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평화누리길 3코스
- 해파랑길 20코스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김포 문수산
- 북한산 만포면옥
- 김포 한재당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성인대
- 평화누리길 4코스
- 해파랑길 48코스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단양 구담봉
- 군위 팔공산
- 고성 왕곡 마을 #왕곡 마을
- 미시령 성인대
- 평화누리길 7코스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앙코르와트
- #앙코르 왓 #앙코르 톰 #씨엠립 여행
- #강화나들길 3코스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해파랑길 8코스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명동 성당 미사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Today
- Total
목록Temple tour (114)
노래하는 사람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 그리고 무학대사로 이어지는 사제관계가 이 절과 연관이 깊다. 위키 백과에 의하면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의 서남 기슭에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1964년 사적 지정당시 문화재 명칭은 회암사지(檜巖寺址)이었으나, 지역명 병기 및 한글맞춤법(띄어쓰기)를 적용하여 2011년 7월 28일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
고의원에 갔다가 근처에 있어서 가게 되었다. 전부터 회암사 이야기를 책에서도 많이 본 것 같고 또 최근에 지공선사 때문에 더 관심이 있었다. 회암사지에서 500m정도 올라가면 절이 있다. 절까지 차가 올라갈 수도 있다. 나는 일주문 앞에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갔다. 천보산 정상도 이 절에서 700m만 올라가면 된다고 적혀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우왕 4) 나옹(懶翁)이 중건하였다. 그러나 지공이 창건하기 전에도 1174년(명종 4) 금나라의 사신이 회암사에 온 적이 있으며,..
윤선생님 부부와 함께 가다. 지난 주에 강화 나들길 17코스를 걸으면서 하도 경치가 좋아서 아내를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차로 적석사까지 올라가서 바로 옆에 있는 낙조대를 들렀다가 돌아왔다. 해질 무렵에 가면 낙조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 언제 저녁에 한번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 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이 아주 멋지다. 운길산 수종사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는 것과 비슷하다. 대웅전 건물은 관음굴과 함께 있다. 아래층이 관음굴이고 안에는 천수관음이 있다. 보타전에서 바라 본 파노라마
융건릉을 가면서 들르다. 이 절은 원래는 신라 시대 때 세워졌으나 병자 호란 때 소실되었다가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를 이곳으로 이장하고나서 융릉의 원찰로 다시 세운 사찰이다. 이 절에는 명확하진 않지만 김홍도의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 후불탱화가 유명하다. 단원이 청나라에 사절단을 따라 갔다 온 후 서양화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을 배워 와서 탱화에 그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 오늘 대웅전에는 보살들이 여럿 와서 일을 하고 있어서 탱화를 사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다. 궁궐이나 향교등에서 볼 수 있는 삼문이 있다. 춘천 청평사에는 회전문과 홍살문이 그 위에 있던데... 홍살문도 있고 유교 냄새가 나는 불교 사찰이다. 삼성각인 것 같다. 칠성각을 시방칠등각..
해남 두륜산 대흥사 2월 15일 월요일에 타직에서 ngo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철이가 코로나로 국내에 들어와 있어서 월출산을 등반하고 대흥사를 들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절이 그 절이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의 소위 말하는 천년고찰들은 다들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물이나 전해오는 설화나 미술품등에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다. 두륜산 대흥사의 특징을 말하라면 조선 명필들의 경연장입니다.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 창암 이삼만 그리고 정조대왕의 친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흥사는 크게 남원 북원 그리고 표충사 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보 박물관도 있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휴관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원본 현판들이 거기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북원에는 침계루와 대웅전 그리고 ..
추사와 원교 그리고 정조 대왕과 초의 선사를 만나러 가다. 이 절 현판에 걸려있는 글씨들을 보고 싶었다. 홈페이지에 보니 경내 당우들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 2016년에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온 적이 있었지만 그날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향일암에서 바다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성수 부부가 여수를 가자고 해서 가는 김에 여기를 다시 들르다. 오늘도 날이 흐리긴 했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좋아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입막고 귀막고 눈막고 3년씩 -이 돈은 누가 가질까? 지나가는 사람이 빼내가면 절도에 해당할까? 원효대사가 여기서 수도했다고? 원효는 전국을 안 다닌 곳이 없다.
https://youtu.be/Z1fKTLGuDVs https://youtu.be/5g8p6-CIBP8
윤교감 부부와 함께 정족산성을 돌다가 들어가다. 산성을 따라 한바퀴 돌면 저절로 절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문이나 동문에서 들어가면 입장료 3,000원과 주차비를 따로 내어야 하지만 이렇게 가면 등산도 하고 절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고 했다고 하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1266년(원종 7) 중창하였고,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1282년(충렬왕 8)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의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또 옥등(玉燈)을 시주했으므로 절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 한다. 그러나 현재 그 옥등..
오대산 비로봉 등산 중 들르다. 적멸보궁의 수호 암자인 중대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을 이십여분 올라가다보면 만나게 된다.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內願堂)으로 승영(僧營)사찰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왕실보호로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년(고종 15)에 재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香閣)이 낡고 헐어 1999년 퇴우 정념스님께서 제불 보살께 발원하고 오대(五臺)를 상징하는 오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완공하였다. 중대 사자암의 법당인 비로전(毘盧殿)은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를 모셨으며 문수..
속초 여행가서 통일 전망대 갔다 오다가 들르다. 건봉사는 홈피에 의하면 "5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염불을 중시하는 절이어서 우리가 갔을 때도 계속해서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건봉사 역사 또 이 절에는 부처의 진신사리 5과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을 못 찍게 해서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왔다. 건봉사 치아 진신사리 아래 두장의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왔다. 여기까지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선원이나 강원은 많이 있어도 요즘 염불원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 절은 염불을 중시하는 절 답게 염불원..
삼성산 등산 갔다가 들르다. 삼막사라는 이름은 신라 문무와 17년(677년) 원효, 의상, 윤필등 세 사람의 고승이 마치 천막과 같이 허름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하면서 삼막과 삼성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어떤 전각인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래와 같다. 臨終偈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星夢中人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월암당 정대 대종사. 193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962년 1월 완주 위봉사로 출가, 이듬해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田岡)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
오세암 갔다오다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에 자장 창건한 한계사로부터 기원되어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거치면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등으로 개칭되어 새로 지어졌다. 1455년(세조 1)에 중건하면서 백담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용운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 불교유신론〉을 집필하면서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57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대통령 내외가 이 절에 은거한 것을 계기로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칠성각·선원·요사채 등이 있고, 자장의 유물로 전하는 아미타상과 소종, 인조의 하사품인 옥탑, 설담당 부도, 연포당..
설악산에 아직 안 가본 길을 가다가 들르게 되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한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관음암이라고 했으며, 1548년 보우선사가 중건했다. 1643년에 설정대사가 중건했는데, 그에 얽힌 관음설화가 전한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의 아들을 키웠는데, 월동준비차 길을 떠나면서 먹을 밥을 지어놓고 4세 된 조카에게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를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너를 보살펴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폭설로 인해 다음해 3월이 되어서야 돌아와 보니 죽었을 것으로 여겼던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이와 같이 5세 된 동자가 관음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88년에 백..
설악산 오세암 가는 길목에 있어서 잠깐 들르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1648년(인조 26)에 창건. 폐허와 중건을 거듭하다가 6.25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사사(賜死)된 뒤로는 세상에 진출할 뜻이 없었는데 1705년(숙종 31) 모친상을 마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백담사에서 3년을 지내다가 1707년(숙종 33) 조원봉 남쪽 벽운사 옆에 벽운정사(碧雲精舍)를 지었다. 「삼연 김선생 영시암 유허지비(三淵金先生永矢庵遺墟之碑)」에 의하면 “기축( 1709)년 10월에 다시 절에 돌아왔다가 동쪽 수리(數里)에 있는 조원봉 아래 북쪽에 판잣집 8칸을 짓고 영시암(永矢..
와룡산 등산 갔다오다 들렀다. 절이 공동묘지다. 요즘 공동묘지보다 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지장전이 절마다 난리다. 이 절은 또 소가 무슨 보살이라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소가 혀로 목탁 소리를 낸다고 소보살이란다. 시골 사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런 소리를 내는 소들이 종종 있다. 불교도 많이 이상해졌어. 이 소가 보살이면 곧 부처가 되겠네.
이화섭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가 함께 가다. 단풍철이어서 절 주변 경치가 정말 좋다. 절의 전체 규모나 배치는 어딘가 약간 허술하고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느낌이다. 극락전과 약사전은 현판도 없고 입구에 천왕문은 없고, 금강문은 이름만 있으나 금강역사들은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설명된 법흥사를 보면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하였다. 그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