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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드뷔시의 달빛이 어울리는 달밤이다.https://youtu.be/97_VJve7UVc?si=7NRWeBI_ralqBVAB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저자가 생각하는 인간 불변의 법칙 23개 이야기를 예화와 함께 전하는 책.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10 여 년 전 나는 역사를 더 많이 공부하고 예측 자료를 덜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정은 내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알면 알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불확실한 앞날을 예측하려는 어설픈 시도를 멈추고 대신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의미한 불변의 법칙이다."기대치 관리를 위해 명심할 두 가지 :첫째 부와 행복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등식임을 항상 기억하자.두 가지란 당신이 가진 것(현실)과 기대하는 것(기대치)이다.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 따라서 가진 ..
전철로 도봉산역으로 가다.돌아올 때는 당고개역에서 이촌역까지 와서 백마역으로 왔다.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창포원이 나오지만 1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편에 있는 지하도를 건너가야 한다.그러면 창포원이 나오고 둘레길이 시작된다.1~2코스는 수락산과 불암산 아래를 걷는다.대략 12km정도 된다.산길 12km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니까 힘은 좀 들었다.등산에 비하면 아주 쉬운 길이지만 둘레길로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간식도 눈 때문에 앉기도 불편하고 춥기도 해서 걸으면서 먹고 거의 쉬지 않고 걸었더니 4시간 걸렸다.눈이 와서 날씨는 흐렸지만 걷는 재미가 참 좋았다. 1코스보다 2코스가 좀 더 힘이 든다.아마 1코스를 걸어서 힘이 빠진 후에 계속 걸어서 그럴 수도 있다.도봉산역을 출발할 때는 도봉..
우리 형제 자매들이 함께 모여 동작동 국립 묘지에 갔다.그리고 마곡동에 있는 여가 반상에서 점심을 다 함께 먹고 서울 식물원 들러서 구경하고 차 마시고 헤어졌다.국립 묘지에는 종민이 가족이 함께 와서 오랜만에 조카와 그 아들 수현이도 만날 수 있었다.그리고 식당에는 순동이네 가족이 함께 와서 식사하고 갔다.두 딸을 데리고 왔다.큰 딸 나은이는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한다.우리 손주들 세대들도 벌써 초등학생도 생기고 하영이는 둘째를 출산해서 아직 젖먹이도 있다.아래는 고 김영삼 대통령 묘
제목에 다 쓸 수 없는 책은 처음이다.이 책은 2023년에 초판 1쇄가 나왔고 24년에 초판 38쇄가 나왔다.12.13일에 다 읽었다.처음에 제목만 보고 미술에 관한 상식을 넓혀 줄 책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용도의 책은 아니다.말 그대로 미술관 경비원의 삶을 그린 책이다.저자가 미술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맞다.10년간 미술관 경비원을 하면서 미술품을 실컷 감상하고 또 미술품에 관한 지식을 쌓고 관람객들의 질문에 대답도 해 주고 한다.전사물에 관객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거장들의 작품에 몰입하기도 한다.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바닷물처럼 푸른' 이라는 뜻의 라틴어 베네투스에서 파생했다.아네모네라는 이름은 '바람에서 태어나다'라는 뜻이다.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나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가해자..
동생을 먹이느라 자기가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먹이고 있다.손자들끼리 이렇게 정답게 지내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고 감격이다.
이러니 내가 손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이렇게 사랑스러운 손자들이 달려오는데 어떻게 내가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어?
오늘이 12.12다.우리 나이는 이 날이 어떤 날인지 다 안다.나는 이 때 제대를 앞 둔 왕고참이었는데 나라 걱정 보다는 내가 제대 못 하는 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던지...그런데 올 해 12.3에는 현 대통령이 생뚱맞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바람에 지금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잠깐 동안 대통령이 제 정신이 아닌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덕분에 재판 결과가 남아있긴 하지만 쾌재를 부르고 있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우리 선교회원 6명이 남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서울역 8번 출구에 모여서 남산을 한 바퀴 돌고 명동으로 내려가서 명동 교자에서 좀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차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다.남산 둘레길을 몇 차례 돈 적이 있는데 비포장 도로는 오늘 처음으로 가 ..
(공주시청에서 복사해 온 글)공주 달전리(현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 출신의 선생은 김굉필의 문인이었던 서봉 유우에게서 수학한 정몽주, 김종직, 조광조를 잇는 한국의 정통 도학을 연구한 성리학자이다.어려서부터 총명해 14세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던 선생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나 많은 현인이 화를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은둔하게 되었다.1549년(명종 4)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곁을 지키며 간호하였고, 1551년 어머니의 장례가 끝난 후에는 공주의 선영 아래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달전 언덕 뒤의 옥정봉 위에 축대를 쌓고 항상 모친의 묘를 바라보며 울어 그 축대를 망묘대(望墓臺)라 칭했다.선생은 본래 벼슬에 뜻이 없었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높은 체하여 나오지 않는다고 여길까 염려해 1..
16일부터 18일까지 갑자기 학교 화장실 공사때문에 임시 방학을 하게되어서 윤춘식 선생 부부랑 우리 부부가 함께 백운산으로 가기는 했는데 우리 둘만 올라가고 여자둘은 밑에서 나물캐고 놀다.진틀마을에서 12시 10분에 출발해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반정도 걸리고 신선대를 거쳐서 다시 원점회귀하는데 3시간 남짓 걸리다.산은 그냥 무난하고 정상에 바위가 있으나 대체로 육산이다.너덜지대가 많고 정상에서 지리산과 덕유산이 보인다는데 황사때문인지 시계가 그리 맑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방향을 몰라서인지 찾을 수 없었다. 진틀마을 입구에서 개가 사자처럼 생겼길래 윤부장한테 물었더니 중국개란다.남도지방에는 벌써 산수유와 진달래가 피었다. 산행후에 휴양림에서 잤는데 휴양림 입구에 있는 동백림이 장관이었다.그리고 백운..
성경시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찬송가 384장기도
산정산악회를 따라가다.아침 5시 38분 백석역에서 전철타고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내려서 버스타고7시10분 출발해서 11시10분에경북 성주군 백운동에서 산행을 시작하다.1시간정도 가니까 안부에 오르고 2시간만에 칠불봉을 거쳐정상인 상왕봉(우두봉이라고도 한다)에 오르다.칠불봉아래에는 참나무와 산죽이 밀집되어 있었다.바람이 하도 심하게 불어서 손이 시렸다.정상부근 음지에는 아직 눈이 얼어있어서 미끄러지기도 했다.춥기도하고 바람이 심해서 밥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정상에서해인사쪽으로 내려가다가바람을 피할만한 바위밑에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밥먹고 해인사까지 내려오니4시간정도 걸려서 3시 15분 경이었다.주차장에 도착하니 3시반이다.원래 5시까지 내려오라고 했는데 너무 빨리 내려와서 차안에서 자다가5시에 출발해서 강..
미국 사는 하태수 부부가 오랜만에 귀국했다.77년에 같이 입학해서 같은 해에 군에도 함께 다녀오고 해서 졸업도 같이 한 친구다.미국에서 힘든 교민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다가 몇 년 전 은퇴를 했다.심성이 여리고 착한 친구여서 아마 목회하느라 엄청 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이렇게 만나니 참 좋다.경북 상주에 거처를 구하고 2월 말까지 우리 나라에 있는다고 한다.오늘 용문에서 만나기로 해서 전철을 타고 갔다.일산에서 용문역까지는 경의 중앙선으로 한번에 가기는 하지만 아침 출근 시간에는 2시간 반 가까이 걸린다.그래도 친구가 보고싶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성수 부부와 문목 부부, 그리고 77대우 소목 부부를 함께 만나서 마침 용문 5일장 장구경도 하고 장터에서 파는 국밥도 사먹고 재미있게 놀다가 계전리에 있..
백운산 등산 갔다가 들르다.백운산 자락에 있는 이 절은 670년(문무왕 10) 원효대사가 창건했는데 산 이름을 백운산, 절 이름을 백운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이 절에 머물며 10년 동안 기도했다. 1864년(고종 1)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은 절을 옛터에 옮겨 짓고 구담사에서 용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설에는 1860년 여단포에 사는 윤공이라는 어부가 작약도 근해에서 작은 옥불을 건져 올려 이 절에 봉안했다고도 전한다. 1884년(고종 21) 관음전을 세웠으며, 1916년 주기 김대원이 이응선의 시주로 법당의 감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글은 어딘가에서 복사해 왔습니다.)아래는 대웅전 내부(아래 글도 나무위키에서 팔상도를 복사한 글입니다.)아래는 대웅전 바깥..
전철로 운서역 2번 출구로 나간다.좌회전해서 큰 길 만나면 우회전해서 가다가 운서동에 있는 인천광역시 교육청 동아시아 국제 교육원 근처에 있는 등산로 입구에서 올라간다.백운산이란 이름의 산이 전국에서 아마 가장 많을 것 같다.내가 가 본 유명한 백운산만 해도 광양 백운산(https://song419.tistory.com/m/4493), 정선 백운산(https://song419.tistory.com/m/483), 포천 백운산(https://song419.tistory.com/m/187) 등으로, 산 위에 흰 구름이 있는 산이 백운산이니 사실 전국의 모든 산이 다 백운산이다이 산은 경사가 완만해서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라도 갈 수 있는 산이다. 높이도 255m 밖에 되지 않는 산이다.용궁사쪽으로 내려..
https://youtu.be/yckyucIiGtg?si=uAFKcgEpoG3TJp-v '신과 함께 가라' 해설https://youtu.be/rrB-HV9N9lo?si=VFBekfDl1L-5pDnv
안동 교회 들렀다가 근처에 있어서 가게 되었다.서울 시내에 있는 우리 나라 불교의 중심적인 절이기도 하고 조계종의 본부라고도 할 수 있어서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비싼 땅에 있어서 그런지 절이 그리 크지는 않다.대신 평일에도 불자들이 많이 찾고 주변 회사원들이나 동남아등 외국의 불자들도 많이 찾아 오는 것 같다.동남아 사람들의 말소리가 많이 들렸다.조계사 홈페이지의 소개글에 의하면"조계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대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대승의 보살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조계사는 일제치하인 1910년, 조선불교의 자주화와 민족자존 회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습니다. 당시 각황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총본산으로 근대 한국불교 ..
교회 홈페이지의 교회 소개를 보면"안동교회는 서울의 북촌에 있는 역사 깊은 교회입니다. 안동교회가 자리한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로 서울이 조선 왕조의 도읍지로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주거지로 형성되어 서울과 역사를 같이하여 왔습니다. 1908년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박승봉, 유성준 등을 중심으로 기호학교(지금의 중앙 중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이듬해인 1909년에 김창제의 집에서 안동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신앙과 교육에서 찾은 선각자들에 의해서 안동교회는 설립되었습니다.100년에 가까운 역사 가운데 안동교회는 수많은 인재를 육성, 배출하여 사회와 교회에 기여하였습니다. 일제하에서 한글을 지키다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전신)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순..