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해파랑길 20코스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성인대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미시령 성인대
- 평화누리길 7코스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북한산 만포면옥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군위 팔공산
- 앙코르와트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평화누리길 4코스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김포 문수산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명동 성당 미사
- 단양 구담봉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해파랑길 48코스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김포 한재당
- #강화나들길 3코스
- 평화누리길 3코스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해파랑길 8코스
- Today
- Total
목록독서 (856)
노래하는 사람
삼국 유사를 이채강과 이어령의 대담 형식으로 쓴 책. 신화를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처용 이야기를 비롯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분석한다. 저자인 일연이 불교의 중이었기 때문에 불교적인 영향이 강하다. 인간이 된 곰과 환웅의 결혼으로 단군이 태어나는 이야기에서 우리 민족은 영웅보다는 성자 이야기를 좋아하고 성자는 악한을 무찌르는 용기보다 스스로를 이기는 극기를 중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찬기파랑가, 정읍사,수로부인, 달을 노래하는 글들, 화랑 이야기등 삼국 유사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을 두 사람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정읍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달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보다는 달과 관련된 글이 많고 특히 동양과 우리 나라는 더 그러하다. 처용가에는 달에 홀린 동해 용왕..
고종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동안 무능한 왕으로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식민사관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갖게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의 억압 아래서 나름대로 노력한 것은 맞지만 나라를 망하게 했으니까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동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자치통감은 294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 한나라 편을 3권으로 번역한 것인데 그 중 1권이다. 사마광은 전국 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기록했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 경연에서 이 책을 공부하기 원하는 왕들이 많았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기전체로 쓴 열전은 읽기가 쉬운데 이 책은 편년체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다. 어려운 용어들은 뒤에 해설을 첨부하긴 했지만 한자를 잘 모르는 내게는 이해가 쉽자 않은 부분도 많다. 황제와 신하들이 정치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한나라 초기에는 흉노가 잘 다스려지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덕치를 강조하는 신하들이 많다.
광해군은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의 신하들에 의해 평가된 왕이어서 정확한 평가라고 하기 어렵다. 폐모살제로 대표되는 그의 악행이 강조되지만 임진왜란 때 어버지 선조를 도와 백성들을 보살폈고 명청 교체기에 실리외교를 통해 국익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붕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과 말년에 김개똥같은 상궁의 치마폭에 쌓여 산 것도 그가 실권한 한 원인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양쪽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 비슷한 상황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느 한쪽편에 붙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본 느낌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지능이나 생명을 보고 있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괸해서는 더 발달하고 우리의 일들을 많이 대신하기는 하겠지만 스스로 자기를 복제할 능력이 생겨야 진정한 의미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런 시대는 당분간은 오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인간의 지능이라는 것은 다양한 환경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능 지수는 언어와 도형에 관한 능력을 측정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반적인 능력을 측정하기에는 부족하다. 시기는 모방과 관찰학습이 필요한 상황을 알리는 오류신호다. 시기의 감정이 든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충분한 경험을 쌓고 지식을 축적할 때까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더 나을 ..
선조는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일과 이순신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은 것과 또 그의 기간에 붕당정치가 시작했다는 점 때문에 부정적인 인상이 강한 왕이다. 그는 조선 왕조 최초로 정비의 후사가 아니면서 왕이 되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잇는 광해군도 정비의 아들이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도망을 가긴 했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견디면서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고 40년이 넘는 재위기간을 신하들과 싸우면서도 견뎌냈다. 학자왕으로서의 재능은 뛰어났으나 우유부단하고 통치에는 그다지 뛰어났다고 할 수 없다. 임진난때 도성을 버리고 요동으로 갈 생각까지 했으니 자신의 안위에만 너무 집착하고 백성들과의 약속을 쉽게 어겼다. 오죽하면 일부이긴 하겠지만 백성들이 왜군을 환영하고 궁에 불을 지르기까지 ..
영조 어록에서 발췌한 것들을 모은 책. 이 글만 본다면 영조는 백성을 하늘같이 생각한 왕이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비정한 왕이었지만 나름대로의 고심이 컸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정신병이 심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탕평책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균역법을 시행했고 청계천을 준설했으며 여종의 공납을 정지시켰다. 첩실의 자식도 적통을 잇게 했다. 욕망을 경계하도록 본인과 자손들에게 계속 가르쳤다.
한중일을 연구하는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의 사람들이 쓴 글들을 묶었다.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으로 쓴 글들이 많다는 느낌이다. 보수 언론에 대해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면 욕하겠다는 생각도 조금 든다. 일본인은 일상 생활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인형을 아주 좋아하고 심지어는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본의 다도는 정식으로 하면 4시간 정도 걸린다. 가루로 만든 말차가 일반적이다.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하는 장인들이 많다. 기초과학이 발달했다. 아작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익숙하다. 태어나면 신사에서 복을 빌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죽으면 절에 가서 복을 비는 나라. 일본 만화는 아직도 세계 제일의 힘을 가지고 있다. 독서열이 엄청 센 나라다. 하루에 책을 한권씩 꼬박꼬박..
숙종은 그야말로 준비된 왕으로 태어났다. "나는 조선의 군왕으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14살의 어린 나이에도 수렴청정없이 왕위에 올랐고 평생 열심히 일했다. 재임 기간에 세번의 환국이 보여주듯이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등용하면서 국정을 주도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승도 쉽게 갈아치울만큼 강력한 왕권을 수립했다. 장희빈과의 염문은 사실 숙종 전체 치세에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장희빈은 그 어미부터 미모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송시열과 숙종 두 사람이 당시의 조선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다. 하지만 환국을 겪으면서 송시열은 사사당한다. 남인은 부리기 쉽지만 무능하고 서인은 유능하지만 부리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 숙종의 생각이었다.
해외 여행이 어렵던 조선 시대에 자의나 타의로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소개한 책. 조선 통신사들은 일본을 다녀오면서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갖기도 했지만 그들이 서양 문물을 수입하면서 발달한 도시를 보면서 부러움을 갖기도 했다. 중국에 공녀를 보내야 하는 조선의 고민도 있다. 공녀들 가운데는 황제의 첩이 되어 영화를 느리기도 하지만 이들은 황제가 죽으면 함께 순장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공녀들은 중국인들의 성적인 노리개가 되었다. 유리창을 찾은 조선 실학자들의 부러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노걸대라는 중국어 회화책은 스토리가 있는 실용적인 회화전문 서적이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더 유용했다. 민영환 나혜석 이순탁등은 당사 유럽과 마주도 여행했다. 여운형은 소련의정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고비사막을 ..
제목처럼 문화인류학 개론서이면서 소개하는 책이다. "차이는 존중하되 차별은 배격한다." 서구문화가 경제력과 힘을 바탕으로 18세기 이후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각 지역의 다른문화들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한 방법이다.
중종 시대가 조선의 유교 국가화와 사대가 크게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는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정권을 잡음으로 인한 정통성의 부족을 중화와 성리학에 의존해서 강화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 이 시대는 소중화 의식이 크게 일어났고 명나라와의 관계도 군신관계에서 부자관계로 변하면서 명나라에 대해서 절대적인 추종의 관계로 변한다. 조광조 일파가 축출되는 기묘사화를 통해서 사림이 퇴출된다. 이는 의리와 현실의 괴리로 보아야 한다. 대학연의와 소학으로 왕과 개인을 교육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났다.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이었지만 절의를 지켰기 때문에 문묘에 종사되고 조광조를 비롯한 4현과 이황의 5현을 문묘에 종사하는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제목처럼 연산군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연산군은 왕도주의자가 아니고 패도주의자이며 신권 위에 강력한 왕권을 두려고 했다. 섹스 중독자가 아니고 낭만적이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무오사화는 훈구파와 사림의 대립으로 보고 신권세력의 도전에 대한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지로 본다. 갑자사화는 폐비사건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좀 과잉방어이긴 하지만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연산군 시대는 아버지 성종대에 이어 태평성세였다. 군신공치는 사실은 신권이 왕권을 견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삼년상은 정확히 말하면 2년 3개월 즉 27개월이다.
수학의 역사와 수학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설명한 책. 미적분에 대한 설명은 내가 아 부분을 전혀 몰라서 이해하기 어렵다. 언어 결정론에 의하면 인간의 사고가 언어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사고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재미있는 문제 하나. 1. 1~9 사이의 숫자 하나를 생각. 2. 그 숫자에 9를 곱한다. 3. 그 숫자가 두 자리면 두 숫자를 더한다. 4. 그 숫자에서 4를 뺀다. 5. 그 숫자를 제곱한다. (1~9 사이 숫자의 9의 배수는 앞뒤의 숫자를 더하면 언제나 9가 되기때문에 9에서 4를 뺀 숫자의 제곱은 25가 된다.)
세종대의 문화 8가지를 설명한책. 1장. 세종대의 역사와 문화 2장. 세종대의 제도문물 정비 3장. 세종대의 언어정책과 훈민정음의 창제 4장. 세종대의 문풍진흥책 5장. 세종대 집현전 문인의 문학활동 6장. 세종대의 서사 문학 7장. 세종대 음악정책의 전개 양상과 특성 8장. 세종대의 과학기술로 나누어 설명했다.
앞에 읽은 책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와 내용과 저자가 같아서 앞책의 뒷부분인 청년기 이후의 세종만 읽었다.(409~483쪽) 젊은 시절의 세종과는 달리 말년의 세종은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의 노인이 된다. 그리고 불교에 깊이 심취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는 해동요순이라고 실록이 기록할만큼 뛰어난 왕이었다. 아버지 태종과 달리 다른 아들들에게 정치를 시킨 것이 문종 이후 단종의 비극을 불러일으킨 요인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청년기 까지의 세종 대왕을 왕조실록의 기록과 비교하면서 설명한 책. 아버지 태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을 때 그는 충분히 준비된 왕이 아니어서 아버지가 죽을 때 까지 4년간은 거의 허수아비 왕이었다. 그후 열심히 공부한 덕에 우리가 아는 위대한 왕이 되었다. 불교를 옹호했고 풍수도 무시하지 않았다. 초창기의 세종은 신하들의 힘에 눌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하들을 압도하게 된다. 유학과 특히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면서 신하들을 능가할 수 있었다. 변계량이 초기에 많이 도왔다. 자치통감을 경연에서 강의하도록 요구했다. 처음에는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실행했다. 정인지가 훈민정음 창제에도 많은 기여를 했고 입 안의 혀처럼 세종을 잘 도왔다.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를 극렬히 반대했지만 결국은 논리적으로도..
조선의 전문가 10명을 소개한 책. 등산과 여행에 전문가가 된 정란 바둑기사 정운창 천민 출신 화가 최북 조각가 정철조 무용가 운심 책 브로커 조신선 원예가 유박 천민 시인 이단전 음악가 김성기 과학 기술자 최천약을 소개하고 있다. 창해 정란은 경상도 사대부 출신이면서 당시 금강산을 4번이나 올랐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다 올랐다. 그의 스승 신유한은 서얼 출신이면서도 문과에 장원급제한 실력자다. 그는 산에 오를 때나 여행할 때 청노새 한마리, 어린 종 한 명, 보따리 하나, 이불 한 채였다. 당시 식자들은 등산할 때 친구들과 함께 기생과 악공들을 동반하고 말을 타거나 힘들면 도중에 중들을 동원해서 남여(뚜껑없는 가마)를 타고 오르기도 했다. 바둑 기사 정운창은 고흥 출신이다. 우리 나라 근현대의 국수들..
선비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 준 책(강추!) 제목처럼 우리가 아는 훌륭한 선비는 이 땅에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부분 뛰어난 선비는 있지만 정치가로서의 선비는 다들 낙제점이다.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고 산림이라고 하는 선비들도 뒤에서 그 제자들을 조종했다. 최근 30~40년 사이에 선비의 좋은 면만 강조한 글들이나 주장들이 많이 나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 조선의 선비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권력을 독점한 계급이었다. 유교의 가르침을 현실에서는 계급의 특권을 지키는 데 사용했다. 충과 효도 수직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다. 말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있있다. 조선은 가난한 나라였고 선비가 백성을 수탈하는 사회였다. 선비는 ..
조선 왕과 왕비들의 묘를 설명한 책 집권한 왕은 27명이었지만 왕릉은 40개다. 북한에 정종과 그 부인의 능인 후릉과 또 하나의 능인 재릉 2기가 있다고 한다. 능을 조성하는데도 태종대의 박자청의 공이 상당히 크다. 건축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박자청은 왕릉 조성에도 큰 공을 세웠다. 박자청을 보면 신분의 귀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왕릉들은 이장도 하고 합장도 한다. 하나의 정자각에 두개의 능이 있는 동원이강릉도 있고 두 능이 나란히 있는 쌍릉도 있고 삼릉도 있다. 상하로 있는 능도 있고 한 능 안에 2명이나 3명이 함께 묻힌 경우도 있다. 고종 이후 황제국이 되면서 능의 형태도 달라진다. 황제국에 걸맞는 능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다.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은 풍수지리에 상당한 지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