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오블완
- #북한산 문수봉 #북한산 승가봉 능선
- #건봉사 #고성 건봉사
- 평화누리길 7코스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정서진 #정서진 라이딩
- 단양 구담봉
- 해파랑길 48코스
- #붕당의 발생 #붕당의 형성 #붕당의 시작
- #대흥사 #해남 대흥사
- 평화누리길 4코스
- 김포 한재당
- 명동 성당 미사
- 군위 팔공산
- 북한산 만포면옥
-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 평화누리길 3코스
- 미시령 성인대
- 앙코르와트
- #평화누리길 2코스 #평화누리길 1코스 #평화누리길 1~2코스
- #윤두서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공재 자화상
- 해파랑길 8코스
- #강화 나들길 18코스 #강화 나들길 18코스 왕골 공예마을 가는 길
- #강화나들길 3코스
- 김포 문수산
- 평화누리길 경기 구간 완주
- 해파랑길 20코스
- #조선 중기 정치와 정책(인조~현종 시기)
- 티스토리챌린지
- 성인대
- Today
- Total
목록Temple tour (115)
노래하는 사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백련사는 옆 동네에 있는 봉원사와 함께 태고종의 명맥을 이어가고있는 봉원사의 말사라고 한다. 용혁이 외할아버지인가가 이 절의 유력한 스님이라고 들어서 각별한 관심이 있다. 예전에 정화라는 이름의 이 절 스님의 딸을 담임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암사의 예에서 보듯이 태고종 스님들이 조계종의 기세에 눌려서 별로 힘을 못쓰고 있는 느낌인데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학교에서 수유리에 있는 영락기도원으로 기도회 갔다가 끝나고 화계사를 들르다. 말은 많이 들었던 절이고 현각 스님이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에서 많이 언급해서 관심이 있었던 절이다. 승탑밭에 보니까 숭산스님의 승탑도 있어서 더 반가웠다. 적광전이 어마무시하게 크고 다른 전각들은 다 자그마하다. 숭산스님의 영향때문인지 국제 선원 건물이 크게 자리하고 있고 불교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현각스님의 인생을 바꾼 사람- 숭산스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를 거쳐 숭산스님 때문에 예일과 하바드를 나온 전통적인 카톨릭 집안의 젊은 미국인이 스님이 되었으니 숭산 스님이 어떤 분인지 더 궁금해진다. 도시에 있는 절이라서인지 아니면 터가 좁아서인지 절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절의..
윤선생님과 함께 학교 교직원 연수 답사겸 경주를 가다. 먼저 석굴암을 들렀다가 불국사까지는 걸어서 내려가면 2.2km정도의 거리다. 그런데 중들이 돈에 독이 올랐는지 입장료를 너무 비싸게 받는다. 절에 갈 때마다 돈 아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자기들이 그 절 지을 땅을 산 것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절 지은 것도 아니면서 입장료를 너무 비싸게 받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 보수할 때는 문화재청이나 정부 기관으로부터 돈 받아 보수하면서 입장료는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도 못하고, 석굴암과 불국사는 입장료가 각각 5,000원씩이다. 경주 시민만 공짜고 다른 사람들은 돈 다 내란다. 경주 사람들한테는 욕 안먹겠다는 얄팍한 욕심 아닐까? 석굴암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대단하고 석굴의 과학적인 건축이 대단하겠지만 그렇다..
청주 여행을 갔다가 둘째날 법주사를 들르다. 5집 10명이 함께 구경하다. 속리산 등산을 여러번 갔지만 법주사는 참 오랜만에 들른다. 80년대에 문장대 올라갈 때 아마 들렀었던 것 같다. 아래 요금표를 보다시피 법주사는 입장료가 형편없이 비싸다. 국보,보물,문화재가 많아서? 아무리 자기네 땅 통행료 받는다지만 좀 지나치다. 이러고도 중들이 욕먹지 않으면 이상하지? 법주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법주사의 연혁을 보면 아래와 같다. 법주사는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 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 오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보면 진표 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鉢淵藪寺)를 창건하고 7년 동안..
초암사는 퇴계 선생님이 풍기 군수로 지내던 1549년에 소백산을 유람하면서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와 윤선생님 부부가 저녁 먹으러 가다가 잠깐 들르다. 수백번 온 북한산 산행 가운데 가장 많이 간 길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진관사 뒤 비봉 올라가는 코스였을것이다. 그러니 진관사도 수십번은 들어왔을테고 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다. 이 절은 아마도 고려시대 절일 것 같다고 홈피에 적혀있고 지금은 비구니 스님이 주지인 것 같다. 그러니까 비구니 절이라는 이야기다. 진관사 홈페이지에 의하면 "진관사(津寬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로,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쪽의 진관사로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사찰이며,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력을 수호한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1011년(顯宗 2년)에 진관대사(津寬大..
지율스님 때문에 알게 된 절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세월이 지나면 판가름날거고 한 사람의 신념이 국가의 중대한 프로젝트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참, 도룡뇽은 터널 공사후 다 죽었나?
천성산 등산하면서 들른 절이다. 무설전이 있고 홍룡폭포가 인상적이다. 산신각에 산신령과 나반존자가 같이 있나?
누가 뭉칫돈 시주를 했는지 돈으로 쳐 발랐다. 교회고 절이고 너무 화려하면 경외심보다는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저럴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 절의 9층 석탑과 화강암으로 된 계단들은 멋있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진리를 찾는 소박한 사찰의 모습이 아니다.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탑과 계단들이다. 저 탑 안에 청빈하게 살라고 가르친 부처의 사리를 양심에 거리낌없이 넣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신도들에게 뭐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다음 백과사전에 의하면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彌勒) 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으로 이 절 또한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광주의 대모산(大母山)에 있던 영릉(英陵 : 세종의 능)이 여주로 이장된 1469년(예종 1)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願刹)로 삼을 것을 결정하였고, 1472년(성종 3) 2월에 대규모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8개월 만에 200여 칸의 건물을 보수 또는 신축하였다. 그 이듬해 대왕대비는 신륵사를 보은사(報恩寺)라고 개칭하였다. 나옹선..
만항재 야생화 구경하러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아래는 퍼온 글 정암사 수마노탑 보물 제410호. 높이 900cm. 정암사 뒤편 천의봉(天衣峰) 중턱에 축대를 쌓아 마련한 대지 위에 서 있다. 이 절은 636년(신라 선덕왕 5)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에서 석가세존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뒤 세운 절로 이 탑에 세존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여 현재 법당에 불상이 없다. 화강암제로 된 6단의 기단 위에 모전석재(模塼石材)로 2단을 쌓아 7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모전석재는 회록색의 수성암질(水成岩質) 석회암인데, 길이 30~40cm, 두께 5~7cm로 정교하게 가공하여 전(塼)처럼 보인다. 1층은 폭 178cm, 높이 103cm로 크며 남면 중앙에 감형(龕形)의 방광(方U)을 만..
성인대 산행하면서 잠깐 들르다. 화암사에 관한 설명을 보면 아래와 같다. 아래 글은 http://www.toursorak.com/에서 복사해 왔다. 금강산 제1봉 중턱의 화암사 * 사진 1. 화암사 입구 * 사진 2. 화암사 대중전 뜰에서 바라본 풍경, 속초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조망된다 * 사진 3. 화암사 입구 등산로, 수바위 ● 신선봉 아래, 벼에 관한 전설 얽힌 화암사 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요즈음 새로 재건 단장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 절은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절로서 신라 혜공왕5년(769)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지금으로부터 359년전인 인조 11년(1633) 택당 이식(李植)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지은 절로 조선 명종 때 보우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회전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공주와 뱀 설화가 있는 절이다. 소양호에서 배타고 들어가던 절인데 이번에는 차로 갔다.
학교 기말고사 마지막날 일찍 끝나고 연꽃도 볼겸 봉원사를 가다. 태고종의 사찰들은 조계종에 비해서 세력이 약해 보인다. 조계종과의 싸움에서 대처승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큰 절이 거의 없다. 조계종 다음으로 큰 절이던 태고종이 천태종에게도 밀려서 3위의 종단으로 추락했다고 한다. 봉원사도 태고종의 대표적인 사찰이긴 하지만 작은 조계종 규모의 사찰이다. 한글학회가 여기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영산재를 보존하고 있다. 연꽃은 연못을 파서 키운 것이 아니고 고무통을 수백개 가져다가 키운다. 그래서 그런지 7월 중순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거의 피지 않았다.
조계종 총림 가운데 한 곳이다. 아래는15-03-07일 조계산 산행하고 오면서 찍은 사진이다.
조계산 산행하면서 잠깐 들르다. 그래서 급하게 사진 몇 장을 올린다. 태고종의 총림인데 비해서 절의 규모는 별로 크지 않고 조계종 총림에 비하면 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선암매화같은 천연기념물도 있고 650년 된 와송과 은목서라는 나무 그리고 키가 아주 큰 메타세콰이어도 볼 수 있어서 아름다운 절이다 .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