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평화누리길 3코스
- 북한산 만포면옥
- 단양 구담봉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김포 문수산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미시령 성인대
- 평화누리길 4코스
- 명동 성당 미사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해파랑길 8코스
- 김포 한재당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평화누리길 7코스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해파랑길 48코스
- 군위 팔공산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해파랑길 20코스
- #강화나들길 3코스
- 성인대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앙코르와트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Today
- Total
목록독서 (856)
노래하는 사람
3.15 부정 선거로 마산에서 김주열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으로 바다에 떠오르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4.19혁명은 고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지방대학들이 가세하고 서울의 대학들은 그 후에 가세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특권의식이 있었고 이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4.19는 학생 의거이다 보니 이승만이 하야한 후에도 민주당은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게 되고 신구파의 분열은 계속되었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고 이기붕 일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총리 장면과 대통령 윤보선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장면은 사람은 좋았지만 정치가로서는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미국을 너무 의존한 것 같다.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
이 책에 의하면 이승만은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자신을 절대군주로 착각하고 산 사람같다. 기독교가 이승만이 장로라는 이유 때문만으로 혹은 권력에 기생하는 정치 목사들 때문에 부정 부패의 대해서 눈감고 있었던 것 같다. 이어령은 당시 최고의 문인이었던 김동리에게 도전했고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라디오 방송은 유선을 이용한 청취도 시골에서는 있었다. tv방송도 생겼다. 가짜 이강석 사건이 생겼고 신익희에 이어 조병옥도 선거를 앞두고 죽는다. 조봉암은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을 당한다. 이승만은 한국을 세계 4대 강국이라고 선전하고 다녔다. 군인 수가 많았던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이정재나 임화수같은 깡패들이 이기붕과 손잡고 정치 테러를 했다. 재일교포 북송사건에 반대했지만 일본과 북한의 이익에..
전쟁 후에도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 부패는 계속되고 미국의 영향이 강하게 미친다. 미국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영어는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소설 자유부인이 유행했고 사사오입 개헌이 있었고 학술원, 예술원이 만들어지고 이승만 우상화는 극심해졌다. 불교 정화운동으로 조계종이 태고종을 몰아내고 대처승들은 이혼을 해야 했다. 이승만은 이런 불교 정화운동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민주당의 신익희가 선거를 앞두고 뇌졸증으로 죽는 바람에 이승만은 더 쉽게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군이 아주 부패했고 전쟁 미망인들이 어려움을 많이 겼었다. 박태선,문선명,나운몽등의 기독교 이단들이 득세했다. 골로 간다는 말은 양민들을 학살할 때 골짜기로 끌고 가서 죽인데서 나온 말이다.
50년대는 3권으로 되어 있다. 40년대가 2권이었던 것에 비해 분량이 많다. 50년대는 6.25부터 4.19전야까지의 우리 나라 상황을 기록했다. 이승만의 허풍과 무대책으로 북한군은 쉽게 서울을 점령하고 대통령 일행은 수원 대전 대구 목포 여수 부산등으로 피난을 다니며 대응한다. 미군이나 유엔군이 없었으면 남한은 쉽게 적화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한 덕분에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압록강까지 북진한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1.4후퇴가 일어나고 휴전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6.25때 좌우가 양민을 학살한 사건은 너무 많다. 노근리, 신천학살, 흥남부두 철수사건, 거창 사건, 지리산 빨치산, 국민 방위군이란 이름으로 모병해서 제대로 보급품을 주지 않아 9만명..
몽양 여운형은 좌우를 아우르면서 남북을 하나된 나라로 만드려고 노력했으며 김일성이나 이승만이 남북 단독 정부를 세우려는 것과 달리 통일 정부를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47년 7월 19일 한지근의 저격으로 암살당했다. 그는 11번째 테러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권에서도 친일파들은 여전히 정권을 잡았고 한민당은 이들 기득권 세력들이 득세했다. 제주 4.3 사건이나 여순반란에는 진압군들이 무자비하게 그리고 억울하게 죄없는 백성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청년단도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양민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미군정은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김구는 이승만의 그늘에 가렸고 임정 사람들을 처음에는 기용하려다가 너무 늦은 48년에야 남북 합작 정부를 세우려고 한 주장이 이승만의 반..
40년대를 2권으로 기록했다. 해방 전후사와 해방된 다음 해인 1946년의 일들을 신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인용해서 설명한 책. 저자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이 책을 쓰던 당시에는 전북대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등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편파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두한도 저자의 글에 의하면 우익에 편향된 사람으로 정권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우리 나라는 하지 중장이 책임자가 된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나라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처리하고 소련의 성장에 따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군정은 친일 인사들을 숙청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경찰이나 행정기관 곳곳..
이재철 목사님의 신앙관과 인격이 담긴책. 내 잘못과 실수를 깨닫게 해 준 책. 그가 이 책을 쓸 때와 지금의 우리 나라는 20년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나올 무렵에는 우리 나라 공중 화장실이 아주 더러웠던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다윗을 비고하면서 다윗은 말년에 다 비우고 잘 산 데 비해 박대통령은 말년에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심복의 총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본다. 말씀대로 바로 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이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이나 가치는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베레스 웃사의 이야기에서 스스로 자신을 쳐서 옳바로 살지 않으면 웃사처럼 하나님께 맞게 된다...
도서관에서 이 이름을 자주 보아서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함석헌의 스승이고 동서양의 철학을 나름대로 종합한 안물이고 기독교와 유교 불교 도교를 나름대로 종합한 인물이다.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말하지만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는 다른 산앙관을 가진 사람이다. 종교다원주의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고 살아서 호가 다석(多夕)이다. 책은 듬성듬성 읽었다. 구원관은 믿음에 인간의 노력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 연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말들을 많이 만들어 사용한다.
논어를 다시 읽다. 경전은 읽을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 있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위정(爲政)〉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보편적인 학문을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로워지기 쉽다.” 덕불고 필유인(德不孤必有隣)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曰(자왈)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요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니라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道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문장력이 이렇게도 없는 사람도 책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다. 내가 선의 세계를 너무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자가 선방을 운영한다는 설명을 보니 선객들은 글을 이렇게 쓰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앞부분에는 그의 어린 시절 가난해서 힘들었 이야기와 절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해 동학사의 강원에서 강사가 되어 살던 이야기와 해인사 조실 스님이 되어 큰 스님으로 대접받고 잘 살 수 있었는데 어느날 홀연히 그 직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면서 기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말년에는 삼수갑산에서 훈장을 한 이야기는 최인호의 길없는 길에서도 이미 이미 읽은 내용이다. 젊은 시절 연정을 가졌던 여인이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자 그 집으로 찾..
제목에 있는 융합적 사고라는 말 때문에 읽게 되었다. 실제로 글을 쓰고싶어 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지침서라고 할까 그런 책이다. 그가 주장하는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은 1. 글의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2. 독자층을 고려하여 기술해야 한다. 3. 내용은 진실하고 근거는 타당해야 한다. 4.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여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5. 어법에 맞게 서술해야 한다. 6. 내용의 흐름에 따라 단락 구분을 해야 한다. 좋은 말하기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 1. 말하기 전에 사고해야 한다. 2. 청자가 처한 상황과 정보를 인지하며 말해야 한다. 3. 상대의 지향과 나의 지향을 일치시킨다. 4. 상대의 이익을 역지사지 괸점에 비추어 말한다. 5. 말의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
계명대 교수가 세계사를 아주 폭넓게 설명했다. 서양중심의 세계사에서 한발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면 르네상스는 서양만의 산물이 아니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와 중동의 이슬람 지식이 더해져서 이루어 졌다. 저자는 세계를 동서양으로 2분하지 않고 동반구 중반구 서반구로 3분해서 설명한다. 중반구는 지중해 오른쪽에서 중국 서쪽 까지 즉, 지금의 이슬람 지역인 중앙아시아의 ~스탄 땅이고, 유럽이 서반구, 중국과 그 오른쪽 그리고 동남아를 동반구로 분류했다. 그리스 로마의 지식은 중세의 암흑기 동안 서양에서는 거의 사장되어 있었지만 이슬람 세계는 방대한 이 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공부하면서 800년에서1,500년 사이에 아랍의 문화나 지식은 세계 최대의 것이 되었다. 중세 기독교는 철학이나 자연 과학이 신학에 도움..
철종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가의 글이 혼란하고 부패한 조선 말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철종은 왕이 될 당시 일자무식은 아니었고 소학과 통감 정도는 읽었다고 스스로 말했다. 안동 김문의 외척 세력이 너무 강하게 작용해서 그가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출신이고 강화 출신이다. 후궁의 품계 빈 정1품 귀인 종1품 소의 정 2품 숙의 종2품 소용 정3품 숙용 종3품 소원 정4품 숙원 종4품 세자 후궁의 품계 양제 양원 승휘... 조와 종 개창위조 수성위종(開創爲祖, 守成爲宗) 공이 있는 임금은 조, 덕이 있는 임금은 종이다.조유공종유덕(祖有功宗有德) 조를 종보다 높게 생각했다. 영조와 정조도 원래는 영종과 정종이었는데 고종 때 영조와 정조로 ..
바흐부터 클래식 음악가 12명을 청소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한 책. 바흐 집안에는 7대에 걸쳐서 세계 음악사에 나올만큼 위대한 음악가가 약 50명 이상 배출되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천재이기도 하지만 노력도 엄청 한 사람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였다. 베토벤은 어릴 때 아버지가 모차르트같은 스타를 만들려고 엄청 공부를 시켰다. 파가니니는 워낙 자신의 바이올린 기교가 뛰어나서 어려운 곡을 많이 작곡했다. 쇼팽은 수줍고 예민한 그리고 순수하고 고귀한 연민을 아는 인간 브람스는 자유롭지만 고독한 스타일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법을 공부한 법률가이며 음악가. 드보르작은 기차를 매우 좋아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스탈린의 독재와 음악 검열 때문에 러시아를 ..
반인은 서울 반촌에 거주하는 성균관 공노비였다. 소를 도살하고 고기를 유통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기도 했다. 성균관 노비였지만 성균관에서 급료를 받지 않았고 대신 소를 도축하는 현방 전매권을 얻었다. 여관과 고리대금업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은 소를 도살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들은 도축을 했고 국가에 속전 곧 세금을 납부했다. 형조, 한성부, 사헌부 삼법사가 이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들였고 성균관도 이들에게서 일부 분량의 탈취를 했다. 후에는 제사를 모시는 각 궁방(명례궁, 수진궁, 어의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등)의 궁인들이 싼 값으로 사 가거나 외상으로 가져가고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궁인들의 탈취도 극심했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가 성균관에 비용을 거의 지급하지 ..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너무 전문적이어서 아마추어가 읽기에는 자루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조선 초기의 전제는 과전법 - 직전법 - 관수관급제로 변했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 경연을 가장 많이 한 왕은 성종이다. 세종보다 횟수나 빈도가 월 29회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13살에 왕위에 오르면서 능력을 키우기도 해야 했고.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들에게 인정을 받는 방법이기도 했다. 세종 시대에 만들어진 사가독서제가 세조때에 자기의 집권을 반대하는 집현전 학자들 때문에 집현전과 함께 없어졌다가 성종 7년에 다시 부활했다. 집현전도 명칭은 홍문관으로 되었지만 기능은 집현전의 기능을 했다. 성종은 교서관이란 출판기구를 만들었고 성균관 안에 존경각이란 도서관도 만들었다. 세종은 언론에 관해..
프랑스 역사학자인 마르크스 주의자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쓴 책이다. 앞부분은 어려워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제목처럼 역사가 권력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 주의자답게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번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학의 역할은 미래로의 문을 활짝 여는 데 있다. 과거는 미래와 관련을 가질 때에만 중요한 것이며 현실은 과거를 필요로 한다.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재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결국 역사 지식의 목적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실제적 행동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에게만 내맡겨지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E.H.카(Edward Hallett Carr)는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의 사회를 이해하고 현대 사회를 더욱 더 효과적으로 지배할 ..
소설이다. 사실과 상상을 적절히 사용한 책.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책사로 그를 세조로 만든 인물이다. 아 소설에서는 안평대군도 왕좌에 욕심이 있는 인물로 그리면서 라이벌로 묘사했다. 권람과 홍윤성도 그의 편이었고 안평의 책사로는 이현로가 등장한다. 압구정이 그의 호다. 그는 병약한 문종이 죽고김종서와 황보인이 실권을 잡고 있을 때 수양의 심복이 되어 그들을 죽이고 안평도 역적으로 몰아 죽인다. 살생부를 만들어 그의 편이 아닌 자들을 다 죽인다. 하지만 자신은 수양이나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고 평생을 잘 살다가 편안히 죽는다. 그의 두 딸은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비와 성종의 비가 된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했다가 사사하고 사육신들 가운데도 신숙주처럼 자기에게 돌아선 사람들은 살려주었지만 성..
중앙 여고 국어 선생님이 쓴 책인데 아주 좋다. 대학 교수가 아니어도 부지런히 공부하면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9명의 우리 나라 선비들에 관해 쓰면서 국어 선생님답게 그들의 시들도 해설했다. 퇴계는 손자 안도가 혼인 했을 때 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이렇게 썼다.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므로 비록 지극히 친밀한 사이기는 하지만 또한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조심해야 할 처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부부간에 예를 갖추어 공경함을 싹 잊어버리고 너무 가깝게만 지내다가 마침내는 서로 깔보고 업신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퇴계가 첩을 들인 이유는 과거 공부등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는데 첫 아내가 죽자마자 재혼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