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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오세암 갔다오다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에 자장 창건한 한계사로부터 기원되어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거치면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등으로 개칭되어 새로 지어졌다. 1455년(세조 1)에 중건하면서 백담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용운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 불교유신론〉을 집필하면서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57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대통령 내외가 이 절에 은거한 것을 계기로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칠성각·선원·요사채 등이 있고, 자장의 유물로 전하는 아미타상과 소종, 인조의 하사품인 옥탑, 설담당 부도, 연포당..
설악산에 아직 안 가본 길을 가다가 들르게 되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한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관음암이라고 했으며, 1548년 보우선사가 중건했다. 1643년에 설정대사가 중건했는데, 그에 얽힌 관음설화가 전한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의 아들을 키웠는데, 월동준비차 길을 떠나면서 먹을 밥을 지어놓고 4세 된 조카에게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를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너를 보살펴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폭설로 인해 다음해 3월이 되어서야 돌아와 보니 죽었을 것으로 여겼던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이와 같이 5세 된 동자가 관음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88년에 백..
설악산 오세암 가는 길목에 있어서 잠깐 들르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1648년(인조 26)에 창건. 폐허와 중건을 거듭하다가 6.25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사사(賜死)된 뒤로는 세상에 진출할 뜻이 없었는데 1705년(숙종 31) 모친상을 마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백담사에서 3년을 지내다가 1707년(숙종 33) 조원봉 남쪽 벽운사 옆에 벽운정사(碧雲精舍)를 지었다. 「삼연 김선생 영시암 유허지비(三淵金先生永矢庵遺墟之碑)」에 의하면 “기축( 1709)년 10월에 다시 절에 돌아왔다가 동쪽 수리(數里)에 있는 조원봉 아래 북쪽에 판잣집 8칸을 짓고 영시암(永矢..
와룡산 등산 갔다오다 들렀다. 절이 공동묘지다. 요즘 공동묘지보다 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지장전이 절마다 난리다. 이 절은 또 소가 무슨 보살이라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소가 혀로 목탁 소리를 낸다고 소보살이란다. 시골 사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런 소리를 내는 소들이 종종 있다. 불교도 많이 이상해졌어. 이 소가 보살이면 곧 부처가 되겠네.
이화섭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가 함께 가다. 단풍철이어서 절 주변 경치가 정말 좋다. 절의 전체 규모나 배치는 어딘가 약간 허술하고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느낌이다. 극락전과 약사전은 현판도 없고 입구에 천왕문은 없고, 금강문은 이름만 있으나 금강역사들은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설명된 법흥사를 보면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하였다. 그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관악산 등산 간 길에 들르다. 지옥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용왕도 있고 산신령도 있다. 독성 나반존자는 없다.
북한산 백운대를 갔다가 내려오면서 오랜만에 들르다. 도선사의 느낌은 그동안 절이 많이 부흥해서 그런지 시장판 같은 느낌이다. 신도들이 많아서 스님들은 좋겠지만 관광객에게는 시끌벅적해서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조용한 산사를 기대하고 왔던 사람들은 실망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파일에 달았던 등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그 때문에 절이 전체적으로 북적거리는 느낌과 시장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청담 스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도 기념하는 공간이 크고 화려했다.
꽃무릇 보러 갔다가 절에 들르다. 오래 전에 선운산 등산 갔다가 들렀던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아마 동백이 필 시기였던 것 같다. 선운사 앞 꽃무릇이 정말 대단했다.
영광에는 기독교 중 개신교와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교회와 성당이 있고 원불교 영산성지라는 원불교 성지도 있고 불교 최초 도래지인 법성포도 있다. 영광성당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것을 기념해서 세운 성당이다.
부안에 들른 김에 선운사의 말사인 개암사를 가다. 이매창의 흔적들이 부안에는 여기 저기 많이 남아 있다. 내소사, 명월암, 개암사등을 매창이 많이 다녔나 보다. 634년(백제 무왕 35) 묘련(妙蓮)이 창건했다고. 사천왕도 조성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절에 당우가 상당히 많다.
영광을 한바퀴 돌면서 들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했고, 805년(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각진국사가 머물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는데 당시에 머물던 승려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사전도 10리에 달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0년에 중건한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팔상전·칠성각·일광당·명부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각진국사비(1359)와 여러 점의 부도가 있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거상인 사천왕상이 있다. 불갑사대웅전은 보물 제830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
영광에는 인민군에게 6.25때 순교한 교인들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영상실에 갔더니 당시 박해를 당할 때 어린 나이였던 분들의 증언을 모아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여 주고 있었다. 교회 홈피에 소개된 글을 보면 염산교회는 신앙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 77인의 순교자의 신앙이 깃든 한국 기독교 대표적인 최고의 순교성지입니다. 6.25동란 때 국군이 영광에 진군해 들어왔을 때 미쳐 퇴각하지 못한 공산당들이 교회당을 불지르고 교인들을 바닷가 수문통에서 돌멩이를 달아서 수장시키는가 하면 죽창으로, 몽둥이로, 칼로 찌르고 때려서 죽이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믿음을 가진 염산교회 성도들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죽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는데 이때..
수련회 갔다가 별새꽃돌 박물관 가는 길에 있어서 들어가다. 조계종 사찰이 아니고 불입종이라는 이상한 종단이다.
광덕산 등산가서 들르다. 647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음.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연원 및 변천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珍山)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충혜왕 복위 5)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로서, 사찰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었다. 또한, 누각이 8개, 종각이 9개, 만장각(萬藏閣)이 80칸, 천불전(千佛殿)도 3층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뒤 1598년(선조 31) 희묵(熙默)이 중수하였고, 1665년(현종 6)석심(釋心)이 불상과 종을 개수하였으며..
강화도에 있는 평화 전망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들르다. 1893년 존스 선교사에 의해 지어진 교산교회. 다음 백과에 의하면 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시작한 인천 내리교회에는 1892년 존스(G. H. Jones, 조원시)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직후부터 존스 목사는 강화 지역 선교를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강화 지역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내리교회 안에서는 전도의 한 방편으로 상조계를 조직하였는데, 외국 선교사들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을 들은 상인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계원 중 한 사람이 곗돈을 횡령하고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 계원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의 평판이 나빠졌다. 그러나 당시 50여 명의 계원 가운데 두 사람이 교회를 떠나지 않았는데, ..
수락산 갔다가 내려오면서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노원구 수락산에 위치한 통일신라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노원9경(九景)중 한 곳 멀리서 바라보는 수락산은 드물게 암벽이 우뚝 솟아 봉우리를 이루고 있고, 그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 바다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이 나무의 바다 속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삶을 영위해 가고 있으며, 또한, 크고 작은 많은 사찰들도 자리하여 자연과 더불어 법등을 이어가고 있다. 남쪽 산록에 자리한 학림사는 주변지세가 마치 엄마가 자식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절 이름도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학림사라 하였다. 경내에는 가지가 늘어지다 못해 처진 듯한 노송(老松)이 당당하게 서 있어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러한 학림사는 ..
수락산 가면서 들르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조선 중기에 박태보(朴泰輔)가 김시습(金時習)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796년(정조 20)에는 유담(裕淡)이 화주가 되어 삼소각(三笑閣)을 중수하였다. 1950년 6·25로 인하여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으며, 그 뒤 1956년에 비구니 상인(相仁)이 와서 대방(大房) 등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방을 중심으로 하여 요사채 2동과 칠성각·독성각 등이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대방이 법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신중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다. 대방 앞에는 1969년에 상인이 불사리(佛舍利)를..
강화도에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공회 성당이 두 곳이나 있다. 성공회 강화 성당과 이 곳 온수리 성당이다. 온수리 성당은 지금은 새로 잘 지은 성당과 옛날 성당이 둘 다 아주 아름답고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당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성당도 아주 훌륭한 문화재가 될 수 있겠다. 우리 개신교 교회도 건물만 봐도 바로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게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으면 참 좋겠다. 볼수록 아름다운 건물이다.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성당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주 아름다운 성당인데 이 성당도 그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강화도에는 개신교인 감리교회가 아주 많고 성공회 교회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많다. 일설에 의하면 그것은 강화도가 미국이나 프랑스와는 전쟁을 겪었지만 영국으로부터는..
박효필 장로님 부부랑 함께 가다. 성공회는 신구교의 장점을 다 가진 교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찌 보면 신교도 구교도 아닌 어중간한 교회 같기도 하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좌파 성향의 성직자나 교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과격해 보이기도 하다. 영국에서의 출발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출발했기 때문인지 정치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국가 지정 문화재(사적 제 42호)이고 1893년에 설립된 이 교회는 우리 전통 종교인 불교와 유교를 포용할려고 하는 느낌을 많이 준다. 몰라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성당 정원에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 나무와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가 함께 있었는데 회화나무는 어느 해 태풍에 쓰러져서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성당 건물에도 곳곳에 유교와 불교를 상징하는 장식들이 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