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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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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성 교장 선생님, 이화섭 선생님, 윤춘식 선생님, 양승구 선생님 5명이 함께 가다. 전에도 간 적이 있었지만 도솔암을 갔다가 오는 길에 들르다. 수국이 아주 인상적인 절이다. 미황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 절의 창건 설화를 보면 1692년(숙종 18년)때 지은 [미황사 사적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어느 날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아래 포구에 닿았다. 배 안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지만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의조화상이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이끌고 포구로 나갔다. 그러자 배가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 안에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聖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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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자에 가고 싶었는데 해남을 여러번 갔지만 이제서야 올라간다. 사진으로 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꼭 가고 싶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도솔암은 도솔천과 관련이 있다. '산스크리트 tuṣita의 음역이며 의역하여 지족천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은 수미산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11~15㎞라는 설이 있음) 위에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별되어 있다.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내원은 내원궁으로 불리기도 한다. 외원에서는 수많은 천인들이 오욕을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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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는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다. 고즈넉한 산사의 느낌이 없다. 공사중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웅전 내부에 있는 이것도 탱화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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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는 옆 동네에 있는 봉원사와 함께 태고종의 명맥을 이어가고있는 봉원사의 말사라고 한다. 용혁이 외할아버지인가가 이 절의 유력한 스님이라고 들어서 각별한 관심이 있다. 예전에 정화라는 이름의 이 절 스님의 딸을 담임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암사의 예에서 보듯이 태고종 스님들이 조계종의 기세에 눌려서 별로 힘을 못쓰고 있는 느낌인데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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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유리에 있는 영락기도원으로 기도회 갔다가 끝나고 화계사를 들르다. 말은 많이 들었던 절이고 현각 스님이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에서 많이 언급해서 관심이 있었던 절이다. 승탑밭에 보니까 숭산스님의 승탑도 있어서 더 반가웠다. 적광전이 어마무시하게 크고 다른 전각들은 다 자그마하다. 숭산스님의 영향때문인지 국제 선원 건물이 크게 자리하고 있고 불교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현각스님의 인생을 바꾼 사람- 숭산스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를 거쳐 숭산스님 때문에 예일과 하바드를 나온 전통적인 카톨릭 집안의 젊은 미국인이 스님이 되었으니 숭산 스님이 어떤 분인지 더 궁금해진다. 도시에 있는 절이라서인지 아니면 터가 좁아서인지 절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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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님과 함께 학교 교직원 연수 답사겸 경주를 가다. 먼저 석굴암을 들렀다가 불국사까지는 걸어서 내려가면 2.2km정도의 거리다. 그런데 중들이 돈에 독이 올랐는지 입장료를 너무 비싸게 받는다. 절에 갈 때마다 돈 아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자기들이 그 절 지을 땅을 산 것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절 지은 것도 아니면서 입장료를 너무 비싸게 받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 보수할 때는 문화재청이나 정부 기관으로부터 돈 받아 보수하면서 입장료는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도 못하고, 석굴암과 불국사는 입장료가 각각 5,000원씩이다. 경주 시민만 공짜고 다른 사람들은 돈 다 내란다. 경주 사람들한테는 욕 안먹겠다는 얄팍한 욕심 아닐까? 석굴암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대단하고 석굴의 과학적인 건축이 대단하겠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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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여행을 갔다가 둘째날 법주사를 들르다. 5집 10명이 함께 구경하다. 속리산 등산을 여러번 갔지만 법주사는 참 오랜만에 들른다. 80년대에 문장대 올라갈 때 아마 들렀었던 것 같다. 아래 요금표를 보다시피 법주사는 입장료가 형편없이 비싸다. 국보,보물,문화재가 많아서? 아무리 자기네 땅 통행료 받는다지만 좀 지나치다. 이러고도 중들이 욕먹지 않으면 이상하지? 법주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법주사의 연혁을 보면 아래와 같다. 법주사는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 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 오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보면 진표 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鉢淵藪寺)를 창건하고 7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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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사는 퇴계 선생님이 풍기 군수로 지내던 1549년에 소백산을 유람하면서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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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와 윤선생님 부부가 저녁 먹으러 가다가 잠깐 들르다. 수백번 온 북한산 산행 가운데 가장 많이 간 길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진관사 뒤 비봉 올라가는 코스였을것이다. 그러니 진관사도 수십번은 들어왔을테고 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다. 이 절은 아마도 고려시대 절일 것 같다고 홈피에 적혀있고 지금은 비구니 스님이 주지인 것 같다. 그러니까 비구니 절이라는 이야기다. 진관사 홈페이지에 의하면 "진관사(津寬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로,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쪽의 진관사로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사찰이며,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력을 수호한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1011년(顯宗 2년)에 진관대사(津寬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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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때문에 알게 된 절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세월이 지나면 판가름날거고 한 사람의 신념이 국가의 중대한 프로젝트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참, 도룡뇽은 터널 공사후 다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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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등산하면서 들른 절이다. 무설전이 있고 홍룡폭포가 인상적이다. 산신각에 산신령과 나반존자가 같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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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뭉칫돈 시주를 했는지 돈으로 쳐 발랐다. 교회고 절이고 너무 화려하면 경외심보다는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저럴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 절의 9층 석탑과 화강암으로 된 계단들은 멋있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진리를 찾는 소박한 사찰의 모습이 아니다.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탑과 계단들이다. 저 탑 안에 청빈하게 살라고 가르친 부처의 사리를 양심에 거리낌없이 넣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신도들에게 뭐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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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백과사전에 의하면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彌勒) 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으로 이 절 또한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광주의 대모산(大母山)에 있던 영릉(英陵 : 세종의 능)이 여주로 이장된 1469년(예종 1)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願刹)로 삼을 것을 결정하였고, 1472년(성종 3) 2월에 대규모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8개월 만에 200여 칸의 건물을 보수 또는 신축하였다. 그 이듬해 대왕대비는 신륵사를 보은사(報恩寺)라고 개칭하였다. 나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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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야생화 구경하러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아래는 퍼온 글 정암사 수마노탑 보물 제410호. 높이 900cm. 정암사 뒤편 천의봉(天衣峰) 중턱에 축대를 쌓아 마련한 대지 위에 서 있다. 이 절은 636년(신라 선덕왕 5)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에서 석가세존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뒤 세운 절로 이 탑에 세존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여 현재 법당에 불상이 없다. 화강암제로 된 6단의 기단 위에 모전석재(模塼石材)로 2단을 쌓아 7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모전석재는 회록색의 수성암질(水成岩質) 석회암인데, 길이 30~40cm, 두께 5~7cm로 정교하게 가공하여 전(塼)처럼 보인다. 1층은 폭 178cm, 높이 103cm로 크며 남면 중앙에 감형(龕形)의 방광(方U)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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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대 산행하면서 잠깐 들르다. 화암사에 관한 설명을 보면 아래와 같다. 아래 글은 http://www.toursorak.com/에서 복사해 왔다. 금강산 제1봉 중턱의 화암사 * 사진 1. 화암사 입구 * 사진 2. 화암사 대중전 뜰에서 바라본 풍경, 속초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조망된다 * 사진 3. 화암사 입구 등산로, 수바위 ● 신선봉 아래, 벼에 관한 전설 얽힌 화암사 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요즈음 새로 재건 단장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 절은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절로서 신라 혜공왕5년(769)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지금으로부터 359년전인 인조 11년(1633) 택당 이식(李植)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