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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윤 선생님 부부와 장파리에 있는 장단 매운탕에 가서 점심을 빠가사리 매운탕으로 먹고 근처에 있는 우계 성혼의 파산서원을 찾아가다. 파평 윤씨들의 본관인 파평 도로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파산 서원이 있다. 이 서원은 우계 성혼의 서원이다. 원래는 성수침 성수종 성혼 백인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었다고 한다. 성혼은 율곡 이이,구봉 송익필과 함께 파주 3현으로 불린다. 선조때 사람으로 도덕의 실천에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이가 말하기를 경세와 학문은 내가 좀 더 나을지 몰라도 도덕과 행실에 있어서는 내가 성혼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율곡보다 한살 위인 우계는 율곡과 이기론을 논하면서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계는 퇴계의 학설을 거의 따르는 입장이었고 율곡은 퇴계의 학설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입장이..
다산이 머물렀던 보은산방이 있는 절 차가 절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고성사(高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천불산화엄사사적비(千佛山華嚴寺事蹟碑)」에 의하면 고려 후기인 1211년(희종 7)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2~1245)가 인근의 만덕산 백련사를 중창할 때 말사로 지었다고 전한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고성암'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호남읍지』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1805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이 이 암자에 머물며 아암혜장(兒庵惠藏)과 교우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목조삼존불상이 조성되었다. 1933년에 지장탱화가 제작되었고, 이후 영산회상..
혜장스님과 다산의 스토리가 있는 절이다. 술을 좋아하던 혜장 스님은 다산과 술을 주고 받으면서 주역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다산이 어려울 때 고성사 보은산방을 알선해 주기도 한다. 이 절에 주지로 있던 혜장 스님이 다산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다산은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혜장 덕분에 초의 선사도 다산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고 후에 뛰어난 선사가 된다. 두륜산 대흥사에 가면 그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초의는 나중에 추사와도 친분을 쌓게 된다. 매화가 피었다. 절 오른편에 승탑들이 있다. 동백이 예쁘게 피었다. 백련사 앞에는 오래된 동백 나무들이 많다.
달마고도를 트래킹하면서 가다. 아래 같은 사진들이 겹치는 이유는 앞의 사진은 다음날 아내들과 함께 간 사진이고 뒷 부분의 사진은 전날 트래킹 하면서 올라가 찍은 사진이다. 달마산 미황사의 열두 암자 중 한 곳으로 가장 정상부인 도솔봉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암릉으로 둘러싸인 도솔암은 4월에는 진달래,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원추리,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멋있어 많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다. 달마산 도솔암 일원은 해남 8경 중 하나인 달마도솔로, 해남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해남 제1경이다. 정유재란 때 왜구들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2002년 월정사 법조 스님에 의해 32일 만에 재건되었다. 주차장 방면..
수국사는세조 5년(1459)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극락왕생을 위해 경릉 동쪽에 정인사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그 후 정인사는 연산군 10년(1504년) 화재로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있다가 이후 몇 번의 중수를 거쳐 광무 4년(1900년) 고종의 내탕금(內帑金)으로 현재의 위치인 갈현동 태화산(太華山) 자락에 다시 짓게 되었다. 김수온(金守溫)이 찬한 고양정인사중창기(高陽正因寺重創記)에 의하면 처음 절을 지은 이는 판화엄대선사(判華嚴大禪師)인 설준(雪峻)스님으로 법당등 모든 설계를 도맡아 했다고 한다. 성종2년(1471년) 덕종의 부인이 되는 인수대비가 “이 절을 처음 지을 때 급히 지어 재목이 좋지 못하고 쓰임새가 정밀하지 못하다”하여 판내시부사 이효지에게 명하여 중창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해..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 그리고 무학대사로 이어지는 사제관계가 이 절과 연관이 깊다. 위키 백과에 의하면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의 서남 기슭에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1964년 사적 지정당시 문화재 명칭은 회암사지(檜巖寺址)이었으나, 지역명 병기 및 한글맞춤법(띄어쓰기)를 적용하여 2011년 7월 28일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
고의원에 갔다가 근처에 있어서 가게 되었다. 전부터 회암사 이야기를 책에서도 많이 본 것 같고 또 최근에 지공선사 때문에 더 관심이 있었다. 회암사지에서 500m정도 올라가면 절이 있다. 절까지 차가 올라갈 수도 있다. 나는 일주문 앞에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갔다. 천보산 정상도 이 절에서 700m만 올라가면 된다고 적혀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우왕 4) 나옹(懶翁)이 중건하였다. 그러나 지공이 창건하기 전에도 1174년(명종 4) 금나라의 사신이 회암사에 온 적이 있으며,..
윤선생님 부부와 함께 가다. 지난 주에 강화 나들길 17코스를 걸으면서 하도 경치가 좋아서 아내를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차로 적석사까지 올라가서 바로 옆에 있는 낙조대를 들렀다가 돌아왔다. 해질 무렵에 가면 낙조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 언제 저녁에 한번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 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이 아주 멋지다. 운길산 수종사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는 것과 비슷하다. 대웅전 건물은 관음굴과 함께 있다. 아래층이 관음굴이고 안에는 천수관음이 있다. 보타전에서 바라 본 파노라마
융건릉을 가면서 들르다. 이 절은 원래는 신라 시대 때 세워졌으나 병자 호란 때 소실되었다가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를 이곳으로 이장하고나서 융릉의 원찰로 다시 세운 사찰이다. 이 절에는 명확하진 않지만 김홍도의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 후불탱화가 유명하다. 단원이 청나라에 사절단을 따라 갔다 온 후 서양화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을 배워 와서 탱화에 그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 오늘 대웅전에는 보살들이 여럿 와서 일을 하고 있어서 탱화를 사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다. 궁궐이나 향교등에서 볼 수 있는 삼문이 있다. 춘천 청평사에는 회전문과 홍살문이 그 위에 있던데... 홍살문도 있고 유교 냄새가 나는 불교 사찰이다. 삼성각인 것 같다. 칠성각을 시방칠등각..
해남 두륜산 대흥사 2월 15일 월요일에 타직에서 ngo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철이가 코로나로 국내에 들어와 있어서 월출산을 등반하고 대흥사를 들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절이 그 절이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의 소위 말하는 천년고찰들은 다들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물이나 전해오는 설화나 미술품등에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다. 두륜산 대흥사의 특징을 말하라면 조선 명필들의 경연장입니다.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 창암 이삼만 그리고 정조대왕의 친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흥사는 크게 남원 북원 그리고 표충사 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보 박물관도 있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휴관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원본 현판들이 거기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북원에는 침계루와 대웅전 그리고 ..
추사와 원교 그리고 정조 대왕과 초의 선사를 만나러 가다. 이 절 현판에 걸려있는 글씨들을 보고 싶었다. 홈페이지에 보니 경내 당우들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 2016년에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온 적이 있었지만 그날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향일암에서 바다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성수 부부가 여수를 가자고 해서 가는 김에 여기를 다시 들르다. 오늘도 날이 흐리긴 했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좋아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입막고 귀막고 눈막고 3년씩 -이 돈은 누가 가질까? 지나가는 사람이 빼내가면 절도에 해당할까? 원효대사가 여기서 수도했다고? 원효는 전국을 안 다닌 곳이 없다.
https://youtu.be/Z1fKTLGuDVs https://youtu.be/5g8p6-CIBP8
윤교감 부부와 함께 정족산성을 돌다가 들어가다. 산성을 따라 한바퀴 돌면 저절로 절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문이나 동문에서 들어가면 입장료 3,000원과 주차비를 따로 내어야 하지만 이렇게 가면 등산도 하고 절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고 했다고 하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1266년(원종 7) 중창하였고,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1282년(충렬왕 8)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의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또 옥등(玉燈)을 시주했으므로 절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 한다. 그러나 현재 그 옥등..
오대산 비로봉 등산 중 들르다. 적멸보궁의 수호 암자인 중대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을 이십여분 올라가다보면 만나게 된다.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內願堂)으로 승영(僧營)사찰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왕실보호로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년(고종 15)에 재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香閣)이 낡고 헐어 1999년 퇴우 정념스님께서 제불 보살께 발원하고 오대(五臺)를 상징하는 오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완공하였다. 중대 사자암의 법당인 비로전(毘盧殿)은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를 모셨으며 문수..
속초 여행가서 통일 전망대 갔다 오다가 들르다. 건봉사는 홈피에 의하면 "5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염불을 중시하는 절이어서 우리가 갔을 때도 계속해서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건봉사 역사 또 이 절에는 부처의 진신사리 5과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을 못 찍게 해서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왔다. 건봉사 치아 진신사리 아래 두장의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왔다. 여기까지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선원이나 강원은 많이 있어도 요즘 염불원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 절은 염불을 중시하는 절 답게 염불원..
삼성산 등산 갔다가 들르다. 삼막사라는 이름은 신라 문무와 17년(677년) 원효, 의상, 윤필등 세 사람의 고승이 마치 천막과 같이 허름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하면서 삼막과 삼성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어떤 전각인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래와 같다. 臨終偈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星夢中人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월암당 정대 대종사. 193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962년 1월 완주 위봉사로 출가, 이듬해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田岡)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