한발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면 르네상스는 서양만의 산물이 아니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와 중동의 이슬람 지식이 더해져서 이루어 졌다. 저자는 세계를 동서양으로 2분하지 않고 동반구 중반구 서반구로 3분해서 설명한다. 중반구는 지중해 오른쪽에서 중국 서쪽 까지 즉, 지금의 이슬람 지역인 중앙아시아의 ~스탄 땅이고, 유럽이 서반구, 중국과 그 오른쪽 그리고 동남아를 동반구로 분류했다. 그리스 로마의 지식은 중세의 암흑기 동안 서양에서는 거의 사장되어 있었지만 이슬람 세계는 방대한 이 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공부하면서 800년에서1,500년 사이에 아랍의 문화나 지식은 세계 최대의 것이 되었다. 중세 기독교는 철학이나 자연 과학이 신학에 도움..
철종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가의 글이 혼란하고 부패한 조선 말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철종은 왕이 될 당시 일자무식은 아니었고 소학과 통감 정도는 읽었다고 스스로 말했다. 안동 김문의 외척 세력이 너무 강하게 작용해서 그가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출신이고 강화 출신이다. 후궁의 품계 빈 정1품 귀인 종1품 소의 정 2품 숙의 종2품 소용 정3품 숙용 종3품 소원 정4품 숙원 종4품 세자 후궁의 품계 양제 양원 승휘... 조와 종 개창위조 수성위종(開創爲祖, 守成爲宗) 공이 있는 임금은 조, 덕이 있는 임금은 종이다.조유공종유덕(祖有功宗有德) 조를 종보다 높게 생각했다. 영조와 정조도 원래는 영종과 정종이었는데 고종 때 영조와 정조로 ..
바흐부터 클래식 음악가 12명을 청소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한 책. 바흐 집안에는 7대에 걸쳐서 세계 음악사에 나올만큼 위대한 음악가가 약 50명 이상 배출되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천재이기도 하지만 노력도 엄청 한 사람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였다. 베토벤은 어릴 때 아버지가 모차르트같은 스타를 만들려고 엄청 공부를 시켰다. 파가니니는 워낙 자신의 바이올린 기교가 뛰어나서 어려운 곡을 많이 작곡했다. 쇼팽은 수줍고 예민한 그리고 순수하고 고귀한 연민을 아는 인간 브람스는 자유롭지만 고독한 스타일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법을 공부한 법률가이며 음악가. 드보르작은 기차를 매우 좋아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스탈린의 독재와 음악 검열 때문에 러시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