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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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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kbs드라마 정도전 팀에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조선의 거의 모든 기틀을 다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말 토지 제도의 문란으로 귀족들은 엄청난 토지를 소유했지만 일반 농민들은 송곳 꽂을 자기 땅도 가질 수 없었다. 고려가 망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토지를 일부 권력자들 즉, 구가세족들이 독점한 것이라고 말한다. 부의 양극화가 고려의 멸망을 불러왔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도 부의 편중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이방원에게 죽기 전 태조가 아파서 누운것이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다. 저자는 만약 태조가 눕지 않고 조선이 여진족이나 몽골족과 연합해서 명나라를 쳤다면 승패를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성계는 원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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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일대기를 조목별로 세밀하게 설명했다. 현대인에게도 꼭 필요한 그의 가르침은 시대가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도 퇴계학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 퇴계는 6살 때 이미 학자의 법도를 갖추어 매일 아침 자기 혼자서 머리를 빗질하고 몸을 단정히 할 수 있었다. 8살 때는 형이 칼에 손을 베어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할반지통(자기 몸을 찢는 듯한 아픔, 형제가 서로 아끼는 지극한 우애를 말함)을 느껴 울 정도로 우애깊은 소년이었다. 손윗사람에게는 공손하였고 누구에게든 늘 공경하는 태도로 대했다. 조심이 늘 몸에 배어 있었다. 천자문은 이웃 노인에게 배웠고 학문의 지혜를 열어준 사람은 숙부인 송재공이었다. 요산요수는 인성을 기르는데 큰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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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통신사를 연구한 신기수에 관한글이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그의 활동을 주로 다루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후 조선과 일본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많은 노력을 한다. 그 일환이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이다. 일본 사절은 서울까지 올라오는 것을 조선 정부가 싫어해서 부산에 있는 왜관까지만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에도시대는 철저한 쇄국시대로 인식되고 있지만 조선통신사는 양국의 선린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우익들은 간혹 통신사를 일본의 쇼군이 바뀔 때마다 조공을 바치러 온 조선 사절로 비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조선의 수준 높은 문물을 일본에 전해준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 통신사들에게 글이나 그림을 얻으려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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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종교학과와 총신 신대원을 졸업하고 봉천동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의 책이다.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설명한다. 예수님이 잡히고 고문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장면들을 자세히 묵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말하고 있다. 우리 욕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지만 그분은 한결같이 우리를 지지하고 돌보신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바다의 배 위에서 만났을 때 망설임없이 바다로 뛰어든 사건은 지금까지 망설이고 배신하던 모습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베드로는 달라졌다. 그분을 알아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베드로와는 전혀 다른 베드로가 되었다. 이때는 위험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부활하신 주님의 어떤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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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홍대에서 미술학 박사를 받았다. 글전반이 완전 전문가를 위한 글이라는 생각과 다른 미술학자들 내리까는 분위기로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읽다가 도중에 그만 두었다. 다만 다른 글에서도 본 적이 있는 진경산수화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실경산수화와 진경산수화의 구분이 애매하다는 것쯤으로 이해된다. 겸재가 장동 김씨들의 후원을 받았고 김창흡과 사천 이병연과 친밀했다고 한다. 인왕제색도가 이병연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다른 학자의 주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그 주장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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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을 소개한 책. 수록된 선비들은 보한재 신숙주 사숙재 강희맹 매월당 김시습 화담 서경덕 면앙정 송순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북창 정렴 사암 박순 송암 권호문 내암 정인홍 율곡 이이 송강 정철 손곡 이달 백호 임제 어유당 유몽인 교산 허균 서포 김만중 성호 이익 청담 이중환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다산 정약용 매천 황현이다. 보한재 신숙주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변절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그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세종대에서부터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6대에 걸쳐 조정에서 국정을 보필했다.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등 7개국어에 능통했다고 하며 동국통감과 경국대전을 완성한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변절 때문에 숙주나물이란 말이 생기기도 했지만 사육신의 충절 못지않게 그의 업적도 찬란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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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을 저자가 직접 찍고 썼다. 저자의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있을까 했는데 그게 내게 현실이 되었다고 말한다. 젊을 때부터 농촌 교회 목회와 인도 선교에 헌신했다. 시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그리스도와 인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평생을 살기 원하는 분이다. 현재의 인도는 힌두교 정권이 다른 종교를 탄압하고 기독교 선교사들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도 교회는 자립보다는 해외 교회들의 물질적 도움을 바라면서 살아온 것 같다. 신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립하기를 저자는 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을 그렇게 교육하고 있다. 가난과 고독과 주위의 멸시와 핍박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당연한 일로 알고 살아가는 저자에게서 도전을 받는다. 선진국의 탐욕이 히말라야 산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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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삶을 다룬 책 왕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신하들에 의해 휘둘리기도 한 사람이었다. 태종같이 왕권이 강력한 왕들도 있었지만 인척이나 신하들, 사림들에게 휘둘린 왕들도 있었다. 왕위 계승은 선왕의 사망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왕의 취임식은 장례 중에 하루 잠깐 하는 것이고 그후에는 바로 다시 장례기간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왕의 취임식은 화려할 수 없었다. 왕의 적장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는 정통성에 시비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왕권이 불안했다. 신하들이나 인척들 가운데 모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항상 경계해야 했다. 국왕의 행차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함부로 자주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는 큰 이벤트였다. 국왕의 가장 큰 특권이자 의무 가운데 하나가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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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일상에 관한 글들을 여러 사람이 썼다. 왕의 교육, 왕비의 탄생,왕의 평소 일하는 모습, 임금이 시를 짓는 뜻, 제왕학, 궁궐, 왕의 식성, 왕실의 행차, 왕이 공식적으로 술 마시는 날, 왕의 죽음, 종묘등에 관해서 썼다. 국왕과 왕비가 침전에서 만나는 것을 합궁이라 한다. 왕비의 침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은 용은 국왕을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용(국왕)이 자신의 대를 이을 용(왕자)을 생산하는 신성한 장소를 다른 용(용마루)이 눌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왕자가 최초로 배우는 책은 소학으로 그 내용은 초학자가 오륜을 습득할 수 있게 기본적인 예절교육으로 채워져 있다. 왕자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야 했다. 정조는 천부적이라고 할 정도로 활을 잘 쏘았다. 1795년 화성행궁에서 혜경궁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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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의 한국통사중 일부를 역해했다. 원저는 한문으로 쓰였고 방대한 분량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대로 1865년부터 1911년까지의 기간을 3편 114장으로 지어 韓國痛史(한국 통사)라고 명명했다. 임오군란, 갑오개혁, 동학등을 다루었다. 동학을 안 좋은 시각으로 본 것 같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경복궁 중건은 비난했지만 그런대로 정치를 잘 한 사람으로 보았고 러일청이 우리 나라에 미친 영향력에 관해서도 다룬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도 다루고 우리 군이 프랑스와 미국군을 무찔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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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다산독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3090420887958 다산의 정계시절과 유배시기 중 다산 초당에 들어가기 까지의 기간을 다루었다. 저자가 천주교인이어서인지 다산을 천주교 신앙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 배교 선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암암리에 천주교인들을 도와주고 약하지만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 같다. 강진 유배시절에 이정과 같은 제자들이 나중에 등을 돌린 사실들은 흥미롭지만 이 글에서는 아직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그를 죽이려는 벽파 사람들의 끈질긴 공격에도 다행히 살아남는다. 초기 천주교 최고의 이론가인 이벽은 그의 형수의 동생이고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은 자형이고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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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에 관한 6명의 논문을 모은 책이다. 오수창이 쓴 국왕과 신료의 역학 관계에서 17세기 군주는 결코 전제 군주가 아니라고 말한다.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였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국왕은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고심했지만 붕당에 속한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국왕에 등극할 때 도움을 준 당파의 신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붕당이나 척족세력들이 왕권을 좌지우지하기도 했고 환관이 왕의 눈을 가리기도 한다. 관료 세력과 산림 세력이 견제를 하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한다. 구덕회가 쓴 주요 정치기구의 성격과 위상에서는 비변사와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비변사는 실제로 정책을 실행하는 집행기구이고 삼사는 언론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비변사는 도제조, 제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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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간 사람들과 유배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이다.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을 벌 줄 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아끼는 신하를 정적들이 죽이라고 할 때 살리는 묘수로 사형을 바로 시키지 않고 유배를 보냈다가 다시 해배시키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했다. 유배를 떠나기 전에 보통은 장을 100대 정도 맞고 떠나게 된다. 약한 사람들은 이 장독 때문에 심한 경우는 죽기도 한다. 또 유배 전에 심한 고문을 받아서 유배 중에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주일에서부터 유배지에서 태어나서 62년간 여러 곳을 이배하다가 유배지에서 죽은 사람도 있다. 천주교 순교복자 유항검의 딸 유섬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유배 간 사람들은 위리안치처럼 가시 울타리로 둘러 쌓인 좁은 집 안에 갇혀 있는 경우도 있었고 주군 안치나 별서 안치처럼 행동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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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사회변동과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들이다. 송시열과 윤선도는 남인과 서인으로 예송논쟁에서 서로 이기고 지고 했다. 경신환국에서 남인이 패했다가 기사환국에서 서인이 패한다. 송시열은 이때 1689년에 국문을 받기 위해 제주도에서 한성으로 압송되다가 남인의 조종으로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송시열은 조광조~이이~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를 계승했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나춘삼 사건 해결은 억울한 백성을 구제한 대표적 사례다. 풍홍달서의 홍씨로는 혜경궁 홍씨와 홍국영을 들 수있고 영정조대에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그후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세도가 나타난다. 홍경래는 차별 대우를 받던 관서지방 사람들에게는 대원수로 존경받았다. 우군칙, 홍총각, 이제초등이 힘을 모았다. 그의 난은 실패로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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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오행, 의식주,불교 문화, 전통 문화등에 대해서 설명한 책. 오행은 상생론과 상극론이 있다. 하늘의 5별 목화토금수성에서 왔다.목화토금수를 하나씩 건너뛰면 상극이고 순서대로 하면 상생이다. 인예신의지와 5방위인 동남중서북, 청적황백흑, 간심장비장폐장신장의 오장도 오행의 순서에 따른다. 서울 사대문 닫을 때 종을 28번 친 이유는 우주의 원리가 함축된 것으로 28개의 별자리를 상징하고 문 열 때 33번 치는 것은 천원지방의 우주관에 동서남북에 각각 8개의 천이 있고 그 전체를 관장하는 중심하늘을 합해서 33천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무덤의 주인인 최고 권력자가 누구인지 알 경우는 릉, 모르면 총을 사용한다. 절에는 12지신이 아니고 12신장이 있다. 진경 산수화 그릴 때 원칙 1. 길을 그릴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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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대사부터 1980년대 까지를 대략적으로 기술한 책. 조선이나 근대사에서 노동운동을 책 분량에 비해서 많이 다룬 느낌이다. 발해사를 한국사로 볼 것인가 중국사로 볼 것인가? 고구려 유민들이 중심이 되어서 주변 민족들을 모아 세운 나라여서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우리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하고 중국은 동북 공정 때문인지 자가들 나름대로 자기들 역사라고 한다. 고구려도 자기들 변방의 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송나라, 금나라 여진족과 거란족의 관계에서의 고려의 위치 무신정권 하에서도 굴러간 고려 조선 후기 조정의 부패와 농민의 어려움등을 알 수 있있다. 해방 전 후 사회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의 대립 문제는 오늘과 다르지 않다. 이승만이 남한 단독 정부를 너무 서둘러 세운 것 같은 인상이다. 민주화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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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강화 나들길을 걷다가 이규보 묘를 들른 적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그의 동국이상국집에 식물에 관한 시가 많은 모양이다. 저자가 이 책을 많이 인용해서 제목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문일평(1888~1939)의 화하만필이란 책과 본초강목도 자주 인용된다. 책은 꽃, 나무, 과일과 채소의 3부분으로 크게 나눠진다. 꽃은 모란으로부터 황매까지 20종을 설명했다. 꽃의 특징과 심고 키우는 방법까지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당나라 시대에 모란 백송이 가격이 비단 25필 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중국 서진시대에 반악이라는 잘 생긴 문인의 자가 단노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서 단을 따서 멋진 님이라는 뜻의 단랑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낭군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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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채제공 정약용을 중심으로 정조 시대를 다루었다. 정조는 호학군주이고 개혁군주이지만 한편으로는 심환지에게 밀찰을 보내 조정의 신하들을 꼭두각시처럼 부린 교활한 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불러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권력을 독점하고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죽자 조선은 바로 외척의 손에 놀아나면서 망국의 길로 달려간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장헌 세자로 불렸다. 영조의 너무 엄한 훈련과 노론의 견제 때문에 정신병자가 되어 살인을 하고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은 뒤주에 갇혀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한다. 정조는 죽은 이 아버지를 구제하기 위해 무덤을 수원 화성으로 옮기고 명예를 회복한다. 수원 화성을 지을 당시 채제공과 다산은 중심인물이 되고 특히 다산의 능력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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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19세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조시대를 설명하면서 즉지헌 유언호 재상, 척재 이서구, 추사 김정희를 함께 다루었다. 이서구와 남공필은 같은 문하에서 함께 배운 친구 사이이고 남공필이 비문도 써 준 사이지만 마지막에는 남공필이 이서구를 몰아내시 결국 죽는다. 그래서 후손들이 비문도 땅에 파 묻었다가 후에 다시 발견되었다. 탕평군주인 정조는 영조의 뒤를 이어 사림정치를 펴고 우현좌척론과 의리탕평론을 펼쳤다. 말년에는 이런 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되있고 외척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다. 이런 현상은 그 후 순조와 헌조 그리고 철종 마지막 고종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결국 조선은 그 수명을 다 하게 된다. 외척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그 폐해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정조의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