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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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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천문산 관광 중 들르다.아무리 빨리 돌아도 30분 이상은 걸린다.전각과 안에 있는 불상들이 뒤죽박죽이고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다.공산화 된 이후 중국의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다 이상해진 것 같다.땅을 상징하는 연못은 사각형의 담을 둘렀고 하늘을 상징하는 섬은 타원형이다.일주문도 없다.당간이 절 입구에 두 개가 높이 서 있다우리 나라에서는 사천왕은 천왕문에 서서 악귀들을 막아주는 수호무사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는 부처처럼 전각을 가지고 있다.아니면 중국은 천왕전이 미륵전인가?찾아보니까 중국 불교에서 천왕전의 주불은 미륵보살이라고 한다.포대화상이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져서 천왕전에 앉아 있다.다른 사람의 글을 찾아보니 중국 불교에서는 미륵불을 이렇게 포대화상처럼 배불뚝이 형..
백운산 등산 갔다가 들르다.백운산 자락에 있는 이 절은 670년(문무왕 10) 원효대사가 창건했는데 산 이름을 백운산, 절 이름을 백운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이 절에 머물며 10년 동안 기도했다. 1864년(고종 1)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은 절을 옛터에 옮겨 짓고 구담사에서 용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설에는 1860년 여단포에 사는 윤공이라는 어부가 작약도 근해에서 작은 옥불을 건져 올려 이 절에 봉안했다고도 전한다. 1884년(고종 21) 관음전을 세웠으며, 1916년 주기 김대원이 이응선의 시주로 법당의 감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글은 어딘가에서 복사해 왔습니다.)아래는 대웅전 내부(아래 글도 나무위키에서 팔상도를 복사한 글입니다.)아래는 대웅전 바깥..
안동 교회 들렀다가 근처에 있어서 가게 되었다.서울 시내에 있는 우리 나라 불교의 중심적인 절이기도 하고 조계종의 본부라고도 할 수 있어서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비싼 땅에 있어서 그런지 절이 그리 크지는 않다.대신 평일에도 불자들이 많이 찾고 주변 회사원들이나 동남아등 외국의 불자들도 많이 찾아 오는 것 같다.동남아 사람들의 말소리가 많이 들렸다.조계사 홈페이지의 소개글에 의하면"조계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대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대승의 보살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조계사는 일제치하인 1910년, 조선불교의 자주화와 민족자존 회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습니다. 당시 각황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총본산으로 근대 한국불교 ..
교회 홈페이지의 교회 소개를 보면"안동교회는 서울의 북촌에 있는 역사 깊은 교회입니다. 안동교회가 자리한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로 서울이 조선 왕조의 도읍지로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주거지로 형성되어 서울과 역사를 같이하여 왔습니다. 1908년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박승봉, 유성준 등을 중심으로 기호학교(지금의 중앙 중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이듬해인 1909년에 김창제의 집에서 안동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신앙과 교육에서 찾은 선각자들에 의해서 안동교회는 설립되었습니다.100년에 가까운 역사 가운데 안동교회는 수많은 인재를 육성, 배출하여 사회와 교회에 기여하였습니다. 일제하에서 한글을 지키다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전신)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순..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 절을 알게 되었다.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보니 이 절은 대한 불교 일붕 선교종의 사찰로 일붕(一朋) 서경보(徐京保) 스님이 1988년 조계종에서 나와 창건한 불교의 한 종파라고 한다.김교각 스님 때문에 지장전이 특벌한 절이다.조경이 아주 잘 된 절 같아서 가게 되었다.이 절은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인 것 같다.김교각은 신라 왕자이면서 당나라로 유학 가서 깨달음을 얻고 그곳에서 죽었다.지장왕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중생제도에 힘썼다고 한다.그래서 혹자는 당나라 사람들이 '고선지는 몰라도 김교각은 안다'고 말한다고 한다.이 절에도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특이한 점은 이 절의 조경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1991년 홍산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현재도 불사가 진행 중이라..
친구들과 양양 여행 왔다가 들르다. 오래 전에 온 적이 있었지만 다시 또 왔다. 낙산사는 관음 보살과 관련이 깊어서 대웅전이나 극락전 같은 부처의 전각이 없고 관음 보살의 원통보전이 주전각이다. 의상이 여기서 관음을 친견했다는 설 때문에 관음을 중시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5년 양양 산불로 거의 다 소실 되었지만 복원해서 현재의 상태가 되었다. 나무 위키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 즉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전설에 따르면, 의상이 관세음보살을 만나고자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마카오 여행 중 들르다. 1587년 도미니끄 수도회에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다. 세계 문화유산이고 1997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스텐리 플라자 옆에 있는 도교 사원이다. 도교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의미도 모르겠다. 불교와 뒤섞여 있다는 것은 알겠다. 이 주변에 마켓이 들어선다.
문무묘는 문창제군과 관우를 모신 도교 사당이다. 문창제군은 문학과 예술을 관장하는 신선이라 할 수 있고 관우는 삼국지에서 보듯이 무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승격되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문창제군은 "문제(文帝)라고도 한다. 그가 하늘의 옥황상제로부터 명령받은 주요임무는 문학가들의 공적에 따라 상벌을 내릴 수 있도록 문학가들의 일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또한 각 작가들이 받은 명예·칭호 등도 장부에 기록한다. 문창제군에 대한 수많은 전설에 따르면, 문창제군은 17번 환생했는데 9번째에는 장악(張惡)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장악이 당(唐:618~907)나라 때에 살았다고 하고, 3, 4세기 또는 그보다 더 옛날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장악은 쓰촨 성[四川省]의 재동(梓潼)이..
송추 평양면옥에서 장장로님과 장집사님과 함께 냉면을 먹고 보광사 입구에 있는 '처용가'라는 찻집에서 쌍화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은 먼저 귀가하시고 나 혼자 보광사를 들렀다. 부처의 빛이 나는 보광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고령산(高靈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 한국 만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894년(진성여왕 8)에 어명에 의해서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1215년(고종 2)에는 원진(元眞)이 중창하고 법민(法敏)이 불보살상 5위(位)를 조성하여 법당에 봉안하였으며, 1388년(우왕 14)에는 무학(無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1622년(광해군 4)에 ..
오래 전 아내와 용문산 등반하면서 들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성수네 가는 길에 들렀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용문산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도 한다. 913년(신덕왕 2) 대경대사(大鏡大師)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649년(진덕여왕 3)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892년(진성여왕 6) 도선(道詵)이 중창하였다고 하며, 또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1378년(우왕 4)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이 경천사(敬天寺)에 있던 우왕이 원각(願刻)한 대장경판을 이곳에 옮겨 세 칸의 대장전(大藏殿)을 지어 봉안했으며, 1395년(태조 4) 조안(祖眼)이 중창하였다.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
황룡산 올라가는 길에 들르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1686년(숙종 12)에 조선 태종 때 함경도 함흥에 머물던 태조 이성계를 모시고자 문안사(問安使)로 보내졌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태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 ?∼1402)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순조 때 경헌공(景獻公) 조상경(趙尙絅, 1681∼1746)을 추가 배향하였다. 1686년에 박순을 제향하기 위해 그가 죽은 함경도 용흥강변에 설립되었다가 순조 연간에 사액되었다. 1871년(고종 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분단 이후 1980년에 경향 사림의 공의로 박순의 부인인 장흥임씨(長興任氏)의 묘역이 위치한 고양시 학령산 아래의 현 위치에 재건하였다. 서원을 중건하면서 박순의 고..
봉정암은 우리 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봉정암 사리탑은 해발 1,244m에 위치해 있고 봉정암도 1,200m정도의 높이에 있다. 설악산 마등령에 위치한 암자로 내설악 백담사의 부속 암자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중, 선덕여왕 13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에 의해 창건되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봉정암이란 이름의 기원은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정암을 올라가는 길은 그 자체로 수도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셔틀 버스를 이용하거나 6km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 밖에 없다. 백담사에서 출발해도 봉정암 까지는 10.6km의 거리이니 보통 사람들은 왕복에 8시간이 걸..
강화도에 가면 철종의 잠저(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私家)였던 용흥궁 바로 위에 성공회 강화 성당이 있습니다. 강화도에는 감리교회와 성공회 성당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많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감리교회가 많은지에 관해 질문했더니 신경하 감리교 전 감독회장은 강화도는 자생적으로 감리교가 발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부활절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한 후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감리교는 황해도와 인천등 서해안, 충청도와 강원도를 주로 선교하고 그 아래 지역인 영호남과 평안도는 장로교가 선교하기로 지역을 나눈 선교정책의 영향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선교지가 겹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강화도에 성공..
북한산 둘레길 돌면서 들르다. 이 절에는 조각이 아주 많다. 특히 포대화상이 여기 저기 많이 있고 인물들을 조각한 것이 많다.
북한산 둘레길 돌면서 들르다. 이 절은 조계종 절이 아니다. 단청에 금박을 엄청 많이 사용했다.
북한산 둘레길 돌면서 들르다. 큰 절은 아니고 신정왕후와 관련이 있는 절이라고 절앞에 소개되어 있다. 신정왕후를 다음 백과에서 찾아봤더니 효명세자의 부인. 순조·헌종·철종·고종의 4대를 지내면서 궁중의 최고 어른으로 거듭난 그녀는 효명세자의 유업을 달성하기 위해 흥선군 이하응과 손잡고 고종을 즉위시킴으로써 망국의 조선에 재기의 불씨를 제공했다. 일찍이 정조는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노력이 노론 벽파와 외척 경주 김씨에 의해 물거품이 될 것을 염려하여 순조의 장인으로 예정된 시파의 리더 김조순에게 왕실의 보위를 부탁했다. 그런데 시파가 우여곡절 끝에 벽파를 궤멸시키고 정권을 거머쥐자 어린 순조는 허수아비 국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안동 김씨와 그들의 추종자들이 정권을 농단했고, 지방에서는 탐관오..
화계사는 숭산 스님이 있던 절이다. 현각 스님이 숭산 스님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하버드에서 여기로 왔다. 원래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은 당(唐)나라시대 시인 왕유(王維)가 쓴 ‘육조혜능선사비명(六祖慧能禪師碑銘)’ 속에 나오는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세계는 하나의 꽃이며 조사의 종풍은 여섯 잎이라는 의미로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까지 내려온 중국 선종(禪宗)의 전등(傳燈)을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다. 숭산 스님은 항상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설법했다고 한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때, 세계가 한 송이 꽃이 된다고 봤다. 그리하여 숭산 스님은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땅에 의지해 있고, 땅은 하늘을 의지해 있고, ..
김포 미나리 농원에 미나리 먹으러 간 길에 김포 시내에 있는 이 서원을 들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우저서원(牛渚書院)은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에 있는 서원이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조헌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의 유학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헌(1544∼1592)은 조선 선조(재위1567∼1608) 때의 학자이며, 임진왜란(1592) 때의 의병장으로 금산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700명의 의병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인조26년(1648) 선생이 태어난 집터에 서원이 건립되었고, 숙종1년(1675) '우저(牛渚)'라는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본당(本堂)과 사당, 강당인 여택당(麗澤堂), 재사(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